[ 환상 동화 ] 태그의 글을 표시합니다.
레이블이 환상 동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2년 5월 25일 수요일

잠들어 있는 여름

우리가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여름은 펜글씨 교본처럼 우릴 따라 하고 있다. 딸기가 올려진 케잌같이 중요해 보이는 이 여름의 우릴 따라함은 사실 여름이 덧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덧없는 그것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매력인 밤의 시간이 오자 옷을 벗는 듯 그것은 더위와 상관없어진다.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 등의 식기를 갖춘 것처럼 여름의 밤은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채로 식탁 앞에 앉아서 미묘해진다.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아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여름의 키는 이 식탁의 높이에 대해서라면 미묘하게 낮고 안 맞는 것이라, 식사 예절을 차릴 수도 없이 먼 데에 위치한 맛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누군가가 신경 써서 덜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식탁에서 전부 나갔다. 여름은 자기 자신의 시간이 본질적으로는 낮이라는 걸,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옷을 헐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가끔은 자신의 더위가 몸이 약한 사람들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혼자인 식탁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여름은 제가 부리는 일사병의 요정들을 맞은편 식탁에 앉히고 혼낸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일사병의 요정들은 입을 내민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여름도 안다. 여름은 자연스럽게 바닷가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이 외로워하는 여름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물을 데울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사람은 계절과는 상관없는 듯이 편한 차림을 하고 바닷가의 물에 몸이 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인스타에 올릴 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다. 여름도 초코가 올라간 와플처럼 자기 자신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싶다. 그런데 이 어린 성정의 여름은 사진 찍히는 걸 부끄러워하고 까르륵 웃는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을 튀기면서 놀고 있고, 튀는 물에 여름이 입은 옷이 젖는다. 이런 여름의 뒷모습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과 겨울이,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봄이, 유난히 신경을 쓰며 몰래 지켜보고 있다. 사계 중에서 여름은 장난기가 있고 혼자 있을 때 외로워하며 그중 나이가 제일 어리다. 그래서 여름은 가장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별 이유가 없어도 혼자 웃는다. 가끔 울상이 될 때도 있다. 왜냐하면 활동적인 여름은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팔꿈치가 다 까졌다. 여름의 넘어짐은 장마가 되어 꽤 긴 기간 동안을 집요하게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어떤 사람은 ‘이거 실은 저 구름이 날 따라오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반쯤은 맞는 말이다. 여름은 시선이 간 인간들한테 눈독 들이기도 한다. 여름이 흘리는 눈물은 떨어지면서 굳어져 우박이 된다. 여름 중에서 우박이 쏟아지는 날은 며칠 없으므로, 여름도 자주 울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여름은 제가 흘린 눈물을, 굳어진 그것을 손에 들고 다른 이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흘러내리는 것은 손안에 컴팩트하게 쥘 수가 없으므로, 그리고 평범한 빗물이 굳어진 것인데도 여름은 어리니까 가치의 경중을 잘 모른다. 그저 가져다줄 수 있기에 가져다주는 것이다. 여름에게는 그 우박 보석을 가져다줄 만한 이가 있다. 그것은 여름의 언니이다. 여름에게 있어서 언니란 자주 보지 못하고 친구 같으며 별것 아닌 일로도 재잘재잘 말하곤 하는, 없는 부모와 비슷한 이라고 볼 수 있다. 여름의 언니의 이름은 세실이고 여름은 혼자 지붕 위에, 여름밤의 한중간에 앉아 있는 세실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주변 마을은 축제 준비를 마쳤고 거기선 얇은 망으로 금붕어를 건져 올릴 수 있으며 탕후루를 팔기도 하고 꼬치에 자꾸 양념 붓으로 맛있는 양념을 덧바르며 굽기도 한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장난감과 인형이 기다리고 있는 사격을 할 수도 있고 언니의 손을 여름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서 잡고 있다. 잘 외로워하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여름은 어쩐지 곤란하다. 그런 여름의 얼굴을 세실은 바라보며 웃는다. 여름은 세실의 웃음을 좋아하고,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 일부러 넘어져 봤다가(자주 그러는 것처럼) 절대 그러지 말라는 언니의 당부를 듣는다. 그러다 크게 다치면 무지무지 아플 거란 말에 여름은 침을 삼킨다. 여름의 언니는 여름의 머리 위를 잔잔하게 쓸며 여름에게 고민은 없는지 물어본다. 여름이 꺼내놓은 고민에 세실은 다시 한번 웃는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은 잠 속에 빠지거나 다른 계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재밌는 일은 없는지 구경만 해야 한다는 건데 졸려 하고 있을 여름에게 잠을 깨울 수 있는 방법, 역시 세실에게도 없다. 그럼 책을 써보면 어떻겠니? 네가 잠들어 있어도 사람들이 읽어줄 텐데. 정말로 사람들이 읽어줄까요? 제가 쓴 것을?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잘 쓴다면 읽어주겠지. 여름은 오늘 밤 반복적으로 졸고 있다. 여름이 꾸는 꿈은 미몽에서 벗어나려고 불을 한없이 뒤쫓는 벌레들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리고 여름이 잠들어 있을 때는 세실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사실 세실은 여름의 언니인 것처럼 여름 앞에서 굴어보기도 하지만 그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어느 여름날, 장마가 한참 내리던 시절 어느 처마 밑에 있는 아이, 비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세실은 눈여겨보았었다. 그 아이가 지금 잠들어 있는 여름이었고 세실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졸고 있는 것을 깨웠다. 여기서 잠들면 여름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면서.

2022년 5월 23일 월요일

장미 모양 초대장

내던져진 장미 모양 장식은 덧없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공중에서 휘돌다가 떨어졌다.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모험이 아닌 듯이 제 자리에, 지상의 바닥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물로 입수했다……. 옆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저 밑 물이 있는 곳에서 헤엄치고 있자 오히려 그들과 나의 사이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무도 이 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아래에서 소리쳤다. “내려와! 한 명이라도!” 내가 먼저 했으니 너희들도 하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초대장의 글자 형식이 아니었으나 나는 이 순간이 완벽한 것 같았기에, 뛰어내리기 전의 망설임을 아직 안고서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그 순간 한 명이 내 말을 따라 뛰어내렸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위에서 걸어 내려와 이 물가의 쪽으로 가까이 왔다. “적어도 한 명은 왔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과 별로 친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아무 의미 없는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가에서 내가 걸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수건을 건넸다. 나는 그 수건을 이용해 몸을 닦고 물었다. “불 피워 놓은 곳은 어디에 있지?” ‘몸이 차군’ 나는 중얼거리며 안내해 주는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처음에 나 대신 내던졌던 장미 모양의 장식이 떠올랐다. 우리는 불가에 앉아 생선을 구웠고 그러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꾼 꿈의 내용이고 그 문제의 장미 모양 장식은 테이블 위에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놓여 있다. 꿈에 나온 게 아주 완벽히 이것은 아니겠으나 어차피 난 실내에서 혼자였으므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자는데 안 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는 물에 들어가길 거부하니까 물속으로 내던져진 적도 있었고. 오래된 일이라서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희미하다. 내게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먼저 뛰어내린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내려오라고 소리친 점이다. 뭔가 의미심장한 것 같았다. 난 꿈에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데, 오늘 꾼 꿈은 희한하게도 장 보고 있을 때도 생각나고 내 뇌리에서 없어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내가 먼저 했으니 너희들도 해.’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요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각자의 마음이란 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데 비둘기 떼가 모여서 음식물 쓰레기봉투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 “지금 나는 비둘기들을 보고 있어. 그러다가 생각난 건데, 혹시 괜찮다면 오늘 사람들끼리 모이지 않을래?” “우리가 비둘기라는 거니? 너의 그 말버릇은 여전하구나. 비하하는 듯하면서 친근하게 구는. 그러나 조심하는 게 좋을걸. 그건 어쩌다가 모욕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유념하지.”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생쥐이고(이 사실을 숨기려고 해본 적은 없다), 작은 생쥐가 아니라 생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인간에 가깝다. 이런 존재들을 ‘생쥐 인간’이라고 부르며 나는 같은 생쥐 인간들이 머무르는 데로 갔다. 그러니까 일종의 파티 장소로 나는 향했다. 맨홀 뚜껑을 열고. 아까 가지고 나온 장미 모양 장식은 내 바지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오늘도 그럴듯한 레퍼토리의 치즈 파티였는데, 우리는 치즈에 감싸여져서 그 안에서 진동하는 치즈 냄새와는 다른 냄새, 그러니까 빈 공동의 냄새를 맡아 거기로 향해야 했다. 물론 치즈를 그렇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었으므로 치즈 가루를 뿌린 스티로폼 안에 우리는 들어가야 했으며, 그것을 뚫고 올바른 장소에 도착하면 온전한 치즈 몇 덩이가 접시에 놓여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치즈를 찾아갔다……. 이것이 우리의 파티이다. 생쥐 머리를 인간의 머리로 바꿀 수도 있는데, 물론 우리들이 원천은 인간이니만큼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생쥐 모양의 가면, 탈을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완전한 인간은 적성에 안 맞아서, 그리고 지하를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식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 치즈가 담긴 접시는 우리들이 좋아서 덤벼드는 것이라기보단 생쥐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상징화한 것에 가깝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치즈가 담긴 접시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생쥐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러한 이벤트는 단지 명목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두운 빈 공동에 나와서 잠시 휴대폰을 꺼내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받았다. “그게 네가 날 내던진 모험이니? 어쩌면 긴장감이 없는걸.” 잠에서 깨어나 탁자 위를 보니 아까보다 그 장미 모양 장식과 덜 비슷하게 생긴, 그러나 그 장미 모양 장식임을 확신할 수 있는 열쇠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물론 나는 생쥐 인간이 아니었고……. 두 차례의 연속된 꿈을 나는 곧 잊게 된다.

2022년 4월 28일 목요일

잠들어 있는 얼굴

연기 곁에 재가 흩뜨려져 있었다. 그 재는 다시 연기에 날리기도 해, 조금씩 넓게 원을 그리며, 마치 이 모양대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지그재그를 그린, 그러나 멀리서 보면 하나의 원을 그리는 형태가 되어가며, 점점 커져갔다. 연기는 재를 이동시킬 힘이 없다. 그러나 연기 속에 섞인 바람이라면 그것이 가능했고, 무언가가 앞으로 나아갈 때 바람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그 바람은 제 권세가 있다는 듯이, 연기 속에 섞인 채로 재와 먼지들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의 가장 뒤인, 바람이 시작되는 곳의 최후방에서도, 먼지와 재가 공중에 뜬 채로 곧 날아갈 것처럼, 그러나 날아가지 않는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회전 중이었다. 선풍기를 끄자 바람은 멈추었고, 재와 먼지들도 이전의 동력에서 갈아탄 채, 서서히 힘을 받지 못하고 제자리로 떨어져 갔다. 그 재들이 쌓인 곳 경계선 너머를 손가락으로 훑자, 눈에 안 보이던 먼지들이 손가락 위에 종합되어 있었다. 나는 그 경계선 근처와 선풍기가 서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줄자로 쟀고, 그 수치를 노트에 적었다. 이와 같은 방 안에서 나는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신경질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는 소파 위에 누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나도 잠들어 있을 때는 저렇게 평온한 얼굴일 것이다. 달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 달빛 중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달빛의 들어오는 직선에 손가락 한 개를 집어넣었고 바닥에는, 그것으로 제외한 부분의 빛이 없어진 모양으로, 남에게 들키지 않은 채로, 당연하게 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자를 집어 먹으며 나는 이게 몇 번째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렇게 뒤에서 봤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팔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렇게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관상용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뒤에서 이렇게 웃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어쩐지 종교적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겨눠보고 있을 때는 말이다. 그리고, 저들은 나보다 앞서 걸어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충분히 쫓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지금 잠들어 있는 저 사람은 그들 중의 일부였다. 앞서 걷고 있던 사람들. 옥상에 있으면 헬리콥터가 내려오고 뒤에는 철거되지 않은, 아직 시공 중의 철골 구조물이 있는 반면.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는,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나는 얼마든지 그들에게 빌 수 있었다. 이런 얕은 절망이 사람을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이 건물 옥상에 있었고, 그는 내게 자기 앞으로 와서, 빌라고 말했다. 그는 장면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음성이 내게 전달된 것은, 소파에 잠들어 있던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빌면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늘어놓고 있었을 때였다. 그의 후회는 각 나라들의 국기를 연결해놓은 올림픽 정신의 긴 띠로서, 이 방의 뒤에 가보면 비슷한 것이 걸려 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나가, 옥상 위에 올라가서 그를 거칠게 꿇어앉히고, 나 또한 그렇게 앉았다. 저 멀리서 헬리콥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후회와 집착, 그리고 그 이후에 오는 피폐 등과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거기에 동일시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고, 뭔 참담함이냐는 듯한 무뚝뚝함으로 헬리콥터는 옥상 위에 건물처럼 떠 있었다. 곧이어 거기서 줄이 내려왔고, 우리 같은 상대를 준비할 시간과 자원, 그리고 적절한 장비 등을 갖춘 그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여기까지 쓰고서 나는 아까 잠들었던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좀 어때?” 문밖에서는 아까 구조대원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곧 여기는 그들의 발길을 허락하게 될 것 같다. 아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던 사람과, 나중, 누가 누구를 납치했는가를 상의하에 정해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이면 거래 또한 하게 된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납치한 것이지? 나는 그를 깨우고 물어보았고, 그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럼 감방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감방에 가고 싶은 눈치였는데(그야 외로우니까), 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경쟁하듯이 네모 모양으로 절단된 문의 틈으로 들어오고 있는 구조대원이 다치지 않도록 가서 붙잡아주었고, 얼떨결에, 같은 체면을 공유하는 채로 우린 서로를 납치한 게 아니며,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주아주 나쁜 사람이 우리를 여기에 가둬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들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기 갇히기도 하는 것처럼, 지금 잠들어 있는 네 얼굴은 참람하게도, 이 세상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한, 평온한 기분으로 자고 있구나. 옥상 위에는 아직 헬리콥터가 떠 있는데도.

2022년 4월 6일 수요일

그레고리의 업무

우선순위가 위에 있는 문화재들을 관리하는 그레고리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기 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하나의 무리가 오밀조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주 조용한 광경이다. 말이 없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새끼 거미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그 광경은 순식간에 파했다. 마치 다른 게 생각났다는 양 그레고리는 바닷가에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레고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다. 그레고리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그레고리의 손을 붙잡아왔다. 위에 있는 것을 끌어내리듯이 그레고리는 그 손을 이쪽으로 당겼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상대는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고리를 저쪽으로 끄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리도 이 상대를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람은 문화재였다. 그레고리가 관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처럼 말이 없게 된 그런 것들 중에 하나. 문화재는 현실을 침식하는 경향을 가진다. 수성에서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것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 보고 있었던 바닷가의 광경도 사실은 문화재가 벌인 사상의 침식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그레고리가 맡게 된 이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레고리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자문 역으로 인형사의 사무실에 찾아가곤 한다. 그레고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인형사가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계약을 그레고리의 마력적 저변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레고리도 거기에 동의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갖고 있는 문화재의 양만으로도 그레고리는 침식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마법 적성이 그쪽으로 의도적 편향된 그레고리라 하더라도 이같은 양을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인형사는 며칠 전 죽었다. 그리고 만들어둔 인형의 몸으로 다시 활동했다. 인형사의 시각으로는 이미 살아 있다는 것은 ‘활동의 재개’를 뜻했다. 그것은 ‘마모되어 감’일지도 몰랐으나, 어쨌든 간 인형사의 성격은 밝고 명랑한 편이었다. 인형사의 조수가 커피를 타와 그레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레고리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그레고리는 아까 침식될 우려가 있었던 바닷가의 사상을 이쪽으로 하며 잔을 받고 커피를 마셨다. 조수는 거기에서 마력적 반응을 느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불황이 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한 대단위 기류는 실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되거나 하며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비가 자주 오게 했다. 비가 온다는 것은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무언가를 끌어당겨 쓴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그레고리의 계약 또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기쁘거나 행복해진 이유를 찾아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이러한 합리화 마법이 결국 문화재들의 침식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드는 보호되는 필드의 생성과 이어지는 일이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는 전보다 많은 살인 사건과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내 주관을 말하자면, 인간의 불법적 행동을 점화시킨 것이 그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원흉’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 그레고리의 말에 내가 영향받은 것이다. 나는 여러 효과적인 방법들을 구상했지만 그것으로 그레고리의 사상에 개입할 명분은 찾기 어려웠다. 나는 이 사무실에서 ‘작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문화재들의 침식이 본질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 이어지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회의의 입장을 표하는 쪽이었다. 물론 그들의 경험적인 결과를 의심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이러한 관측이 다시 보호되는 필드를 만들어내 문화재로부터의 사상의 개변에 더욱 매끄러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어떨까. 조수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을 믿지만 믿지 않는다.’ 정도의 그러한 입장. 이 점 모순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선이 필요했고, 나는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농담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었기에 지금 내놓는 ‘화성’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이 자리가 코믹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쉽게 말하면 내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침식이 있으면 그 반대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 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인형사가 탄식이 섞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기가 이미 그건 원리를 알고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어진 대화는 기초적인 인형사의 마법 이론에 대한 강연과 실행 계획에 대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들었다. 인형사가 말하는 도중에 제안된 핵심적인 계획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원흉은 없으나, 그 원흉이 살고 있는 맨션은 있을 수 있음. 2. 그 맨션을 마법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원하는 결과에 닿기 어려움. 3. 여기에서 ‘肅’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공간을 압착하는 것으로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원리의 공간의 좌표를 지정하는 것에 가까움. 4. 그 ‘肅’이라는 기능을 지닌 문화재를 이쪽에서 만들어낼 수 있음. 5. 검사에게 그 검을 쥐여주고 들여보내(맨션에) 이 이야기에 말려 들어 간 근거로 보호되는 필드를 베게 할 것(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있는 조수가 구체적인 지시를 맡을 것). 6. 여분의 몸은 이미 여러 벌로 준비되어 있음. 검사는 살아서 돌아올 것.

2022년 4월 5일 화요일

모자 같은 고양이

만우절 장난 같은 고양이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하수구 구멍이 보인다. 난 길 위에서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고양이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머리에 모자를 얹고 있었다. 나 또한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다. 저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내 머리 위의 고양이와 아까부터 내가 쳐다보고 있었던 고양이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다. 나는 생김새가 정말로 비슷한지 확인해 보려고 모자를 벗어 잠시 바라봤다. 그런데 내 손에 들린 것은 모자였지 고양이가 아니었다. 순간 나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까 전과 같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 같은 모자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모자를 쓰자 그 모자는 다시 고양이가 되었다.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수구 구멍 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악어 인형이 걸어 나왔다. 진짜 악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악어 인형은 자기가 진짜라는 듯이 귀여운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악어가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는 나도 저 악어에게 한심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하수구 구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저 악어 봉제 인형에는 태엽도 안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누가 감아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태엽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악어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이동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렇다면 내 도착지는 다른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인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각자의 다마고치를 맞대고 전송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저 악어 인형은 그 순간을 알려주는 전송의 요정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철학적인 생각은 여기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요정 같은 악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악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인간을 좀 봐. 모자 위에 머리를 얹고 있어. 아니, 이게 아닌가?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어. 뭔가 한심하군. 네가 보기엔 어때?” 고양이가 먀, 하고 울었다. 아쉽게도 고양이의 말까진 알아들을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내 느낌상 고양이가 “그러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동의의 천재니까 말이다. 순간 아까 먹은 커피의 카페인이 내 혈관 속에 돌고 있는 듯하여 나는 잠시 휘청, 했다. 그리고 뒤에서 날 붙잡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친절한 이는 거대 고양이, 캣트시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거대 고양이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이렇게저렇게 쳐다봤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 거대한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 굉장히 특이한 인간이로군요. 저 고양이의 스핀은 저 위치에 고정되어 있어 살아 있지만 이 세계의 그늘에 가리어진 상태예요.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봤으니까요.” 거대 고양이 할로윈 분장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살아 있는 고양이의 촉감이 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나는 저 거대 고양이에게 감사해야 할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아까 전의 악어 인형이 뚜벅뚜벅 걸어와 캣트시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용무가 뭐니?” “그냥요.” “그냥?” “왠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저 인간이요.” “응?” “그런데…” “응.” “좀 한심한 것 같지 않아요?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까요!” 캣트시는 미니 선풍기의 전원을 켜고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악어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구나. 좀 한심한걸.” 순간 나는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저 고양이도 다시 먀, 하고 우는 것에 후회가 됐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쳐다보며(아침에)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는 것이 어울려 보이도록 점검했다. 그런데 저 고양이와, 악어와, 거대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 얹힌 고양이엔 문제가 없으나, 내 쪽엔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저기요.” 나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으로 나는 그 사람과 카페에 같이 들어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혹시 제가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이 한심해 보이나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네? 머리 위에 고양이가 있어요? 없는데요?” 저 앞에서 악어가 다시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만우절 장난은 아니죠?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럼요. 벌써 지났잖아요. 저는 머리카락만 보여요.” 분명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니 그런 것이 없었고 고양이가 손으로 누른 듯한 자국만이 보였다.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기사들의 무덤

평소보다 좁은 공원의 길을 걸으며 나는 기사들의 무덤으로 향했다. 왜 길이 좁은 것일까? 그것은 무덤에 안장된 기사들(죽은)이 내가 접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염으로 길을 구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그들은 산 사람인 내게 어느 정도 이상의 간섭이 불가능하다. 나는 마음껏(좀 불편하지만) 무덤가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안장되어 있는 그들의 막내뻘의 기사가 흙더미를 제치고―동료들에게 떠밀린 모양인지― 걸어 나와 말한다. 이곳에서는 금지되어 있소. 나는 되묻는다. 무엇이요? 그가 대답한다. 이곳으로의 접근이. 그리고 당신처럼 무언가를 먹는 일이. 그렇게 말하는 기사는 어쩐지 떨떠름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난. 난 보기보다 어려요. 지금 이곳도. 난 길을 잃어 왔는걸요. 그리곤, 배가 고파져서 들고 있던 음식을 먹은 거고요. 기사가 말한다. 길을 안내해주겠소. 그렇게 날 내보내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않소. 우리들에게 남은 당신들(기사)의 이미지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 막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보통의 복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금속 갑옷을 입고 싸움터로 나간다는 것이었지요. 난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당신네들은 전쟁을 많이 했나요? “많이 했소.”라고 그가 답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을 조롱하거나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이것 하나는 물어봐야겠네요.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봤나요? “그렇소.”라고 그가 답했다. 과거의 망령이 무고하다 어쨌다 판단까지 하는군요. 그렇게 판단하는 언어를 누가 당신에게 쥐여주었죠? “상급자가.”라고 그가 답했다. 당신은 내게 비난받기 위해 솔직한 모양이군요. 아니라면 솔직하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저기 있는 무덤 안쪽에서 한 기사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선 안 되었죠. 당신은 차라리 이렇게 대답했어야 해요. 그들은 무고하지 않았노라고요. 그러면 당신들은 무고한 일을 한 것이 되죠. 그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죽어서까지 그렇게 용서받고 싶은 건가요? 그것이 내 질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소’라고 답한 이유인가요? 난 전쟁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어요. 지금 내 눈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군요.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째서 이곳까지 오는 길을 구부렸지요? “우리들은 안식을 원하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난 수다를 원해요. 난 전쟁을 싫어하는데, 전쟁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이 말은 틀렸다고, 전쟁은 권력 가진 이들의 결정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서 내 감정인 증오를 앗아가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죠. 항상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냉철하게 생각해보라고요. 하지만 난 한쪽 눈을 잃었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해 보세요. 왜 무고한 이들을 죽였죠? 혹시 죽이기 전부터 미리 용서받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그 사람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되었죠? 주검이 되었겠죠. 지금 당신들이 누워 있는 것처럼요. 기사가 내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네.” 혹시 당신은 내가 죽인 사람이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째서 죽은 우리와 대화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내가 오직. 당신들과 대화하려 여길 찾아왔기 때문이지요. 그 기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기 시작했다. “왜 울죠?” 한 번도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과 대화하러 온 사람이. “그래서 고마운가요?” 그 기사는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서서히 무덤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또 다른 기사가 나와서 말했다. 나는 지금의 대화를 다 들었소. “그런가요?” 당신은 우리에게서 무엇이 궁금한 것이오? “궁금한 것은 없어요. 단지 그냥 얘기를 나누려고 찾아온 것뿐이에요.” 당신 뒤에는 대의가 있소? “아뇨, 그런 건 없어요. 당신들은 대신해서 화내주고 비난해주고 울어줄 이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전체의 의견은 아니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쪽이지요? 그리고 아까 웃은 사람은 누구예요?” “상급자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가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안 드오.”라고 그가 말하자 아까보다 더 여럿이 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당신은 어째서 여기엘 찾아온 것이오? “남이 누운 자리에서 샌드위치를 좀 먹어보려고요. 내 생각에 당신들은 잘못이 없거나 미미해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시나요?” “더 들어보고 싶소.”라고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증오하는 터인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네들의 세상에도 있었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리고 틀림없이 있었겠죠.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요?” “있었다오.”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들의 주인이 그랬소. 당신의 세상에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도 나의 주인이지요. 내 증오의 주인.” 그 사람들은 무고하지 않소? “어째서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그래서 그들을 우리가 죽여도 되오?’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무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당신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고, 전쟁에 대해 남들이 아는 정도만큼도 모르오. “내가 그런 말을 당신들 입으로부터 나오게 하기 위해 지금껏 수다를 떨고 있었던 거랍니다.”

2022년 3월 11일 금요일

환상 동화

환상 동화는 재를 뿌려 마당 앞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마이는 걷고 있습니다.

사탕 신사가 된 그는, 아무 것도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한 입 베어 물린 그는, 결손된 채로 움직입니다.

작은 기계 신세입니다.

좋아하는 긴박한 노래가 나옵니다.

내가 전에 쓴 적 있었던 미니어처의 세계관이 그대로 있습니다.

‘릭과 배반’에 나오는 닷지 자동차라는 것도, ‘흡혈귀’에 나오는 벨벳 나무라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서재에 앉아 그것을 쳐다봅니다.

나만을 위한 도서관, 드라마틱한 조명의 여가수,

그리고 녹아내리는 알사탕, 참외 무늬가 그려진 맥주잔,

다 내가 쓴 글에 나온 것들입니다.

마이는 달리고, 도착 행렬 앞에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습니다. 

마이는 [81]등으로 도착합니다.

한 입 베어 물린 그는 환상 동화에 나오곤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재가 있는 이유는.

한 번 불탔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중요한 사물이.

그것은 어딘가의 고전에 나오는 시체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체에 대한 것은 내가 쓰려다 못 쓴 것입니다.

환상 동화는 동화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른들을 위한 것도 아니네요.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내 등장 인물이 될 터인 마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마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붙들린 신세가 되어 애매하게 등장하곤 합니다.

환상 동화는 환상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입니다.

나는 어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른들이고

나는 아이입니다.

길을 잃은 어떤 사람이. 내가.

어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안의 어른의 앞에 당도합니다.

어느 가문의 아이냐고 묻습니다.

길을 잘 아는 터인 어른이. 내가.

그 아이의 앞에서 딴청을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교육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뿐이었죠.

그런데 이야기들은 교육이라는군요.

그 어른이요.

아니면 교육이 이야기들인가요?

그 아이가 묻습니다.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당신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안의 사람이군요.

자랑스럽지 않나요? 

저 멀리 보이네요. 저 아이가.

혼자서 길을 찾은 저 아이가.

난 아이를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었어요.

그건 내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라요.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재를 뿌리고……

마당이 있으면 마당 앞에……

더럽히는 일이죠.

나는 그렇게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건 필요 이상으로 반납하는 느낌입니다.

사과 소년이 한 입 베어진 채로 걷고 있습니다.

학급은 무너지기 마련이죠.

미리 주어진 것을 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늘한 성질의 보석.

그것을 나는 비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