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4일 일요일

육망성

이리 들어와, 말하고 너는 선을 폴짝 뛰어 넘었다. 두 발이 동시에 넘어와야 해. 그러나 선을 넘은 너의 표정은 우리가 손을 잡고 있을 때와 달라 보였다. 어서. 너의 얼굴 속 모든 도형이 갈라지고 있다. 환희와 광기가 서로를 침범하며 번지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네가 별장, 이라 부른 곳으로 너는 가버린 듯했다.
 
그러면 나는 너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네가 없는 자리에서 나는 너에 대한 생각을 시도한다. 우리는 꼭 붙어 다녔으므로, 이 시도는 나에게 낯설다. 그러나 언젠가 꼭 해야 할 작업이었다. 나는 너에 대한 생각을 재시도한다. 그것은 몇 가지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너의 모습이 브로마이드처럼 펼쳐진다. 나는 생각의 크기를 좁히려 노력한다. 나는 너를 클로즈업한다. 너의 눈주름과 입가를 본다. 재생시켜 보기도 한다. 그것들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미세하게 깊어지다가 한순간에 탄성을 잃는다. 일순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일까? 그런 것까지는 나의 생각만으로 알 수 없다. 네가 필요해. 우리는 언제 만났지? 언제 서로를 알아봤지? 그런데 왜?
 
선 안쪽으로 발 하나를 넣는다. 그러자 선 안의 나와 선 밖의 내가 있다. 저쪽의 나는 이쪽의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나는 두 번째 발을 넣고 세 번째 발을 넣는다. 네 번째 발을 넣는다. 이쪽의 발은 아무리 넣어도 하나가 남는다. 이것은 너에 대한 생각이 결론에 이르는 것을 명백히 방해한다. 발은 계속해서 하나씩 넘어가고 나는잠식당하고 있었다. 네가 예상했던 바대로.
 
너는 내가 좋은 재료가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성스러운 사랑의 비유로 이해했다. 그럴 리 없잖아. 저쪽에 떠 있는 나의 입이 말한다. 두 번째 입이 말하고 세 번째 입이 말한다. 그럴 리 없잖아. 그럴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야 만다. 입들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말씀하고 있다. 가장 선명한 기억 속에서 너는 별의 커비를 노래하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흔들리면서 너의 잔영을 더듬고 있다. 어딘가의 네가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그랬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