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6일 금요일

불태우기

램프가 꺼질 무렵의 일이다.

미리 추위가 몰려와 있었다. 잠들 사람은 잠들었고 죽고 싶은 사람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은 사람들이었다. 할 이야기가 남았나?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브게니와 조라는 낱말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휘는 앞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실밥을 잡아 뽑고 있었다. 죽 뽑아도 약간의 실밥이 남았기에 휘는 그런 수법으로 자신의 겉옷을 해체하고 있었다. 오그오헤는 서성이고 있었다. 관심을 끌기 위함은 아닌 듯했다. 어느 쪽도 재밌어 보이지는 않았다.

램프가 몇 번 깜빡이자 남은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램프 곁으로 모여들었다. 꺼지려나? 오그오헤가 말했다. 기름이 없는 것 같은데. 오그오헤가 한 번 더 말했다. 기름이야 만들면 되잖아. 누군가 말했다. 누구로?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왜 램프를 계속 켜놓아야 하지? 내가 말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램프는 뜨거웠다. 오그오헤는 뜨거운 것을 집어 포대를 향해 던졌다. 불이 붙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휘의 주먹 속에 있을 실밥을 떠올렸다. 조라가 포대 쪽으로 다가가 크게 들이마신 숨을 불었다. 예브게니가 조라 곁에 있었다. 타라, 타라, 하면서. 램프에서 시작된 불은 구호와 함께 조금씩 번져가고 있었다. 잠든 사람은 화창한 꿈속이었고 우리는 밀알 타는 냄새를 마시며 빈 포대를 펄럭였다. 그럴 기운이 있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