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일 월요일

산역꾼

터로 간다. 아직 세상은 어둡다. 우리들은 지관(地官)을 따라 희푸른 산으로 들어간다.
삽을 들기 전에 산신께 공물을 바친다. 날이 밝으면 손이 올 것이니 그 손을 잘 보살펴달라고. 준비해온 술, 과일, 포 등을 차리고서 우리는 절을 한다. 이를 핑계로 술 한 잔 걸친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엔 명태를 묶은 삽을 광중(壙中)이 될 자리에 꽂아두고 그 주변에 술을 뿌린다. 광중의 네 귀퉁이에 흙을 한 삽씩 떠내고 공물을 올린 뒤 다시 절한다. 이를 핑계로 술 한 잔 걸친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엔 주변의 나무들을 벤다. 특히 광중 부근의 나무들은 뿌리까지 캐낸다. 그 뿌리가 자라 광중으로 뻗도록 하지 않기 위함이다. 너무 고되기 때문에 땀을 식히기 위해 술 한 잔 걸친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엔 삽 댈 부분에 술을 붓고, 지관의 지휘에 따라 삽질을 시작한다. ‘천광(穿壙) 낸다’고 한다. 지관은 패철을 살피며 폭과 길이와 깊이를 알려준다. 역시나 너무 고되기 때문에 이때 삽차가 동원되는 일도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땅을 판다. 구덩이를 판 뒤에는 그 구덩이가 적당하게 깊은지 보며 한숨을 돌린다. 휴식하며 술 한 잔 걸친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린다. 당신은 정해진 시간에 오기로 되어 있다. 당신은 세신(洗身)을 하고, 정갈하게 차려입고서 여기로 올 것이다. 후대의 손에 들린 채, 편안하게.
아직 세상은 어둡다. 당신은 당신의 초상과 함께 마침내 여기에 다다를 것이다. 당신은 노래를 들으며 올 것이고 노래를 들으며 떠날 것이다. 당신의 머리는 산봉우리를 향하고 당신의 발은 산기슭을 향한다. 지관은 당신이 좋은지 살필 것이다. 당신은 좋을 것이다.
당신은 흙을 덮을 것이다. 우리는 남은 술을 마저 걸칠 것이다.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볼 만큼 취하고 오늘을 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산에서 하는 일[山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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