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비밀 관리자


방금 고객 한 분이 엉덩이를 털고 밀실 밖으로 나갔다. 대단히 육중한 엉덩이였다. 그는 무려 두 시간 분량의 비밀을 털어놓고 나갔다. 얽히고설킨 그의 여자 관계에 대한 비밀들이었다. 길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1급에 해당하는 개인 비밀이다. 이 비밀에 대한 보안은 굳게 유지될 것이다. 우리는 고객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니까.
어떤 비밀들은 지키기 어렵다. 아니 비밀이란 원래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이 비밀의 형성에 기여한 1차 공모자이든, 아니면 타인을 통해 비밀을 공유하게 된 2차 공모자이든(“비밀은 2차 전파 이후에는 약 99%의 확률로 비밀로서의 효력을 잃는다”라는 세계밀어관리국 통계에 따라 3차 공모자라는 개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비밀 관리 능력을 훈련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만한 언어의 압력을 감당할 만한 차폐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이 생김으로써 받게 되는 언어의 압력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해 그들은 비밀 관리 사무소를 찾는다.
우리 비밀 관리 사무소 직원들은 고객의 말을 성심껏 들어주고, 무의식이라는 토양 아래에서 저 스스로 의미의 잔뿌리를 뻗어나가는 언어적 특성상 발생되는, 고객 자신도 미처 몰랐던 비밀 속의 비밀을 놓치는 법이 없도록 진술되는 비밀에 대해 세심하게 반문하며 비밀의 투명함을 교차 검증한다. 불법 유출의 위험이 존재하는 비디오, 오디오, ‘대나무숲’ 등의 기록 장치는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입사시 3개월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익히는 초월 기억법을 통해 그 내용을 뇌에 반영구 보존한다(초월 기억법은 뇌 사용에 관한 고도의 효율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므로 사원 선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수행에 관계된 신체 능력이다. 특히나 입술의 무게는 최소한 21그램 이상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채용을 위해 입술 속에 이물질을 삽입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그들이 다시금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견디기 어려울 땐 같은 내용을 재차 들어주고, 기억 훈련이 되지 않은 고객들의 진술에 혹여나 오류가 있을 때는 이를 정정해주는 애프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이를 비밀 강화 서비스라고 한다).
비록 훈련받았다고는 하나 비밀 관리 사무소 직원들도 한낱 인간이기에 비밀의 압력을 견뎌내는 데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은 비밀 입력 후, 그 압력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독방에 가둔다. 그 독방은 목소리가 벽을 통해 수차례 반사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직원은 그곳에서 입력받은 비밀을 더 이상 육성으로 말하거나 듣기 싫어질 때까지 중얼거리다 나온다. 때때로 비밀 유지에 탁월한 성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레몬 추출물을 합성한 크림을 입술에 바르는 경우도 있다.
계약서상 명시된 비밀의 보존 기간은 특별한 언급이 없을 경우 계약자(갑)의 사망일까지이다. 때문에 갑이 사망한 후 세상에 알려진 비밀들 중 몇몇은 큰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주로 기밀 문서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군의 기밀 작전, 유명 인사의 성 추문, 갑의 사후에 발생하는 예언들(생전에 공식적으로 말한 바 없는 대 예언가들의 예언이 알려지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를 통해서다), 연쇄 살인 사건의 ‘진짜’ 배후와 원인, 종교 지도자의 본체가 보존된 은신처, 사라진 보물들이 보존된 장소, 베이퍼웨어인 줄 알았던 소프트의 실존에 관한 진실, 500년 이상 이어진 맛집의 육수 레시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만약 갑의 사후에도 비밀이 지켜지길 원하는 경우 계약 사항에 특수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 대개는 “내가 죽고 나면 무슨 상관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가성비에 관한 딜레마가 따른다. 또한 이는 ‘죽음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영원한 비밀’을 견딜 수 있는 직원을 필요로 한다. 오직 고도로 훈련된 엘리트만이 가능한 일로서, 업계에서는 이들을 침묵의 수호자라 부른다.
계약 기간 중 계약자의 잘못에 의한 사건 사고로 비밀이 누설되거나 갑이 비밀 유지를 포기하거나 비밀 자체가 무의미해져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경우 갑과 을 중 한쪽이 계약 해지를 요청할 수 있다. 2급 이상의 비밀이었던 경우 묶여 있던 언령을 해방시키며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기도 한다.
뇌 속에서 항상 온갖 비밀들이 들끓고 있기에 직원들은 일평생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충분한 급여와 최대한의 복지가 제공되지만 결국 미쳐버려 폐인이 되거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직원들도 있다. 이러한 직원들은 내규에 따라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처리된다. 나는 갑으로서 이상의 비밀을 당신이 보관하도록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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