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1일 목요일

사형수는 스피커에게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가져다 주었다. 만져보니 익히 아는 종이였다. 시녤펜이 만든 거야. 반가움이 살짝 일었다. 스피커는 천천히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가 알게 된 것을 자네에게 알려주어야만 해.
자네가 누구인지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만.

내가 알아낸 것은 우리가 찾아 헤매던 신이 이곳 광산에 있었단 거야.
불분명하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 불과하니까.

신이 친절하다는 것을 미리 말할게. 신은 뭇 인간보다 잘 듣는 존재이며 뭇 인간보다 인간을 좋아해. 그래서 인간의 소원을 이루어준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가 무시한 세계의 법칙은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 주술사들이 대속하는 것은 바로 신이 행하는 기적만큼의 불합리야. 저주라고도 하고 제약이라고도 하는 그거 있잖아, 우리를 죽고 싶게 만드는.

그리고 신은 언제나 99년 전에 있어.

신이 언제나 99년 전에 있기 때문에, 신이 언제나 우리의 뒤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소원을 빌면 99년 뒤에 이루어진다. 신이 여기 오는 데 99년이 걸리는 거야. 알겠지. 초목이 얼음으로 뒤덮이고 대지가 얼어붙어 우리 인간들이 이곳 학살지 시체 매장지에서 나오는 사람 고기로 연명하게 된 것은 언젠가의 99년 전에 누가 빌었던 소원 때문인 거야. 그것은 신의 잘못이 아니야. 따져보면 우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떤 사람이, 세계가 다 얼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대지가 땅이 인간에게 먹을 것을 쉴 곳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야. 어떤 이유에서건 그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잘 공헌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야 돼. 수습하는 수밖에 없어.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겠어? 나도 먹었고 자네도 먹었겠지만, 학살 피해자를 식량 삼는 일을 언제까지고 계속할 수는 없어.

신은 소라게의 모습을 하고 있어. 밟아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은 소라게. 그것은 내가 옛 나라의 어떤 노인에게서 들었던 거야. 그가 지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 노인은 그가 지고 다니는 소라에 희끄무레한 오각별 하나가 그려져 있노라고 말해주었지. 자네가 할 일은 그를 찾아내는 거야. 어떻게든 신과 우리 사이에 있는 시간을 좁혀서. 신을 찾아. 99년 뒤에 이루어질 소원을 빌어. 다시 되돌려. 모든 것은 자네의 역량에 달렸어. 왜냐하면 자네는 분명 마지막으로 올 사람일 테니까.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