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침대

 

어두운 방에 앉아 있다. 날씨가 흐려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지경이다. 이 집은 2층에 있다. 창문으로는 맞은편 건물이 보인다. 아주 가까이 있다. 그래서 불도 안 켜고 앉아 있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밝은 곳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 이런 문장을 썼다고 해서 말이다. 아마도 그 문장은 평행하게 계속 살아갈 것이고 나는 내 길을 간다. 


빈혈이 있다. 방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빈혈 때문에 침대로 들어간다. 지금은 오후 한 시이고, 그런데 집 안이 어둡고, 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바깥이 어둡다. 하지만 지금은 불을 켤 수가 없다. 그냥 일단은 누워 있자. 얽히고설켜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말이다. 한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B는 힘없는 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B는 오히려 힘 있는 사람들 쪽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가운데, 가난하기 때문에,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엄청난 불운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오히려 그런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에 세상에 똑같이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빈혈 때문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누워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고 사실 빈혈이 있긴 하다. 거짓말을 하고 집에 왔다. 사실 거짓말을 하고 일을 관두고 집에 왔다. 내가 잘하는 거짓말은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는, 그런 거짓말을 하고 일을 그만뒀다. 사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갑자기 집을 나갔고, 집을 나간다고 하고 집을 나갔지만, 누구도 아버지에게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다음 날은 평화로웠는데 왜냐하면 가족들은 아버지가 이 집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없었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내가 집을 나갈 때 가족들은 나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바로 그 집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지키고 싶었던 평화가 뭘까?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남는, 그건 왠지 독재하의 평화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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