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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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공기
텔레파시 입문
오류가 이 인터넷을 집어삼킬 것이다. 디지털 쓰레기와 오염된 유사 정보가 이곳을 가득 채워 가고 있다. 가짜뉴스들, ‘견해’들(오해된, 오해한, 곡해된, 곡해한, 모자란, 과한), 개소리를 반박하려는 개소리들, 끝을 모르는 농담들, 되다 말기를 스스로 택한 ‘시’들과 ‘소설’들, 그 비슷한 예술 잔해들, AI잼, 밈, 포르노(인간과 동물과 사물 들), 광고 이미지와 텍스트, 더 많은 조회를 원하게 하려는 그 모든 경사로들 사이에서, 인터넷은 표면을 위한 표면에, 표면의 바다에 미끄러지며 가라앉고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모든 것을 재현하고 재생산하려는 이곳에서, 더 실감 나게 옮기려 할수록 진실(이것은 미래와 관련된 개념이다)과 더 멀어진다고 하는 언어의 특질은 극대화되고 있다. 어떤 빛나는 진실이 공급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겉에 펴 바를 뿐이다. 감각되는 아무것도 옳을 수 없게 됨으로써 모두가 더 옳음을 원하게 되고, 더 많은 그름 자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그친다. 모든 것이 있고 아무 뜻도 없는, 모든 것을 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인터넷은 총문학(總文學)이 되려 하고 있다. 이곳은 쓰레기-문학의 정점이자 전범이 되려 하고 있다. 감관을 붙잡아 두려는 자본과 자본을 붙잡으려는 강박이 함께, 공산주의 문학 이상理想의 악몽판을 도래시키는 중이다. 모두가 함께 쓴, 그리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역사가 그것을 쓰이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에 관해 쓰고 있다. ‘더 큰 숫자’라는 하나의 이념을 따라 그것은 만사를 분열시키며 영원한 미완을 향해 수렴하는 역류가 되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읽기 기계가 되어 간다. 그것(우리와 인터넷)은 미래로부터 불길하게 뻗쳐오는 에스에프다. 또는 종말 미래로의 고속화도로다. 우리는 무오류의 감정 노드가 되어 간다. 맹신과 불신을 향해 우리는 치닫는다. 언어가 드디어, 현실에 대한 오랜 열세를 역전시키고 있다. 문자는 숫자의 노예가 되어 간다. 노예들의 감관과 손을 통해서다. 드디어 우리는 꿈에 도달하고 있다. 무정한 현실을 파괴하면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현실은 실제로 파괴되고 있으며,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병에 걸리고 있고, 병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가? 인터넷인 가장 원초적인 형태인 책을 살펴보자. 그것은 한때 가능성으로 여겨졌고, 그 가능성은 이제 이렇게 되었다. 우리가 다시 종이책을 볼 때에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검색’ 기능의 부재다. 색인이라는 야만은 우리의 책들을 뒤에서 꽉 밀어붙이고 있다. 아니면 우리의 책들이 색인이라는 야만을 붙들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듯, 그 또한 해방되어야 한다. 책 안에서 우리가 검색하고 책들 사이를 검색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 된다면, 표면을 향해 가라앉아 가는 문자의 미래를, 우리의 것이었던 적 없었던(그러나 우리가 파놓은) 미래의 물길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책들이 공유하는 완전색인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다면... 도래 중인 총문학의 꼬리를 잡아 뒤집어 뺄 수도 있을 가능성이 거기에 있다고 해보자. 그것이 인터넷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르지 않다. 그것(인터넷)을 총문학이 아닌 그것의 완전색인으로 쓴다면, 본문이 아니라 색인으로 읽는다면. 그것이 스스로 현실에 대한 사전임을 참칭하지 못하도록, 먼저 분명히 해둬야 한다. 무한과 영원이라는 착시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총문학의 노고(불가능이 아니라)를 헤아림으로써, 유한과 한계가 진실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