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를 쓴 운전수가 승객들에게 고개 인사를 한다. 승객들 사이엔 운전수의 옛 애인들도 있다. 실제로는 운행하지 않는 버스이나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차량도 있단 걸. 중절모의 아래로 드러난 운전수의 생김새와 거의 같아 보이는 승객이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버스는 출발을 한다. 잠깐 정차하고 다시 핸들을 잡기 전에 운전수는 중절모를 고쳐 쓰고. 승객들이 짝짝짝 정해진 듯이 박수를 친다.
그런 광경을 암시하는 것 같은 그림이 이 미술관에는 걸려 있기도 하다. 운전수가 결여한 것은 손위나 손아래 누이가 아닐까. 그가 어쨌든 갖고 싶었던 것은 형제자매들이기도 했다. 그동안 운전수는 주름이 많이 잡히는 쪽으로 늙어왔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한다. 아까 전에 탑승했던 운전수와 생김새가 거의 같은 사람이ㅡ형제자매를 넘어서ㅡ 운전석에 있는 거울로 운전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운전수는 이런 순간을 실제로 겪었다. 뒤에서 경차 하나가 맹렬히 다가와 옆 차선으로 아슬아슬하게 추월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으나 운전수는 욕설을 내뱉지 않았다. 그 대신 승객들이 놀라지 않았는지 조용히 거울로 확인했다.
깜깜해진 하늘 위에 내가 좋아하는 흐릿한 구름이 끼어 있다. 승객들 중에는 예의 운전수의 도플갱어가 가장 먼저 잠들었다. 히터를 튼 버스 내부는 밖에 의존하지 않은 채 따스했다. 옛 애인들과도 운전수는 곁눈질이라도 하는 순간이 없었다. 그치들은 운행이 끝나 내리는 것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고 그에 대한 운전수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나는 조금 놀랐다. 마침 뒤를 거울로 응시하던 운전수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입 모양으로 무언갈 내게 말하고 있기까지 했다.
빙, 과. 아니면 잉, 걸 이렇게 말하는 듯도 했다. 나는 거기서 시선을 금방 거두고 내 맞은편 승객을 힐끔 쳐다봤다. 버스를 막 탈 때보다 피곤에 지쳐 몇 년은 더 늙은 것 같은 남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내 얼굴도 그럴는지는 몰랐다. 나는 늙고 싶지 않았고 조금만 늙고서 그 이상의 것을 거머쥐고 싶었다. 운전수는 하나하나의 얼굴들을 다 눈에 담아두는 듯하게 무뚝뚝했다. 운전수들이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무뚝뚝해지기.
나는 얕은 불 속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버스의 안과는 상관없는 추억이자 잠시 들게 된 꿈이었다. 그 광경. 나는 가방을 열고 운전수가 쓴 것과 최대한 닮은 벙거지 모자를 꺼내 썼다. 막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를 뒤에 두고 사람들이 한 명씩 내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거나 매점이나 식당에 가서 뭘 사먹든 했다. 나에게는 이렇다 할 흥미가 들지 않는 시간이었다. 휴게소로 간 나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어두운 버스로 다시 가서 탔다.
이 모든 일이 나의 미래에 없을 것 같기도 나의 과거에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현재인 이런 순간을 앞으로도 간직하기엔 무언가 의미를 가진 사물들이나 말 따위가 필요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난 버스 안에서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더 복잡한 사물들이 기억에서 나중에라도 솟구치게 하도록. 나는 다시 출발한 버스 안에서 까무룩 잠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격앙되어 있지 않단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꿈의 탓이었다. 이 중에 결원은 없어 보였다. 무언가 잘 맞춘 퍼즐을 보는 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거기서 하나가 빠진 그래서 완성에 못 미치는 아쉬움이 곧바로 들었다. 레고를 조립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 안을 유려한 몸짓의 고양이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휴게소에서 얻어 탔는지 이 사람들 중 한 명이 놓쳐버린 건지 아까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고양이였다. 그치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리란 걸 틀림없이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각각의 좌석마다 기대를 가지곤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꽤 많았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안타깝게도 수중에 고양이 간식이 없었다. 아까 전에 은근한 암시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버스 운전수의 말을 듣고도 중요하지 않게 여긴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나 그랬음에도 친절한 고양이는 성큼 이 자리로 와선 내 허벅지에 웅크리고 누웠다. 버스가 잔잔히 달리고 있을 때 옆으로 사람들이 와서 고양이에게 간식을 먹였다. 그들은 그러고 나선 만족한 듯 저의 자리에서 두 눈을 감고 쉬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기도 했다. 고양이는 운전수의 중절모 속에서 뛰쳐나온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는 그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고양이는 이제서 버스 중앙의 바닥에 엎드리고 누워선 눈 위를 앞발로 쓰다듬는 것 같기도 했다.
운전수의 중절모에서 뛰어나온 저 고양이에게 잠시 샘이 났다. 그것은 누구에게라도 그럴 법했다. 저런 곳 안에는 이곳만큼 또 다른 행복한 세상이 있다고 추적추적한 현실의 날씨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요즘 시대에 중절모를 쓰는 것은 드물게 됐다. 나는 모자를 쓰는 일도 내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쓰고 다닌다.
어느샌가 운전수가 몰고 갔던 버스에는 사람들이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나를 제외하면 너댓 명인 듯했다. 운전수의 옛 애인 중에는 추측이지만 한 명만이 남은 듯했다. 그치는 그 사실에 의기양양하며 운전수와 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옆창문에 기댄 표정이 온화해 보였다.
다 내리기 전까지 운전수의 옛 애인들 사이에서는 다툼이 있었다. 서로들 자신이 가진 초조함을 다 드러낼 만큼 조급했다. 운전수의 도플갱어 또한 언제쯤인지 내리고 없었다. 여인들은 운전수로 다투면서 운전수가 가치를 지닌 사물인 양 말했다. 운전수는 곤란하거나 조금 부끄러워 하는 듯했고 나는 그가 이 버스를 이렇게 계속 운전해주었으면 했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똑같은 이 버스를 탈 수 있게. 그렇다는 것에 대해 나는 수치심도 별로 느끼지 않았다. 나에게는 빨리 도착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설혹 이틀이나 삼일씩의 시간을 곱빼기로 먹어 점점 더 남보다 늙는다고 해도 말이다. 거리는 너무 추웠고 버스 안은 보호받는 것 같아 아늑했다.
버스 기사는 한참 동안이나 적요로웠고 정거장 안내 음성의 뒤로 자신의 육성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운전수는 아까 전에 저의 옛 애인들이 내릴 때 씩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 남았던 그치들의 마지막 사람도 꽤 한참 전에 내렸다. 나는 그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이 나의 신이지 않느냐고.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새카만 밤 속에서 이 앞은 어두웠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