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 월요일

눈술


예쓰, 예쓰, 티쳐 








 선생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아직 사람은 되지 않은 존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어린 친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서는 쉽게 잊는다. 처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도 이들을 통해서였고 관심이 멀어진 것도 이들을 통해서였다. 잠시 여러분들이 이들과 반나절만 있으면 금세 깨닫고 외치리라.

 “얘는 왜 이러지?”

 아무튼 간에 책상에는 아이가 두고 간 펜이 놓여 있다. 그들은 지우개, 우산, 외투, 끈 등 가리지 않고 잃어버린다. 자신의 사물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적지만 타인이 두고 간 물건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선생님, 이거 가져도 돼요?” 나는 보지 않아도 알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한다. 아, 이거 프린들인데, 그가 외쳤고 나는 프린들을 자리에 놓으라고 말하고는 잊는다.

 방대한 지식을 배우면 바로 써먹는 이들을 언제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프린들은 펜의 종류이거나 브랜드 이름이 아니다. 그는 앤드류 클레먼츠가 쓴 『프린들 주세요』에 나온 주인공 닉의 단어를 빌려 쓴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배운 모든 내용은 인류 전체에 공유가 된다고 믿는 듯 생각의 흐름대로 말한다. 물론 설명 또한 하는 법이 없다.

 아이들의 책을 읽지 않는 선생이라면 저 말 또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보통은 책을 펼치지 않을 게 분명하니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는 닉이라는 말썽꾸러기 소년이 ‘펜’이라는 단어 대신에 ‘프린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학교에서 어떤 소년이 단어가 어떻게 생기는지 질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저자의 즐거운 상상력에 대한 관심보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문하기 위해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펜을 프린들이라고 고집스럽게 부르는 닉을 통해, 국어 선생님인 그레인저를 통해 하나의 단어가 어떤 유래를 가졌고 단어를 왜 지켜야 하는지 보여주는 유쾌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펜은 깃털을 가리키는 라틴어 ‘피나’에서 유래되었지만 아이들은 오직 프린들이라는 단어만 기억하고 이것이 실화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허구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이 글도 허구라고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는 작은 형상의 열 살짜리 친구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보라고 실습을 시킨다.

 언어의 창조성, 사회성, 역사성을 담아볼 것.

 그들은 쉽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눈술’이라고 적는다. 프린들에 대적할 만한 단어라고 코 평수를 넓힌다. 눈술은 바로 ‘눈 감고 술래잡기’의 줄임말인데 여기는 논술을 배우는 곳이니 (물론 아니다) 어울린다는 점에서 창의성 1포인트, 이 강의실에 있는 세 친구가 합의한 단어이므로 사회성도 갖춰서 2포인트, 언어는 만들어졌다가 소멸하는 것인데 그들은 셋이서 십 년 정도 이 단어를 쓰다가 다 잊기로 약속했으므로 3포인트 획득이라고 점수도 스스로 정한다.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면? 이 룰을 알려주고 주의사항도 말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건 십 년만 써야 해. 그리고 사라질 거야. 동의하니?”

 쉬는 시간이면 그들은 눈술을 한다. “한선생. 저 반은 애들이 참 맑네요?” 이 말은 강의실이 시끄럽다는 뜻이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쉿, 하며 손짓하지만 이건 보이기 위한 쇼일 뿐이다. 애들이 맑아야지, 그럼 누가 맑겠어. 한 명은 눈을 감고 나머지는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 사이에 숨거나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왁, 하고 소리 지르다가 웃는 소리. 그들의 웃음은 정말이지 시끄럽고 청량하다. 이런 걸 관찰하는 어른의 삶이라면 썩 나쁘지 않다고도 잠시 생각한다.

 이걸 기록한다면, 그들도 모르게 이 단어가 십 년을 살아남는다면?
 
 암튼 간에 그들이 사라질 말이라고 꼽은 1순위도 있는데 여기에서만 살짝 공개하고자 한다.

 네! 네! 선생님.
 네! 네! 선생님.

 그들이 합창하듯이 정확한 박자로 구령을 외친다.

 나는 또 알아듣지 못하고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건 유치원 때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기본 문구라고 한다. 근데 왜 이게 사라지냐고 옆 친구가 물으니까 그걸 1순위로 뽑은 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대답해준다.

 “이제 애들 영유* 다니잖아.” (*영어 유치원의 줄임말)

 그 말을 들은 친구도 골똘히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그럼 이제 요즘 애들은 예쓰, 예쓰, 티쳐라고 말하나?

 나는 근미래의 언어를 기록하는 자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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