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7일 금요일

여기에 있는 동시에 거기에 있는

머리가 아프다. 그렇지만 나는 머리만은 아프지 않는다. 방금 쓴 문장은 내가 어떤 거래에서 했던 말이고 그 전 문장은 상태에 대한 진술이다.

거래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편이 좋겠다. 내가 대가로 내세운 것은 머리를 제외한 몸뚱이의 나머지 모든 부분. 그러니까 어떤 부분이어도 괜찮으니 만약 내가 아파야 한다면, 그런 당위나 인과가 발생한다면 머리를 제외한 어디든 물어뜯으라고 나는 개에게 말했다.

만일 불시에 어떤 사고가―그러니까 내가 이 방의 이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라도,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해 정확히 내가 있는 이 건물에 들이꽂혀 내 전신이 산산이 흩어지더라도, 머리만은 놀랍도록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조수는 (운좋게 그가 나와 같은 건물에 있지 않았을 경우에) 눈을 감지 않은 나의 머리통을 수습하여 도서관에 기증하도록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바라지 않는 바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전수한 지식을 바탕으로 말하는 목의 제작을 실습할 수 있겠지. 나와 개의 거래는 그런 것이다. 나의 최후는 아마 ―나와 거래한 개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형언하기 힘들 만큼 불길할 테지만 거래에 따라 머리만큼은 끝까지 훼손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보험은 들지 않는 편이 좋다.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개가 아무리 귀여워도 개하고는 계약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개는 철저하게 계약을 수호하고 있다. 개는 내 머리를 해하려는 유무형의 위협들을 물어 죽이고 대신에 내 어깨를, 허리를, 발목을 직접 물어뜯는다. 내 머리에 일어나야 할 부상이나 통증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개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계약에 만족한다. 계약 이래 내 머리가 아플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 정도가 있다: 나의 개가 나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먼저 죽었거나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그가 감지하지 못한 아주 미세한 위협이 내 머리를 침공했거나.

물론 나는 두 번째 경우에 대해 먼저 확인해보기로 했다. 개가 나보다 먼저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거니와, 통증의 원인을 밝혀내면 그것을 개가 해결해줄 수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쓰는 물건이 영안경影眼鏡umbrascope이다. 오페라 글래스 두 개를 맞대 붙인 듯한 그 모양이 지시하듯 두 인간이 서로 눈을 대고 마주보아야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어떤 시대에 누구에 의하여 개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에 의한 발명인 것만은 확실하다. 양쪽 끝에 댈 수 있는 눈의 자리를 각각 한 쌍만 만든 것이 그 증거.

다음은 거울에 영안경을 대고 직접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나에게도 영안경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분해해서 구조를 파악해 볼 엄두는 나지 않지만, 이 물건 안에도 작은 거울이 여러 개 들어있는 모양이라, 거울에 대고 보니 눈을 멀게 할 듯한 난반사가 일어났다) 조수에게 이 물건의 기능과 사용법을 설명한 다음 내 눈 안을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 이후의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나: 뭐가 보이지?
조수: 눈동자요.
나: 눈동자 속에서 뭐가 보이지?
조수: 너무 어두워서 모르겠어요.
나: 눈을 떼지 말고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떠 봐.
조수: 아, 보여요. 마치… 회관 같아요. 대단히 넓고… 조용하고… 처음 보는 물건이 많아요.
나: 또 이상한 점은?
조수: 벽에 곰팡이가 있어요.
나: 그걸 닦아줄 수 있겠어?
조수: 저는 거기 없는데요.
나: 지금은?
조수: 이제 있어요. 마침 마른 헝겊도 들고 있네요.
나: 내가 그걸 떠올렸으니까.
조수: 닦아볼게요.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 선생님도 제 눈 뒤에 있는 걸 볼 수 있나요?
나: 보고 있어.
조수: 거기에 뭐가 있나요?
나: 내가 있어.
조수: 선생님이요?
나: 아주 거대한 내가 있네.
조수: 선생님 말고는요?
나: 그게 다야.
조수: 왜 그게 선생님한테 없고 저한테 있을까요?
나: 그러게 말이야.


조수가 곰팡이를 다 닦아내자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자 기분도 좋아졌다. 이번만큼은 머리 대신 다른 부위가 아플 필요도 없으니까. 영안경을 내려놓은 다음 우리는 알콜솜으로 얼굴을 닦고 세수를 했다. 너무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개에게는 이번 일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조수에게도 개에 대해 알리지 않으려 한다.

가까운 미래에 나의 개는 내 머리의 통증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조수를 물어뜯게 될 것이다. 그가 나의 어깨나 허리나 발목과 같은 존재라 여겨서가 아니라 조수를 물면 내가 가슴 아파할 것이라고 믿어서. 나는 그 통증을 긍정하게 될까? 나의 긍정을 조수는 기뻐할까?

확실한 것은 이런 고민이 박물학자의 몫은 아니라는 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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