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5일 목요일

끝이 없는 장난

테이블 위에 모자가 놓여 있다. 누가 놓고 간 것일까? 술집에는 바텐더와 나만 있었고 모자가 바텐더의 것일 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번 물어봤다. 저 모자의 주인이 혹시 바텐더 당신이냐고. 바텐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의 것으로 할 수도 있다고. 나는 모자를 집어 들어 머리에 쓰곤 말했다. 나는 사물에 관심이 많다고. 바텐더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들도 모두 사물일 수 있다고.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렇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물은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고.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는다고. 바텐더 옆에 있는 사슬 장식이 조금 기울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드문드문 떠들어댔고 바텐더가 내 술잔에 위스키를 조금 따랐다. 컵에는 얼음이 차 있었다. 바텐더가 내 머리 위에 있는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어느 날 내가 술에 취해 여기에 두고 간 것이라고. 그게 이 모자를 나에게 돌려주려고 한 이유라고. 그렇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술에 조금 취한 나는 웅얼거리며 뭐라고 하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모자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모자에 탐욕스러워지려면 이 모자는 내 것이 아니었어야만 했다. 나는 그런 느낌과 별 상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 나를 우스꽝스럽게 부정당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이 말에 대한 흐릿하나 분명하고 확실한 어떤 근거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는 곧바로 잊어버렸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던 탓이다. 나는 곧바로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입을 열어 말했다. 바텐더가 내 잃어버린 기념품이란 사실을. 한순간에 사물로 여겨진 그는 눈썹 사이를 좁히며 조금 더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어질 내 말과 상관없이 이미 그는 빈정이 상한 듯했다. 아깐 우리 모두가 사물일 수 있다고 말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입구에서 한 명이 들어왔다. 바텐더는 내 눈앞에 서서 이어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방금 들어온 사람을 입을 벌리고 봤다. 그는 놀라운 생김새를 지녔다. 그가 다가오더니 콧김을 내며 말했다. 술 한잔을 달라고. 나는 모자를 내 머리에 쓰고 술집 안을 나왔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끝이 없는 장난에서 그만두고 나온 것이라고.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유령들을 위한 미술관

새들의 숨결이 꽃에 닿는다. 꽃은 자신을 오므렸다가 펴낸다. 어떤 사람이 본다면 움직일 수 있는 꽃이라고 오해될 것만 같이. 그러나 그것은 카메라 영상을 빨리 감기로 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지 않으면 현실의 꽃은 움직이지 않는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느리게, 천천히 움직인다. 물론 어떤 사람이 판단한다면 그것은 움직일 수 있는 꽃이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꽃은 움직이는 것이다. 하루에서 며칠 동안 오므렸다가 펴지며…… 펴졌다가 오므린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어떤 사람은 꽃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답답할 테니까. 꽃이 오므렸다가 피는 것은 ‘늘 이런 식이었다.’라고 생각하는 다른 뿌리와 줄기, 잎들의 명령에 근거한 움직임이다. 꽃은 그 명령에 따르기엔 움직이지 않는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이 답답하다. 그러나 꽃은 그 움직임을 느리지만 충실히 수행해 내는데, 따라서 꽃을 찍은 영상을 빨리 감기한 엉뚱한 것도 세상엔 필요한 것이다. 뿌리와 줄기, 잎들의 명령은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온정적이며, 관대할 것이다. 어쨌든 간 해내는 것에 그것들은 만족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남 때문에 시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그 생각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시킬 수도 있으며 안 그럴 수도 있다. 답답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남들과 비교해 빠른 속도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더 많고 다양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그것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 줄기와 잎, 뿌리가 꽃에 대해 긍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독재적인 품성을 동경했다. 새들의 숨결이 꽃에 닿지 않더라도 그 꽃은 줄기, 잎, 뿌리들의 명령(제안)에 근거하여 움직일 터이다. 어쨌거나 꽃은 새들의 숨결을 맞은 것이다. 앞으로도 맞을 것이다. 전에도 맞았기 때문이다. 새들의 숨결은 꽃에 영양분이 되지도 햇빛을 주지도 않지만 꽃잎을 살짝 떨리게 한다. 이는 꽃의 문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우리와 같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데가 있는데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데 같은 데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문화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과 같거나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꽃은 줄기와 잎, 뿌리와 다른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통합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여지도 있다. 여기에 적합한 말이 [일부]인 것 같다. 나는 나의 [일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초과이기도 한데, 나를 초과하는 것은 나와 같거나 다른 것들이 갖고 있다는 생각을 근래에 한다. 나는 잎과 뿌리, 줄기와 잎일 뿐만 아니라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만큼 인간과 유령 사이를 오간다. 다큐멘터리들은 죽어 있어서 좋다. 나는 살아 있는 것들보다 죽은 것들이 좋았다. 그런 것들을 보면 긴장되지 않고 안온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 있는 것들을 봐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거의 [사랑] 때문이었거나 그랬던 것 자체가 사랑이 되었다. 살아 있는 작품들을 보는 일은 사랑 자체를 내게 느끼고 묘사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 나와 같거나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꽃은 새들의 날갯짓과 다르지만 하나의 문화를 같이 구성한다. 자연이라는 문화다. 문화는 자연을 정의하고 또 이용하지만 그 자체가 자연에 속한다고 하는 생각. 그런 것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하게 되는 생각이다. 죽어 있는 다큐멘터리들은 내가 위에서 말한 카메라 영상을 빨리 감기한 것을 이따금씩 보여주는데 그것은 답답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꽃의 움직임의 시간 진행에 따른 차이. 많은 예산이 들어간, 죽어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그릇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다.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동일함을 만들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두 부류와 같거나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식의 오묘한 비율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문화와, 문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 당신은 이 좌우 중 어떤 것에 속하는가? 내가 속한 문화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죽어 있는 것에 가까운데, 나는 죽어 있는 것과 가까이 해야 마음이 편하고 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때때로 살아 있는 작품들을 보고 간단히 코멘트하고 있다. 물론 죽어 있는 작품들도 본다. 더 많이 본다. 살아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나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죽어 있는 것들은 지루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문화는 재미를 위해서 살아 있으며, 그와 비슷하게 가끔씩은 살아 있는 것들을 보는 것이다. 물론 조금의 같거나 다름이 있긴 하겠지만. 살아 있는 것들 사이에는 그렇게 조금의 같거나 다름이 있는데, 그것들은 너무할 정도로 살아 있다는 결론에서만큼은 동일한 편이다. 죽어 있는 것에는 그와 비교해 무분별할 정도의 차이들이 있다. 어떤 죽어 있는 것들은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 아주 기품 있게 관리되지만, 다른 어떤 죽어 있는 것들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급속히 풍화되고 썩는다. 문화들이 자연을 이용하거나 또 [일부]로 삼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랑]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좌와 우가 다르듯. 살아 있는 것을 정의한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가 어떤 독자군들에겐 기사도 로맨스 소설 같은 통속적인 재미를 안겨준다. 숨결을 뱉어내는 새들에게 보이는, 꽃들이 가득한 화원처럼 말이다. 그런 그림이 미술관에 걸려 있다. 그것을 보는 유령들. 여기는 유령들을 위한 미술관이다.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마네킹 같은 것

시내의 쇠락한 상점가를 지나다보면 허물어지기 직전의 마네킹들을 보게 된다. 지금은 없는 상점 주인들은 입혔던 옷을 가차 없이 벗겨놓았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가로등에 의지해 몸을 빛내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마네킹인 걸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자세로든 조금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몇 안 되는 마네킹들은 최상의 멋진 자세를 하고 있지만 옷이 벗겨진 마네킹들은 뭐든 벗겨내기에 최적의 자세이다. 그러고 강박적으로 서 있다. 지능이 없어 중립인 채로, 할 일 없는 채로. 그들이 하지 않고 있으니 내가 할 것이다. 하지 않는 채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들도 노동자다. 어떤 얼굴들은 경직된 표정이고 대충 화장한 듯한 얼굴도 있다. 행복한 얼굴은 없고 아무도 그런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표정 연습, 그런 걸 할 뿐이다. 그런 걸 잘할 수 있다면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마네킹 인구총조사를 한다면 남녀 숫자가 비등비등하겠지, 그런데 하반신이 밋밋한 애들도 많이 보인다. 그런 애들까지 다 뭐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런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제발 말들 좀 해라! 명령이다...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초월일기 16

 

다시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친구가 명상을 알려줘서 명상에 흥미가 생겼는데 명상을 하려고 하다 보니 명상과 일기 쓰기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는 명상만큼의 파급력이 있다 그 친구는 명상을 하면 달라질 거라고 말했고 명상이 주는 쾌락이 너무 커서 술도 끊었다고 했다 내게 일기가 주는 쾌락도 그와 맞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명상의 핵심은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기의 핵심 역시 마찬가지다 명상은 <지금>에 집중하되 생각이 아니라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일기>는 생각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일기를 쓸 때는 내가 하는 생각들을 실시간으로 언어화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나는 최근에 <말>을 좀 기피하게 되었고 왜냐면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난 떳떳하지 못한 말을 할 바엔 그러니까 거짓말을 할 바엔 안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말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다 떳떳해지면 되지 않겠냐고 

그리고 이 생각은 놀랍게도 내가 2년 전에 쓴 일기를 읽다가 하게 된 생각이다 그때 내가 나를 너무 잘 설득시켜놔서, 지금의 나 역시도 그때의 내게 설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쓸 때 가장 먼저 설득하게 되는 대상은 나 자신인 것 같다 나는 그게 때때로 합리화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가끔은 모든 일기가 역겹다 그런데 그 설득이, 어떤 순간에는 굉장한 애정처럼 느껴지고 강한 힘처럼 여겨진다

결국 사랑이 중요하다



2024년 7월 9일 화요일

머리를 붙들고

하하힛! 히하힛!

오전부터 앞마당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린다. 나가보니 요정이 으스스한 춤을 추면서 창고로 들어오고 있다. 손에는 네모나고 판판한 뭔가를 들고 있는데... 판떼기? 과자곽? 온통 형광색으로 물들어 무슨 물건인지 제대로 분간이 되질 않는다.

뭐가 그렇게 신나세요? 그건 뭐예요? 요정은 춤을 멈추고 선다. 자신이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생각하려는 듯,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말은 다른 차원에서 듣는 중인 듯, 미동 없이 서서 나를, 아니면 내 뒤편을 빤히 바라본다.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지? 당연하지만 요정은 숨을 쉬지 않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다. 저럴 때마다 정말 미칠 것 같다. 미칠 것 같기 때문에 요정의 눈길을 피해 그 손에 들린 것을 유심히 보니 책이다. 요정의 쓰리고 차가운 손아귀에 엉망으로 얼룩져 제목을 알아볼 수 없지만 하여튼 책이다.

요정은 속삭인다. ...니까.. 관업....랑... 뭐라고요? 너...랑은 상관없..으니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요정은 하하힛 하힛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춤을 춘다. 그러다 책을 획 공중으로 던지는데, 나는 머리를 가리고 얼른 도망쳐 들어간다. 책은 바닥을 향해 펼쳐져 있다. 춤을 멈추지 않는 요정의 발이 책을 마구 짓밟는다. 정수리에 얹은 손을 지그시 누르며 나는 지켜본다.

2024년 7월 1일 월요일

생활 같은 것

너는 벽난로 가까이에 앉아
옷깃을 데웠다고 한다
종일 털로 된 닭 인형을 뜨면서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고 한다
인형들은 한결같이 슬픈 모양을 하고 있었고
창밖에선 누가 심었는지 모를
사과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몸이 크지 않은 이들이 모여서 기도하듯이
입으로 웅얼거리는 소망이
새잎처럼 돋아나듯이
너는 매일의 생활을 반복하며
이 모든 현상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가을이면 사과들이
달아오른 얼굴 되었다
나무 수레 가득 실려 나갔고
그중 몇 알은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개울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과들은
사과들끼리
이별하고
그 뒤의 일은 서로
알 수 없었다
한동안 바깥에서 살아가다
오랜만에 방문한 나는
이제 정착하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사과처럼 부푼 꿈들이 썩어가는 장면을
숱하게 보고 왔다고
풀 죽은 얼굴로 말하기 전에,
늦은 밤 너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지금은 인형들이 자고 있으니
말소리를 낮춰달라는 너의 부탁을
우선 듣고 있는 것이다
들으며 자작나무 향이 나는
너의 집 서가를 찬찬히 둘러본다
아름다운 삽화들로 가득한 동화집이 꽂혀 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과의 인기척이 들린다
너는 인형을 팔아 번 돈으로
한 철 휴식기를 보내며
이 책을 구상하고
쓰고
그렸다고 했다
그때마다 지난 계절의 사과들이
눈에 밟혔다고……
나는 아주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는
너무 조용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24년 6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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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5,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11일 / 5,000원 ― 빙터 내놔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빙터 [入]] ☞ 5,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301,387원 (0원 + 300,890원 + 49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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