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해골 신도
복수할 것이다. 교정의 제단에 교정된 피와 해골을 바칠 것이다. 시발… 복수한다…
지옥에서 밭 갈기
지옥에서 어떻게 밭을 갈 수 있을까? 지옥은 불타고 있다. 지옥은 형형색색으로 녹고 있다. 지옥은 너희의 것이 아니다. 지옥은 우리의 것이다. 다름 아닌 우리의 지옥이다. 여기가 즉 지옥이다. 사후세계…… 우리에 앞서 죽은 이들의 死後世界는 어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우리가 사후세계로 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간 뒤 이곳에 사후세계가 남는다. 이 사후세계에 죽은 이는 없으되 죽음은 남았다. 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너희 죽은 이들은 이곳이 더 나아지리라 믿으면서 죽었을지 모른다. 또는 반대로 ‘드디어 이곳을 떠나면서’ 죽었을지 모른다. 어쨌건 사후세계는 너희 자신이 없는 미래이고 우리에게는 지금이다. 그리고 이곳은 지옥이다. 같은 식으로 아직 죽지 않은 우리에게도 사후세계가 있다. 하지만 그곳에 우리는 없다. 우리는 너희의 사후세계에 틀림없이 살고 있다. 지옥에서 어떻게 밭을 갈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라면
핵 광야의 피케팅과 라디오 방랑
커다란 널빤지 두 개에 끈을 달아 어깨에 앞뒤로 걸쳐 멜 수 있게 만들었다. 널빤지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적혀 있다. 그 내용은 정확하다. 그 밑으로, 동지는 입은 것 같지도 않은 거적때기 같은 걸 입고 있다. 동지는 그런 차림새로 광야를 헤매고 있다. 한 손에는 라디오를 들었고, 라디오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나오고 있다. 그 역시 널빤지에 쓰인 것과 같이 정확한 내용이다. 녹음된 목소리가 무한히 반복 재생되고 있다. 십중팔구 죽은 이의 목소리일 것이다. 아마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모두 죽었을 것이다. 모두 죽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이다. 동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광야를 돌아다니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적힌 패널을 걸치고, 원래부터 자신의 목소리였던 것만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건전지가 도대체 언제 다할 것인지, 이미 너무 오래된 것 같은데, 어째서 라디오가 꺼지지 않는지 불안해하면서.
연자매
연자매에 동지가 매여 있다. 누가 매 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맨 것이다. 동지는 그것을 밀고 있다. 동지는 자신이 무엇을 찧는지 알고 있다. 매의 윗돌과 아랫돌 사이에서 무엇이 이겨지는지, 정확히 무엇이 거기에 들어갔는지 오직 그 동지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 것들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동지에게는 모두가 주기만 했고, 아무도 그것을 가져가지 않기에, 매를 통과해 나온 그것은 켜켜이 쌓이고만 있다. 동지의 일은 다만 미는 것이므로 그것을 가져갈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돌의 힘과 낱알의 으스러짐만이 동지의 팔과 몸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자매의 부속인 동지는 애써 잊으려 한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찧어 오라고 한 것인지, 그 일이 무슨 뜻인지. 민다는 것은 돌린다는 뜻이다. 돌린다는 것은 찧는다는 뜻이고. 동지는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파묻히고 있다. 자유로운 동지의 육신이 연자매에 붙들려 있다. 동지는 영혼의 노예다. 영혼은 연자매이고, 그것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불타는 들판
넓고 마른 들판이다. 들판이 어디서 끝나는지는 모른다. 끝나기는 끝날 것이다. 강을 만나거나 산을, 절벽을 만나면서, 도로를 만나거나 마을, 도시를 만나면서 끝날 것이다. 어쩌면 들판은 시간적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디서 끝나느냐보다 언제 끝나느냐가 중요한지도 모른다. 이 들판은 지금 불타고 있는 들판이다. 반년 뒤나 몇 개월 뒤면 잿더미가 되며 끝난다고 해 보자. 이 불타는 들판을 갈피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끄려고 하는 동지가 있다. 이 동지가 들판의 끝을 잘해야 1분이나 늦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지의 주변에 다른 이는 없다. 다른 이는 그 동지의 머릿속에 있다. 들판의 끝이 미래에 있는 것과 같다. 머릿속의 그 동지는 뛰어다니는 그 동지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이 들판이 뭐가 중요합니까? 그냥 타게 두십시오! 동지는 양동이를 들고 머릿속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불을 끄러 뛰어다니고 있다. 나에게 제발 그것을 묻지 마라! 왜 불을 끄려고 하십니까? 제발 그것을 묻지 말고 꺼져라!
늪괴물
늪괴물이 여기에 있다. 늪괴물을 뒤덮고 있는 녹갈색 수초들을 아무리 헤집어 봐도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뒤덮고 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늪괴물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늪괴물은 바깥에서부터 구성되고 있다. 안에서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어떤 힘에 의해 밀어 넣어지고 있다. 늪괴물 모양의 공백을 향해서다. 늪괴물을 함부로 헤집다가는 늪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늪괴물을 향해 뭔가를 밀어 넣는 힘의 정체는 늪에 빠진 것들의 외침이다. 늪괴물은 늪 밖으로 서서히 이동당하고 있다. 이별하지 않으려는 진창의 외침으로. 하지만 늪괴물은 늪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떠도는, 늪괴물은 늪의 유일한 늪 아닌 것이다. 나의 늪괴물 동지는 별빛 아래서 늪과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