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니언.
하고 유스프가 치니언을 불렀다. 깜짝 놀란 치니언이 고개를 쳐들었다. 유스프가 보고 있었다. 슬픔과 절망이 무작위한 비율로 뒤섞인 표정이었는데, 밑바탕은 또 성직자의 얼굴처럼 신중하고 간절해 보였다.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 눈밑이 까맸고 움푹 꺼진 볼을 보자니 굶은 사람 같았다. “괜찮아, 당신?” 충분한 시간을 주었지만 유스프는 답하지 않았다. 치니언도 더 물으려다 말았다. 여기 온 건 할 말이 있어서였고 중요한 건 그뿐이었다.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왔어. 우리에 대한...” 하지만 다음 단어는 뻑뻑해 잘 나오지 않았다. 치니언은 퍼지고 없는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오래되지 않은 집. 둘이 함께 몇 년을 지은 집이었고 직접 만든 가구 몇 개에는 아직도 좋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아주 먼 미래와 아마 없을 노년까지 생각하며 준비했는데 이제는 모두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
하고 치니언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버드나무로 만든 아기 요람. 거기에는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마중 나온 아픔이 쓰라렸다. 정신을 차려야 해. 치니언은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매만졌다. 이제 저것은 어떻게 될까 하는, 시답잖고 우울한 생각은 관둬야 했다. 오늘은 끝을 위한 날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리가 어수선하지? 갑자기 들린 빗소리에 치니언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인데도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억수로 쏟아붓고 있었다. 들여보내달라는 듯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들이 거셌다. 걸어올 때 치마 윗단을 부여잡았던 게 떠올랐다. 묘한 풀향을 풍기던 그때의 바람은 어쩐지 괴상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되뇌다가 치니언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고 말았다.
앗.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슬퍼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미련이 있어 보이면 붙잡을 것 같았으니까. 머뭇거리면 안 돼. 홀가분해지는 것을 정말로 원했다. 목전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인지, 마음을 압도하는 위화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뭘 찾는지도 모르면서 치니언은 주위를 둘러봤다. “당신도 들려?” 말하면서 치니언은 귀를 움찔했다. 방 어딘가에 규칙적이고 미세한 소음이 있었다. 무의식을 살살 긁는 건 빗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였다. 무심코 치니언의 눈길이 유스프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같은 보석을 셋으로 쪼개 만들었던 유스프의 마술 반지. 어? 빠른 몇 초가 느리게 지나가는 동안, 의식 밑바닥에서 옴짝대던 치니언의 불안이 등허리를 타고 머리까지 올라왔다. 왜 갑자기 오한이 들었는지, 왜 그렇게 가슴이 울렁거렸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신? 진실은 솟으면서 뜨거워지는 마그마처럼 분노로 변했다.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 유스프는 우두커니 죽은 나무처럼 서 있었다. 아는 거야? 치니언이 캐물었다. 당신 아내가 묻잖아, 알고 있냐고! 마침내 유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니언은 벌떡 일어섰다.
쾅!
하고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믿기지 않네.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아닌 건 아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꼬리가 죽 올라간 치니언의 입으로 노여움이 흘러나왔다. 기가 찼다. 그래서 치니언은 헛웃었다. 하! 그러나 유스프는 보기만 했다. 그는 거리낌 받아 마땅한 처지임을 아는 사람처럼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치니언의 눈밑이 가늘게 떨렸다. 게워낼 것 같은 분노를 억눌러가며 치니언은 물었다. 확실히 말해. 여기 쓴 거지? 유스프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을 살짝 감았던 치니언이 악몽을 파하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다시 따졌다.
“왜?”
하고 물었지만 유스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어? 유스프가 중얼거렸다. “미안해.” 치니언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묻는 말에나 답해. “세 번.” 세 번이라고? 순간 치니언의 모든 것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