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0일 화요일

예술 생각 같은 것

팔레트 나이프로
불타는 커튼을 푹 떠서
전면에 바르기
시원하게 바르기
그리고 커튼
사라지기
현실은 이렇게
흔적 없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가설극장에 틀어놓은 순수예술 비디오는
벌써 삼분의 일 재생 중이다
아무 논쟁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는 침묵이
객석을 점령,
임시 거처에 방치된
너무 많은 꿈들이
젖어서 천장 높이에서
흐느끼며 떨어진다
이 지겨운 누수 사건!
프레임 속 멍한 인물이
개선될 수 있을까
시대에 뒤떨어진 잿더미에서
어떤 비밀이 드러날까
가장 가까운 것은
현장에 완연한
무겁고 갑작스런 앞사람의 뒤통수
화면을 가릴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가리고 있다
그렇다면 스크린에
앞사람을 틀어놓았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중지되는 예술이 가능하도록 하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진 말자.
조금 전까지 사용된 나이프를
스크린에서 꺼내자.
눈앞의 정수리를 세게 두들기자.
이윽고 그의 두개골이 열리고
축축하고 흥건한 생각들이
쏟아져
쏟아진 걸 전부
보았다고 말하기.
이런 식으로 좀 더
볼만해질 장면을 상상하지만
이렇게 하는 건 예술이 아니다
시에서 한 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나도 쉽고
예술적인 이야기이고
예술적인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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