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여름 비를 위한 연습

여름 비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갑자기 온 손님은 우산도 두고 달아났고 쓰러진 나무 밑에서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묻어둔 편지들이었다 여름 비는 항상 이상한 발견을 만든다 이때만 볼 수 있는 습기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조만간 사라질 이름이겠지만 멈추기 전까지는 같이 젖는 이름이다 같이 있는 여름이다

편지를 받는 사람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직 이 세상이 사랑에 서투르다는 증거 생각하기도 싫고 삼키기도 힘든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부러 답장을 길게 적는다 사랑을 믿는 건 무서운 일이니까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척 나를 접었다 폈다 하며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아직도 솔직하지 않다 밤마다 맡는 비와 흙의 냄새 때로는 여름의 것이 아닌 것이 찾아온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과 울어버리게 될까?

네 잘 지내세요. 속삭이며 흘러내려가는 말들 사이로 끝맺지 못한 편지들을 던진다 각자 다른 여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 여름은 충분히 잘 사라질 것 같다 소나기도 장마도 아닌 이 여름 비의 이름을 지어본다 그림자 위로 자주 비치던 여름의 얼굴을 생각하며

2024년 10월 24일 목요일

오망성

나는 장난질 속에 자신을 파묻고 있다. 나의 수호악마는 더 나아진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악마조차 그토록 진지한데. 최근에는 다섯 권의 책을 같이 보고 있다. 이제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혼란하다.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써둔 다섯 개의 작업 파일에 의지해 더듬어 나갈 뿐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일하느라 읽어 오고 읽고 있는 수많은 문자 숫자들이 다 야속하다. 무슨 소린지 몰라도 교정할 수 있다. 아니면 나는 그냥 교정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아무 뜻 없듯 내게 이 일은 아무 뜻 없다. 그럼에도 그 일은 이루어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일을. 나는 사전 속에 내 시간을 처박아 버리고 있을 뿐이다. 이 지겨운 시간을. 할 수만 있다면, 회사에서는 그냥 일을 할 때 시간이 제일 빨리 간다. 그 시간에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거기서 나는 장난질 속에 자신을 파묻고 있다. 널리 흔해진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분리되는 동안 재앙과 불의는 환하게 다가오고,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끔찍한 방언 대결 가운데 시들은 한없이 우스워 보인다. 나의 수호악마는 더 나아진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말을 밀고 당기라… 인간 너머의 세계와 싸우라… 서로 도우라…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종이배 같은 것

눈앞에서 마음이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 한다
불시에 찾아온 종이배
각진 접은 모서리로 발목 언저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는 아무리 느리게 지나가도 날카롭다
아무리 조용히 지나가도 혼자 외롭고 피가 난다
지나가는 것들 사이엔 자연사가 놓여 있다
자연사의 얼굴은 희미한 인상
내가 갖고 싶은 이미지
벽에 붙여 놓은 영원 포스터
유력한 회복은 어디에 뒷짐 지고 서 있나
마음의 종이배는 맑고 높고 날카롭다



*김일두&moc의 노래 <몰아치는 비>를 여러 번 듣고 씀.

관람차

거구인 라울 미돈은 얼마간 기다린 뒤 관람차에 올라 2인용 의자에 양다리를 걸쳤다. 관람차가 어느 정도 상승한 뒤(지금은 계속 더 올라가고 있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낸 야경이 보였다. 같이 관람차 타기를 거부했던 스테이블리가 저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관람차가 가장 드높았을 때 라울 미돈은 졸다가 가벼운 잠에 들기 직전이었다. 스테이블리는 라울 미돈이 관람차에 타고 난 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굳이 위를 올려다보진 않았으나 라울 미돈이 타고 있는 관람차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고 이제 어느 정도까지 내려갈 것인지는 곁눈으로 보고 있었다. 스테이블리는 그 남자가 안에서 잠들 거라 확신했다. 스테이블리와 라울 미돈은 각각 밤을 이 잠시 동안 느꼈다. 라울 미돈이 독백했다. 혼자군. 스테이블리도 마찬가지로 독백했다. 혼자군. 그 다음 라울 미돈이 독백했다. 우린 서로 외롭지. 그 다음 스테이블리가 독백했다. 우린 서로 외롭지. 아니, 외롭지 않아. 그런가?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관람차가 어디 있는지를 보고 있지? 눈에 보이니까. 넌 보이지 않는 것도 의심하잖아. 글쎄, 곁눈을 뜨고 보면 보이던걸. 라울 미돈은 다시 독백했다. 사랑해. 스테이블리가 독백했다. 나도, 자기. 아파트 야경이 멋지더군. 자기도 봐야 해. 그 관람차에 혼자 타란 소리야? 같이 탈 수도 있겠지. 혼자 타거나. 나도 다시 그 야경을 보고 싶으니까. 그게 뭐 별거라고. 별거라니. 비좁을 텐데 괜찮겠어? 같이 타도. 그건 알아. 당신의 그 점을 난 충분히 알지. 우리가 그만큼 오래되었던가? 라울 미돈은 오래된 연인에게 보내는 독백을 시작했다. 지금은 야경이지만, 이런 것 말고 그때 우리가 봤던 일몰 기억해? 스테이블리가 지상에서 라울 미돈이 탄 관람차를 올려다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주위에서 관람차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스테이블리를 쳐다봤다. 기억해! 라울 미돈이 안에서 혼잣말을 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스테이블리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스테이블리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랑해, 기억해! 관람차 안에서 라울 미돈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그 안에서 외쳤다. 자기, 이제 내려가! 그 일몰을 기억해둬! 스테이블리가 전화를 받고 말했다. 자기, 그 일출은 기억해? 라울 미돈이 다시 가슴을 탕탕, 주먹으로 두드리며 럭비 선수처럼 말했다. 속지 않아! 그건 다른 여자랑 봤던 일출이라고! 스테이블리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자기는 좋은 남편이 될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라울 미돈이 관람차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 프러포즈는 성공적이었다. 저 멀리 아파트에 켜진 모든 불들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켜진 불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는 것은 정전의 조짐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이 놀이공원은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비상 전력 공급망이 있을 터였다. 관람차는 멀쩡히 잘 내려갈 예정이고 라울 미돈은 곧 내려가서 스테이블리에게 뛰어들어 포옹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던 아파트 단지의 불이 까맣게 꺼졌다. 정전이었고, 이 밤의 마지막 퍼즐 피스였다.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안개

창밖이 흐렸다. 농담처럼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 점으로 누구도 입 열어 화제 삼진 않았다. 침묵이 답답하기도 했다. 안개는 웃었다. 리어왕의 광대처럼. 그 광대는 틈날 때마다 규칙을 비웃고 특히 왕에게 버릇없이 굴었다. 하지만 왕은 눈감아주었다. 특히 광대에게만큼은. 그에겐 권위가 없었으므로. 그 권위를 신하들은 두려워했고 저마다 머리를 써댔기에 광대에게만 관대해진 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시 왕의 권위가 없어졌다. 특히 신하들에게만큼은. 우스워졌다. 잘 만들어진 농담처럼. 이 텁텁한 공기 안에서. 밖에 끼어 있는 안개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여차하면 이들을 뒤로하고 박차고 나갈 수도 있겠다. 몇 사람이 낄낄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뭔지 이해가 되었다. 답답했던 모양인지 한 사람은 좀 전에 나갔다. 여기 모두는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일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없는 듯했다. 이후로는 그런 사람이 더 나오지 않았다. 옆의 창문에 안개가 끼어 흐렸다. 뭐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점점 더 후텁지근하게 되고 있었으니. 지루한 눈들. 밖에 있는 광대가 놀렸다. 안개는 광대가 하는 마임이었다. 왕은 그 사실을 알았다. 광대가 창밖에 안개를 불러낸 것을. 광대가 심각하지 않은 표정으로 짐을 싸고 있다. 떠날 생각이었다. 왕은 광대 대신 안개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한참 동안이나 보고 있었다. 안개는 광대가 마지막으로 왕에게 준 선물. 우정의 증거. 안개가 하는 농담을 가까이서 들으시길. 광대가 어딘가로 저 멀리 떠나간다. 먼저 뛰쳐나간 이가 우리들의 상상을 들고 나간 듯했다. 그가 광대였다. 왕에게서 떠나간 사람, 여기가 답답해서 나가버린 사람! 멀어져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자기만 손해지. 그러니까 그는 돈키호테야. 말 안장에 타고 안개에게 싸움을 걸려고 칼을 허리께에 걸고 박차고 나가는!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다락, 꿈

꿈. 모이. 허락받지 않은 다락으로 들어가기. 아이는 커다란 새를 껴안고 있다. 포근해. 깁슨은 법정 서기였다. 아이의 꿈은 왼쪽으로 가는 것. 깁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경사진. 내려가거나 올라갈 수 있는 것 중에서 분별되지 않은 그 경사를 걷고 있다. 공기는 텁텁하고 어떤 이들은 신경 쇠약. 어떤 이들은 졸리다. 피곤하고 또 피곤해. 항상의 체험. 깁슨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권위 있게. 자신의 일로 능숙을 저한테 붙여가는 사람들은 교훈적이다. 미덕이다. 여름처럼. 존재한다. 지나간 여름. 새가 뒤쫓고 있다. 아이가 뿌려주는 모이들을 향해 고개를 낮추고 뚜벅뚜벅. 돌아온 여름은 지나간 여름의 어깨 위에 얹혀 민들레 동산이 되었고. 또 어정쩡하게 다락으로 들어가기. 넌 괴상하군. 괴상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왜냐하면 괴상하기 때문이었다. 깁슨은 법정 서기로 일했다. 그는 서류에 아이의 괴상한 점들을 적었다. 처벌을 위해서는 아니었고 부모에게 조언을 주기 위해서. 가을이 와 있었고 좋게 이야기하라고 타일렀다. 호의적인 이미지가 인간에게 지닌 중요성은 컸다. 큰가? 가을은 커다랗다. 겨울은 작은 소품 상자 안에 담겨 있고. 그것을 열면 안 되노라. 꿈이 거기 담겨 있으니. 손가락에 낀 반지로 그것을 열 수 있다. 아버지가 남긴 물건. 아이는 이해받고자 했다. 이미 열었으므로 이젠 어른들의 책임. 깁슨이 빠르게 속기했다. 아이의 꿈을 보전해 줘야 해. 왜냐하면. 나에게도 아버지가 물건을 남겼으니까. 아버지가 내 등 뒤에 매달려 있네. 피곤하군. 봄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곳이 좋아요. 날 사모한 이들을 무죄 방면할 수 있으니깐요. 아이는 봄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친구인 것처럼. 그 일은 다락으로 들어가기. 거위 깃털 침대에 누워 한잠 자고 싶어라. 사람들은 앞다투어 평안에 대한 좌석을 꿰어 찼다. 밀리고 밀리기. 그것은 예전엔 욕망이었고 지금은 이룬 것. 잡동사니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쉴 수 없고 고달픈데.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군. 길가의 쓰레기를 보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쓰레기를 대신 주워 올바른 곳에 버리는 사람들. 용서인가? 아이는 더 어릴 때 까르르 웃었던 아기. 아버지가 남긴 그림이다. 그는 화가였다. 왜냐하면. 허락받지 않은 다락을 그렸다. 잘 그리진 못했다.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 길가에 가끔 보이는 쓰레기들이 더 나았다. 왠지 모르게. 귀부인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 법정은 어설프고 어정쩡했다. 그것이 주된 기억. 망치로 세 번 두드릴 때 아이는 실소를 지었다. 아니면 끼루룩 웃었다. 법정 창밖으로 새들이 날아와 머릴 부딪쳤다. 아이는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버지가 남긴 그림이 담긴 소품 상자에 대해 위증했다. 법정 사람들은 옥신각신 다투었다. 아무도 아이의 증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어떤 사람은 그들의 행태가 한심하다고 욕했다. 왠지 그랬다. 역할 놀이 같은. 그 점을 말해봤자 어른들은 긴 잠에서 깨우지는 못한다고 깁슨은 판단했다. 깁슨은 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떠올렸다. 오히려 부인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피곤했다. 권위 있게. 서기로서. 그는 잠시 쉬었다. 그 순간 법정은 멈춤. 기록되고 싶었으므로. 누구도 깁슨의 트랙 밖으로 나가길 꺼렸다. 서기의 처지는 건드려지지 않았다. 잠시의 거위 깃털 낮잠. 일어나자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빨리 지났군. 아니, 시기를 놓쳤군. 어른이 된 아이가 말했다. 고려해 봐야 할 테죠. 이젠 그럴 마음이 없구나. 그때 겨울이 증언자의 품속 브로치 안에 들어 있었다. 판사가 정숙하라고 그랬다. 아이의 심리와 희망은 지나갔다. 그건 보는 이들의 몫. 그래서 어떤 절망이 넘실거린다. 그렇지만 이미 해결된 일이었다. 증언자는 단지 자신의 말에 신뢰를 더하기 위해 겨울을 모사했고 사람들은 그 말보다 겨울을 더 믿었다. 법정 안은 차가워졌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으므로. 나른한 하품을 하던 이들이 오들오들. 증언자는 아이의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책임감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았어. 저런 어른 말고 아이를. 왼쪽에 계류 중인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속기해놔야 한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고개를 바로 했다. 권위 있게. 꿈. 모이. 사건. 커다란 새가 창문을 깼다. 아이를 처음에 데리고 온 황새의 시조 격이었다. 진정한 아버지인 황새. 여기선 알바트로스. 우아하다. 이번에는 그 새가 아이를 껴안았다. 보호해 주려는 듯이. 날개로 뒤덮었다. 용서하노라. 그건 모든 사람들의 눈이 아이의 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용서였다. 그래서. 아이는 갑자기 편안해졌다. 이게 울음이군. 엉엉. 거위 깃털 잠을 아이는 졸면서 설명했다. 선생님 앞으로. 계류 중인 사람들은 그런 학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민감하고 저촉되거나 위배됨. 오른쪽에 있는 검사들의 얼굴. 볼에 뾰루지가 난 이. 그 잠이 부러워. 아이에 대한 재판은 모조였다. 검사들은 최선을 다해 공격했다. 장난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화냈다. 어떤 모조이든 감쪽같음을 갖고 있으므로 깁슨은 객관적으로 써야만 했다. 이야기를. 그것이 결국 모조라는 사실을. 검사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을 서사시같이 올바르게 쓰는 게 그의 욕심이었다. 깁슨은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 이미지가 없었다. 퇴행. 법정이 끝나고 암전이 된 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아이의 거위 깃털 잠은 아니었다. 용서받는 잠. 괴상한 아이였어. 그는 꿈을 꿨다. 그 아이가 천사로 나왔다. 용서받은 것이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그 아이는 밖에서도 천사였다. 하지만 그 새는 창문을 깨고 들어왔지. 벌금을 매겨야 했는데. 엑스 마키나에게 매기는 벌금. 그런데. 실은 용서를 해주지 않고. 새를 통해, 특히 알바트로스를 통해. 내가 지어낸 이야기겠군. 난 그 나이 때 용서받은 적 없으니. 자야겠다. 봄 속에 있었다. 몇 달 전에 법정에 갔었지. 음악이 들려왔지. 커다란 새를 표현한 그런 음악. 그 새가 날 데려갔어. 봄 안으로. 이 봄. 신경질적인 시선들을 막아준다. 그 사람들은 왜 신경질적이었을까? 내가 거짓을 말했는데 그걸 제재할 방법이 없어서였을까? 난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았거든. 잠시뿐이었지만. 나이가 어렸어. 모든 부분이 깃털에 덮여 있었어. 그건 기억나. 기억이라니. 이게 어른들의 일인가? 새 안에 감싸여 있을 때 나는 천사. 케루빔. 친구들이 되지 않아도 좋아. 같은 신만 섬긴다면.

텔레파시 입문

오류가 이 인터넷을 집어삼킬 것이다. 디지털 쓰레기와 오염된 유사 정보가 이곳을 가득 채워 가고 있다. 가짜뉴스들, ‘견해’들(오해된, 오해한, 곡해된, 곡해한, 모자란, 과한), 개소리를 반박하려는 개소리들, 끝을 모르는 농담들, 되다 말기를 스스로 택한 ‘시’들과 ‘소설’들, 그 비슷한 예술 잔해들, AI잼, 밈, 포르노(인간과 동물과 사물 들), 광고 이미지와 텍스트, 더 많은 조회를 원하게 하려는 그 모든 경사로들 사이에서, 인터넷은 표면을 위한 표면에, 표면의 바다에 미끄러지며 가라앉고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모든 것을 재현하고 재생산하려는 이곳에서, 더 실감 나게 옮기려 할수록 진실(이것은 미래와 관련된 개념이다)과 더 멀어진다고 하는 언어의 특질은 극대화되고 있다. 어떤 빛나는 진실이 공급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겉에 펴 바를 뿐이다. 감각되는 아무것도 옳을 수 없게 됨으로써 모두가 더 옳음을 원하게 되고, 더 많은 그름 자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그친다. 모든 것이 있고 아무 뜻도 없는, 모든 것을 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인터넷은 총문학(總文學)이 되려 하고 있다. 이곳은 쓰레기-문학의 정점이자 전범이 되려 하고 있다. 감관을 붙잡아 두려는 자본과 자본을 붙잡으려는 강박이 함께, 공산주의 문학 이상理想의 악몽판을 도래시키는 중이다. 모두가 함께 쓴, 그리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역사가 그것을 쓰이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에 관해 쓰고 있다. ‘더 큰 숫자’라는 하나의 이념을 따라 그것은 만사를 분열시키며 영원한 미완을 향해 수렴하는 역류가 되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읽기 기계가 되어 간다. 그것(우리와 인터넷)은 미래로부터 불길하게 뻗쳐오는 에스에프다. 또는 종말 미래로의 고속화도로다. 우리는 무오류의 감정 노드가 되어 간다. 맹신과 불신을 향해 우리는 치닫는다. 언어가 드디어, 현실에 대한 오랜 열세를 역전시키고 있다. 문자는 숫자의 노예가 되어 간다. 노예들의 감관과 손을 통해서다. 드디어 우리는 꿈에 도달하고 있다. 무정한 현실을 파괴하면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현실은 실제로 파괴되고 있으며,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병에 걸리고 있고, 병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가? 인터넷인 가장 원초적인 형태인 책을 살펴보자. 그것은 한때 가능성으로 여겨졌고, 그 가능성은 이제 이렇게 되었다. 우리가 다시 종이책을 볼 때에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검색’ 기능의 부재다. 색인이라는 야만은 우리의 책들을 뒤에서 꽉 밀어붙이고 있다. 아니면 우리의 책들이 색인이라는 야만을 붙들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듯, 그 또한 해방되어야 한다. 책 안에서 우리가 검색하고 책들 사이를 검색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 된다면, 표면을 향해 가라앉아 가는 문자의 미래를, 우리의 것이었던 적 없었던(그러나 우리가 파놓은) 미래의 물길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책들이 공유하는 완전색인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다면... 도래 중인 총문학의 꼬리를 잡아 뒤집어 뺄 수도 있을 가능성이 거기에 있다고 해보자. 그것이 인터넷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르지 않다. 그것(인터넷)을 총문학이 아닌 그것의 완전색인으로 쓴다면, 본문이 아니라 색인으로 읽는다면. 그것이 스스로 현실에 대한 사전임을 참칭하지 못하도록, 먼저 분명히 해둬야 한다. 무한과 영원이라는 착시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총문학의 노고(불가능이 아니라)를 헤아림으로써, 유한과 한계가 진실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심장을 위한 모티프

  물과 얼음 사이에서 침묵이 태어날 때마다 나는 어딘가로 그 마음을 보냈지

  햇빛을 따라 죽어가는 말들은 썩지 않는 거울 같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답장이 없으니 그저 그 안의 모두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라 여겼어

  그렇지만 심장은 자꾸만 투명한 이별을 흘려보내고


  슬픔의 상이 잘 맺히는 그곳에선

  매일 목이 희게 만드는 의식이 일어나지

  충직함, 부끄러움, 신성함

  가장 출구가 필요한 것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

  해서 사라지기 위해서 잉태한 것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누가 먼저 도망쳤다고 생각해?

  부러지거나 깨진 것은 없었는데

  무슨 미래가 태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아직 없는 말을 만들기 위해

  그저 녹아내리는 중이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할 때마다 혹은 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까먹을 때마다 말 없는 언어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어느새 길게 늘어선 심장들의 그림자 그 사이 알 수 없는 계절을 베껴온 철새들이 들어오고 있어 애인의 인사는 다시 새로운 외국어가 되고 있어 나는 또 불가능으로 가득 찬 내 심장을 녹이고 있어

불투명함을 위한 투명함

사람들에게 나를 갖다 대었을 때 생각보다 나를 잘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참을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다시 자라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나를 흩트려놓는다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람들 곁에서 투명해져 있다 꿈에서 깨어도 나는 눈을 뜨지 않게 되었다 나는 언제쯤 그 부패의 과정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기껏 사라지지 않을 준비를 마치고도 나는 자주 나가지 못했다 나가도 자주 말하지 못했다 슬퍼하는 것과 외로워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점점 더 투명한 사람이 되었다 네게는 날개도 성대도 없어 나는 나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걸었고 안에서 밖으로 자꾸만 악취가 나는 질문들만 만들어냈다 너는 내 안에 있을 수 있어? 너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어? 너는 내 몸과 마음이 아닌 나도 사랑할 수 있어?

나는 조난당한 사람들과 함께 잠든다 눈을 뜨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는다 하필 그런 사람이 나였다 때를 놓쳐 떠나지 못한 지평선에 눕는다 더 이상 투명해질 수 없는 그림자 위로 나를 눕힌다 내가 나를 나에게 포개했을 때 생각보다 나를 잘 꿰뚫어 보고 있는 내가 있는 반면 한참을 헤매고 있는 나도 있다 어떤 나는 나를 다시 자라나게 만들고 어떤 나는 나를 흩트려놓는다 조용히 내 안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 안에서 투명해져 있다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24년 9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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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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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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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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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691원 (0원 + 302,192원 + 499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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