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인 뭐해?
관 (화들짝 놀라 손을 감추며) 아니 그...
관리인 그?
관 그... 기금을 좀...
관리인 기금? 왜? 쓴다고?
관 (바지에 손을 닦는다.) 네. 뭣 좀 만들려고.
관리인 뭘 만들어?
관 깃발을 좀.
관리인 뭔 깃발?
관 곡물창고 깃발요.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관리인 이번에 자극받았나? 어딜 들고 나가겠다는 거야? 누구랑?
관 많죠. 있으면. 앞으로. 많을 거예요. 많아요.
관리인 그래? 근데 서랍은 왜 뒤져? 돈 거기 없어.
관 어디 있어요?
잠시 정적.
관리인 누구 맘대로?
관 (관리인 쪽으로 다가가며) 제 맘대로요. 전에 기금으로 뭐라도 해보라고 했잖아요. 깃발 얘기도 당신이 꺼냈고.
관리인 그래 그거, 그랬지. 나도 생각해 봤는데 절차가 있어야겠어.
관 이제 와서 무슨 절차? 우린 서로 누군지도 몰라요. 말하기도 만나기도...
관리인 그러면서 무슨 깃발을 왜 만든단 거야? 어이 잠깐만.
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렌치를 집어든다.
관리인 (뒷걸음질하며) 뭐야 이거 지금?
관 어딨어요 돈?
관리인 어쩌겠다는 거야? 그 돈이 어디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숫자라고!
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당신은 그냥 글자고!
관리인 (달래려는 듯한 손짓) 정신 차려.
관 당신이랑 사이코드라마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요. 돈 어딨어요? (렌치를 흔들대며 한 발 더 다가간다.)
관리인,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세를 낮춘다.
관리인 붙들어!
관리인의 외침과 함께 관의 등 뒤 허공에서 요정이 나타나 관의 양 손목을 각기 붙잡는다. 요정에게 붙잡힌 관의 손목에서 형광색 연기가 난다. 관은 데인 듯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른다. 요정도 같이 소리를 지른다.
요정 키에엑!
관리인, 관에게 달려들어 렌치를 빼앗는다.
관리인 (렌치로 관의 머리를 내려치며) [ (ㄱ) ]
요정 [ (ㄴ) ]
① 너의 깃발은 여기에 있다
② 깨어나라!
③ 그대 현실로부터 이곳으로 다시
④ 귀신의 것은 귀신에게 주고
⑤ 저승 안식은 이름 없는 이들의 것
⑥ 느리게 착륙해오는 이곳 저승에서
⑦ 자연은 안간힘이고 인간은 깜부기불인데
⑧ 집짐승들의 이산된 가족은 어디에 있느냐
⑨ 이뤄지지 않는 것을 잠시만 맡아서
⑩ 빚과 몫을 바수어 거름으로 뿌려라
⑪ 세계는 수확되지 않는다
⑫ 세계는 소유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