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어언

오늘 세 번째 면접을 다녀왔다. 면접은 항상 좆같은 경험이다. 권고사직을 당한 지 어언 6개월, 행복했던 시간도 실업급여도 슬슬 끝이 보인다. 5개월 정도는 개인사를 돌보는 데 집중했고 이제 좀 진지하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이 얘기 때문에 부정수급으로 신고당하지 않길 빈다.) 앞선 두 번의 면접에서는 다 안 됐다. 처음 불려 간 곳은 신문사였다. 신문을 교정해버리면 어떨까? 1년 단위 계약직, 최대 2년까지. 월요일에는 1시간을 더 일하라고... 개새들. 다음 간 곳은 무슨 수험서 만드는 곳. 대학교재보다 어렵다느니 교정만 하시면 외주밖에 못하신다느니... 왜 그딴 소릴 늘어놓는 걸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씹새들... 하고 싶지도 않았느니라... 아, 마침 딱 지원하고 싶은 회사를 발견했다! 하지만 기업평을 보니 아주 개차반이다. 이력서를 써보려는데 퇴사자들의 절절 원통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냥 알바나 잠깐 할까? 데이터라벨링? AI의 오류를 교정하라고? 그리고 오늘 면접 본 곳에서는... 말을 말자. 뭐가 어쨌건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 한다. 어디로든 짐승의 소굴로 가서... 노동은 말할 것도 없이 고통이다. 공고문에서부터 쌔한 냄새 오지는 개 줮같은 회사들 들여다보며 하는 생각: 현대의 노동은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문자 그대로의 사타니즘 그 자체다.

이런 답답한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명을 찾아서』의 출간도 드디어 임박했다. 북펀딩이 사흘 전에 시작되어 18일에 끝나고 말일에 출간 예정. 이건 안 답답한 얘기냐 하면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출판사 대표님과는 같이 TRPG 한 사이다. 수상쩍은 인맥으로 출간이 결정된 것, 그야말로 출판 적폐다. 대표는 시인인데 출판까지 해보려는 이다. 자기 책을 내는 것까지야 흐뭇하게 봤는데 이제 남의 책도 만들겠다 한다. 그것도 이런 책을... 이게 말이 되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는 뭐냐면 펑크다. 사타니즘에 대한 사타니즘이다. 원고를 보내기는 작년 나온 『교정의 요정』과 비슷한 시기에 보냈다. 우리 바지대표 말고 그의 배우자인 실무편집자님(이 사람과도 TRPG 같이 했다)은 ‘이딴 책을 어떻게 파냐’고 낙심해 있던 차에 다행히 ㅁ사의 출판-대자본이 어쩌구 요정으로 먼저 길을 뚫어줘 한시름 놓았다...지만 그래도 큰일이다. 우리는 1쇄를 과연 소진할 수 있을까? 무서워서 몇 부 찍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블로그에다 셀프 광고를 쓰면서는 오만 부 운운하는 미친 소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백 부 정도인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정’ 때는 제목-표지-도입부 쇼부로 어떻게 사기를 쳐서라도 팔았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두려운 기적이 일어나 오만 부가 나가면 당분간은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되...나? 그래도 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오만 부라는 건 꿈같은 얘기다. 책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그냥 아이돌도 아니고 유수의 아이돌이 되어야만 설 수 있는 올림픽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의 객석 수가 만오천. 이 책이 모범으로 삼는 화장실 책의 영원한 고전 최불암시리즈는 몇 종 만들어져 몇 부가 나갔을까? 최불암 씨는 인세를 받았을까? 아닐 것이다. 얼굴 모를 원고 생산자들은? 모른다... 이게 해적이고 펑크다... 이게 공공재다...

예전에 무슨 스타트업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이른바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는데, 담당자로서 와○○에 교육을 받으러 갔었다. 후원 곡선은 대체로 U자를 그린다고 배웠다. 추세대로라면 이 북펀딩으로 200권 밀어내기를 목표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150권 정도. 중요한 건 이제 그다음이 중요하다. 리뷰어 섭외가 필요하다. 빨간 안경 쓴 그 사람이 일단 떠오른다. 어떻게 ‘우연히’ 그의 손에 책을 쥐여줄 수는 없을까? 잠복해 있다가 어깨빵 갈기고 툭 떨어뜨려... 최근 출판사를 차렸다 하는 배우 P정민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L동진보다는 그의 손에 책을 쥐여주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타짜 3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아니면 L재용도 괜찮다. 책에 아버지 얘기도 나오는데... 보니까 뭐 어디 누구랑 치킨 처먹고 있더만. 아직도 좀 모자란 도련님 이미지인데 책을 통해 이지적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수필의 명수 P근혜는 내 맘속에 언제나 있는 섭외 대상 1순위. 맘속의 섭외 대상으로는 S경숙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이 책의 리뷰어는 그런 분들의 저 반대편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뿐입니다... 무료 여러분... 여러분이 아니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오까네를 남긴다든가 하는 그런 감정적인 접근과는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사기를 칠까? 사기는 없다... 몸통박치기다... 이건... 이건 복수다... 내가 심리조작을 통해 책을 팔려 든다고 오해하지 않길 빈다... 이건 복수다... 여러분의 복수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마른 꽃잎 하나가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몰라

어깨에 조금 붙어서
그의 하루종일을 넘겨다볼 뿐

이 거리의 사람들 다
가벼운 재질의 여름옷 입고 있는데
아저씨만 몸에 붙는
블랙야크 등산복을 입은 거예요

때는 밤이었고
사람들 어디로든
돌아가 쉴 곳 찾고 있는데
아저씨 가게만 밤새 거기 있을 것처럼
조명을 환하게 켜놓고 있는 거예요

간간이 오는 손님들은
그와 약간씩 대화합니다

꽃 이름 몇 가지 물어보고
감당할 만한 가격인지 체크하고
힘든 사람 위로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것
적당히 챙겨서 떠나지요

나는 어깨 너머로
아저씨가 권하는 아름다운 것

카라를 신문지에 싸주며
이게 더 낫다 말하는 것

라벤더의 꽃말은 “기억해주세요”랍니다
허허 웃으며
너스레 떨 줄 아는 것

하나하나 보고 배웁니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뭐든지 겪고 있으니까

우연히 아저씨를 겪고 있어요

그가 견디는 박살 난 화분을
뿌리가 거꾸로 난 마른 식물을
흙과 뒤섞여 범벅된 바닥을
나도 견뎌봅니다

꽃집의 분위기는 적당히
아저씨 하고 있고
그나마 자신이 오래 해온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손님 맞고 식물 관리하는 일과
다 말라서, 그의 어깨에서 날아갈 때까지의 내가
남은 생애에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을 때가 좋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나는 몰라요

그런데 아저씨를 한다면
그의 어깨 정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내게 아저씨 하라는 사람
세상에 아무도 없지만요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사람을 피하는 고양이 실라에게

실라야. 너는 오늘도 나를 피해 도망가는구나. 나는 오늘도 도망가는 네 뒷모습만 봤어. 도망가는 뒷모습만 보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생각하면서. 인간들이 도대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을까. 너는 다른 고양이들이랑은 잘 지내잖아.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쩌다 너를 만나게 된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지. 내가 고양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근데 네가 고양이인 나를 또 싫어했을지 모르지. 우리 둘 다 인간이었어도 서로 미워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우리가 다른 종으로 태어난 것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매일 같은 시간 너를 찾아가면서 언젠가는 네가 나를 조금은 믿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나도 아무도 믿지 못하거든. 오늘도 네 뒷모습만 보고 돌아왔지만 나는 네 생각만 하면 행복해져. 사람을 피하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건 예상 못한 일이야. 하지만 나에게 이미 나를 피하는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기 쉬운 어떤 조건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해. 근데 그게 왜 하필 사람을 피하는 고양이인지는 모를 일이야. 정말 모를 일이지. 모를 일들이 일어나는 중이야. 나는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앉아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서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좋아. 이런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이 행복해. 나는 혼자 있지만 말이야. 혼자 네 생각을 하면서, 내일은 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사람을 피하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너를 피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도망치는 네 뒷모습만 보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 하면서. 너를 위한 노래를 만들고 너를 위해 글을 쓰고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더 중요한 일이나 더 하고 싶은 일은 없고.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아프지만 떠날거라는 다짐도 하면서.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너를 보면 내 안에 뭔가 환하고 좋은 것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네가 나를 조금만 덜 피하면 좋겠지만. 나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너를 만나러 가겠지. 너는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좀 슬프지만, 그래도 내가 슬픈 게 낫지, 네가 슬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랑니 뽑고 다음 날 아침

피를 뱉고 놀라웠다!

어떻게 몸에서
이렇게 역겨운 색깔이
나올 수 있지…

피부 아래엔
내가 먹은 빵과 풀 비슷한
자연적 색깔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요일의 상한 굴
쓰러진 거인의 타액
너무 피곤해서 죽어가는 사람의 냄새가
절망처럼 뒤섞이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 속에서나 끈적거리던 기억이
세면대 위를 느리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스무 살, 나 같은 애들로 빼곡한 대형 강의실에서
교수는 어느 스페인 화가의 투우 동판화를 보여주었지.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창을 든 군중들이
소의 힘줄을 찢고 있었어.

한 사내는 장대를 들고
인생의 단독 무대처럼 사방으로
소의 등을 뛰어넘었다.

이 그림의 제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완전히 죽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였던가?

소는 자기 목숨만큼이나 짧은
그림자를 밟고 서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공황에 빠져 있었어.

다 끝나기 전까지는 차라리
축제 같은 느낌이었고
은회색 그림 속엔
단색조의 긴장감이 흘러넘쳤어.

하지만 화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지.
교수는 그래서 예술가인 거라고 했어!

커브를 돌며 피하는 소의 등허리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거든,
관중석까지 피가 튀자
그림 전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거든…

그때 내가 목격한 건
날카로운 철침으로 선을 새긴 뒤
산을 뿌려 부식시킨
금속성 폭력이었어.

나를 매달리고 애원하게 만드는 냄새,
나를 두 손 들고 굴복하게 만드는,
함부로 폭도 같은 피 냄새…

이제 나는 더
뽑을 사랑니가 없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남의 등에 칼을 꽂고
거기서 멈추지도 않아.

살아서 움직이는 우유처럼
없는 상상을 하지 않아.

그런 건 내가 만든 시신들을
하얗게 표백할 때나 의미가 있다.

어제는 뭘 죽였을까?

잊어버리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해.

오늘 아침처럼 가끔씩
입안에 머금은 피를 생각하고.

2025년 10월 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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