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0일 화요일

나쁜 빛

"아직도 표범이 무서워?"

로사는 대답않고 머리만 배배 꼬았다.

이레네는 로사의 성인식 때 쓸 새깃 망토를 꿰매는 중이었다. 망토에 매달린 깃털들이 이레네의 손을 따라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멈추기도 하고 떨리기도 해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레네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수액을 섞어 빻은 약초 진물이 몸에 뒤덮여 있었는데 대단한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프고 싶지 않다.

그 생각에 신이 벌 준 듯, 날갯죽지로부터 팔꿈치까지 통증이 찾아왔다. 손에 쥔 뼈바늘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레네는 자기만의 정적 속에서 미간을 조이고 풀었다. 못 참을 것은 없어, 못 참을 것은...... 로사가 이레네의 손에 떨어진 뼈바늘을 쥐어 주었다. 다시 쥐인 그것이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로사는 이상한 열감을 느꼈다. 무엄하다고 해야 할까? 로사는 배다른 언니의 상처 속에 손을 넣어보고 싶었다.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끝까지 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물었잖아, 로사."

이레네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표범이 되고 싶지는 않아......”

로사가 대답했다.

"늑대는?"

"마찬가지야."

"그럼 나무는? 껍질이 오돌토돌한."

"부서지지 않는 게 좋아."

성인식이 코앞이었다. 이레네는 아직도 형상을 정하지 못한 로사가 못 미더웠다. 그날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술사가 되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다. 실패자는 부족의 수치였다. 게을러서는 안 됐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되고자 하는 자연물의 이미지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외곽선을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털의 윤기, 껍질의 질감과 눈의 색깔. 대상의 모든 부분을 사경을 헤매면서도 완벽하게 떠올려 낼 수 있어야 했다. 이미지를 고정시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바위가 되고 싶은 거니?"

"굳이 골라야 한다면 그래. 그치만..."

말끝을 흐리면서 로사는 이레네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되고 싶은 건 기사야."

이레네가 정색한 얼굴로 로사를 쳐다봤다. 살을 꼬집는 듯한 눈빛이 아파서 로사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기사는 우리를 죽이고 있잖아."

말하지 말 걸 그랬어. 해명을 원한다는 듯, 이레네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괜한 반발심이 들었고 충분히 설명하고 싶었다.

"그들 편에 서고 싶다는 게 아냐, 정말 잘 싸우고 싶다는 뜻이었어. 그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강철은 어떤 짐승의 발톱으로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무기는 또 어떻고? 휘두를 때마다 하얀 빛이 이는데, 달님이 보살피는 듯 차갑고 강력하지. 우리는 왜 그들처럼 싸우지 못하는 걸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쇠를 만드는 기술 말이야. 쇠는 무척이나..."

그때 난폭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쿠르긴이 들어왔다.

"...단단하고 늠름해.”

쿠르긴이 로사를 보고 씩 웃었다.

"기사들은 미개한 괴물이야."

이레네가 망토 윗쪽에 넓은 리본을 덧대며 말했다. 손이 헛도는 탓에 리본은 피어나다 도로 접힌 꽃처럼 구겨져만 갔다. 로사는 괜스레 가옥 바닥에 널어 둔 빛비름 잎을 매만졌다. 물기를 잃은 그것들은 뭉친 머리카락처럼 꼬들꼬들했다.

"폭력을 숭상하는 거야. 자기들 야만도 모자라서 더 큰 야만, 더 큰 폭력에 복종해. 우릴 괴롭히고 서슴없이 죽여. 새끼 밴 동물도 마구잡이로 죽이지. 왕이 원한다면 자살도 할 거야. 태어나기 전부터 명을 기다렸던 것처럼. 아야!"

이레네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찔린 자리에서 주륵하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것 봐.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화를 입었잖아."

입술로 피를 빨아내면서 이레네는 짜증을 냈다.

"그런 생각은 절대 입밖에 내지 마. 사람들이 너를 더욱 더 꺼림칙하게 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됐어, 언니. 언니만 내게 안 그러면 돼."

로사는 이레네의 팔을 가볍게 잡아 자신에게 이끌었다. 로사는 이레네의 손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비린 피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그건 좋게 느껴졌고 어쩐지 중독적이었다.

"이제 됐어."

이레네가 팔을 끌었지만, 로사가 움켜쥐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이복자매의 우애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레네도 로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레네는 로사가 두려웠다. 병적인 행동이 불러오는 모든 종류의 불편함은 이해를 앞서보려는 이레네의 노력을 번번이 좌절시켰다. 이레네는 이미 자신이 로사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일이 이레네의 능력 바깥이었기 때문이었다. 능력 이상으로 미워할 수는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됐다. 너는 우리가 노획한 아이야. 이해의 끄트머리에서 미움의 첫머리로 넘어갈 때마다 이레네는 로사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여자는 확실히 악마적인 데가 있었어. 연로한 주술사들이 로사를 볼 때마다 했던 말. 마녀라고 했던가? 미친 사람을 보고 나면 미치지 않기를 바라게 돼. 모친의 목숨을 끊은 주술사들은 하나 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도시민이었음에도 도시에서 소외된 자였고, 이곳에서는 늘 미쳐 있었다. 그녀는 주술사였던 남편 손에 이끌려 만삭 상태로 마을에 왔고, 남편을 죽인 뒤 자신도 죽었으며 시체 상태로 로사를 낳았다. 그 모든 일에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주술사들은 로사를 꺼려했다. 로사는 이레네에게 맡겨졌다. 주술사들이 공통점 하나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다는. 이레네는 로사의 머리를 밀쳐내 자신에게서 떨어뜨리고는 등을 돌렸다.
쿠르긴이 로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점점 더 추워지고 있어. 사냥도 어려워지고 있고. 동물이 된 우리가 새끼를 낳은 다음 그 새끼를 잡아먹어야 할 판이야."

쿠르긴이 마체테로 마른 나무 덤불을 헤치며 길을 텄다. 그의 마체테는 운철을 벼려 만든 것으로, 마을에 하나 뿐인 귀중한 것이었다. 기사를 열 명은 죽였다던가? 운석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있을까 싶어, 로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그러나 간악해보이는 먹구름 떼만 가득했다. 뱀 한 마리가 발등을 타고 지나갔다. 로사는 허리를 숙여 뱀이 사라진 덤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살모사 신일까? 로사가 익혀 배운 세계 속에서는 모든 자연물이 저마다의 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만 빼고. 인간이 불완전한 것은 인간 신이 없기 때문이야.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 영혼을 나누어 받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먹을만한 것인 마음과 할만 한 것인 생각을 나눠주고 있기 때문에, 자연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고 감사한 것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도시민들과 싸움이 벌어져도 죽는 경우는 많지 않아. 산 채로 데려가기 위해서지. 데려간 다음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어떻게 생각하니, 로사. 그들이 우리를 소나 개, 돼지처럼 번식시킬까?”

“납치하는 거, 그건 예전부터 있었던 일 아닌가요?”

“물론 그랬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거였어. 지금의 그들은 우릴 포획하기 위해 새로운 싸움 방식을 만든 것만 같지. 너는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로사야. 기사들은 우릴 사람으로 안 봐."

호숫가에 다다른 둘은 큼지막한 바위에 올라 호수를 보았다. 이끼가 잔뜩 껴 녹빛을 띈 바위였다. 로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의 끝을 보려고 애썼다. 쿠르긴의 손이 로사의 어깨에 얹혔다. 쿠르긴이 말했다.

"여긴 처음이지?"

"처음이에요. 하지만 들은 적 있어요. 여긴 나우이 올린이..."

"맞아. 나우이 올린의 폐가 처음으로 빛을 가뒀다고 전해지는 곳이야."

나우이 올린에 의하면, 변신은 하나에 불과한 몸에 다른 존재의 몸을 혼합하여 영혼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으로 복잡하고 위대한 존재가 되는 신성한 과정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아홉 개의 동식물로 변할 수 있었다고 하며, 동물이면서 동시에 식물일 수도, 동시에 광물일 수도 있었다고 한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강함에 반한 옛 사람들은 그를 코욜샤우키라 불렀다. 오래 전이라 그 말의 의미는 잊혀졌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의 강력함을 가리키는 말인지 주술사들은 잊지 않았다. 나우이 올린은 루스 말라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교감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터득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해지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쪼개고 쪼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아주 작은 것과도.

빛비름은 그가 마지막으로 변신했다고 알려진,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풀이었다. 그것은 이제 많은 곳에서 자란다. 빛비름은 그의 유해인 동시에 유산이다. 그 풀과 꽃을 태워 연기를 피우면 루스 말라가 나타난다는 것이 근거다. 연기를 들이마시면 폐는 영롱한 색으로 목청껏 빛난다. 그렇게 주술사는 자신의 입을 빌려 말하는 루스 말라의 명랑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우이 올린은 죽은 걸까? 그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다만 마지막으로 빛비름이 되었다고만 얘기된다.

(그것이게 해줄게!)

루스 말라는 옛말로 '나쁜 빛'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체이기도 하다. 루스 말라가 폐를 거쳐 몸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면, 그러니까 그들이 한번 숨이 되고 나면, 현실과 이미지가 매개 되어 주술사가 고정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언니가 저를 미워하면 어떡하죠?"

"계속 미워하지는 않을 거야."

"미칠 것 같아요."

로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쿠르긴이 물었다.

“근데, 손가락은 왜 그렇게 물고 안 놔준 거야? 먹어 치우려는 줄 알았어.”

“때때로... 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로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제가 언니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쿠르긴이 로사의 등을 쓸었다. 로사는 얼른 바위에서 내려와 호수 바로 앞까지 뛰어갔다. 거기서부터는 몹시 추웠다. 로사는 호숫물에 손을 담궜다가 긴급히 뒤로 빼냈다. 명계에서 샘솟는 것인지 물은 섬찟하게 차가웠다.

"마술사들 때문이야."

쿠르긴이 쪼그려 앉아 손가락 두 개를 붙이고는 호수면에 넣고 빙글빙글 돌렸다.

"우리는 숨과 대화로 루스 말라와 교감하지만, 마술사들은 그렇지 않아. 루스 말라는 말하고 싶어하는데, 마술사들은 결코 그들을 말하게 두지 않아. 어디 그뿐인가?"

로사는 쿠르긴을 내려다 봤다. 어둠이 짙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술은 불을 삼켜. 주변의 불을 닥치는 대로 끌어와서 쓰고 버린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가 풀도 나무도 없는 죽은 곳인 것은 그 때문이고. 그럼에도 저들은 멈추지 않지. 그들과 싸워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중요한 건 이거야. 우릴 제외한 모든 이들은 세상을 커다란 장작 쯤으로 여기고 있어. 그래서 모조리 죽여야 하는 거야. 세상이 얼어 죽는 일을 두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벌떡 일어난 쿠르긴이 로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로사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손이 닿은 어깨가 축축했다. 넓고 약한 바람이 호수를 넘어오며 그들의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우린 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

"쿠르긴?"

쿠르긴의 팔이 로사의 허리에 붙었다. 그게 지금 나를 만지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로사는 쿠르긴의 가슴팍에 손을 대고 밀어보려고 했다. 안 밀렸다. 쿠르긴의 몸은 두터운 동굴 벽처럼 단단했다. 쿠르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로사는 혀를 콱 깨물었다. 우와, 분명 혀가 잘렸을 거야. 그러나 고맙게도 정신이 들었다. 로사는 팔로 쿠르긴의 몸을 감으면서 무릎을 솟구쳐 명치를 찔렀다. 컥, 하며 그가 나가떨어졌다.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로사는 쓰러진 쿠르긴을 살폈다. 이복 언니의 남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로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바람이 지금까지의 역방향으로 불었다.


*


멈춰선 로사는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부족이 다같이 농작하는 넓은 빛비름 밭이었다. 분간 없이 달렸는데 마을 어귀로 돌아왔다니.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올 때, 덤불 가시가 긁고 지나간 생채기들을 긁으며 로사는 눈을 비볐다. 로사는 밭 가장자리에 세워진 나무 말뚝에 절뚝이며 걸어가 몸을 기댔다. 독한 질병에 걸린 듯 몸이 뜨거웠다.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빗줄기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은 확실히 전보다 추워져 있었다.

"로사."

깜짝 놀란 로사가 황급히 고개를 쳐 들었다.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무서워서."

말 한 마리가 숲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로사의 두 다리보다 더 두꺼운 다리를 네 개나 가진, 그 커다란 밤색 말은 쿠르긴이었다. 언제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생명력을 내뿜던 쿠르긴. 산 허리로 물을 길러 갈 때면 야생마들과 섞여 뛰어다니는 쿠르긴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아내가 이미 많다고. 이레네보다 훨씬 즐거운 아내들이 많다고 속삭이던 쿠르긴을 로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가 될 생각은 없어."

"아내일 필요는 없어."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간 나를 수도 없이 훔쳐봤잖아.”

"그런 뜻으로 훔쳐봤던 게 아니야!"

쿠르긴은 콧김을 내뿜었다. 뛸 수 있을까? 아니, 뛰어도 잡힐 거야.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까...... 천둥 소리가 가까웠다. 남자를 알고 싶기는 했지만 여자로서 알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나는. 나는 나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비에 완전히 젖어서 로사는 크흐흑, 하고 웃었다.

"죽는 게 낫겠어."

나무 말뚝의 뾰족한 윗단에 목을 뚫으려던 그때였다. 북 찢는 소리와 함께 돌풍이 불었다. 강한 바람이 로사를 옆으로 밀쳤다. 그리고 세상이 번뜩였다. 희고 탁한 상자 속에 갇힌 듯, 안과 밖이 모두 새하얗게 구부러졌다. 구름 신이 화났구나, 이제 나는 죽는 걸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얀 어둠을 헤치며 다가온 밤색 말은 인간에게 경고를 하러 온 자연의 정령처럼 보였다. 굉음이 깔렸다. 로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히 막혔다. 발바닥이 뜨거웠다. 번개가 왔다 간 자리에 불길이 일어나며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밭을 펴바르고 있었다. 연기가 몸을 감쌌다. 죽어가는 듯 살아나는 듯, 하늘을 향해 머리를 살랑거리는 빛비름들 속에서 로사는 기침을 해댔다. 내보낸 것보다 더 많은 어둠이 폐로 밀려들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 감아가며 로사는, 자신 앞에서 발 구르는 말발굽을 보았다. 변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무엇으로? 까다롭게 굴어왔지만 지금은 자신만 아니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안녕?)

로사의 입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로사가 눈을 번쩍 떴다. 혀와 입천장, 턱이 자신과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폐가 빛으로 미장된 듯, 구토처럼 빛이 흘러넘쳤고 아련한 그것이 신비로웠다. 루스 말라는 모든 게 별 것 아니라는 듯 방울처럼 명랑하게 말했다.

(반가워 지금이 성인식의 그날은 아닌 것 같은데 괴로워 보이네 그렇지 우리는 언제나 이 말부터 하는데 우리는 다 같이 말하고 우리의 말은 지혜를 품고 맞아 떨어지는 일이 잦지만 제멋대로 붙는 파편과도 같아서 듣는 이가 잘 들어야 해 그런데)

나타날 때 너희는 이런 느낌이구나?

(그렇지 우리는 이런 느낌인데 너는 조금 슬픈 느낌이구나 괴로워도 보이고 외롭게도 보이고 그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처럼 어린 아이에게도 그리워 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져 엄마가 보고 싶니? 본 적도 없는)

응.

(사는 것을 포기했어?)

응.

(사는 편이 좋아)

알겠어.

(여전히 언니를 보고 싶어하는구나)

어?

(우리는 그런 걸 잘 알아차려 그리고 죽음 직전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야 그때 우리는 대신 생각해주었어)
(네 머릿속의 사전이면서 사진인 어떤 것에서 찾아주었지 선명하게)

없어.

(없을 리가 없어)

왜?

(모든 것은 자신이 아니게 되니까)
(너는 자신이 아니고 싶어하고)
(세계마저도 그래)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시간이 멈춘 걸까?

(시간이 가장 빠른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질문이 가능해?

(그냥 내가 말하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예 를 들 어 내가)
(느)
(리)
(게)
(말한다면)
(이전처럼 움직이지)
(보았니?)

그렇구나.

(그런데 너는 네가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해왔어 기사라는 것은)
(음)
(너는 기사에게 끌리지만, 그건 그냥)
(가져다 쓰는 갑옷이었던 거구나)
(저 남자를 힐끔거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만)
(기사 중에는 여성도 있단다 그게)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 우리는 가끔 중요한 것보다 아는 것을 먼저 말해)
(그래)
(너 같은 사람이 있었어)
(너에게서 나가고 싶었던 거구나)
(네가 원했던 것은 변신이 아니라)
(너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바꾸는 거였구나)
(네가 원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바깥의 일이야)
(사후세계에서는 가능하다고 들었어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대체로 인간은)
(결국 소중하게 여겨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보고는 했거든 그동안 없었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살고 있기만 하면 가만히만 있어도...... 생기고는 하는 것을 보고는 했거든 네가 다시 태어날 수 없어도,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네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누군가는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고는 했거든 그러니 살아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살다 보면 네가 그것이 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고 "앞당길 수도 있고" 네가 그것이 될 수 없다고 해도 네가 그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그때까지 살아보면 좋다고 생각해 네가 살고 싶다는 마음을 아주 조금만 가져본다면 우리가)
(떠올려줄게)
(나우이 올린도 똑같았거든)
(우리가 잘 알아차린 것 같아)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었어)
(네가 여기 있어서 참 다행이다)

로사는 작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로사?"

연기를 헤치며 다가온 쿠르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동물의 형체였으나 운석의 신체를 가진 표범에게. 작은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 으레 그렇듯, 표범은 희열을 맛봤다. 루스 말라가 말했다.

(먹어치워)

비가 그치고 달이 보였다. 단단하게 유연하게 목을 구부리고 울부짖는 동물이 있었다. 로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세 번째 코욜샤우키는 달 아래를 천천히 맴돌다가, 폐에 보관된 빛의 인도에 따라 몸을 낮추고 뛰기 시작했다. 명랑한 목소리의 요구대로, 천 마리의 도덕 괴물을 순서대로 죽이기 위해서.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