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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0일 월요일

취객

잠을 못 자겠다.

헛간 지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잔뜩 불콰해져서 덮고 누운 내가 천장을 올려다봐도 맞고 틀린지를 모르겠고 하여간 계속해서 소리가 난다. 조약돌처럼 가벼운 것이 판자에 툭, 툭 떨어지는 소리. 이사야가 뛰어 놀다가 약한 곳을 잘못 디딘 것일까? 관리인이 있다면 말해줄 텐데. 그는 어딜 간 모양이다. 자고 가도 좋다는 분명한 허락만 남기고서.

얼굴에 열감이 느껴진다. 나는 취했다! 누구랑 마셨고, 어쩌다 마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같고, 전화해서 헛소리를 지껄인 것도 같고. 그러나 내가 헛소리를 할 때에 헛소리인 줄을 알면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고서 가갸거겨를 대답해 주는 사람에게 나는 애정을 느끼고,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소름 돋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쁘게 소름 돋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람?

맨정신으로는 여기 잘 안 온다. 마실 때의 기쁨. 그 기쁨의 인상을 외투에 여밀 수 있을 때. 그때 오는 것이다. 문제는 기쁜 만큼 슬프다는 거다. 술에 취하면 슬픔이 아주 기기묘묘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다른 가까운 이미지로 한 번 더 바뀌어 버리는데, 결국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 알 수 없는 바보가 되어 버린다. 그건 아마 마음 놓고 슬퍼하는 일이 우리에게 어렵기 때문이겠지.

슬프도다.

그나저나 지붕을 수리해야 되겠는데. 목수를 부르면 될 것이다. 아는 목수가 한 명 있다. 그 목수는 장도리 한번 안 잡아 본 것처럼 손에 주름이 없다. 손의 컨디션이 뛰어나다고 할까? 방금 뭘 바르고 온 것처럼. 바보 이반에 등장하는 악마의 손처럼.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만든다고 들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는 절대로 깨어지는 법이 없다.

괜찮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고,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엥? 더는 마실 수 없을 때까지 마셨고, 그래도 한 잔 정도는 더 마실 수 있을 거 같다. 어떠냐? 고민할 것은 없다. 이내 곧, 사람의 큰 기쁨인 졸음, 인간의 큰 슬픔인 졸음이, 유성처럼, 죄 잘못 없는 저 별들처럼, 쏟아지는 것을, 추락하고 짓이겨지고 곱게 빻여서 술기운 같은 열감으로, 열감에 포개어져서, 애수와 같이 짠하고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에 맞서려 손차양 따윌 하지 않아도 된다. 사는 동안에 취객은 끊임없이 잠들 테니까. 잠들 것이고, 깨어난 후에 전철을 타고 어디로든 갈 것이니까. 이곳은, 내 불면증의 진원지인 집이 아니고 이곳은, 자고 가도 괜찮다고 허락받은 헛간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도 잠을 푹 잘 잔다. 멀쩡한 사람처럼, 나갈 때도 아주 곱게, 눈에 뜨일 만한 짓은 하지 않는,
다고, 나,
는,

생각하려는 편이다.

2020년 2월 8일 토요일

2020 신춘특집, 관리인과의 대담

이사야 소식은 아직 없나요? 관리인의 책상 위에 여전히 놓인 ‘고양이 대해부’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며 물었다.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입춘은 지났다. 올겨울은 기후 어쩌고 때문이라는지 유독 따뜻했는데 근 사흘 날씨와 예보를 보면 뒤늦게라도 진짜 겨울이 시작되려는 것 같다. 이사야가 창고에서 겨울을 날 생각이라면 이제는 정말로 돌아와야 한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관리인은 큰 걱정 없는 눈치였다. 최근 관리인에게 얼음 이사야의 꿈 이야기를 또 했었다. 이맘때에 다시 생각이 나서. 괜찮은 꿈이네. 관리인은 그렇게 두 번째로 말했다.  뭐가 괜찮단 거야? 난 어제까지 배가 아팠어. 네? 설에 뭘 잘못 먹어선. 뭘 잘못 먹었는데요? 아마 전. 설은 한참 지났잖아요.

그놈의 전을 꾸역꾸역 부쳐 먹겠다고... 과일 좀 들래? 아뇨 됐어요. 차는 없나요? 없어. 과일을 먹어. 바로 깎아 줄게. 좋아요. 고마워요. 관리인은 유리컵 두 개를 꺼내 주전자에 담긴 뭔지 모를 물을 따라서 하나는 내게 주고 하나는 자기 앞에 두었다. 그가 주섬주섬 칼과 접시를 준비하는 사이 나도 가져간 과자들을 꺼내 펼쳤다. 짠 것 하나, 단 것 둘. 봉지를 까다가 하나가 떨어져 얼른 집어 먹었다. 물은 따뜻하고 고소했다. 뭘 이런 걸 싸 갖고 왔어. 무슨 물이에요? 관리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과 깎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메밀. 좋네요. 이것도 차 아니에요? 아냐. 관리인은 사과를 동강 내기 시작했다. 메밀... 시작해도 될까요? 어렵게 얘기할 필요 있을까요. 좋을 대로 해. 반말로 해도 돼? 당연하죠. 질문지 읽어 봤어요? 봤지. 그럼 자기 소개 부탁해요. 창고관리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끝?

무슨 말이 더 필요해? 그럼 질문지에 적었으면 좋지. 관리인은 접시를 밀었다. 그렇네요. 관리인 업무를 시작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이제 3년? 소회가 있다면? 딱히 없어. 사과는 달고 시원했다.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해봐. 일테면요? 관리인 되기 전엔 뭘 했는지? 좋아요. 그걸로 할게요. 관리인이 되기 전엔? 관리인이 되기 전 같은 거는 없어. 네? ‘관리인이 되기 전’ 같은 건 없다는 얘기야. 나는 관리인이야. 나는 관리인 이전의 뭔가가 아니야. 이후의 뭔가도 아니고. 그만큼 책임감이 강하다는 뜻인가요? 아니지. 나는 그냥 도구야. 공식적으로 말해서, 여기에 뭘 쓰는 사람들은 누구든 나를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사용될 때는 이 모습도 아닌 거야. 어떤 모습인지는 나도 몰라. 아니, 무슨 모습이 왜 필요하다는 거야?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빙의? 이해시킬 생각 없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재미없는 얘기니까 다음으로 넘어가.

15호 서신 얘기를 해 보죠. 저도 읽었어요. 그래야지. 읽으라고 쓴 거니. 그러기엔 글자가 작죠? 그래도 읽었잖나?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있나요? 없어. 아직인지. 사실 큰 기대 없어. 그래도 새십년대니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군.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좀 수상쩍을 거야. 뭐지 이거 싶을 거라고. 미심쩍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사람들이 맞긴 한가... 진심인가 싶죠. 그래. 하지만 쓴 그대로야. 내가 뭔가 잘못 썼을지도 몰라. 자네가 보기엔 어땠어? 말 그대로요. 약장수 같던데요. 요즘 세상에. 안 그런 때가 없었지만, 엄혹한 세상이에요. 난 사실 그쪽엔 큰 관심 없어요.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제가 쓸 일이 급하죠. 개발서나 빨리 끝내 버리고 싶어요. 진짜 곤욕이에요. 하려던 말이 그게 아니라... 15호 서신에서 고쳤다고 했잖아요? 조례 말이에요, 만약에, 내가 당신하고 말이죠, 마음을 먹는다면, 하루아침에 여길 다 비워 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요?

관리인은 말없이 한참,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뜯어보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보다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느냐’는 듯한... 우리가 아니어도 되지. 그건 원래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거고, 조례도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어. 다른 뜻으로 하는 얘긴가? 모르겠군.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고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말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조례에 이상한 점이 보여 그냥 묻고 싶었던 것뿐이다. 무슨 다른 뜻이 있을 수 있나? 그럼 나도 한번 물어 보자고. 조례에 왜 팀 블로그인가에 대한 이용자의 자기 정립이 요구된다고 적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이용자로서 말야. 3년이나 됐는데. 엑... 왜 그런 걸 물어 봐요. 나도 똑같은 거야. 조례 얘긴 하지 말자고. 정 하고 싶으면 하지만. 난 법원이 아니야. 빡빡하게 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면 왜 지난 3년에 걸쳐서 계속 수정하고 있는 거죠? 아니 애초에, 왜 조례가 필요하죠? 그게 내 취미니까. 적어도 자네하고 얘기하는 동안엔. 관리인은 들고 있던 사과를 베어 먹었다. 뭔 소린지... 그럴 때 관리인은 정말 깡패처럼 보인다.

그럼 다음, 이용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딱히 없어. 굳이 꼽자면 ‘곡물창고에서’ 가끔 써줬으면 좋겠다? 헛간 다이닝이나 불태우기 이런 걸 보면, 내 입장에서 읽기 물론 아주 재밌지만, 사실 그런 정도의 글을 ‘더’ 써달라 할 수는 없어. 내가 뭘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뭘... 그럴 수는 없어. 쥐어짜고 싶지는 않아. 당연히 쥐어짜고 싶지. 썰매는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가죽 포대가 뭐 어쨌다는 거지? 오직 내가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래, 한 술 더 떠서, 사람들이 직접 공용 태그를 만들어 남이 뭘 쓰게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맘도 있어. 하여튼 재밌는 경험이거든. ‘왜 팀 블로그인가?’에 대한 내 지금 생각은 그래. 처음부터 무슨 밑그림 같은 건 없었어. 그냥 아 이거였나 하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왔던 거지. 조례는 그 기록 같은 거야. ‘해 왔다’기엔 참 별거 없네요. 그래. 어떻게 말해도 좋아. 자네에게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는... 뭘 바란다기보다는, 그냥 뭐든 좋으니 나름의 경험들을 얻었으면 좋겠어. 억지로는 말고. 아니, 억지로 하지 말라는 얘기 자체가 좀 그래. 각자 생각들을 할 텐데 말야. 나로서도 다른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는 매한가지야. 내심 뭐가 싫을 수도 있고, 나름의 경험이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 뭔가 완전히 다른 생각일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결국 무슨 생각일지 모를 사람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내가 관리인이랍시고 여기 앉아 있긴 해도. 그런 예측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것에 대한 느낌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거라는 생각이 있어. 도리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뭔가 생각을 말해 보고 행동을 해 본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야. 그리고 마찬가지로 결국엔 조금씩 훈련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 아닌가? 어차피 창고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니까 쓰고 싶으면 쓰고 아니면 말고, 마감이 안 되면 나갔다가 들어와도 되고, 아니면 이번 마감은 거르겠다 말해도 되고, 그냥 나가도 되고. 나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되는 거고, 여기서라면 그런 정도면 되는 거야. 대단한 거 없어... 대단해질 필요 없지. 관리인은 물을 마셨다. 대단할 거 없다고 생각하는 기색이 전혀 아니었지만 그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잠자코 나도 따라 마셨다. 아직 더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자기 시간과 수고를 들여 뭔가를 ‘그냥’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마음은 어떤 측면에서든 이 시대의 말로 정당화되기 쉽지 않은 것 같아. 노출증? 관심병? 모욕이지. 하지만 반쯤 맞기도 해. 한편 무엇이든 보고 싶은 마음은 어떨까? 관음증? 스토킹? 이런 일들이 전적으로 현대인적 불안에 의한 걸까? 노동의 고통 때문인 걸까? 인간의 어두운... 뭐 그런 걸까? 역시 반쯤은 그렇겠지. 하지만 역시 반쯤은 아닌 거야. 아닌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나로서는 여기서 바로 그런 경험을 얻는 거고. 이상한 얘긴가? 뭐 이렇게까지... 요즘엔 이런 얘기도 많아요. 오늘날 인터넷 기업들은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올리는 공짜 콘텐츠와 뭔가를 보고 싶은 사람들의 클릭수를 이용해서... 오 맞아. 당연하지. 당연한 말이야. 거대 정보기술 기업들은 당연히 ‘사회화’되어야 해. 그 일을 당연히 해내야지. 우리가 소소하게 만들어 내고 구경하는 것 모두를, 스스로 사유화하는 대가로 푼돈을 기대할 게 아니라. ‘사회화’라는 게 무슨 이야긴지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각주라도 달아 주게.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네요. 그래. 물론이야. 다들 뭔가 생각들을 할 수 있어. 어쩌면 깃발이라도 만들어야 할지 몰라. 정말로 그래야 할 수도 있지. 그래야 할 수도 있겠네요. 올해의 계획인가요? 올해의 계획? 딱히 계획 같은 거 없어. 일단 당장은 공동입하동을 보강하고 싶어. 가벼운 공용 태그를 만들 수 있다면 더 만들어서. 그러려고 이름도 공동입하동으로 바꿨지. 원래는, 보자... 뭐였죠? 이미 다 바꿨놨으니까 기억도 안 날 거야. 잠깐만요, 말하지 마요. 기억이 날 것 같아요... 공... 등록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고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명절 지나

이제 얼마나 됐지? 마당을 쓴 뒤 관리대장을 쓰다가 오랜만에 맨 앞장을 펼쳐 봤다. 창고가 열린 지는 3년이 되어 가고 있다. 쥐잡이가 보이지 않은 지는 6개월이나 7개월. 겨울 전엔 돌아올 것이다. 그끄저께 아침엔 개다리소반에 사과와 배, 밤, 송편을 올리고 향을 피웠다. 저번에 누가 내다 놓은 제기 더미를 뒤져 깨끗한 걸 추렸기 때문에. 없었으면 그렇게 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편은 그 전날 교정의 요정과 함께 빚었다. 반죽을 맡겼는데 형광 녹색이 되어 놓았다. 자기가 그렇게 여기저기 묻어나도 별 상관없다는 기색. 특별히 무슨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니 나도 별 상관없었다. 소는 콩. 요정이 한 개 먹어 보더니 자기는 앞으로 콩 송편 같은 건 안 먹을 거라 했다. 나도 한 개만 먹었다. 우리가 두 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송편의 송 자는 소나무 송 자다. 솔잎은 태풍에 쓰러진 담장 밖 소나무에서 따 온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부터 톱을 갖고 가서 치울 것이다.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2주년 기념 잔치

다른 사람들은요? 글쎄.

우리는 관리실에 앉아 있었다. 관리실은 장판도 깔고 전기요도 들이고 아주 좋아졌다. 쥐잡이는 이불 위에 올라가 있었고, 우리는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있었다. 나 혼자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관리인과는 꽤 친해졌다. 벌써 두 해가 아닌가.

저는 이렇게 있으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말하자 관리인은 안경 너머로 내 쪽을 보며 대꾸가 없었다. 동의를 구해 본다는 뜻으로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그는 입을 씰룩이다가 다시 턱을 쳐들고 ‘고양이 대해부’를 읽기 시작할 뿐이었다. 나보다 더 마셨을 텐데 대체 저걸 어떻게 읽고 있는 건지. 사실 관리인은 그걸 읽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붙들고서 적당한 간격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뿐인 게 아닌가? 이제 그 책은 아주 걸레짝이 되었다. 낡은 책을 수선해 주는 뭐 그런 사람도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소리는 다른 사람들도 수없이 했을 거다.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분명히 누군가 있다는 걸 안다. 아니라면 창고 안의 저것들은 다 무엇인지? 그렇잖아요? 그런 거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어. 요즘에는 다들 그런 식으로 느낀다니까. 자네까지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귀를 의심했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다가 병에 걸리고 마는 거야. 그거는 느낌이 아니니까... 그거는 사실이니까... 말을 왜...

나는 뻥튀기를 한 움큼 집었다. 술 좀 더 가져올까요? 가져올 수 있으면. 관리인은 책을 덮고 음악을 틀었다. 나는 엎어져 뻥튀기를 쥔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니면 듣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윽고 찬바람과 함께 누군가 들어왔는데, 이분은 ...정이신데, 인사하게, 인사할 수 있으면, 하는 관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사할 수 없었다. 아뇨 , 괜찮습니다.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고, 이어서 이사야의 울음소리, 뒤이어 이사야의 작은 발 네 개가 나를 일곱 번 밟고 지나갔다. 누구? 누구라고요? 조장? 교장? 요정, 교정의 요정 말이야. 실례하겠습니다. 또 속삭이는 소리. 그리고 이불 속으로 처음 보는 녹색 발 하나가 쑥 들어왔다.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썰매

낙엽 더미에 묻혀 있던 썰매가 이제 보인다. 널빤지 윗면은 할퀴어진 자국들. 아랫면에는 줄글이 쓰여 있으나 번지고 희미해 읽을 수 없다. 햇수가 지남에 따라 더더욱 읽기 어려워질 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별 중요하지도 않다.

2018년 5월 1일 화요일

행진 구경

이사야는 아침부터 종일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 바람도 불고 날도 흐린데 위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관리인은 오늘 나오지 않았다. 무슨 날인가? 귀를 기울여 보았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헛간 다이닝

과거에서 온 악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할머니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먹은 게 몇살 때 일이게?

내가 검지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자 악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도 고개를 저었지요. 나는 한살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질문을 하려던 거였으니까요. 악마는 질문 하나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벌써 태어났나요?

악마는 짜증을 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인가요?  먹을 것과 관계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거기다 이 얘기엔 악마도 나오고 시간여행도 나오잖아요. 부족한 게 없을 텐데.

일단 들어오세요. 어두워서 미안해요. 나한테 불이 없다는 뜻이 아니니까 그건 다시 주머니에 넣어두세요. 여기서 불이 났었답니다. 창고가 불을 무서워하게 되었을까봐 무서워요. 물론 불을 피우는 일을 끝까지 미룰 수는 없겠지요, 근사한 식사를 하려면 불을 쓰는 편이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래도 당장은 아니에요. 지금은 괜찮은 식탁보도 없고.

여기에 여섯 명쯤 앉히려고 해요. 이 끝이 내 자리가 될 거예요. 집주인은, 엄밀히 말해서 창고 주인은 아니지만, 식사를 대접하는 동안은 그렇다 치고, 어쨌든 주인은 북쪽에 앉는 거라고... 반대인가?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나리 한 단을 모아 쥔 채로 기도를... 딱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근성의 근 자가 미나리를 뜻하는 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진짜일까요?

테이블을 완전히 덮을 만큼 큰 식탁보는 필요 없어요. 가운데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정도면 좋겠어요. 주요리 바로 아래에 깔게. 하다못해 쇠여물을 쒀서 올려놓더라도 그런 식으로 식탁보를 깔면 뭔가 있어보인다 이거예요. 기왕이면 체크무늬. 더 욕심을 부린다면 빨간색이 좋겠지요.

왜냐하면 빨간색 체크무늬는 내가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맛의 꼴을 하고 있으니까.  도로시 아줌마가 빨간 체크무늬 앞치마를 입고 만든 크림 스튜. 테오도르 씨가  빨간 체크무늬 오븐장갑을 끼고 사과파이를 꺼내는 광경. 미스 손이 들고 다니는 마호병을 감싼 빨간 체크무늬 스카프.

그건 여기가 식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가려줄 예쁜 눈속임이기도 한 거예요. 손바닥만한 천조각 가지고 이 넓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구요. 일전에 여기서 일한다는 사람이 두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건... 말하자면... 과거에서 온 악마가 나한테 카카오톡을 보내왔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어요. 현대적이고 울적하고 기계적인 식사. 물론 거기에 식탁보 같은 것은 없었고. 시리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콘플레이크에 성욕을 감퇴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었다는 얘기를 아세요? 그냥 생각나서 한 말인데요. 지금도 들어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들어 있었다고 들었다고요.

짜증내지 마세요. 과거에서 온 악마처럼 보여요.

그건 그렇고 옷이 예쁘네요.

2018년 4월 13일 금요일

동백

뒷마당에는 딱 사람 키만 한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관리인이 거기에 대고 뭐라고 말하는 걸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선 이사야가 그 동백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역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관리인은 그냥 뭔가를 먹느라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것이고 이사야는 앞에 나는 나방을 보고 있던 것일 수 있다. 우연히 거기에 동백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백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다. 두 이미지에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동백이다. 동백이 듣고 있었으며, 동백이 보고 있었다. 동백은 지금도 사람이나 짐승에게 곧 달려들어 죽일 것처럼 그곳에 서 있다. 저 동백이 거의 그에 준하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다들 안다. 죽여주는 생각. 모두가 사랑하는 동백의 잎사귀들 안쪽 어두운 곳에 그런 생각이 고여 있다는 것을, 동백이 엄청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동백의 옆에서 그 잎사귀들을 만져 보며 다들 안다. 동백이 눈 내리는 새벽에 창고 밖으로 걸어나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아니면 창고가 동백을 버려둔 채 기어간 것일 수도 있고. 지금은 봄이다.

2018년 4월 2일 월요일

가죽 포대

여기에 가죽 포대가 있다.
가죽 포대는 가죽 부대라고도 부를 수 있다. 어떻게 부를지는 당신 마음이다.
가죽 포대를 가죽 푸대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은 곡물창고, 혹은 발화자가 지리적인 문제에 엮이게 되는 일이니 주의를 요한다. (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
가죽의 재질이 어떠한지는 당신 마음이다.
가죽 포대에 뭔가를 담을 수 있다. 그것은 비어 있기도 하고 가득 차 있기도 하다. 가죽 포대에 뭘 담을지는 당신 마음이다.

2018년 2월 21일 수요일

오함마

마당에서 창고의 왼편으로 지나가면서 볼 때, 그 오함마는 곧추서 있기도 하고 창고 벽에 기대어져 있기도 하다. 어쩔 때는 오른편으로 지나가면서 본다. 지나가며 왜 저기에 있지? 생각해도 그 순간뿐이다. 왼편에서도 오른편에서도 보지 못하면 뒷마당에 있고, 뒷마당에서도 못 보면 창고 안에서, 안에서 못 보면 앞마당에서 본다. 못 본다고 하는 것은 사실 맞지 않는 말이다. 쓸 일이 없으니 애써 찾을 필요도 없는데 자꾸만 불쑥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진짜로 못 보는 것은 누군가 그걸 쓰는 모습이다. 누가 그것을 쓰는가? 관리인에게 물으면 애초에 이 창고에서 오함마가 무슨 쓸데가 있는가고 답한다. 여름날 그늘에 누운 오함마 대가리 위에 쥐잡이가 앉아 있는 것은 본 적이 있다. 그걸 쓰는 이라고는 쥐잡이뿐이라는 얘기다. 쥐잡이가 이리저리 물고 다닐 리는 없다. 누구인가? 오함마가 스스로 창고 담벼락 안을 배회하고 있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저 오함마가 누구냐고 물어야 맞는지도 모른다.

2018년 2월 16일 금요일

불태우기

램프가 꺼질 무렵의 일이다.

미리 추위가 몰려와 있었다. 잠들 사람은 잠들었고 죽고 싶은 사람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은 사람들이었다. 할 이야기가 남았나?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브게니와 조라는 낱말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휘는 앞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실밥을 잡아 뽑고 있었다. 죽 뽑아도 약간의 실밥이 남았기에 휘는 그런 수법으로 자신의 겉옷을 해체하고 있었다. 오그오헤는 서성이고 있었다. 관심을 끌기 위함은 아닌 듯했다. 어느 쪽도 재밌어 보이지는 않았다.

램프가 몇 번 깜빡이자 남은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램프 곁으로 모여들었다. 꺼지려나? 오그오헤가 말했다. 기름이 없는 것 같은데. 오그오헤가 한 번 더 말했다. 기름이야 만들면 되잖아. 누군가 말했다. 누구로?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왜 램프를 계속 켜놓아야 하지? 내가 말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램프는 뜨거웠다. 오그오헤는 뜨거운 것을 집어 포대를 향해 던졌다. 불이 붙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휘의 주먹 속에 있을 실밥을 떠올렸다. 조라가 포대 쪽으로 다가가 크게 들이마신 숨을 불었다. 예브게니가 조라 곁에 있었다. 타라, 타라, 하면서. 램프에서 시작된 불은 구호와 함께 조금씩 번져가고 있었다. 잠든 사람은 화창한 꿈속이었고 우리는 밀알 타는 냄새를 마시며 빈 포대를 펄럭였다. 그럴 기운이 있었다.

2018년 2월 6일 화요일

쥐잡이 이사야

이사야가 언제부터 창고에 들어와 살았는지,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관리인조차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

한쪽 귀가 좀 찢어진 이 회색 태비는 예쁘다고 하기엔 확실히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다 정면으로 마주친다면 그 인상의 엉뚱한 험악함에 헛웃음이 터질 것이다. 목소리도 사람으로 치자면 걸걸한 편. 몸집이 크지는 않아도 등이 제법 단단한 것이, 나가면 꽤 강자 축에 들지 않겠나 싶다. 창고 입구에서 기웃거리는 떠돌이 개들을 깔아 보며 털을 세우는 모습은 심심찮게 본다.

나이도 출신도 베일에 싸인 채 이사야는 쥐잡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관리인이 이사야를 볼 때마다 쥐잡아- 하고 부르기 때문이다. 창고 안을 후다닥 뛰어다니길래 뭔가 해서 보면 병뚜껑을 쫓고 있더라는 얘기를 매양 꺼내며, 이 창고에 쥐잡이 같은 건 필요가 없다면서도, 결국 쥐잡이의 밥을 챙기는 이는 관리인이다. 관리실 한구석에 놓인 불룩한 마대들 중 매직으로 크게 ‘쥐’라고 쓰인 것이 이사야의 밥 포대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용 사료 같지 않지만 당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요즘 같은 한겨울은 관리실 난로 곁을 떠나지 않는 이사야를 마음껏 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럴 때 관리인은 ‘고양이 대해부’라는 제목의, 어디서 주워 온 듯한(곧 어디서도 살 수 없을 듯한) 해진 책 한 권을 꺼내준다. 그러면서 이사야의 꼬리는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탐스럽다는 말을 더하고, 만약 계속 자라는 것이라면 잘라서 팔아도 되겠다는 소리를 꼭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녹용이랑은 달라서... 하고 대답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관리인은 이사야 말고는 무엇에 대해서도 농담을 하지 않는다.

이사야는 ‘요옹’하고 운다.

이 계절 이사야의 취미는 눈 구경이다. 이어서 올 짧은 봄 동안엔 밖으로 종일 돌아다니다 들어올 테고, 여름에는 마당 그늘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들어온 사람을 놀래킬 것이다. 장마가 끝나야만 창고 들보에서 내려오며, 가을볕을 따라 다시 담으로 지붕으로 올라갈 것이다. 조건만 맞는다면 영원히라도 살 것 같다. 이사야는 평범한 도메스틱 캣이다.

2018년 2월 4일 일요일

곡물창고에서는

‘곡물창고에서’는 모든 필자가 함께 쓰는 공용 태그로 기획되었습니다. 따로 마감은 없으며, 공동입하동에 위치합니다. 이 태그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1) 곡물창고를 배경으로 할 것.
2) 한 필자가 일주일에 한 편까지만 쓸 수 있음.
3) 한 필자가 연속으로 2회 이상 쓸 수 없음.

일단은 일종의 이야기 게임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형식은 자유입니다. 곡물창고에 있는 사물에 대해 써도 좋고, 곡물창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써도 좋습니다. 우리는 대체로는 가상의 뭔가를 다루겠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곡물창고의 지붕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곡물창고의 지붕 아래서 하는 생각을 쓸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것은 일기, 일지일 수도, 감상일 수도 사전일 수도, 회고일 수도 편지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거나 시, 희곡일 수도 있습니다. 연속성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분량도 좋을 대로입니다. 다만 곡물창고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다른 필자가 쓴 곡물창고를 어느 선까지 인정하고 그와 관계할 것이냐 또한 자유입니다. 그 창고가 그 창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모든 곡물창고는 하나이고 모두 ‘공식적’입니다. 이것을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것은 훈련이나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이 태그를 통해 곡물창고의 필자들은 (원한다면) 곡물창고라는 공간을 직접 구성하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곡물창고에서. 그것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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