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8일 월요일

나머지 여섯 중 셋

연자매의 비유

연자매에 동지가 매여 있다. 누가 매 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맨 것이다. 동지는 그것을 밀고 있다. 동지는 자신이 무엇을 찧는지 알고 있다. 매의 윗돌과 아랫돌 사이에서 무엇이 찧이는지, 정확히 무엇이 거기에 들어갔는지 오직 그 동지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 것들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동지에게는 모두가 주기만 했고, 아무도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고, 매를 통과해 나온 그것은 켜켜이 쌓이고만 있다. 동지의 일은 다만 미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져갈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돌의 힘과 낱알의 으스러짐만이 동지의 팔과 몸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자매의 부속인 동지는 애써 잊으려 한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찧어 오라고 한 것인지, 그 일이 무슨 뜻인지. 민다는 것은 돌린다는 뜻이다. 돌린다는 것은 찧는다는 뜻이고. 동지는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파묻히고 있다. 자유로운 동지의 육신이 연자매에 붙들려 있다. 동지는 영혼의 노예다. 영혼은 연자매이고, 그것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불타는 들판의 비유

들판이 어디서 끝나는지 모른다. 넓고 마른 들판이다. 끝나기는 끝날 것이다. 강을 만나거나 산을, 절벽을 만나면서, 도로를 만나거나 마을, 도시를 만나면서 끝날 것이다. 어쩌면 들판은 시간적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디서 끝나느냐보다 언제 끝나느냐가 중요한지도 모른다. 이 들판은 지금 불타고 있는 들판이다. 반년 뒤나 몇 개월 뒤면 잿더미가 되며 끝난다고 해 보자. 이 불타는 들판을 갈피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끄려고 하는 동지가 있다. 이 동지가 들판의 끝을 잘해야 1분이나 늦츨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지의 주변에 다른 이는 없다. 다른 이는 그 동지의 머릿속에 있다. 들판의 끝이 미래에 있는 것과 같다. 머릿속의 그 동지는 뛰어다니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이 들판이 뭐가 중요합니까? 동지는 양동이를 들고 머릿속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불을 끄러 뛰어다니고 있다. 나에게 제발 그것을 묻지 마라! 왜 이 들판은 타고 있습니까? 제발 그것을 묻지 말고 꺼져라!

핵 광야의 피케팅과 라디오 방랑의 비유

커다란 널빤지 두 개에 끈을 달아 어깨에 앞뒤로 걸쳐 멜 수 있게 만들었다. 널빤지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적혀 있다. 그 내용은 정확하다. 그 밑으로 동지는 입은 것 같지도 않은 거적때기 같은 걸 입고 있다. 그런 차림새로 광야를 헤매고 있다. 한 손에는 라디오를 들었고, 라디오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나오고 있다. 그 역시 널빤지에 쓰인 것과 같이 정확한 내용이다. 녹음된 목소리가 무한히 반복 재생되고 있다. 십중팔구 죽은 이의 목소리일 것이다. 아마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모두 죽었을 것이다. 모두 죽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이다. 동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광야를 돌아다니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적힌 패널을 걸치고, 원래부터 자신의 목소리였던 것만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건전지가 도대체 언제 다할 것인지, 이미 너무 오래된 것 같은데, 어째서 라디오가 꺼지지 않는지 불안해 하면서.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