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마네킹 같은 것

시내의 쇠락한 상점가를 지나다보면 허물어지기 직전의 마네킹들을 보게 된다. 지금은 없는 상점 주인들은 입혔던 옷을 가차 없이 벗겨놓았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가로등에 의지해 몸을 빛내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마네킹인 걸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자세로든 조금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몇 안 되는 마네킹들은 최상의 멋진 자세를 하고 있지만 옷이 벗겨진 마네킹들은 뭐든 벗겨내기에 최적의 자세이다. 그러고 강박적으로 서 있다. 지능이 없어 중립인 채로, 할 일 없는 채로. 그들이 하지 않고 있으니 내가 할 것이다. 하지 않는 채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들도 노동자다. 어떤 얼굴들은 경직된 표정이고 대충 화장한 듯한 얼굴도 있다. 행복한 얼굴은 없고 아무도 그런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표정 연습, 그런 걸 할 뿐이다. 그런 걸 잘할 수 있다면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마네킹 인구총조사를 한다면 남녀 숫자가 비등비등하겠지, 그런데 하반신이 밋밋한 애들도 많이 보인다. 그런 애들까지 다 뭐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런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제발 말들 좀 해라!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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