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일요일
코끼리하우스
동생은 유령이다.
출근할 때는 사람이지만
열네 시간을 일한 후 퇴근할 때는
발을 잃고 허공에 붕 떠서 들어오니까.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서 시를 쓰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테니까.
오후 한 시쯤 되면
동생이 밥은 먹었을까,
오늘도 어떤 환자가
간절히 팔을 붙잡았을까,
짐작한다.
동생이 환자를 보고 있을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시를 써야지.
한없이 슬픈 시를.
—나는 매일 결심하지만
왜 시일까.
왜 굳이 슬퍼야 할까.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다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어제 죽은 사람의 이름을
환자 명부에서 지우고 돌아온 동생에게,
사망 보험금을 놓고 다투는 가족들 사이에서
모른 척 스테이션에 앉아 있어야 했던
동생에게.
나의 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병원 주위를 일곱 번 돌며
이 병원이 불타길 기도해야 할까.
아니다,
시인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근로 감독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빈 공책을 연다.
“흰 것과 만나 흰 것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첫 줄을 쓰고,
모두가 ‘시’라고 인정할 만한 문장을 이어간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존재해서 슬프다.
동생이 이 시를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동생은 이 시를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돌아올 수 없는 이 방에서
밤새 허공이 되어가느라.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분위기와 계시
어쩔 때는 모니터를 뽑아 녀석의 자리에 던져버리고 싶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도 결국 원청이나 사장에게 애걸복걸해서 겨우 일정을 미루거나 하달받은 일정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일을 되게 하려고’ 그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이렇게 쌓여 이렇게 된 것을... 그래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원들에게 미움받기도 사장에게 깨지기도 싫은 입장을 따라오다 보니 개새관리자보다는 징징관리자가 되는 편이 나았다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인간의 일인데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 역시 꾸준히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면서 허공에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사장에 대한 불만도 원청에 대한 불만도 교수새끼들에 대한 불만도. 그가 우리의 말을 대신 해주려는 건가? 그가 우리의 의원인가? 어쨌건 그의 대변이 전해져야 할 방향으로 전해지지 않고 역류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역시 그냥 관리 기술일 뿐이다. 관리자가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야 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그것도 온당치 않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 그와 내가 서로 이해하는 만큼 우리가 사장 교수 원청 새끼들로부터 이해받고 있지는 않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이해한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밀어 넣으려 들진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를 구할 방도라는 것 자체가 없고, 그들도 당연히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먼 신비로 있다. 그들에게도 패턴은 있는데, 일단 무조건 최대한도로 들이대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처럼 들이대고, 우리의 사제는 왼종일 기도하듯 징징댄다. 그 기도의 뜻은 우리가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을 관리·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AI가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이미 우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최적화된 AI 엔진이다. 따라서 나의 당연한 결론은, 앞뒤의 사정이 이러할진대 내가 나를 관리할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이다. 노동량 산정을 나와 전혀 협의하질 않는데 도대체 왜 내가 알아서 맞춰줘야 한단 말인가? 내가 개 호구냐? 어? 책임이 없는데 책임을 어떻게 지냐? 꼬우면 협동조합 전환이라도 하든가... 이놈의 회사는 도대체가 그런 노력도 없이... 그저 뭘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내 시간 쥐어짜낼 생각뿐인 파렴치한 구조 기계일 뿐...
지난날 사장과 면담할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업무 폭증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아주 개차반이 되어 있던 때였다. 그것은 영문 모를 계시처럼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사장은 내게 뭐가 제일 문제냐고 물었고 나는 당장 생각나는 대로 ‘교수들’과 ‘원청’이라 답했다. 그는 공감을 표하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교수한테 당한 어떤 치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수한테든 원청에게든 무슨 말을 하려거든 자기도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과연 일리가 있었다. 사장의 말은 그 뒤로도 더 이어졌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위로 치받을 수 있는 분위기... 그저 돈과 시간으로 결정되는 이 시간표 속에서 뭐라도 쥐고 맞설 것은 명분 말고는 없다... 그런데 명분은 땅에 떨어져 있다. 왜? 위와 아래라는 것이 있는 힘을 다해 전력으로 은폐되기 때문이며, 위를 치받는 이미지가 다만 예술화되었기 때문이며, 영웅들과 악당들의 극이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며, 돈이니 능력이니 하는 쉬운 말으로 설득력을 집중시켜 온 때문이며, 진정한 변화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공허한 명분과 세상 사이의 괴리로 좋은 추상들이 점점 빛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명분은 추상적이면서도 분명한 실체가 있는, 우리의 계급적 압력으로부터 나올 수밖에는 없을 것... 답은 역시... 답은 역시 ‘그것’뿐, 대표를 직접 뽑는 것뿐... 내 노동의 대표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사장실에서 나왔다.
침몰하는땅
그때 이 땅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침몰을 감지했을 때
침몰은 멈추었다 더 이상
침몰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누구라도 그곳에 알량한
돌 하나라도 쌓았다면 침몰은 계속되었을
지 모른다
우린 내달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린 서로의 두
어깨가 찢어지도록 붙잡고 늘어졌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우린 서로의 생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세상 언저리에서
벼랑 끝보다는, 간신히 안락한 곳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등지고 서서
나보다 이 세상이 먼저 탕진하길
기다리면서
가늘어 빠진 팔뚝에서
온 생이 소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2025년 2월 16일 일요일
조심스러운 사람들
금요일 밤 해장국집에 모인 중년들은 서로의 밥그릇에 국물 떠주며
혼자 못 먹어? 애기야? 서로 업신여기는, 가학-피학 관계로 절묘하게 구성된 뜨거운 사랑의 모임을 잘만 하던데,
우리는 왜 조금이라도 친한 척 안 해봤는지. 어차피 다시 만나자고도 안 할 거니까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층층이 서로를 쌓아올리기만 했는지. 다들 하는 것처럼 탑 만들고 다시 무너뜨리고 나 아니어도 바람 불어서 와르르 무너질 것을,
사실은 바람이 제일 비겁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번번이 때리고 갔다.
대신 너는 아침부터 바빴다. 너의 잘못 말하기를 행하느라.
오해인 줄도 모르고 너는 그 행위가 오로지 너라는 듯이, 바람 같은 건 꿈에도 모르고 다녔다.
그랬던 너는 참 용감하지. 언제까지 자신처럼 행동할 참인가.
이제야 나는 내 몸 하나지만 돌은 저 멀리 펼쳐진 데까지 다 돌들이란 점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대로 너 될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대신에.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속도
쓰레기 더미가 건물들을 꽉 채우고 있고, 건물 밖으로도 삐져나와 있다. 도시는 폐허가 된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생물들이 살기 위해 바다를 향해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인간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라고 했다.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silo
참고:『감각의 박물학』(다이앤 애커먼)에서 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필드앤드스트림≫이란 잡지에서 알게 된 방법이라고 했다.
2025년 2월 5일 수요일
개, 오각별, 수도원 ❶
이 작은 수도원에는 비옥하고 기름진, 무기질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섞인 넓은 농지가 딸려 있었다. 농지는 수도원을 한 바퀴 두르며 지나가는 작은 강과 맞닿아 있었고, 배수가 원활한 덕에 어떤 작물이든 기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땅을 섬기는 마음과 신을 섬기는 마음이 크게 다를 수 있을까? <포도장 수도원>의 수사들은 사랑과 노력을 합치시킬 줄 알았다. 그들은 기도와 노동이 같은 종류의 일임을, 감사에 할애하는 시간과 밭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같은 종류의 것임을 온몸으로 이해했으며, 이해를 오롯이 실천할 줄 알았다. 농사는 언제나 가장 좋다고 생각될 정도의 결실을 맺었고, 다음 해면 그보다 좋은 결실을 맺었다. 가장 좋은 포도로는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법. 포도장 수도원은 해마다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어 보관했으며 좋은 값에 팔렸고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됐다.
포도꽃 여무는 여름을 지나 계절 내내 불어올 서풍에 옷깃 여밀 때가 오면, 화답하듯 검게 익은 장과는 통통한 수사들의 복스러운 입꼬리를 치근대며 간질였다. 철별과 짐승 신, 왜가리, 여우, 패각 신, 그리고 루스 말라와 같은 초월자들의 존재가 드러난 지금에 와서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 대한 논의가 짓무른 포도알처럼 끈적거리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이들의 믿음을 존중하지 않지만, 수사들은 저 초월자들을 밀어 움직인 단 하나의 시동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삶이 준거였고 자연이 간증이었다. 따라서 자연은 초자연이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는.
*
소렌샤는 눈을 떴다. 잠을 잃은 지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불 꺼지지 않는 삶 속에서 소렌샤는 매 날 매 밤을 온전한 정신으로 혼절하고 있었다. 완전히 피로한 소렌샤, 밀빛 머리칼을 가진 오각별 마술사 소렌샤는 일그러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침방에 스미는 빛과 눅눅한 공기가 정오를 일러주었다. 왜 아무도 짖지 않았지? 뭉툭한 벽돌로 뇌를 후비는 듯한 격통. 신음하며 침실을 나왔어도 수도원은 텅 비어 있었다. 개들, 내 개들. 그녀의 벗, 친구, 부하, 남편인 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반란이 일어났거나, 마술이 힘을 잃었거나, 침입자가 있거나. 네 번째 가능성이 있을 수도, 내가 이미 죽었다는. 히죽이고 나니 두통이 심해졌다.
*
수도원에 도착한 고더린은 밭부터 살폈다. 고르게 자라지 못한 묘목들이 꺾인 허리로 죽어 있고, 시체를 내놓으라는 듯 녹갈색 잡초들이 손을 뻗고 있었다. 고더린은 길게 신음했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는데, 오는 길에 마주한 대부분의 마을이 약탈과 방화로 황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고더린 또한 약탈을 행해본 적이 있다. 타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스럽지 않아 놀랐던 기억. 고더린은 칼칼한 목을 더듬으며 침을 퉤 뱉고 몸을 일으켰다. 수사들의 행방도 행방이지만, 진짜 문제는 포도주가 남아있느냐는 거였다.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바심을 참기 어려웠다.
‘저게 뭐지?’ 문득 고개를 들어올리자 수도원 지붕에 걸쳐진 넓고 긴 천이 휘날리고 있었다. 끝면의 팔랑이는 움직임을 따라가듯 고더린은 천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아 걸었다. 제대로 보니 그것은 낡고 우울한 보라색 휘장이었다. 그것은 마술사가 <여기 마술사가 머물고 있다>를 알리는 신호였다. 휘장 가운데 새겨진, 자수로 된 별의 갯수는 머물고 있는 마술사의 힘의 수준을 나타냈다. 자수 별은 새하얗게 네 개가 놓여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강렬한 붉은색이었다. 오각별?
"컹!" 어디선가 개들이 달려들었다. 별에 정신 팔린 고더린의 반응이 늦었다. 개들은 용감하게 몸을 부딪쳐 고더린을 자빠뜨렸다. 올라타서는 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움에도, 뚫고 지나가겠다는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북슬한 털, 펄럭이는 귀, 쳐들고 내리 까는 발들이 투구를 치면서 지나가니 정신이 사나웠다. 하나뿐인 손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개들은 오히려 좋아라 했다. 개들은 맞으면서도 몸을 핥고 코를 들이밀면서 외팔이 포도 기사를 반겼다.
“휘익!” 찌르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물린 개들이 소렌샤의 몸 뒤로 일제히 모였다. 그녀가 몇 걸음 걷자 고더린의 머리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소렌샤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전장을 놓고 보면, 그곳에서 그렇다고 여겨지던 것들은 대개 어디서든 그렇다고 여길 수 있었다. 강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인간은 발휘할 수 있는 폭력의 강도만큼의 광기를 가지고 있다. 오각별을 수놓았다는 것은 이 여자가 미쳤으며 아주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단숨에 나를 세상에서 지워낼 수 있어. 남아있는 팔과 다리를 잘라 몸만 남은 기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아마도.
시선을 땅에 붙박은 고더린이 답지 않게 다리를 떨던 찰나였다. 고운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거리는 자주색 장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나보이는 소렌샤의 맨발은 거무칙칙한 땅과 다르게 하얗고 깨끗했으며 앙증맞게 작았다. 고더린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소렌샤는 조용히 미소 지어 보였다. 소렌샤는 미인이었다. 떨림이 역설적으로 멈추고 나니 일어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고더린은 소렌샤의 다뜻한 손을 잡고 거뜬하게 일어선 다음, 투구를 벗고 가볍게 목례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개들이 참 듬직합니다.”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개들이 고더린 주위로 몰려들었다. 지금 보니 일곱 마리나 됐다. 그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개들을 외팔로 쓰다듬으면서 곧잘 짓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숨길 수 없는 범박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웃음. 소렌샤는 “그렇죠?”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해줄래요?”
미인의 얼굴이 꺼진 빛처럼 급격히 어두워졌다.
*
“뭐가 됐든 인간에게는 쓰다듬을 것이 필요해요. 간단하게는 부드러운 천이나 폭신한 인형 같은 것이 있을 거예요.”
앞서 걸으며 소렌샤가 말했다. 수도원 안은 조용했다. 근면이 묻어나오던 예전 그 거룩한 분위기는 완전히 종적을 감췄고 지금 이곳은 폐가만 같다. 뒤따르며 고더린은 언제 사라졌을지 모를 수사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기사였고, 수사들은 나름대로 친구 비슷한 거였다. 엉망으로 넘어진 촛대들과 먼지로 뒤덮인 선반들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같다. 그래서 뭐? 사실 그는 수사들 생각 따위는 그다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공과 사를 그다지 구별하지 못하는 기사였으니까. 그의 눈은 계속해서 소렌샤의 뒷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아내 혹은 남편, 애인이 그 대상이라면 참 좋을 테죠. 바보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결혼이라는 게 그저 서로를 영속히 쓰다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쪽이에요.”
불안한 매혹을 깊숙히 느끼면서 고더린은 몇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했다. 하나, 수사들이 죽거나 떠난 이 수도원을 이 숙녀께서 우연히 발견했을 가능성. 둘,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들을 죽이고 수도원을 차지했을 가능성. 어떤 것이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개들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여기 들렀을 때 수사는 여섯이었고 한 명이 더 올 거라고 했다. 고더린은 개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수사일까? 이 여자는 사람을 개로 만드는 마술사일까? 그러나 개들에게는 어떤 신앙도 없어 보였다. 아무렴 어때. 고더린은 수사들 생각을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한 의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와인이 있어요.”
와인이란 말에 고더린이 움찔했다.
둘은 어느새 주방에 들어와 있었다.
“비록 한 병밖에 없지만요.”
뭐라고!
그 큰 와인 저장고가 텅 비었단 말인가?
소렌샤가 벽면에 붙은 나무 선반의 미닫이 문을 열었다.
고더린이 소렌샤의 손목을 붙잡았다. 돌격하듯.
2025년 2월 2일 일요일
빗방울을 위한 일기예보
비가 와서 당신이
어디론가 간다
파랗게 서늘하게
커져가는 방을 두고
날씨는 날씨의 역할을 한다
빗방울은 빗방울의 역할을 한다
당신을 울게 하고
당신을 떠나게 하는
다만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라도 갖고 싶은 것처럼
부드럽게 어긋나고
당신을 날씨에게 뺏기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
이동은 모일수록 의문스러워지고
순하고 시끄럽게 모이는 모순들 미래들
사전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처럼
흐르는 방향 속에서 당신을 찾고 싶지만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도무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지
가지런하게
사라지는 구름들 사이로
추락하는 빗방울 사이로
대안이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붕어빵 같은 것
붕어빵에는 잘 삶은 팥이 들어있다
반드시 혓바닥에 기록해야 할 사건들도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플라스틱을 주워 먹은 비둘기들이 불임을 한탄하는 수다를 듣거나 만능칼의 칼집에 속한 만능칼이 이것이야말로 사랑임을 알려주었을 때, 걸인들이 어느 곳에서나 오줌을 누느라 여기는 꼭 화장실이 없는 나라인 것만 같다고 시위를 할 때, 그런 겨울에는 도로의 한구석에서 연방공화국처럼 정연한 필체로 혓바닥에 기입할 사실들을 정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
달군 틀에
잘 반죽한 혀를 가둔 채로
산을 본다
산이 무너진다
바다를 본다
바다가 물러난다
붕어빵을 본다
붕어빵이 부지런히 뒤집히고 있다
여기까지 견딘 눈으로 본다
석양이 붉은 팥을 흘리고 있다
*
최근에는 어느 사막에서 발견된 화석에도 차가운 붕어의 선조가 기입되어 있다 약국을 가득 채운 색색의 종이상자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산 정상에서 식은 붕어빵을 먹어도 좋겠다
2025년 2월 1일 토요일
25년 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