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에서 나는 존재하고
동생은 유령이다.
출근할 때는 사람이지만
열네 시간을 일한 후 퇴근할 때는
발을 잃고 허공에 붕 떠서 들어오니까.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서 시를 쓰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테니까.
오후 한 시쯤 되면
동생이 밥은 먹었을까,
오늘도 어떤 환자가
간절히 팔을 붙잡았을까,
짐작한다.
동생이 환자를 보고 있을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시를 써야지.
한없이 슬픈 시를.
—나는 매일 결심하지만
왜 시일까.
왜 굳이 슬퍼야 할까.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다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어제 죽은 사람의 이름을
환자 명부에서 지우고 돌아온 동생에게,
사망 보험금을 놓고 다투는 가족들 사이에서
모른 척 스테이션에 앉아 있어야 했던
동생에게.
나의 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병원 주위를 일곱 번 돌며
이 병원이 불타길 기도해야 할까.
아니다,
시인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근로 감독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빈 공책을 연다.
“흰 것과 만나 흰 것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첫 줄을 쓰고,
모두가 ‘시’라고 인정할 만한 문장을 이어간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존재해서 슬프다.
동생이 이 시를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동생은 이 시를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돌아올 수 없는 이 방에서
밤새 허공이 되어가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