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2일 목요일

민중출판공사

대중이 ‘요구된 혐오의 대상’(또는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표 대상)으로서 비일관성을 그 특질로 삼아 수집 상상된 개념-경험이듯, 민중은 ‘요구되는 만능의 주체’로서 일관성을 그 특질로 삼아 수집 상상된 개념-경험입니다. 우리가 대중에 대해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으며 그 말이 대중이란 단어의 정의상 언제나 옳다면, 민중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대중’과 ‘민중’의 자리에 다른 단어쌍을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둘 다 헛되다는 식의 이야길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은 동시에 지났기 때문에 욕먹을 만한 길을 같이 지났던 모든 당신과 접니다. 민중은 같은 길―아마도 미래에나 같았다고 확인될 수 있을―에 서있었던 당신이었던 것, 저였던 것, 당신 또는 제가 될 무언가입니다. 제가 무슨 소릴 하려는 걸까요? 우리 ‘민중출판공사’의 목표에 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출판을 통한 수익의 실현이 아닙니다. 무슨 새삼스런 소린가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저마다 그럴싸하게, 겉으로 내세우는 수익 실현 외의 목표들이 있지요. 그러나 수익 실현이라는 존재양식을 거스르는 출판사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어려웠죠. 그러나 다행으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목표와 존재양식을 일치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둘 모두를 아주 조금씩 움직임으로써 그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속을 위해 출판을 핑계로 댈 필요가 없으며, 출판을 위해 도박마도 무법자도 파쇄기도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 고용의 창출, 더 구체적으로는 노동의 창출입니다. 지난날 수익의 창출이 만사업들의 공공연한 목표이자 존재 방식이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노동만 창출할 수 있으면 됩니다. 즉, 우리 민중출판공사는 노동을 창출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창출해내는 노동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주된 것은 역시 교정 노동입니다. 교정 노동은 그야말로 무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와 계약한 삼십만 교정공들은 하루에 두 시간, 보통은 집에서, 약간의 소개를 읽어본 뒤, 원하는 원고를 택해 일합니다. 모두의 교정이 완료되면, 약간의 자동화된 조율을 거쳐, 모두가 모두의 교정 의견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답변을 제출합니다. 우리는 답변을 대조합니다. 우리는 다음 원고를 고릅니다. 임금은 어떻게 나오냐고요? 임금 같은 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몰아주기를 포기하는 데 우리가 성공한 겁니다. 다행이죠. 당연히 우리는 아직 출판한 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삼십만이 읽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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