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과거학회는 동호에 의해 결성된 모임이었다. 취미가 양식화되는 과정들과 마찬가지로 과거학회 또한 자기 자신의 누림을 위한 노동과 여가 시간의 선용으로 작동했다. 지금은 딱히 그렇지만도 않게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그 취미의 정신 정도는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것 같다. 학회를 탈퇴하려는, 이 글의 저작자인 나는 상임 기술자 윤진(Yoon-jin)이다. 원전 사고로 직업을 잃은 이후 투신하듯 학회에 들어왔고 피프르(fipr) 담당장으로 오십사 년 일했다. 이 글은 나 다음 이 일을 맡을 사람을 위한 안내 책자다. 누가 나를 대신하게 될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오고 있다고 한다. 내게는 그가 아직 추상적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빈 화면에 어렴풋이 드리우는 실루엣이다. 온다고만 하는 그 실루엣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