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돼지와 개

돼지와 개가 서로 앞다리를 맞대고 뒷다리로 일어선 실루엣이 출판사 ‘돼지와 개’의 로고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다음엔 한 마리의 개라고 생각해보라. 돼지와 개 출판사는 오로지 그 생각을 향해 돌진한다. 그 외 다른 특별함은 없다. 이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라. 그다음 한 마리의 개라고.

어디서 일하십니까?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어디서 나온 책입니까?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것이다. 안녕하세요? 돼지와 개 출판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습니다. 책을 왜... 출판사에서는 온갖 메일을 다 받는다. 언젠가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하나도 재미없어요, 재밌나요? 돼지와 개? 우리 출판사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재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다음 한 마리의 개라고...

돼지들에 대해 개들에 대해,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는 요즘 생각해보고 있다. 여러 생각의 돌진 끝에 한 마리라는 제한 속에서는 그들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은 것이다. 당신이 이제 돼지를 대표한다고, 그다음엔 개를 대표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또는 어떤 돼지와 개가 당신을 대표한다고, 당신을 대표하여 어딘가로 나아간다고. 당신이 대표되기 위해 돼지들과 개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 속에 돼지들이 있다고, 그다음엔 개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돼지들의 머리 머리 위에 임한다고, 그다음엔 개들의 머리 위에, 둥글고 뜨거운 머리들 위에, 안에, 아래에, 앞에, 뒤에.

당신이 뭔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런데 당신이 돼지들이라고 생각해보라. 그 다음엔 개들이라고. 돼지와 개 출판사의 생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감정은 슬픔이다. 따라서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로부터는(책이 나올 수 있다면) 그 내용이 어떻건 ‘문학적’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만약 슬픔보다 다른 뭔가가 앞선다면 그것은 돼지와 개 출판사의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결론이건 항복이건 그렇다. 서로 앞다리를 맞대고 뒷다리로 일어선... 돼지와 개 출판사는 결론도 내지 않고 항복도 하지 않는다. 고뇌의 행진을 끝없게, 그리고 슬픔을 맨 앞에 세우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미래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과거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입에 물려는 것은 우리의 과거에 대하여 유일하게 수긍할 만한 대항이다. 순간적인 망각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이런 식으로 재미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죽었다. 그다음에 목숨을 건졌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냄새를 맡고 있다. 먹을 것이나 쌀 곳을, 아니면 다른 뭔가의 냄새를. 돼지와 개 출판사는 웅덩이에서 구른다. 물었다가 놓는다. 삼키거나 받는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쫓아간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앉는다.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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