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7일 목요일

모자 같은 것

자영이는 모자의 안쪽을 자주 만진다. 거기에는 오늘 하루 자영이에게 일어난 일들이 조금 묻어 있다. 자영이는 모르는 사람 옆에 찾던 사람 있고 특히 그 사람 옆에 미운 사람도 있는 사무실에서 일한다. 사무실에는 빈츠나 마가렛트가 비치되어 있고 자영이는 그걸 가끔 먹는다. 자영이의 동료들은 점심마다 일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뒷마당에 찾아온 새를 보러 간다. 새를 말하고 새를 생각한다.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혼자 일한다. 그의 일을 모르고 나의 일을 말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영이의 동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자영이. 자영이의 모자 안쪽에는 부드러운 소재가 덧대어 있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만지는 자영이. 자영이는 세상 따위는 현관 밖 문고리에 걸어두고 집 안의 토끼들에게 맛있는 아스파라거스만 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남은 아스파라거스는 자기가 먹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겨울이 끝날 때쯤 새들은 날아간다. 새들은 사무실 옥상에 어두운 회합의 그림자를 새기고 날아가는데 그 대형은 자영이도 알고 당신도 아는 아주 일반적인 V자다.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자영이는 모자를 벗어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것을 흩뜨려 놓는다. 항상 이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한다. 자영이에게는 생활이 중요하고 이 모자는 자영이가 생활할 때 자주 쓰는 모자다. 동료들은 자영이가 모자를 쓸 때마다 “자영씨, 그 모자 참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해준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