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일요일

하늘 끝을 잡았으니까

이 일련의 넘버들은 규산과 강철의 혼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거푸집 안에 들어 있는 칼들은 대장장이에게 있어 마주 다가온다. 시선을 거기로 향하면 자세히 들여다 보이고 결함품은 부러뜨려 녹인다. 칼을 부러뜨릴 때는 주의해야 한다. 칼을 돌 사이에 넣고 발로 밟아 부러뜨린다. 그러면 잘 만들어진 칼만 진열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불이 식도록 적게 만들지도 않는다. 오래 만들어오고 있다. 이 도시의 직업 교육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고 대장장이는 7년 동안 도제 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그는 무뚝뚝했는데 장인들은 무뚝뚝해도 된다. 오히려 그런 장인들에겐 믿음이 간다. 말이 너무 많은 대장장이들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쇠에게는 자주 말을 걸어야 한다고 스승은 말했다. 대장장이의 스승은 그와 마찬가지로 무뚝뚝했는데 언젠가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은 하늘 끝을 잡았노라고. 그때부터 대장장이는 하늘 끝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가령 이 칼은 하늘 끝을 잡을 수 있는 칼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부러뜨리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잘 만들어진 칼인 것은 분명하기에. 대장장이는 하늘 끝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 말을 위주로 칼을 만들었다. 어쩌면 스승도 뭘 알고 한 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서 1년 동안 칼을 만들다가 이젠 더 이상 칼을 만들지 않고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만화 그리기였는데 스승을 만나러 가면 타츠키라는 만화가에 대한 얘기만 했다. 자기는 지금 행복하며 타츠키의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스승은 칼 만드는 일이 막힌다면 재료의 비율을 처음부터 바꿔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칼 만드는 일이 막혔었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아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대장장이는 그러나 스승의 조언대로 비율에 관심을 갖고 변경해 봤다. 이제 그다음의 넘버들에는 흑수정이 조금 들어가게 되었고 만들어진 후의 칼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칼은 조금 더 매끄럽게 되었다. 그렇담 이것은 하늘 끝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늘 끝을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의외로 지상에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야 하늘의 끝은 지상이니까. 하늘 끝을 잡으면 스승처럼 칼 만드는 일을 이내 그만두게 될까? 지금 칼을 안 만드는 스승은 그의 말대로 행복한가? 칼을 부러뜨릴 때마다 대장장이는 점점 더 무감하고 칼을 진열할 때마다 대장장이는 점점 더 무뚝뚝해진다. 하늘 끝을 잡는 것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서커스에서 기수들이 눈에 안 보이는 줄에 의지해 공중을 유영하고 있다. 지상과 실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하늘 끝을 잡은 것이었던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대장장이는 알 수 있었다. 저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대장장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맞는 것은 뭐지? 칼은 가죽을 무두질하는 도구가 될 수도, 만든 이의 심상을 구현하는 캔버스가 될 수도 있다. 스승이 하늘 끝을 잡았다고 말한 이후의 넘버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 칼들은 판매되지 않고 협회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냥저냥 만든 칼은 아니었나 보지. 그곳으로 가보니 ‘하늘 끝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대장장이가 만드는 칼들과 경향이 비슷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물론 칼이 우주의 심처에서 색이 혼합되는 듯이 미묘한 반사광을 냈지만 그런 기술은 대장장이도 할 줄 알았다. 더 복잡한 것은 다른 데에 있었다. 대장장이는 칼을 보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단순히 뭐가 뛰어나고 장점은 이렇고의 문제가 아니라, 칼끝에 천사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들어보니 천사는 다소 민망한 불협화음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미세한 불협화음이기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그것만을 의도한,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 알아채는. 그러니까 하늘 끝의 정체는 이 경우만 보자면 불협화음을 구성해 천사를 그곳에 붙잡아 두는 것이고 천사의 성격을 알 수 없으니 그건 거의 운에 달린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늘 끝을 잡는다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된 대장장이는 좀 황당했다. 민망함과 황당함, 제임스의 시집에 자주 나오는 감정인 이것은 교양과 예술의 관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 저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아이들은 다소 민망하게 한 사람을 지향하고, 다소 황당하게 서로들 대화를 나누므로, 하늘 끝을 잡았다기보단(천사를) 하늘 끝에 닿은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늘 끝을 잡았으니까. 내가 산 책의 귀퉁이에 접혀진 페이지가 보인다. 이것은 천사가 접은 것일 수도 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