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월요일

말하는 책

 


이 책은 아는 사람이 준 책이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 나에게 준 책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준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혼자 출판사 등록을 하고 혼자 책을 썼다. 그런 경우 가운데 어찌어찌 잘 알려지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게 된 그런 책이다. 나는 갑자기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 사람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몇 번 듣지 않은 목소리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이 책이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고, 억지로 읽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책을 읽기가 어려운 건 책이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책과 너무 가까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책에 쓰인 모든 것을 내 일처럼 읽을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집에 있는 일요일 같은 날 문득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