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9일 금요일

수수께끼의 복수자: 정동영 (19년 8월 둘째 주)



8월 둘째 주, 평화당 대표 정동영을 다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정동영은 퇴물이다. 어느 정도로 퇴물 느낌인가 하면 이것을 쓰고 있는 나 자신까지도 묘한 실망감을 느낄 정도다. ‘퇴물’이란 그저 신선한 느낌이 없는 정도만을 말하지 않는다. 엄밀히 나이로만 따지면 정동영은 53년생, 아직 한창때라고나 할 것이다. (정치는 모름지기 70부터 아닌가?) 퇴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의 사명이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을 그를 지켜보던 모두가 인정할 때 비로소 퇴물이라고 불릴 자격을 얻는다. 퇴물이 되고 싶어도 못 되고, 총선을 또 준비하는 박지원을 보라! 사명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자기 자신과 주변 두엇만의 삶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대부분의 정치인들까지 포함하여)과 달리, 고꾸라지든가 날아가 버리든가 끝까지 버티든가 하여튼 공동-운명의 거센 태풍(개인적인 행불행과는 구분되는)을 가장 앞에서 맞아본 사람들 중에서만 퇴물이 나온다. 정동영은 그런 의미에서 퇴물이다. 한때 그에게도 신선한 이미지가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젊을 적 뉴스 앵커로 살다가 김대중에 의해 정치권에 영입되었고, 개혁 기수로서 정풍운동, 16대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해 노무현에 패했지만 통일부 장관 역임, 열린우리당 의장도 했다. 그때 노인 폄하 발언(‘어르신들은 집에서 쉬셔라’)으로 한바탕 설화를 겪었는데, 모두들 사실 속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런 류의 얘기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보인다. 다만 오늘날엔 본인이 명실상부한 어르신(경로우대증 소지)이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 여하간 17대 대선 민주당 후보가 되었고 MB에게 아주 크게 패한 뒤부터 정동영의 정치 역정은 완전히 꺾여 버렸다. 본인도 뭔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왼쪽으로 왼쪽으로 열심히 오더니 결국 관악구의 좌파들에게 4.29 재보궐선거의 악몽을 남겼고 땡땡당에 들어가네마네 옥신각신... 다 안 되고 한참 칩거하다가 결국 국민당으로 합류, 당대표 당선... 그리고 바로 어제 의원들의 대거 탈당 예고로 지금은 완전히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릴 위기를 맞았다. 맞았는데... 앞서 말했듯 워낙 퇴물이라 지금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사실 아무도 별 관심이 없다.

일전에 내가 평화당의 유일한 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시점에서 정동영은 그것을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에게 어떤 역사적 과업이 남아 있다면, 그가 아직 스스로를 퇴물로 인정할 수 없는 까닭이 있다면, 오직 그것뿐이다. 자신의 유산(?)을 좌파들한테 들어다 바치기! 그것은 내가 이렇듯 그를 다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그에게는 할 일이 남았다는 얘기. 아직 할 일이 남은 정동영을 위한 솔루션은 ‘상판을 버려 대의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그 누구도 정동영을 유력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진정한 까닭,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가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까닭, 그가 어디 나가서 무슨 말을 해도 그대로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사실상 투명인간 상태인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얼굴이 너무 알려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검하수 수술이 방향만큼은 옳았다. 수술 후 잠시 컬트적인 관심(4년 새 최고 수준)을 받았던 것을 그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거다. 같은 발상을 더 밀어붙여라. 얼굴을 아주 가려 버린다면 그것이 말이 된다. 정동영은 가면을 써야 한다. 이름은 그냥 그대로 가도 된다. 일단 가면을 써라 동영! 하여튼 가면만 쓰면 만사 형통이다. 밑에서 치받는 위치일 때는 강한데 중요한 순간에는 힘을 못 쓰고 주저앉아 버리는 패턴? 어쩐지 정동영이라면 뭔가 보여 줄거라 기대하지만 막상 시켜 보면 별거 없다? 그게 다 얼굴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자는 진정한 쇼타임이 오기 전까지는 얼굴과 힘을 함께 감추는 법이다. 과업을 이루기 전까지는 가면을 벗지 말자. 가면을 쓰면 지금처럼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2인자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2인자는 맘에 안 든다? 그러면 아예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다니자. 지역구, 정동영 지역구가 대체 어디냐, 개성이냐? 어차피 여기저기 다 찔러 보고 버려 버린 지역구, 어디 아무 데로나 나가도 된다. 거기 나가는 다음 총선 포스터 사진도 가면을 쓴 채 찍어라. 슬로건은 ‘나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 그러다 운명의 그날이 되면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나?’ 하면서 가면을 딱 벗고, 가면을 벗으면 나오는 눈가리개천, 눈가리개천을 풀면 페이스페인팅, 페이스페인팅을 지우면 미간에서 교차하는 커다란 X자 흉터. 정동영...? 이러한 전개다.

※추천 아이템: 특별히 공들여 제작된 정동영 전용 가면 세트. 깃이 높은 망토, 격식 있는 자리를 위한 연미복. 장미꽃, 트럼프 카드, 성냥갑 등 지나간 곳마다 슬쩍 흘리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트레이드마크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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