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요일

카프키피안 송가

 


바다를 건넌 바다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벌써 몇백 년 전의 이야기인데, 요즘 시인들은 이 이야기를 잘 모르더라고요. 하기사 주술사들에 대한 노래는 주류였던 적이 없죠. 

영원히 노래될 것 같았던 인간 찬가가 무너지고, 기사와 황제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이제 구닥다리 퇴물 취급을 받아요. 최신곡 대부분은 우울과 무력감을 담고 있어요. 가사의 화두는 겨울과 마술사고요. 어쩔 수 없는 흐름이죠. 노래라는 게 다 인간을, 당대의 화제를 담뿍 담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망해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까지 다 알게 됐잖아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세상이 어째서 점점 더 얼어붙고 있었던 건지 알게 되었잖아요. 마술사들. 그들이 세계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으며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기정사실인 종말적 미래, 멈출 수 없는 말에 올라탄 우리에게는 회한이 마약이죠. 그러니 그런 음악이 팔릴 수밖에요. 솔직히 잘 몰랐어요. 그 아름다운 기적들, 마술을 부릴 때마다 세계가 조금씩 냉랭해지고 있었다니. 뭔가의, 뭔가의 은유 같기도 하고. 마술사들은 알았을까요? 알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겠지만, 그들은 말하지 않았어요. 몰랐던 건지, 모르는 척했던 건지. 거기에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전쟁 이야기를 먼저 좀 해봅지요. 마술사들이 세계를 바꾸어 놓았듯, 전쟁 또한 마술사들을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만약 당신이 메시아이고 기적을 행할 줄 알아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만들며 눈이 먼 자의 눈을 고칠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복을 불러오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당신의 존재를 믿고 끊임없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멀쩡한 자의 다리를 잘라낸다면 그것은 복을 뒤트는 일이겠습니다.

여섯 명의 왕이 있습니다. 할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하면서 백 년 가까이 전쟁을 하고 있지요(그러니 실은 열여덟). 그들은 이기고 싶고 끝내고 싶고, 지고 싶고 계속하고 싶어서 마술사를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을 뒤틀기 시작한 겁니다. 본질적으로 마술은 자연을 거역하는 힘입니다. 허공에서 숲을 꺼낸다든지 바다를 반으로 가른다든지 하는즉 그것은 ‘없을 일’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마술사들이 병사가 되면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없을 일들이 있게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세기에 사용된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마술이 부려졌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런 대가도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게 된 것입니다.

마술은 세상의 열을 포식합니다.

우리 세대에 이르러, 마술은 우리에 와 닿는 햇빛의 속도와 수량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열을 먹어치우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죽여야 했기 때문에.

졸고 계신 건 아니죠?

회담 얘기를 빼먹었군요. 재작년 한 곳에 모인 왕들은 모든 마술사를 추적해 살해하기로 약조했습니다. 마술사가 전부 다 죽을 때까지 전쟁은 잠시 휴전입니다. 어쨌든 세상을 지켜야 한다나요. 그들을 불러놓고서 써먹고 싶은 대로 실컷 써먹고서. 자신들 책임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이 황당하죠? 그때의 학살로부터 이 년째, 살아남은 마술사들은 숨어있는 듯 해요. 당시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강을 핏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왕들도 어떤 의미로는 마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들 얘기는 관두고 시점을 옮겨볼까요. 마술사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 딱 하나뿐입니다. 그들은 어째서 왕들의 명령을 순순히 따른 것일까요? 그들은 어째서 무참히 죽어가고만 있을까요? 어떠한 변명도, 사죄도 하지 않고 저항도 복수도 하지 않고. 잡히면 잡혔나 보다, 죽으면 죽이나 보다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마술사들에게는 무언가 완수해야만 하는 단일한 임무가 있다는 얘기가 자자합니다. ‘초목표’라고 불리는 어떤 공통된 목적이 있다죠. 안타깝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답니다. 어떤 이의 말로는 마술사들이 돈에 미쳐 있었다고 하던데.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들고 싶었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난 달리 생각해요. 돈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유로 지목하면 모든 것이 말이 돼요. 눈에 선한 은폐죠.

여기까지가 은화 한 닢으로 드릴 수 있는 정보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비스 많이 넣어드렸어요. 더 알고 싶으면 두 닢을, 됐고 노래나 한 곡 들으시려면 한 닢을 더 주세요.

노래라! 좋죠. 초장에 말하다 말았는데, 나는 오직 주술사를 노래하는 노래만을 노래합니다. 수요가 없진 않습니다만, 선호도는 확실히 떨어지죠.

아는 곡이 없으실 테니 제가 찾아 부르겠습니다. 은화를 먼저 주시겠어요?

아까 것까지 같이... 예, 예.

감사합니다. 이게 참, 예전에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훨씬 더 컸는데 말이죠. 어느새 노래는 뒷전이고 말팔이, 소문팔이, 장사치가 다 되었어요. 어쩌겠습니까, 시국이 이런데. 하여튼 한 곡 맛깔나게 뽑아보겠습니다. 카프키피안 송가입니다. 연인과 헤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이죠. 개연보다는 파연에 어울리는 그런 곡입니다.


해변을...

괴롭히듯 애무하고 있는 파고

과연 그렇겠지만 당신은 남겠다 말하지 않네요

비참히 패해 몸 부서지는 흑물결의 포말이

그대 것이던 붉은 뺨 넓게 펴바르는 걸 보면서도 

그대는 잡거나 잡히거나 울거나 웃지 않네요 

심장이 가슴 밖에 있는 사람처럼 그러네요

가슴이 심장 안에 있는 사람처럼 그러네요

손을 넣으면 내 손 적시던 당신의 어깨

거기서 건져 올렸던 작고 예쁜 산호초 미역들

그것들 전부 다 당신인 어둠

어둠인 당신 어둠일 당신 속에서

다 녹고 사람인 당신마저 녹네요

바다가 되어가고 있네요

당신은 바다가 되어가고 있네요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바다가 되어가고 있네요

그것을 지나기 위해 그것이 되어가고 있네요

당신은 바다가 되어가고 있네요

이제 안 보이네요


......예에. 이 노래에는 비화가 있습니다. 먼 옛날 이곳으로부터 남서쪽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그리 작지 않은 규모의 주술사들이 살았대요. 그들은 둘째 주술사 갈가노아의 후손으로, 바다를 몸에 들일 수 있는 지형 주술사들이었어요. 카프키피안, 그들은 카프키피안이라 불렸어요. 평화를 사랑하는 카프키피안들은 만족을 모르며 땅을 확장해가는 영주와 왕들, 도시민들과의 갈등을 피해 맑은 날이면 작게 보이는 먼 곳의 섬을 향해 영원히 떠날 계획을 세웠죠. 떠나는 날 그들은 주술을 부렸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갔다고 합니다. 서서히 녹는 가루와 같이, 소금기 띤 물결로 변해 거칠고 험한 바다를 넘어갔대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아요. 바다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런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지. 노래에 등장하는 청년처럼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떠났다는 섬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나저나 문신이 참 아름답네요. 어디서 왔어요?

섬?

어떤 섬을 말하는데요?

노래에 나온? 

푸하하,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받은 은화를 고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피부가 살짝 거뭇하기는 하지만, 나 같은 도시민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거든요. 아니, 이제 보니 확연히 다르게 보이네. 행색이 많이 독특하시긴 해요. 안 추워요?

피가 섞여요?

누구? 노래에 등장한 그 남자?

바다가 얼어 붙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올라왔다고요?

잠시만요.

이것 참. 저만큼이나 말주변이 좋으시네요.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습니다. 시인은 아니시죠? 다른 재밌는 얘기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이야기꾼은 또 반기는 체질인지라. 

손가락을 넣어보면 알 수 있어요?

그거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데요. 다른 의도가 있으신 거라면 돌려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요. 아아, 네. 싫지는 않지만 그런 뜻은 아니시라고요. 그럼요, 그럼요.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다. 하여튼 글쎄요. 그렇게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하시니 한번 속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좋아요. 까짓 거 뭐 살아온 얘기, 들어드릴 수 있죠. 그 전에 잠깐, 시킨 술은 다 마시도록 해요. 잔을 비운 다음 내가 잡은 방으로 올라갑시다. 저쪽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아까부터 우리를 응시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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