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사진 하나를 주웠다
모스크바 개념주의 사진이라고 했다
미술 노동을 하는데
가끔 미술에 역정 내는
e님의 추천이었다
e님은 모스크바 개념주의 사진을 볼 때마다
울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유는 모른다)
(묻지도 않았다)
(모스크바 개념주의란 무엇인가?
묻고 싶었지만 알고 싶진 않았다)
크기가 너무 커서
그림판에서 축소한 뒤
화면 가운데에 깔았다
나무들에 흰 현수막이 매여 있고
그 위에 빨간색 키릴문자가 적혀 있었다
나무들이 온통 검은색이어서
빨간 글씨가 더 강렬해 보였다
배경은 검은색으로 설정했다
이제는 검은 배경 속의
검은 나무들 사이의
흰 현수막 위에 쓴 빨간 글씨가
훨씬 더 강렬해 보였다
그 위에 한글문서와 피디에프를
화면분할로 깔아놓고
타닥타닥 작업했다
(e님한테는 이렇게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지는 9개월 정도 되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하던 작업창을 닫았을 때만
사진을 볼 수 있고
바탕화면은 그런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바탕화면 속 사진을 보기 위해
작업창을 전부 닫기도 한다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