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일요일

쥐 마술 ❸


게친의 손 안이 따뜻해졌다.

조금 전까지 차가웠고 딱딱했던 빵이 손바닥 쪽부터 미지근해지더니 이내 손보다 더워졌다. 그리고 손가락을 물었다. 게친은 딸꾹질 비슷한 소리를 내며 손을 털었다. 쥐 두 마리가 허공에서 난파당한 배처럼 회전하다가 바닥으로 착지해 재빠르게 도망쳤다. 피가 흘렀다. 거하게 의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야가 쥐들과 함께 뛰쳐나갔다.

"아파라."

게친이 물린 손가락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맺힌 피가 엄지손가락 옆면을 타고 한 데 모였다. 루틀리지가 쓰러진 의자를 일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야의 백납 손가락이 두 개였다. 사용된 마술도 두 개였다.

먼저 빵이 늘어났던 건에 대해 살펴보자. 두 개였던 빵이 열 개로 불어났는데, 루틀리지는 규칙을 파악해보려 했다. 마술은 불가능한 개연이지만 무규칙인 것은 전혀 아니며, 부조리극이 그러하듯 비논리성 안에 그것을 구성하는 일관된 원리가 내재되어 있으니까.

빵이 자신을 낳듯 자신으로부터 돌출해 떨어졌다면, 그다음에도 하나씩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 뒤 곧장 열 개로 불어났다. 셋에서 열로 가는 사이에 넷도, 다섯도, 아홉도 없었다. 중간값을 건너뛰었다는 것은 증식이 정해진 수와 수 사이를 도약한다는 뜻이었다.

루틀리지는 수열일 가능성을 생각했고, 그쪽이 더 들어맞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마술인지 금세 파악되었다. 고야의 첫 번째 마술은 대상을 일정 수열에 따라 복제하는 마술이다. 둘에서 셋에서 열 개로. 그게 무슨 수열일까? 루틀리지는 임시적으로 고야의 첫 번째 마술을 증식 마술이라고 명명했다.

두 번째 마술은 간단히 말해 쥐 마술이다. A를 B로 전유하는 마술, 분류하자면 표상 마술이었다. 은유를 실재로 바꾸는 마술. 빗댈 것을 포식해 비유를 삭제하는 마술. 고야는 빵을 보면 쥐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녀석일까? 빵과 쥐를 묶었을 때 가장 먼저 연상할 수 있는 키워드는 굶주림이다. 세상이 고야에게 우호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인해야 할 것은 그것이 빵에 국한되느냐는 것, 그게 아니라면 고야의 두 번째 마술은 빵을 쥐로 만드는 마술이 아니라 음식을 쥐로 바꾸는 마술이 된다.

게친이 준 빵을 먹지 않았어. 신뢰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마술을 사용하기 위해 보존한 것일까? 그 아이가 전략적으로 생각한 것일까? 도망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하지만 불어난 빵을 쥐로 만든다고 해서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어찌 됐든 고야의 백납이 두 개라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다. 하나의 마술만으로도 몸의 부담이 크다. 두 개를 가졌던 녀석들은 모두 말년이 안 좋았고, 그들 모두 유명한 살인자였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수명이 두 배로 짧았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원반 없이 사용한 마술은 마술이 아니라 정서적 폭주에 가깝다. 의지와 무관히 벌어지는 것이다. 앙금이 빠져나갈 길 없으므로 괴사를 촉진한다.

"큰일났네."

게친이 엄지손가락을 입술로 머금은 다음 맛을 보듯 삼켰다. 늘 같은 맛, 비릿한 맛이었따. 어딜 베일 때마다 그렇게 했다. 별 의미는 없었지만 몸이 풀리면서 좋은 기분이 들었다. 축축한 엄지를 옷자락에 대충 비벼 닦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이를테면 전쟁터 생각이 났는데, 이 집은 게친의 공적 덕분에 얻은 집이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약간의 토지 또한 전쟁 활약 보상이었다. 게친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됐는지를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생각을 거듭해야만 입에 넣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 작아졌고, 녹았고, 배설되었다. 게친은 고야를 향해 루틀리지가 했던 말에 대해 생각했다.

"네 나쁜 버릇이 다시 한번 등장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네."

"무슨 버릇?"

"선을 긋는 거."

루틀리지가 가여웠지만 연민하기에는 타이밍이 안 좋다는 것을 알았다. 고야를 찾아야 하고, 고야의 손가락을 잘라주어야 하고 고야를 마술사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턱대고 마술을 부려서 제 생명 깎아내도록 방치하는 건 마술사 된 사람으로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애는 이제 막 여기 왔어. 그리고 네가 받아주고 싶지 않아한다는 걸 느꼈지.”

두 사람은 방을 나와 뛰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루틀리지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네 잘못이 커, 게친. 약속을 어겼어.”
“어겼다고는 할 수 없지. 확정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려고 했잖아. 항상 그렇지. 저질러놓고 감당하게 만들어.”

“네가 그 애한테 상처를 준 건 별개의 일이야.”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루틀리지가 말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자기변호였다.

“난 충분히 조심스럽게 말했어."

게친의 시선이 부메랑처럼 날아가 휘두르고 돌아왔다. 문에는 빗장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들어왔을 때 모습 그대로였고, 바깥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고야가 정말 도망친 것 같지도 않았다. 게친은 시위라고 생각했다. 여기 있고 싶다는 자기 주장, 쥐들은 시위대일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반쯤은 알 것 같았는데, 고야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게친도 고야가 좋았다. 짐작건대 자신이 고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야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근거라면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나머지 반의 이유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은 그게 핵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루틀리지가 헉헉대며 배를 움켜쥐었다. 게친이 홀 구석의 저장방 문을 닫고 돌아보며 말했다.

"넌 네 섬세함을 과신하는 측면이 있어. 그래서 가끔 내가 하는 말보다 훨씬 더 멍청한 게 튀어나오는 거야."

반박하려는 루틀리지를 제치고 게친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침실로 들어가면, 고야가 거기 있을까? 침대는 두 개인데 어느 곳에 누워 있을까? 하지만 벌컥 문을 열고 들여다 본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게친의 이불과 가지런히 접혀져 있는 루틀리지의 이불, 그냥 그뿐이었다. 침실 문을 닫고 나오면 그 옆의 빈 방 하나만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멈춰서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열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없는 게 분명했고, 따라서 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내 퉁명스럽던 루틀리지가 조용해졌다.

그 방은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은 방이었다. 문과 벽을 합치고 싶은 방이었다. 어떤 마술로도 분리하지 못하게 영원히 봉하고 싶은 방. 두 사람의 시야가 단숨에 그들 뒤통수 너머로 멀어졌고 어두워졌다. 루틀리지는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과 게친의 원경을 보았다. 여러 번 겪은 일이었지만 이 이상으로 멀어지지는 않았다. 게친이 문을 열었고, 바로 다시 닫았다.

“없어.”

게친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다시 일층으로 내려왔다.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고 왜 반복될까.

두 사람은 가장 곤두서 있을 때 비로소 서로에게 사과했다. 게친은 상의 없이 아이를 데려온 것에 대해 사과했다. 약속을 어겨서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알면서도 또 한 번 문간에 아이를 세워둔 것에 대해. 루틀리지는 그 아이 앞에서 선을 그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조심스럽게 말했다는 건 변명이 되지 못했다. 그때 조심하고 있던 건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정말 남은 곳은 이제 어둡고 서늘한 지하실 뿐이었다. 뚜껑문을 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만 하는. 고야만한 아이라면 얼마든지 무서워할 수 있는. 그 긴 사다리를 내려가다가 떨어졌을 수도 있겠지. 어린 아이의 몸이라면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 높이. 게친이 화덕의 불씨를 옮겨 등잔에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왔다. 모여 있던 쥐들이 그림자와 함께 삽시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아까 그 열 마리였던 것 같은데.”

“맞아. 열 마리였어.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

“나도.”

“너부터 말할래?”

루틀리지가 침을 삼켰다. 이곳은 치즈 저장고였다. 루틀리지가 십 년에 걸쳐 모으고 보관한 치즈들이 여기 있었다.

“고야의 마술이 빵을 쥐로 바꾸는 거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어떤 음식이든 쥐로 바꿀 수 있는 마술이라면 우린 쥐 떼에 파묻혀 죽게 될 거야.”

“당신을 죽게 하진 않아.”

게친이 빠르게 답하고 자신이 하려던 말로 넘어갔다.
“고야를 키울 거야.”

게친이 그렇게 말해버렸다.

“한 번 더 엄마가 될 거야. 방금 그렇게 생각해버렸어. 네가 반대한다면, 이 집과 땅을 너에게 주고 떠날 거고.”

“협박이네.”

중얼거리던 루틀리지가 금세 머리를 움직여 게친을 올려다 봤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언제나 네가 나보다 훨씬 더 괴로워한다는 것에서 기인하지. 그리고... 언제나 너는 네 불구덩이를 선택한다는 것에서도. 모르겠어, 나는.”

루틀리지가 저장고 문으로 다가갔다. 안은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루틀리지는 게친처럼은 안 됐다. 어떤 아이하고도 그랬다. 그러나 그도 턱없이 슬펐다.

“고야.”

루틀리지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갈게.”

루틀리지가 문고리를 잡았다.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치즈 냄새가 절망스럽게도 진하지 않았다. 루틀리지와 게친이 동시에 원반을 튕겼다. 게친은 자신의 패각 마술을, 루틀리지는 자신의 배역 마술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어린 아이를 구하는 것은 얼만큼 윤리적인 일이니까. 저장고 안에는 60덩이의 치즈와 수십 개의 절인 고기, 순무, 양파와 사과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단단히 각오했다. “으악.”하는 고야의 외침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자마자 두 사람은 쥐색 파도에 뒤덮여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어버버하는 사이 루틀리지는 마술은커녕 팔 한 번 제대로 휘젓지 못하고 기절해버렸으나 게친은 땅에 무릎을 박고 억지로 일어섰다. 루틀리지가 들고 있던 등잔이 바닥을 굴렀고 기울어진 불꽃이 애처롭게 흔들리다가 픽하고 꺼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쥐들이 옷자락을 타고 올라왔다. 목덜미로, 소매 속으로, 머리칼 사이로 수십 개의 발이 살갗을 딛었다. 모래폭풍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전신을 물리고 긁히면서 게친은 얼굴만 한 팔로 가린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물컹한 것이 밟혔고 사나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어려운 와중 거리를 가늠하고, 방향을 섬세하게 조정해서, 여기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면 아무것도 상하지 않게, 누군가를 위해, 고집스러운 비효율을 고집하는 것이 마술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면서, 게친은 마술을 사용했고 모든 소란이 끝났다.

잠시 후, 열어두었던 뚜껑문으로 흘러내린 화덕 불빛이 사다리를 타고 저장고 바닥까지 닿았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아가리가 맞붙어 있던 거대한 패각이 열리며, 고야가 눈을 떴다. 이불처럼 그 애를 덮고 있던 쥐들이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고야가 말했다. “여기 있게 해줘요! 죽이더라도.”

“그럴 거야.”하고 게친이 대답했다. 루틀리지가 이층의 빈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오래도록 보관하던 두 개의 마술 원반을 가져왔다. 철로 된 고리에 진주를 박은 거였다. 이미 한 번 붙였다가 떼어낸 것, 앞선 두 아이로부터 회수했던 거였다. 루틀리지가 칼을 가져왔다. 가운데 뚫린 둥근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위에서 날을 누르는, 약제사가 약초 줄기를 자를 때 쓰는 것과 닮은 칼이었다. 그는 백납이 끝나는 자리에 날을 맞추고 고야의 손가락 두 개를 잘라냈다. 게친이 잘린 마디와 남은 마디 사이에 원반을 하나씩 끼우고 다시 붙였다. 쇠고리 양옆으로 새살이 돋아 서로를 끌어당겼다. 고야는 처음 게친이 가져다주었던 것과 똑같은 빵을 세 개나 먹었다. 배가 부른 고야는 지나온 빈 방의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었다. 루틀리지가 말했다. “마지막이야.” 게친이 끄덕였다. 루틀리지가 말했다. “우린 자식 복이 없잖아.” 게친이 먼저 침실로 갔다. 루틀리지는 사라진 치즈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다시 첫 대사를 쓰기 위해 작업실로 가 앉았다. 돌이켜보니 첫 대사를 쓰려던 중이었던가? 그러나 그 대사가 뭐였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루틀리지는 그냥 방에서 나왔다. 그는 이제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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