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4일 월요일

햄릿 연극

급조된 티가 나는 의자에 앉아서 햄릿의 대사를 말한다. 이 무대 위의 모든 것이 엉망이다. 배우들이 낄낄 웃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미니 버번 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난 저걸 마실 거고, 난 취할 거야. 인사불성이 될지도 모르지. 배우들의 억양과 제스처는 너무 배고파서 소시지 빵을 먹는 듯이 그들의 욕망에 기초해 있다. 그럼 욕망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에 가서 따듯한 욕조에 기대고 누워 그날 있었던 하루의 일을 반추하고 싶겠지. 그러나 이 배우들이 모인 건 어떤 번들거리는 노골적인 욕동 때문이라 원한다고 해서, 그리고 원하는 사람도 없었고, 자리를 벗어날 순 없었다. 배우들이 원하는 건 연극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잘 모르면서 술을 퍼부어 마셨다. 자기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할 것이 자기소개라면 그런 따위의 사회적 예의를 지킬 생각이 없었다. 햄릿의 대본을 고른 건 연출가의 지시였다. 물론 배우들은 햄릿의 대본을 연습해오지 않았다. 햄릿의 대본을 숙지하지 않은 이는 여기에 없었다. 배우들이 연극에서 맡는 역할은 유화 그림으로 따지자면 기름 물감과 실물의 팔레트, 그리고 수정 용액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별것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것이 맞다면 예전에 비해 축소된 것이다. 그 예전이란 언제지? 고대 그리스 시대? 특히 이 문화 산업 안에서는 그 빌어먹을 운이란 게 크게 작용했다. 작품을 볼 줄 모르는 배우는 운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사에 열중해야 된다고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약간 부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다 이름이 이미 알려진 이들이었고 연극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예전엔 좋아서 뛰어든 이들이었다. 연극에서 만날 일은 서로 없었던 게, 다들 주연을 맡을 만큼의 이들이었다. 그들은 설정상, 모여서 취미로, 무대에 올리지 않을 극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햄릿의 대사를 주워섬기며 술에 취할 정도로 마셔댄다. 조금 어이없는 것은 감 같은 것이 다 있어서 실제 연극 같기도 하단 것이고, 그때마다 객석에 앉은 단독의 연출가가 박수를 쳤다. 이게 뭐람? 직업이 인간에게 주는 안정감은 심히 큰 것이고 그들에겐 인사불성이 되어가며 좀 더 자연스럽게 된단 것이 직업적인 만족감을 주고 있다. 안 맞는 옷을 억지로 끼어 입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학생들끼리 기악 합주를 하는 듯한 자연스러움. 연출가가 주문한 건 그거였고 그들은 사실 이러한 사정을 각자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외면을 잘해야만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어려웠다. 어떤 연출가가, 성질 더러운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러한 어정쩡한 욕망 위주의 연극을 기획했고 배우들은 찾아온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게 잘될지는 모르겠군. 참여한 걸 후회하는 이도 있다. 연출가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이것이 아주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무대 위를 어지럽히는 일은 직접 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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