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눈과 고양이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이 어설픈 눈은 네가 입은 겉옷에 그런대로 묻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검은 고양이의 등에도 눈이 쌓인다. 하얀 눈은 점점 더 늘고 있다. 그칠 기색이 없다. 골목을 걷는 사람들. 지나가며 한 번씩 돌아본다. 네 외양이 조금 아름답기 때문인가? 검은 고양이가 네 주위에서 골골거린다. 아마도 넌 뭔갈 기다리고 있다. 가령 이 바보 같은 눈이 그치기를. 그 전까지 넌 모자 안으로 쌓인 눈을 털지 않고 있을 것이다. 골목에 있는 의자, 넌 거기 앉아있다. 내리고 있는 눈이 네 주위를 한적하고 여유롭게 만들고 있다. 그러한 눈의 존재에 조금 너는 신경을 내어주고 있다. 너는, 이러한 여유, 평화로운 느낌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던 것일지도. 이 주택가에 곧이어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 자기 집 앞길을 빗자루로 쓸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눈을 두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함을 주는 눈은 조금 아름답다. 새하얀 유백색의 눈. 점점 눈을 맞다간 약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건 눈이 좋고 재미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의 손길을 통해서 네가 눈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눈이 내리면 도로 사정이 안 좋아지고. 이처럼 집 앞의 눈을 쓸어야 하고. 예전에 나도 그렇게 쓸어봤었다. 눈이 내릴 때마다 그것이 덮여서 얼음이 되지 않도록. 아직 눈일 때. 빗자루로 쓸었다. 너는 조금 멍해 보인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 어설프기도 한 눈을? 그보다도 사랑스러운 것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 중에 하나인 너의 동생. 언니, 거기 앉아서 뭐하고 있어요? 뭔가 신경 쓸 일이 있나요? 언니는 고개를 젓고 네 쪽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다. 언니는 하얀 눈이다. 내 주위에 언니는 없다. 오직 눈들뿐이다.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이 하얗다. 내 볼 주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나도 이러한 식으로 하얀 눈에 젖어들고 있다. 어쩌다 언니의 생각이 났는지 모르는 채로. 언니가 내 뒤로 가디건을 덮어주고 있다. 언니는 없지만 지금은 있다. 언니가 만들어준 하얀 가디건. 내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까르륵 웃는다. 눈이 덮였다고. 치울 줄도 모른다고. 어느샌가 그 아이들도 주위에서 없어지고. 나는 눈물을 닦으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골목 벽에 붙어 서 있는 고양이를. 고양이가 자기 손을 혀로 핥는다. 손을 내밀자 이쪽으로 다가와 내 손을 핥는다. 핥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구나. 검은 고양이의 등에 묻은 흰 눈들을 살살 쓸어주었다. 털 아래에서 온기를 갖고 있는 피부. 네가 고양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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