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6일 목요일

보석내장

T-종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먼 옛날 S-종족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S-종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꿈꿨던 지상과 공중에서의 영예를 위해서는 지하의 것들이 많이, 정말로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발에 더러운 것을 묻히거나 직접 갱도를 기거나 숨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말없는 지하로부터 귀중한 광석과 보석들을 캐내기 위해, 그들은 간교한 마법적 지식과 기예를 총동원하여 T-종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종족이 모욕받았고, 벌레 두 종류, 나무 한 종류, 버섯 세 종류가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T-종족이 구부정한 허리를 펴면 사람보다 거의 두 배는 큽니다. 오래된 그루터기 같은 두 다리, 짐수레를 세워놓은 듯한 몸통, 창백하고 단단한 거죽은 어떤 상처가 나도 금방 아물며, 나무 뿌리처럼 억센 팔이 무릎까지 닿습니다. 거대한 호박 덩어리 같은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입, 그 안에는 자갈 같은 이빨들이 가득합니다. 그 위엔 코털이 잔뜩 삐져온 코, 그 위엔 단추 같은 눈, 귀는 당나귀귀 같습니다. T-종족의 가장 주된 습성은 굴을 파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본능을 따라 광맥이 흐를 만한 적당한 장소, 깊은 골짜기나 구릉 지대에 모입니다. 그리고 초기 T-도구들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나무를 지렛대로 나무를 쓰러뜨리고 바위로 바위를 깨뜨리며 가장 좋은 땅을 골라 터를 잡습니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파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작업을 시작한 곳은 그대로 광산이 됩니다. 그들은 어설픈 도구로도 절묘한 솜씨로 공동과 갱도, 경사로와 방들을 만듭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야광버섯처럼 침침한 빛을 내며 가치 있는 광물과 광석들을 캐 모읍니다. 방들 중 하나는 대장간으로 꾸며지고, 그곳에서 철을 제련해 그 어떤 종족의 것보다도 견고한 고급 T-도구―곡괭이와 삽, 정과 망치 따위―를 만듭니다. 물론 그들 외엔 사용할 수 없는 크기로요. 그 다음부터는 난쟁이들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규모와 양식을 갖춘 광산이 됩니다. 깊은 곳에 있는 보물방은 T-종족의 근면함에 힘입어 수년 안에 광석과 보석, 보물들로 가득 찹니다. 그들은 서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그 방을 지킵니다. T-종족은 보통 돌을 먹는다고 전해집니다만, 그보다도, 모으지 않는 것은 전부 먹는 편입니다. 보물을 노리고 침입한 모험가들이 그들의 별식이 될 뻔했다가 무슨 돌이 가장 맛있는지 토론을 시킨 틈에 도망쳐 나오는 노래가 유명하지요. 오직 S-종족만이 T-종족의 광산에 들어가 주괴와 보물들을 유유히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S-종족이 T-종족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대대손손 새겨놓은 공포심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그러나 S-종족은 깊은 지하에 광물 말고도 온갖 것들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T-종족이 도대체 뭘, 언제 파냈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그들은 까마득히 깊은 지하에서 뭔가를 발견했고, 그날부터 그들의 탁한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들은 묘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긴 해도 분명히 노래입니다. 한 대담한 음유시인이 그 노래를 배워왔습니다. 그 노래는 ‘보석내장(寶石內臟)’으로 불리는데, ‘보석내장으로... 보석내장으로...’ 하는 후렴이 강렬하고 인상적이기에 붙은 제목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파냈다’, ‘우리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와 같은 표현이 그 노래에 직접 나옵니다. 노래에는 ‘마술로 우리를 꼼짝 못 하게 세워놓고 보물을 훔쳐가는 녀석들’도 등장합니다. ‘그들을 씹은 다음 뱉어버릴 것’이라고요. ‘금강석 몸을 완성하는 날에 그날에’ 말입니다. 처음엔 음유시인의 창작으로 여겨졌습니다만, 당시 모험가들 상당수가 T-종족이 부르는 이 노래를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지금 이 노래는 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금강석 몸과 복수라는 테마는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과연, 대부분의 T-광산에서는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크기의 팔, 다리, 머리, 뼈 따위의 공예품이 발견됐습니다. 정말 T-종족이 만든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보석으로 만든 내장(그들이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이라고 볼 만한 것이 발견된 적은 없기 때문에, 보석내장이란 지능과 슬기를 뜻하는 비유, 또는 그들이 발견한 특별한 유물이라는 가설도 세워졌습니다. 후자를 지지하는 상당수의 학자들은 ‘보석내장’이 일종의 마도서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오늘날 T-종족은 만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마 지하로 너무 깊이 내려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발 아래, 까마득히 먼 심연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까요? 어둠 가운데 금강석 몸을 완성한 그들이, 언젠가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들 종족의 새로운 몸이 햇살 아래서 찬란하게 빛날까요? 그들의 배 속에 금강석보다도 더 단단하고 투명한 보석내장들이 들어있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손에 마도서가 들려있을까요? 하지만 알다시피 씹은 다음 뱉어버릴 S-종족은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합니다. T-종족이 이미 예전에 금강석 몸과 보석내장을 얻었고, S-종족이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수수께끼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