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8일 화요일

돌말

창립자 고향의 뭔가와 관련된 사명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떠나온 고향이 어쨌거나 존재하는 나의 부모 세대와 달리 내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고 하면, 사실이지만 영 고리타분한 얘기 같다. 고리타분이란 단어부터가 고리타분하다. 무슨 고향이 있다고 없다고 새삼 주워섬기는 것도 한가한 사정에 다다라야 가능한 일이다. 젖은 눈으로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야 예전부터도 영 광대짓처럼 느껴졌다. 광대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농 삼고 한탄하는 모양을 구경하며 아무 뜻있는 데도 닿지 않은 채 으스러져 가고 있는 나 고향 없는 세대의 맘속 어딘가에 항상 쭈그린 생각은 ‘개새끼들...’이다. 여기에, 머리통 속에 ‘개새끼들...’이 있다. 그게 내 고향이다. 어디의 어느 개새끼들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개새끼들이 있고, 그들은 짖고, 죽고, 태어나고, 개새끼들이 개새끼들을 짓누르고, 개새끼들은 사라진다. 개새끼들이 개새끼들 속에서 나온다. 나타난다. 아무리 떠나가도 그것은 너무 많다. 내 부모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전후 세대 노동계급이다. 그들이 성년이 될 즈음 그들의 고향에는 문자 그대로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수도로 가는 열차와 버스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논밭에서 공장으로’였고, 탈출이었고 축출이었다. 그들은 수도에서 일을 시작해 그야말로 죽도록 일했다. 그들은 죽도록 일하면서 점점 수도 바깥으로 밀려나 I시까지 나갔는데, 나는 그렇게 밀려 나가게 된 까닭 중 하나였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수도와 I시와 어머니의 고향에 흩뿌려져 있다. 여름마다 갔던 어머니의 고향에는 냇가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 옛날 살았던 수도에는 언덕이 있었고,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 I시에는... 내 고향은 그 기억들의 총합으로 이 머리통 속에 있다. 내 부모는 I시에서 여전히 죽도록 일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이 수도에서 그렇다. 나는 그럼 언제 밀려 나갈 것인가? 내 부모가 어느덧 몇 십 년째,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I시의 동네의 옛날 이름이 ‘돌말’이다. 돌이 많다고 해서. 돌을 캐기라도 했다는 걸까? 어쨌든 그 단어가 사명으로 붙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창립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창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개새끼들을 그냥 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복수할 것이다. 뭘 복수한다는 건가? 나는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