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 화요일

야유회

무슨... 무슨 소리야? 무슨 개 같은 소리야 그게? 무슨 야유회를 간다는 거야? 봄 야유회라고? 토요일? 일요일? 교외? 금토 아니고 토일로?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일요일 점심 먹고 와? 토요일 오전 10시에 회사에 모여서 출발... 왜 주말에 가는지 뭐라고 이유도 들었는데, 뭐라는지 도통 모르겠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하여튼 내 주말에 간다는 거다. 진짜야? 진짜로 하는 얘기야? 패러디나 그런 거 아니고? 정말이라고? 왜야? 뭐야? 빠질 수 있어? 특근수당 받아? 아냐? 정말이야? 내가 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니다. 나는 모든 사항을 제대로 정확히 들었다. 머리가 빙빙 돈다. 현기증 때문에 나는 휘청휘청한다. 휘청거리다가 책상을 짚는다. 책상 위의 화분을 붙들어 겨우 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나는 휘청거리면서 무슨 문고리를 잡는다. 몸을 기대자 문이 열린다. 공교롭게도 사장실이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비틀거리며 들어가 들고 있던 화분으로 사장님의 대가리를 내려친다. 화분은 박살나고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를 사장님 쓰러진다. 야유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장님들 잘 봐둬. 사장님들 보고 있어? 이렇게 될 거야. 기억 잘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사명을 찾아야 하지 불평을 늘어놓거나 사장님 때려잡는 상상을 하거나 어떤 식의 사무실-리얼리즘을 해내야 하는 게 아니다. 이래서는 사명을 찾을 수 없다. 나는 바닥에 엎어진 사장님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내가 쓸고 닦은 바닥에. 불쌍한 사장님.

역시 내가 사장님이 되어야 할까? 만약 내가 사장님이라면 야유회는 금토에 갈까? 나는 대가리를 맞고 쓰러진다.

만약 내가 사장님이라면 목금으로 갈까? 모르겠다. 만약 내가 사장님이라면 야유회를 갈까? 그걸 모르겠다. 야유회를 갈지 말지 사원들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안 간다고 할 수 있는 상황만 만들어진다면, 나는 아마 안 간다고 할 것이다. 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지? 나는 야유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목금 간다고 먼저 정하고 물어야 할까? 하지만 적어도 1박은 절대 안 된다. 퇴근 시간 전에 끝나야 한다. 나는 완고하다. 사장 나는 사원 나를 납득시키기 어렵다. 사원 나는 조금 더 용기를 얻어 중재안을 제시해본다. 만약 1박을 한다면 퇴근시간 이후에 대해서도 계산을 제대로 해야 한다. 아니 그럴 거면 뭐 하러 가나? 그러나 가야만 한다면, 물러설 수 없다면, 너를 데려가야만 한다면... 너를 데려가야만, 나를 데려가야만...

야유회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휘청이듯 그 생각으로 기운다. 회사란 사실 야유회를 위한 것이다. 책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그것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우리에겐 모여서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할 따름이다. 만약 회사라는 곳이 우리의 생존을 볼모로 잡고 위협하지 않는다면, 세계가 우리에게 조금 더 호의적인 곳이라면. 사장도 다만 야유회 기획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야유회를 가장 잘 기획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으면 된다. 내가 사장일 이유도 없다. 기왕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면, 뜻도 좀 있으면 좋겠다. 만약 데려가야만 한다면 필요한 곳에 데려가야 한다.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로 하는 곳... 죽지 않은 사장님, 거품 문 사장님을 내려다보면서, 출판사 ‘야유회’의 꿈도 점점 커지는 중. 야유회 문고는 어떨까? 이제 여행의 시대는 지났어. 이젠 야유회야. 좋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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