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벽장 속의 드래곤

어젯 밤에는 벽장을 잠근 자물쇠가 달그락거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있는 일인데, 가끔은 며칠 동안 저러기도 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영원히 벽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려 정리해보았지만 마음처럼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이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겨우 퇴근 후 몇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은 것도 입사 후 반 년이 지나서였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모처럼 돌려받은, 아니면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생에 처음으로 얻은 여유를 도려내어 방 안의 벽장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그 일은 영원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번 조금씩 가까워졌는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손에 잡힐 것 같다. 그 모든 이야기가.

그동안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드래곤을 돌보기 위해 지출한 식비는 3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에 근사하게 증가했다. 드래곤이 망가뜨린 기물의 크기는 1년을 기점으로 산술급수에 근사하게 증가했고, 드래곤은 마지막으로 한 행정구역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드래곤이 요부에나와보시카에게 남긴 건 엄청난 빚이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팔, 다리, 눈과 귀. 몸 곳곳을 팔았고,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가난은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분명하게 해준다. 모두 합해봐야 알량한 금액이었다. 드래곤은 그에게 걸맞지 않은 장소의 걸맞지 않은 사람을 찾아왔던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어떻게든 드래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보려고 했다. 결국 집 밖으로 내쳐지고 세상 모두가 그에게서 등 돌린대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그걸 알게 된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다. 모색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결말을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몰랐던 건 아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최악의 예언자다. 그가 예측한 모든 최악의 상황은 현실이 되었다. 결국 세상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요부에나와보시카에게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요부에나와보시카에게 탈출구가 있었을까? 요부에나와보시카의 바람이 이뤄질 기회가 있었을까? 좀 더 버텼다면 그게 요부에나와보시카의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때까지 버틸 수 없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게 불가능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바닥의 바닥까지 파헤쳐야만 했다. 아직도 그는 그 불가능성을 광신도의 기도처럼 되뇌곤 한다. 그게 무엇이든 그땐 불가능했다.

아직도 벽장 문이 삐걱거린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다시 벽장으로 가 걸쇠를 점검하고 벽장을 묶은 강철 와이어를 다시 조였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버리기에 너무 큰 것을 집안에 들이고 말았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 그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드래곤도 알고 있었을거다.

이미 요부에나와보시카와 드래곤은 이렇게 되었지만, 아직도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잡생각에 사로잡혀 긴 밤을 탕진하곤 한다.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너와 나는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겠지.’ 이런 생각들. 이어지는 기도: 그땐 불가능했다. ‘내가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너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의 이야기에 네 눈이 빛나지 않았다면’,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이 없었다면’. 그게 없었다면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을까? 드래곤은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더 좋은 기회를 만났을 것이다. 무엇이 되든 지금보다 더 나았을 거다. 하지만 결국 요부에나와보시카와 드래곤은 만났다. 결국 둘의 삶은 파국의 근처에 이르렀다. 결국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 그땐 불가능했다. 애초에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이런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드래곤이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저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

그땐 불가능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의 몸집에 걸맞게 더 큰 땅으로 보내야 했다. 고집부리며 드래곤을 보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드래곤를 큰 바다로 보내야 했다. 파도 앞에서 엉엉 우는 드래곤을 그때 밀어 넣어야 했다. 좀 더 일찍 그래야 했다. 니 목을 잘라야만 했다. 아니 너를 만나지 말아야 했다. 이런 사상이 전개되던 와중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다시 한번 드래곤을 벽장 속으로 떠밀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그동안 미뤄왔던 하나의 질문과 마주쳤다. 만일 이 모든 상황의 한복판에 있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후회하는 내가 다시 그 상황과 마주친다면? 바로 지금 너와 내가 벽장 앞에 서 있다면? 나는 너에게 벽장 속으로 들어가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 할 수 있었을 거다. 모든 게 그렇다. 두 번째가 더 쉽다. 지금의 요부에나와보시카가 지금의 벽장 앞에서 지금의 드래곤과 마주친다 하더라도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에게 이 벽장 속으로 들어가라고, 기꺼이 문을 열어 드래곤을 벽장 속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었다. 모두 무력한 몽상들이다. 얼마 전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긴 밤의 내리막길에서 손 마디마디를 갈갈이 찢어버리고 다신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혀를 뽑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 생각은 부적이 되어 틈날 때마다 되세긴다. 그땐 불가능했고, 나는 내 혀를 뽑아버리고 싶다.

어쩌면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보다 더 태연하게 벽장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의 혀는 그대로일 것이고,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손도 그대로일 것이다.

어쩌면 이에 관해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세련된 문장으로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유려한 발음과 발성을 위해 연습한다면 청중은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리며 위로할 것이다. 별수 없었다고, 당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근데 그들도, 요부에나와보시카도 잘 알고 있다. 오늘 내린 결정은 내일 요부에나와보시카의 밤을 잠식한다. 생존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게 다 그렇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때 요부에나와보시카를 내몰았던 결정의 순간을 피해 갈 마법 같은 해답이 날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 요부에나와보시카에겐 마법 같은 해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답이라는 건 늘 한시적이다. 단지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세 번째 날을 위한 비용이 없었을 뿐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남은 밤을 팔아 세 번째 날을 샀던 것이다. 세 번째 날 우린 그 결정을 해선 안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첫째 날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요부에나와보시카보다 먼저 벽장 속의 드래곤이 쇠약해질 것이다. 어쩌면 결국 드래곤은 죽을 것이다. 드래곤은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이게 요부에나와보시카를 살게 하는 낙관이다. 이게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신앙이다. 온 세계가 내게서 등 돌리기 전에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이게 남은 생의 모든 밤을 팔아 요부에나와보시카를 살린 결정이다. 그것 말고는 불가능했다. 이게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주기도문이다.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 이게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주기도문이다.

그날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을 벽장 앞으로 데려갔다. 그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고,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도 아니라는 것쯤은 드래곤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난 지금 너무 크고, 계속해서 더 커질 거야. 그때도 넌 내 옆에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드래곤에게 말했다. 들어가. 드래곤이 말했다. 여긴 너무 좁아.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에게 요구했다. 들어가. 드래곤이 말했다. 싫다고. 둘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신경질 내며 소리질렀다. 그때 그들은 신경질이 나지 않았더라도 크게 소리질러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는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을 벽장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드래곤은 벽장 앞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아주 비겁하고, 아주 추악하고, 흉측하고, 사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쓰레기는 이 세상에서, 인류 역사에서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마지막이어야만 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각 없이는 절대 드래곤을 벽장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은 드래곤과 함께한 삶의 마무리로 적당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거대한 영향력 안에 있고 이미 일은 시작된 지 오래다. 일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황 안에서 그럼에도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이 요부에나와보시카에게 제시하는 몇 가지 선택들 중 하나를 골라 ‘이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며 스스로의 가슴팍에 꽝꽝 때려 박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등 돌렸으니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이 결정을 가슴팍이 부서지도록 때려 박지 않으면, 틈날 때마다 떨어지려 하는 그 결정이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때려 박지 않으면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아무것도 해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상황은 상황들이 되었고, 그런 무력감과 치열한 낙관이 그들의 초라한 역사였다.

드래곤은 요부에나와보시카가 깨닫기도 전에 수십 미터 크기로 자라났다. 그때 요부에나와보시카가 할 수 있는 결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을 잘 돌봐야만 한다는 것이었고, 드래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는 것이었다. 원치 않는 자식이 태어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잘 기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먼저 어른이 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날의 결정을 기억하며 드래곤을 벽장 안으로 밀어 넣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은 온전히 요부에나와보시카의 결정인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말했다. 넌 상상도 못할거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내 삶을 위협하고 날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존나 알 수 없을 거다. 드래곤이 말했다. 나도 안다. 네가 그걸 모르길 바랐다. 이 세계가 그걸 모르길 바랐다. 넌 존나 나쁜 년이다.

해질녘 시작한 논쟁이 끝난 때는 동틀 무렵이었다. 드래곤은 벽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날개를 씹어 먹었다. 긴 꼬리를 씹어 삼켰다. 그의 몸통 절반을 집어 삼켰다. 긴 목을 다섯 번 접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그 모습을 단 하나도 외면하지 않고 지켜봤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존중이었다. 작은 택배 상자만한 크기가 된 드래곤은 어두운 벽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벽장 앞은 뜯어진 그의 살점으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요부에나와보시카가 벽장 문을 닫기 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드래곤의 눈과 잠시 마주쳤다. 그 순간은 거실의 액자와 같이 영원히 요부에나와보시카를 신경 쓰이게 만들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이렇게 그의 거대한 드래곤을 벽장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언젠가 드래곤이 말했다. 난 지금 너무 크고, 계속해서 더 커질 거야. 그때도 넌 내 옆에 있을까?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이런 거 궁금해 하지도 않게 할 거야. 요부에나와보시카의 가슴에 박힌 결정들이 펄럭이는 걸 보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온 모양이다.

오늘 아침 드래곤의 기침 소리가 들렸고, 벽장 문의 경첩이 부서졌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머리통만 한 강철 자물쇠를 사 그곳에 달았다. 언제고 이 문을 고쳐 영원히 닫아 놓을 것이다. 문 앞에 철판을 대고, 좀 더 돈을 벌어 벽장이 있는 방 안에 수십 톤의 쇳물을 부어놓을 것이다. 이렇게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드래곤을 완벽하게 망각할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매일 드래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고 그의 죽음을 기대할 것이다.

*요부에나와보시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쓴 『불의 기억』 중 「무지개」에 등장하는 설화 속 주인공이다. 난쟁이들의 습격을 받아 머리만 남은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무지개가 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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