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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소실수

방이 너무 좁다고 여겨져서 씨앗을 주문했다. 일종의 담쟁이 덩굴같은 것인데 벽 가운데 박으면 자라면서 벽을 장악해 소실점을 만든다. 공간의 너비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좁지 않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흙에 심는 것도 아니고 수분이나 양광을 취하는 것도 아니어서 키우기 쉽지 않을까 하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사실은 발아시키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식물의 즙으로만 자라는데 어째서인지 열매나 뿌리에서 난 즙은 통하지 않는다. 샐러리 따위를 갈아서 면포로 즙만 걸러 붓으로 발라주면 좋다고 한다. 완전히 자라 벽에 정착하기까지 이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즙은 상온보관하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발라주어야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수령이 오래된 큰 나무에 박혀서 자라는 것이 보통인 듯하다. 숲에서 나무 하나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사람을 발견한 적이 있는지? 그 사람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를 감싸며 자란 소실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4~5년에 한 번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데 제 가지의 꽃끼리는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내에서 거둔 씨앗은 발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다만 개화기에서 결실기까지는 벽 하나에서 여러 개의 소실점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하니 상당한 장관이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현상에 멀미가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더욱 열심히 샐러리즙 같은 것을 발라주어야 한다. 쓰다보니 역시 짜증나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취소할까 한다.


특기할 만한 점 하나를 잊을 뻔했다. 소실수가 자라는 구역에서는 버섯이 나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지만 이 방에서는 원래 버섯이 안 나기 때문에 방이防茸 목적으로 소실수를 키울 필요까지는 없겠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이안

죽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는 어떤 꽃(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원망을 품고 있음을 ‘시선’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녹아가는 날개를 끌며 수면 위에 그러듯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청둥오리. 어떤 ―손끝으로부터 어둠을 뿜어내고 있어 그 사람이 바로 밤의 근원이로구나 생각하게 하는― 사람(그럼에도 사람이라고 했다). 산산이 흩어져 있는 수정 조각들이 반사해 올린 듯 수많은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겹눈생물의 눈에 맺힌 상과 같았다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차후 수정.)

이상은 이안에 감염된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들의 사례이다. 괴시 증상은 이안 감염의 2기에 해당한다.

시작은 속눈썹 한 가닥이다. 평균보다 조금 길거나 조금 짧고, 색깔이 다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속눈썹 한 가닥. 이안은 속눈썹 모공을 통해서 침투하며 그 과정에서 속눈썹을 가장하고 속눈썹을 양분 삼기 때문이다. 즉 감염이 의심되는 속눈썹 한 가닥만 뽑으면 간단하게 이안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듣기에는 매우 이상적이겠으나, 이안 감염 자가진단을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윽고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속눈썹이라는 것은 대체로 모두 평균보다 조금 짧거나 조금 길고 색이 완전히 균일하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평균의 함정이다.

무사히 안구에 안착한 이안은 안구를 감싸는 그물 형태로 자라난다. 이 단계에서 숙주에게는 안구건조증과 유사한 자극감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1기에 해당하는 증상으로, 이안에게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안의 감염력과 숙주의 감수성susceptibility이 조응되지 않을 시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안은 성장하며 때때로 안압을 높이거나 두통을 유발한다.

괴시가 나타나는 것은 이안이 안구를 반 이상 점한 뒤부터의 일로,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괴시의 양상은 감염력과 감수성의 조응 결과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개별 연구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숙주가 가지고 있는 내밀한 죄책감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3기는 이안이 완전히 기존 안구의 기능을 대체하게 된 시점부터를 말한다. 괴시가 사라지고 안구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어진다. 다만 이따금 시야가 흐려지거나 캄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이안이 숙주가 눈을 깜빡이는 박자를 놓친 것 뿐 별 일은 아니다.

드문 사례지만 기존 감염이 2기까지 진행된 안구에 다시 감염이 일어난 일도 있다. 중복 감염자의 괴시 증상에 대한 연구는 참고할 만한 것이다.

3기까지 진행된 이안은 숙주인 인간이 죽으면 경화를 일으키고 미라화 된다. 시체에서 나온 안구는 마치 연마 도중의 보석처럼 보인다. 이를 수집하는 부호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인간 안구 보석이 특별 주문된 냉장 쇼케이스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 중 그가 특별히 아끼는 것들에는 생전 그 안구가 보았던 괴시를 금박지에 새겨 장식해두기도 했다. 여러 모로 악취미이지만, 최악은 아무래도 그것들이 주문 제작된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마인어 사전

박물학과는 그다지 관계 없는 일로 모 국가의 K시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모종의 이유로 국가기관 초청을 받아 간 것이기에 정확한 지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따라서 우기이기도 했고 우리 일행은 입국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도심의 거의 모든 빌딩들이 브리즈웨이나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컨퍼런스 홀과 우리 일행의 호텔도 그랬기 때문에 업무상의 곤란은 없었지만 둘째날부터 일행 모두가 심한 권태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어메너티와 찻숟가락같은 것을 나누어 걸고 카드게임을 하거나 (나에게서 칫솔을 따간 R이 한사코 돌려주기를 거부해서 결국 프론트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침대 시트를 활용한 놀이를 고안하거나 하며 시간을 녹였다. 컨퍼런스 홀에서 T를 만난 것은 셋째날의 일이다. T가 관심을 보인 대상은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간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행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회교 국가의 공무원과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일행은 모두 무척 심심했기 때문에, 가이드를 자처하는 T의 호의를 못 이긴 척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난 날 저녁에는 T의 안내로 현지 식당에 가서 무슨 유명하다는 밀크티를 마셨고 다음 날은 종일 T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내와 교외를 구경했다. 조류공원과 폭포와 전통시장과 마천루를 보았고 개인적으로 구입한 기념품 가격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T가 부담했다. 밤에는 K시의 핫스팟이라는 B지구의 화려한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거기서 노래하는 남자는 우리 일행의 국적을 묻고는 자기가 미군부대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T가 값을 치렀다. 회교도인 T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일행 모두가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T가 우리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우기라도 비는 주로 낮에 내리지 밤은 비교적 잠잠하다 들었는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비가 오고 있었다. 잠에 취한 일행들을 뒷좌석에 몰아넣고 비교적 머리가 맑은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T에게 간단한 그 나라 말을 배우고 나도 그 말에 대응하는 모국어를 T에게 가르쳐주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단어교환이 다섯 개쯤 되었을 때 문득 호텔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잘 알 수는 없지만 차창 밖에 성채같은 빌딩들 대신 공룡같은 야자수들이 점점 빽빽해지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B지구로 갈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Where are you heading for? T는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실제로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겠지만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올 만한 타이밍이 지난 시점부터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뒷좌석의 일행은 야속하게도 깨어날 줄 몰랐다. T가 차를 세운 곳은 웬 밭이 있는 곳이었다. 자라는 작물이나 밭의 구성 같은 것이 내가 알던 것들과는 달랐지만 그것이 밭인 것은 알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십자 모양 장대가 있고 거기에 허수아비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고 T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나는 T보다 먼저 내렸다. 열대의, 겨울의, 우기의, 교외의, 이상한 공기 때문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T는 저것을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널 데려왔다고 했다. 저것은 당신 나라 말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T는 아디크Adik라고 대답했다. 그것을 나의 모국어로는 허수아비라고 부른다고 나도 말했다. 어째서 허수아비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면서. 차의 시동이 다시 걸렸을 때 뒷좌석의 일행 하나가 반쯤 깬 채로 어디냐고 물었다. 거의 다 왔다고 모국어로 말하고, 방금 그녀가 뭐라고 했냐는 T의 물음에는 오늘 고마웠다는 말이라고 답했다. 일행은 다시 잠들었다. 나도 심하게 취했다는 생각을 그때쯤에야 했다. 호텔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귀국 후에 T에게서 안부 메일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마인어로 Adik는 남동생이라는 뜻이다.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미친 박물학자

박물학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미친다. 사람 중에서도 박물학자는 반드시 미친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와 허리가 상하기 쉬운 것과 같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학자들의 광증에는 전형이 있다. 보다 기이한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시작이며, 범박한 사물을 볼 때도 다른 박물학자들이 미처 찾지 못했을 특징을 알아내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발견하고 기록한 것들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종장에 가서는 그것들을 창조해낸 장본인이 자기라는 착각에 빠진다. 박물을, 만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믿음. 자기 뇌에 갇힌 신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진행중인 미래다. 미래는 일정하지 않은 속도와 중량을 가지고 도래한다.

박물학자의 광증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박물학자로서 나는 완전히 미치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예비해 두었다. 목록은 물론 안전하게 은닉되어 있는데, 누구라도 그것을 보면 이 사람이 이미 미친 게 분명하다 생각할 것이 자명한 탓이다. (아직은 아니다.)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보이지 않음에 관한 주석

보이지 않음과 보기 힘듦이 동의어였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저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기 힘든 것들, 가령 너무 멀리 있어 관측이 어려운 어떤 별,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어떤 균 ―따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한편 보이지 않음은 없음의 동의어 또한 아니다.
우리의 문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미치는 힘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막기 어렵다. 인류가 겸손을 배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위의 서술들을 배반할 가능성을 무릅쓰건대,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후세에도 절대로 보이지 않으리라 호언할 수는 없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으로 한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몇몇이 보기 힘듦의 지위로 강등된 것처럼. 박물학의 참된 목표는, 박물학자의 진짜 일은, 스스로는 확인할 수 없을지언정, 기록된 박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지 <없는 것>이었는지 검증해줄 것을 후대에 요구하는 것이다.

흰 꿈개미

꿈은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인간적인 접근과 별개로, 나는 꿈의 성질이 식물성이라는 주장에 매료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씨앗이 뇌를 양분으로 발아한다. 잠든 인간의 정수리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뿌리가 만발한다. 신체 사지 말초를 향해서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친다. 잠든 인간이 팔다리를 뒤챈다. 꿈으로 꽉 찬 인간의 모습이다.

꿈의 씨앗은 본래 식물의 망령이다. 꿈의 시점이 이상하다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배경은 익히 알던 등교길, 생활관, 회당, 벤치, 승강장이지만 너무 바닥에 가깝거나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감각, 이 감각은 그러니까 외래된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전염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때로 전혀 상상해본 적 없거나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경험해본 바 없는 공간이 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꿈의 씨앗이 ―그러니까 식물의 망령이― 생전에 꿨던 꿈이다. 반복되는 꿈들은 같은 종의 식물이, 아주 튼튼한 식물이, 인간의 의식에 휩쓸려 죽거나 시들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 번성하는 증거다.

식물로서의 꿈의 연구에 가장 훼방이 되는 존재는 물론 꿈의 천적이다. 그것들은 꿈을 속부터 파고들어 인간이 꿈을 잊고 피로감만 느끼게 만든다. 병든 꿈이 무의식 아래로 침잠하는 광경이 꿈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한때 익충으로 개량해 악몽을 먹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좇는 것이 꿈 그 자체보다는 꿈에 배는 인간의 정서인 바, 무용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악몽에 스미는 인간의 정서는 주로 공포, 후회, 열패감, 무력감 등인데 이런 것들은 전혀 달콤하지 않기 때문에 개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소리생물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빛이 있으라, 라고 한 다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도 있으라, 하고 덧붙였다. 번개가 친 다음에야 천둥소리가 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물론 농담이다.

빛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빛이 생명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빛이 생명을 번성케 하고자 하는 의지같은 걸 갖고 있으리라는 착각 또한 금물이다.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어하는 청중이 보인다. 그렇다면 소리는 살아있습니까? 모든 소리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따금 그것들 중 죽지 않는 개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살아있는 소리는 살아있지 않은 빛보다 우월합니까? 이런 건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소리가 어떤 조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여기서는 소리생물에 대한 논란보다는 지금까지 관찰, 보고된 바만을 다루기로 한다.

죽지 않는 소리는 음의 주광성을 띠고 잽싸게 어두운 곳으로 도망친다. 그 상태에서 일체의 생리활동, 즉 섭취하고 배설하고 활동하고 수면하는 등의 활동 없이 주변에서 완전히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버틴다. 구전된 바에 따르면 30년 된 소리생물이 발생한 장소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더 오래 버틸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소리생물들은 번식의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몹시 희귀하여 동종의 개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소리생물들은 대개 생식능력이 없다. 노새처럼.

소리생물들의 최후에는 사망이라는 말보다 소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그들의 소멸은 생물이 아닌 소리들의 방식보다는 작은보호탑해파리나 해삼과 같은 해저생물들의 방식에 가깝다.

소멸 직전의 소리생물들은 인체에 침투하려는 습성이 있다. 약간 성가실 수는 있으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1781-1868)는 소리생물을 관찰하고 잡아 가둘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하다가 만화경을 발명했다. 이론적으로 만화경은 소리생물 덫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다른 쓰임새가 더 두드러지는 바람에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희랍어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 형태를 뜻하는 에이도eido에 유리와 거울로 만든 안외 보조도구를 의미하는 어미 스코프scope를 붙인 것이다.

소리생물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19세기에는 이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만화경을 귀에 대고 자라는 처방을 주는 경우가 흔했고, 실제로 이 처방은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지남

자석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지남철指南鐵이다. 남쪽을 가리키는 광물이라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남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남쪽을 가리킨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방위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뇌과학에서는 지남력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현재>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은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공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인간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정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나?) 여하간 이런 개념들을 대략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제법 철학적인 명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별 것은 아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에게 다음 질문을 하는 의도와 같다.

1. 환자분,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세요?
2.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세요?
3. 환자분, 본인 이름 기억 나세요?

지남력을 영어로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고 한다. 입문교육식 따위를 뜻하는 오리엔테이션과 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입문교육으로서의 오리엔테이션은 새 집단/프로젝트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를 재학습하는 과정이므로.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오리엔스oriens로 보인다. 오리엔스는 동쪽, 동방, 태양이 뜨는 방향 등을 의미하며, 익히 알려진 오리엔탈oriental의 어원이기도 하다. 지남력이라는 어휘에는 남쪽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어휘에는 동쪽이 들어있는 셈이다. 각 어휘를 만든 문화권이 어떤 방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

자석을 지남철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지남의 능력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석 자체가 지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그것도- 지혜로운 광물이라고, 옛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은 높은 온도로 가열하거나 세찬 충격을 가하면 지남력을 잃어버린다. 같은 일을 인간에게 행하면 인간도 십중팔구 지남력이나 생명을 잃는다.

지남력이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므로, 지남력을 가졌다는 사유만으로 자석들을 생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석들이 살아있다 믿었던 옛 사람들에게 현대의 전자석을 보여주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이 인간이라면 전자석은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여우

고향에 개를 많이 키우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학교 앞에 살았다. 학교는 야산 중턱에 있었고 노파의 집도 그 근방 비탈 어디쯤이었다. 학교가 향교였을 때부터 그 근방에 살았다고 했다. 본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따금 그 노파의 심부름을 했다. 하관이 길고 코가 높고 양쪽 눈이 서로 다른 농도로 흐려져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나운 인상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꾸지람을 하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거절하지 못했다. 심부름의 내용은 주로 담뱃집 할머니더러 인편으로 (물론 그것도 내 역할이다) 이런 저런 약을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잡화점을 다들 담뱃집이라고 불렀다.

노파는 눈도 나쁘고 건강도 썩 좋지 않아 담뱃집에 오가는 일이 힘에 부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보름에 한번 꼴로 악을 쓰며 나를 찾는 무서운 노파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노파의 집은 진흙 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었고 TV와 이불이 있는 방 한 칸을 빼면 모든 공간이 뚜렷한 용도 없이 어지럽혀진 채였다. 세간도 얼마 없는 집이 그렇게 너저분했던 까닭은 물론 개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노파의 개들은 매우 빨리 크는 편이었고 노파는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언제 보아도 개들은 절대로 <너무> 많아지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파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 노파의 집에 남은 개들은 마을 노인들이 나눠가졌다.

마을에서 어떤 노인이 안 보이게 되면 모친에게 까닭을 묻곤 했다. 모친은 거의 매번 서울로 갔다더라고 대답했다. 개 키우는 노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고 모친이 내게 캐물었다. 노파의 마지막 심부름을 한 게 그 한달 전쯤이었다.

그날은 노파의 집이 무척 조용했다. 노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귀가 어두운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노파는 거의 고함을 치듯 이상한 개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한 개가… 이상한 개가 있다. 이상한 개 말고는 없다.

나는 심부름을 하러 그 집에 간 것이었다. 노파는 언제나 이상했고 개들도 언제나 그랬다. 노파는 정신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담뱃집 할머니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해라, 하고 나를 내보냈다.

나오는 길에 어두운 부엌 쪽에서 한 쌍의 안광을 봤다. 노파의 개들은 늘 집 이 곳 저 곳에 아무렇게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그날 담뱃집 할머니에게 노파의 소식을 제대로 전했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는 내가 졸업하고 삼년 뒤에 폐교되었고 노파의 집도 지금은 흉가가 되어 있다. 그 근방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뱀 여자

그러나 어떤 뱀들은 여자다. 어떤 여자들은 뱀이기도 하다. 스스로와 불화하는 여인들을 뱀이라고 부르자. 뱀이 말한다.

중국의 창세신인 여와는 여자 뱀이었다. 여와는 흙 묻은 새끼줄을 휘둘러 인류를 만들었다. 구전이나 벽화에서 여와는 남매인 복희와 허리 아래가 얽힌 뱀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여와는 그런 자기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지었다고 한다. 하반신의 레퍼런스는 어디서 찾았을까?

인도의 신전에도 뱀들이 산다. 반은 인간, 반은 뱀, 남성형은 나가Naga, 여성형 나기니Nagini라고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빌런인 볼드모트의 반려동물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맹독을 지닌 뱀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뱀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의 설화나 신화에서 뱀은 인간을 해치는 무섭고 요사한 존재로 그려진다. 드물게 제주에서 뱀에 대한 신앙의 흔적이 발견된다.

한편 영물들에게서 뚜렷한 성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가령 여우는 주로 여성으로 그려지고 뱀은 대체로 남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성별을 결정짓는 요인은 주로 그들의 대목적이다. 여우의 소망은 인간이 되어 인간 남성과 결혼하거나 인간 남성의 간을 죽을 때까지 빼 먹는 것이다. 이 소망은 여성적인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뱀의 소망은 오래 살아서 용이 되어 승천하거나 때마다 처녀를 진상받는 것이다. 또한 이 소망은 남성적인 것으로 믿어져 왔다. 여우는 오래 살아 구미호가 되고, 뱀은 오래 살아 이무기가 된다. 오래 산 여우 중에 수컷은 없었을까?

이무기가 된 뱀 중에 암컷은 없었을까?

물론 암컷 뱀들은 이무기가 되기 어렵다. 원수를 갚다가 죽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인간이 가족을 활로 쏴 죽이면 당연히 앙갚음을 해야겠지만, 그러다 자기도 죽고 마는 것이 한국 여자 뱀들의 서사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육부육에 관한 주석

서양 전래동화 중 생강과자 인간(The Gingerbread Man)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공들여 인간 모양으로 만든 생강과자가 화덕에서 달아난다는 내용이다. 과자가 달아나는 이유는 물론 잡아먹히고 싶지 않아서다. 과자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이 부리는 가축들로부터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다. 가축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을 만든 인간의 지력과 신체능력까지도 능가한 것이다. 일종의 호문쿨루스 또는 골렘이라고 볼 수 있다.

연금술사들은 그 이름처럼 금을 만드는 기술만을 탐구한 것으로 오해받곤 하는데, 사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것이었고, 비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것은 현자의 돌에 깃든 기능 중 하나였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사실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현자의 돌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인간을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 기능을 가진 물건을 만들면 필연적으로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삽시간에 손바닥 위에 황금이 쌓일 것이다.

즉 현자의 돌은 생명의 돌이었고, 연금술사들의 오랜 숙원은 또한, 여자의 몸 밖에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호문쿨루스 제작과 현자의 돌 발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살아있는 작은 인간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면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고, 생명의 비밀에 접근하면 현자의 돌을 만들 수도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현자의 돌을 일단 만들기만 하면, 인간을 불로불사의 존재로 바꾸어주는 그 무한한 생명력을 활용해 호문쿨루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때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거의 무가치하다 여김받는 것, 주로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인 흙, 불, 물, 공기를 이용하는 것이 대원칙이었으며 그것을 마테리아 프리마(Meteria Prima), 제1물질이라 일컬었다.

이들 전제를 바탕으로 다음의 가설을 상상할 수 있다.
1. 밀가루를 마테리아 프리마로 한 연금술 실험이 실제로 있었고, 구전을 통해 동화로 가공된 결과 생강과자 인간 이야기가 탄생했다.
2. 1의 가설을 사실로 가정할 때, 실험의 결과가 상당히 고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를 활용한 실험과 관련된 연금술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연금술사들조차도 “먹을 수 있는” 인형을 금단의 존재로 여긴 듯하다.

2016년에 러시아의 한 유튜버가 호문쿨루스 창조 실험 영상을 연재한 바 있다. 그가 마테리아로 삼은 것은 달걀과 정액과 시간뿐이었는데, 이미 썼듯 마테리아 프리마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연금술사와 연금술이 늘 함께 있음을 생각해볼 때 인간의 정액은 나쁘지 않은 재료일 것이다. 또한 계량하고 혼합하고 정제하고 가열하는 일련의 과정이 주방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재현됨을 상기하면 뛰어난 연금술은 결국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연금술사들은 오랫동안 요리와 연금술의 유사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해왔는데 그것은 이런 까닭으로 추정된다. 그들에게 있어 요리란 여자들의 일이고, 그들은 꼬리를 삼키는 뱀을 연금술의 상징으로 여기어 숭상하는데, 창세기에 따르면 여자와 뱀은 영원히 원수지간이다.

2017년 4월 30일 일요일

육부육

가령 밀가루로 작은 생물을 본뜬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움직이고 눈물도 흘린다면 그건 고기일까 아닐까. 아예 인간 모양이라면 어떨까, 제발 날 먹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밀가루 인형을 깨무는 건 식인일까?

조선 후기 문인인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에는 입맛이 까다로웠던 권력자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당대의 한 세도가가 음식으로 사치하다 망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近聞一勢家作湯餅,如孩兒五官四支無不具焉,匪久敗滅云。근래에 한 세도가에서 떡국을 만들면서 사람의 오관과 사지를 모두 구비한 어린아이 모양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멸망하였다 한다. (청성잡기 제3권)


오관은 사람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눈, 코, 입, 귀, 피부를 말한다. 그 집 떡이 얼마나 정교한 어린애 모양이었을까를 상상할 수 있겠다.

기록된 인간 모양 조소 작품들은 대부분 강한 종교적, 제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 모양으로 빚은 떡은 밥상보다는 무덤에 더 어울렸을 것이다. 진시황릉에 도열한 토우 병사들같이. 주인이 아플 때 환부를 부수기 위해서 공들여 만들었다는 조몬 차광기 토우같이.

그러고 보면 식품을 인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든 사례 자체가 이상하리만큼 드물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인간> 모양을 만들자면 곡물을 빻고 뭉쳐 주무르고 가열하는 방법이 가장 쉬울 테고, 그러면 아무래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식감 상으로도, 정말로 인간을 먹는 듯한 불쾌한 기시감이 들 것이다.

다만 터부들이 늘 그러하듯 그것을 교묘하게 비튼 유사한 시도는 오히려 환영받는다. 흰 초콜릿을 입힌 반구 모양 과자에 분홍색 장식을 올린 요리가 유럽의 왕실들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요리의 이름은 비너스의 젖꼭지(Téton de Vénus)다. 지역에 따라 과자 대신 고기 완자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마리아의 아들은 떡을 떼고 포도주를 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내 살과 피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다음 순간에는 호빵맨을 떠올리게 된다.

2017년 4월 6일 목요일

박물지 서문

박물은 얇아서 박물. 많아서 박물.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백과사전에 없는 말을 찾으면 어지러워졌다. 어지러워지는 게 좋아서 자꾸 모르는 것을 생각해냈다. 질문 있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늘 같은 말로 대답한다. 제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는데요.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옳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견을. <사실>도 아닌 <의견>을. 좋은 것은 좋아서. 싫은 것은 싫어서. 재미있는 것을 상상하고는, 그게 실재하지 않는 게 아까워서 사실인 척 끼워넣기도 할 거다.

자의적으로 작동하는 책임 의식과 그럴싸하게 반짝거리는 모조 과학으로, 씁니다, 박물지,

그건 아마 멸절당한 족속의 윤리일 거야―박물학자라는 작자들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아는 박물학자들은 다 죽었으니까 너 같은 건 박물학자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이제 없다. 정말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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