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8일 일요일

신성 2

신은 자신에 대한 저주를 양분으로 권능을 키워간다. 그러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증오하게끔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기의 신은 성질이 급해 무지막지한 자연재해를 일으켰다. 그 결과, 모든 생물체는 사라졌다. 죽어 있는 것은 어떠한 감정도 품을 수 없었으므로 신의 권능은 일거에 사라졌다. 자기 몸 하나 지킬 정도의 초라한 권능만 남았다. 그로부터 오랫동안 빙하기였다.
 
신은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단세포동물을 만들고 그것을 어렵사리 조합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신은 견뎠다. 공허의 상태란 신에게 있어 일상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신은 한 땀씩 정성스레 아메바를 빚었다. 아무 생각도 할 줄 모르는 그들을. 생각을 불어넣는 것은 신의 권능 바깥의 일이었고 신다운 일이 아니었다. 신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지, 게임을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신은 자신을 향한 찬양의 말이 부담스러웠다.
자신을 숭배하는 행위가 역겨웠다.
 
그것을 겨우 견뎌내면서
 
신이 오랫동안 공들여 빚은 것은 아주 작은 형태의, 거의 최소한의 형태의 불행이었다. 그것은 질병이기도 하고 시기심이기도 했다. 신은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다. 유토피아란 오로지 피조물만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신은 몇몇 인간을 랜덤으로 택해 자신의 환영을 아주 약간 보여주었다. 그것이 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신은 이 게임을 진심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신은 아름다운 게임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지 않는 게임, 어떻게든 승리하는 게임을 신은 원한다. 그러니까 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자들이여, 세계의 모습은 신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당신이 하느님 개새끼라고 외칠수록 이 세계는 경이롭게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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