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0일 수요일

양양성

이곳의 명물은 해자다. 멀리서 보면 호수 가운데 놓인 작은 섬으로 오인할 만큼 해자가 방대하다. 또 해자는 깊은 데다가 여기저기에 식인 인어까지 살고 있어서 당신은 결코 그곳을 헤엄쳐갈 수 없다.
 
양양성은 천연의 요새다.
 
성과 연결된 길은 하나인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폭이 좁다. 당연하게도 마차라든지 지프차라든지 그 외 네발바퀴가 다닐 수 없다. 성내에는 바이크 숍이 곳곳에 있다. 단일 품종이다.
 
양양성으로 물자를 운송하려면 목우유마에 실어야 한다. 통관 절차 또한 복잡하다. 양양성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또 이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양양성은 한 차례도 함락된 적이 없기에 이와 같이 드높은 긍지는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재수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곳에 잠입한 적이 있다, 그것도 한낮에
 
물론 나 하나 잠입했다고 해서 양양성의 판세에 변화가 있었을 리는 없다. 나는 단지 그들이 상처받기를 원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해자에 미세한 염증이라도 생기기를 바랐다. 식인 인어들마저 슬픔에 겨워 식음을 전폐하기를 기대했다.
 
내통자가 있었나?
 
양양성에서 태어나서 양양성에서 평생을 살다가 양양성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글쎄. 내통자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식인 인어라고 해서 피아를 식별하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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