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7일 수요일

하비성 1

지금쯤 성 안은 물바다가 됐을 것이다. 어디까지 차올랐을까, 무릎? 허리? 아니면 그 이상?
 
음평의 둑을 무너뜨린다는 발상은 더없이 악마적인 것이었다. 그 거대한 둑을 부수는 작업 자체의 지난함은 둘째치더라도, 그것이 방류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휩쓸며 지나갈지는 직접 해보지 않아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나라 하나 크기의 댐.
 
용맹한 지원자들이 둑을 부수겠다고 나섰다. 부순 직후 본인이 가장 먼저 수장될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말해도 그들의 뜻에는 변함이 없었다.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승리를 바랐던 것일까? 하는 질문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소대장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소임이 있었다. 우리가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왜 따라야 하지? 와 같은 질문 역시 던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의문이라면 집에 돌아가 몰래 품으라고 못이 박히게 들었다. 이 역시 상관이 한 말이었지만 그대로 하니 마음만은 가라앉았다.
 
그래 마음만 가라앉으면 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최신식 병장기가 동원되었다. 나는 무리를 이끌고 음평의 언덕으로 갔다. 사흘째 밤, 작전은 성공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수마에 물들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분명 무더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명백한 방향을 두르고 흘러가고 있었다. 남서쪽의 성, 하비로.
 
방류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말에 올라타고는 나 역시 홀린 듯 하비성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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