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3일 수요일

희성

후인정을 기억하는가? 기억 못 해도 할 수 없다. 이제부터 기억하게 될 테니까. 그럼 시작하겠다. 후인정은 현대 모터스 소속의 농구선수로, 1990년대 농구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니고 조연의 조연쯤 되는 인물이다. 슬램덩크 성우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전문 성우가 아니었으므로 대사는 감탄사 하나였다.
 
... 크흑
 
그래, 이거였다. 어떤 캐릭터였는지, 어느 농구부 소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 크... 크흑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고저가 불명확한 음성이었고 왠지 불안에 찬 음색이었으며 막 가래를 뱉고 나서 내뱉은 탄식 같았다. 자연스럽지 않았단 말은 아니다. 몹시 자연스러웠다. 더빙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이 크... 크흑을 특색 있게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드는 의아함은 다음과 같다. ... 크흑은한국어인가?
 
한글 자판으로 쓰기는 했지만 한글 자판으로 썼다고 해서 그게 한국어인가? 그럼 스페이스 바는 뭐지?
엔터는? 물음표는?
 
이와 같은 생각을 이어나갔다. 후인정의 트레이드마크는 양손드리블이었다. 그에게는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가 없었다(나 역시 양손으로 타이핑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했다. 나는 그것이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그의 이른 은퇴도 그를 완전히 잊게 만들지는 못했다. 은퇴 후에는 배구 선수가 되었다가 다시 마술사가 되었다. 아직 자격증을 따지는 못했다고 들었다.
 
후인정은 지금 노인정에 있다. 그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