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5일 수요일

"서정시"-북쪽 답사를 권함

당신께.
겨울에는 고구려 성에 가볼 것을 권합니다.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 당신이 갈 수 있는 곳까지. 북으로 갈수록 눈밭일 겁니다. 어쩌면 너무 낯설거나 한가한 제안인가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석축의 둘레가 크지 않고 도처가 붕괴되었으며 축성 시 기도 알 수 없는 몇 채의 성을. 사방에서 피로한 공격을 받았으나 훼손된 채로 하던 일을 고 스란히 계속하는 성들을 알고 있으시지요? 당신의 삶도 퍽 그러하시지요?

해가 저물 무렵 가보십시오.
자유로를 따라 북으로, 북으로! 달려보십시오.
라디오를 켜면 지역 방송이 잡힙니다. 가끔 약한 신호, 소리가 물에 잠긴 듯 눌려 있으나 이마저도 눈보라 치는 소리 같은 것입니다. 라디오니까요! 그것도 바람 속을 시원하게 달리는 차 속의…

한참을 달리면 〈아! 고구려〉 간판과 만날 겁니다. 주말에 가신다면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 인들이 가족과 함께 〈한탄강 오두막골〉이나 〈아우라지매운탕〉 〈망향비빔국수 본점〉 같은 델 가고 있습니다. 민물매운탕이나 가물치구이를 드셔보셨거나 좋아하세요? 선의로 들르시거나 마음대로 지나쳐 가십시오.

막상 도착하면 그저 작은 언덕일 겁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유속이 느려지는 여울목 에 세운 삼각형의 낮은 보루일 겁니다. 세상은 사람과 건물로 꽉 들어차 있는데 거기만 평지 에서 휙 솟아서 돌출된 고공을 얻습니다. 찬 바람이 강합니다. 살을 에는 밤, 당신이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면 잔뜩 얼어서 빛나는 별이 보입니다.

한국의 겨울 새들이 날아갈 겁니다. 우는 소리로 당신의 귓속을 채우지 않고 유유히 브이 자로 날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일하고, 사람들 하고 살다가 기어이 억울하면 거기 가보십시오.

책장에서 『한국의 새』라는 책을 꺼내어 보여드릴게요. 흰 이마를 가진 기러기부터 드물게 관찰되는 줄기러기까지, 겨울마다 한반도로 돌아오는 기러기의 생태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추우면 추울수록 반드시 돌아오는 그 새가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해 목적지를 정한다는 이야기. 당신도 당연히 좋아하실 겁니다.

쇠락한 지 천삼백년이 지난 고구려 성들은 점점 망가지고 있는 우리를 묶어줄 겁니다. 성곽 아래엔 죽은 고구려 사람들이 누워 있어서 혼자 여행하더라도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지요. 최근엔 조선 왕실의 행사를 그린 도록을 뒤적이다가 1828년 6월 1일 초연됐다는 고구려 춤 기록을 보았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고구려」를 바탕으로 연행한 춤이라지요. 이백은 금으로 꾸민 꽃을 매단 모자를 쓰고 백마에 올라 머뭇거리는 고구려 유민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넓은 소매를 휘날리며 춤추는 모습이 꼭 고구려에서 날아온 새 같았답니다.

“무용수 여섯이 나와 선다. 이백의 「고구려」를 노래한다. 여섯 명의 무용수는 둘씩 서로 상대하여 춤춘다. 등지기도 하고 마주보기도 하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고, 돌면 서 춤을 춘다. 춤을 마치면 물러나 퇴장한다.”


이제는 무너진 성에서 계속되는 춤을 떠올릴 수밖에요. 조각난 기와, 소, 말, 개, 노루의 뼈, 탄화된 곡물, 발이 세 개 달린 벼루, 커다란 밥공기, 흙으로 빚은 북, 화살촉, 금동불상, 저울 추 같은 것들이 출토되었고, 지금은 도로 묻어 풀밭이 되었다는데요,

나는 죽은 이들이 꼭 으스스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영가들이 구름 신발을 신고 무너진 성벽을 타며 춤추는 상상. 그들을 만나러 가는 우리. 생각만 해도 경쾌하지요. 나는 한 없이 어두운 마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밝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툭 끊기고, 갑자기 오래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오 면 당신은 모르는 채로 계속 들으시지요? 너무 오래되어서 긁힌 듯한 잡음만 기억에 남아도 전혀 괜찮으시지요?

한탄강처럼 이렇게 흘러가도 좋은 삶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진행자는 바뀌어 당신은 침착한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북쪽의 고구려 성에 다녀오면요.
그리고 다시 안부 전해주십시오.

당신을 아끼는
김깃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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