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징후

 

비가 올 것 같은데, 네가 말한다. 나는 우산을 챙긴다. 화창한 날이다. 비를 기다리는 중이다. 시간이 흐른다. 

2025년 6월 7일 토요일

산불

산에서 불이 났다.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산으로 간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구조를 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불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면서. 나도 불이 싫지는 않다. 헬기가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다시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불은 고요하다. 불은 아무런 동요도 없다. 나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구조를 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연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여기 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여기요. 마음 속으로 외친다. 불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날아와 왜 거기 있냐고 묻는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불이 싫지는 않다. 불이 깨끗하게 나무를 지우고 깨끗하게 나방을 지우고 깨끗하게 풀을 지운다. 깨끗하다. 나도 깨끗하게 지워질 것이다. 불이 번져서 다른 산으로까지 번진다. 나는 아이를 깨끗하게 지운다. 나는 이런 날씨를 너에게 주고 싶지 않다. 헬기가 물을 퍼오다가 말고 생각에 잠긴다.

2025년 6월 6일 금요일

현충

뭐 했는지도 모르게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이제 교정공이 아니다. 의료 대란에 의한 경영 악화로 3대 사장님과 작별. 나 좀 잘라줬으면 좋겠다 좋겠다 했는데 올 것이 온 것이다. 그 회사에 남은 실무자는 둘뿐. 건투를 빌며 나왔다. 월요일에는 실업급여를 타먹기 위해 고용노동청에 다녀왔다. 예비군 훈련도 이따위로는 안 하겠다고 생각하며 집체교육인지 뭔지를 받았다. 내가 이제껏 얼마나 괜찮은 시스템 위에서 얼마나 잘 훈련된 이들로부터 얼마나 상냥한 가르침을 받았는지 지난날의 교육과정을 새삼 돌아볼 정도. 연단에 올라 그저 뭔가를 해야 하니 하고 있는 그 직원-강사에 대해서도 노동자로서 너무나 이해가 된다는 것으로, 아침부터 하해와 같은 모욕감과 동지애와 혐오감이 뒤섞여 만사 우스운 기분이 되었다. 전에 어머니가 무슨 인터넷 강의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좀 틀어달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강의라는 것도 듣는 방법과 내용 양면에서 형편없는 쓰레기였다. 무슨 교수 녀석이 나와 가지고는... 대체 그따위로 누구에게 뭘 가르친다는 건가? 마땅히 쉬워야 할 것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은 마땅히 어려워야 할 일이 쉽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 약한 곳에서부터 이해는 모르는 줄도 모르게 무너진다. 책임이란 배려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배려는 마음보다도 그것의 흔적을, 내가 그쪽으로 가는 역지사지를 가능케 하는 선대의 경사로를 말하는 것이다. 이해는 강물처럼만 될 것이 아니고 파도처럼 시냇물처럼 빗줄기처럼 눈처럼도 되어야 하는데, 이해가 무너진 데 고이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만사의 우스움이고... 꼴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서는 한참 잤다. 당분간인지 앞으로인지 어쨌건 당장은 교정공이 아닌 나의 교정정신도 금방 희미해졌다. 앞날에 암운뿐인데 별 아무 말을 만들고 싶지가 않다. ‘될 대로 돼라’ 상태에 자꾸만 이르러 헛소리를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그리고 다음 날은 대선. 지지 후보의 득표율은 1%를 넘기지 못했다. 기도 안 차는 개소리들과 기가 차는 개소리들의 대격돌을 다시 봐야 하는 것에 가슴 답답.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이론과 실천이... 오늘날의 의식화와 조직화가 필요하다... 다시 오늘날의 지혜와는 무관한, 크나큰 염불 속에서 자고 또 잤다.

2025년 6월 1일 일요일

25년 5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60)
―――


이달의 총격려금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306,023원 (0원 + 305,651원 + 372원)

2025년 5월 22일 목요일

깨우고 사라지기

 

누군가 나를 깨웠는데,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다. 누구였지.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여기가 어디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이 깼는데,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놨는지 모르겠다. 내가 직접 걸어왔을 수도 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고 보니 누군가 이미 사용한 컵이 있다. 내가 마신 걸 수도 있다. 어제는 날씨가 좋았다고 한다. 나는 양말을 빨랫줄에 널고 햇볕에 잠을 자는 비둘기를 본다. 비둘기를 깨우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깨웠는데, 일어나보니 날씨가 좋다. 나는 잠깐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린다. 숨을 돌리는 사이에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리니 아무도 없다.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 자신의 여행기를 친구에게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비둘기가 꿈을 꿨을 수도 있다. 비둘기를 깨우고 사라진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다.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태풍

태풍이 온다고 해서 창문을 닫았다. 이 집은 오래된 집이라 창문이 많이 흔들린다. 창문 사이에 고무 같은 걸 끼우면 덜 흔들리지 않을까.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면. 태풍을 기다리다가 잠이 든다. 태풍을 피해 차들이 유턴을 한다. 거기로는 가지 말라고. 거기는 태풍 피해가 극심한 곳이라고.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거기로 가지 말라고 외친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때문에 나는 잘 듣지 못한다. 뭐라고 했어. 창문 닫으라고. 창문을 닫고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나는 사람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했어요, 방금. 거기로 가면 태풍의 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태풍의 눈이 보고 싶다. 그 눈으로 나를 보고 싶다.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왔는데, 집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었다.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장마를 위한 기도

비가 안 온다니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슬퍼하겠지?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는 마 꼭 그럴 때만

자신의 자리를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라도


폭우에 집이 떠내려가는 꿈을 꾼 아이처럼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이러다가 또 오겠다 


언제나처럼 다분히

희망으로 돌아오고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그럼에도


그럼 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데

돌아갈 곳이 멀리 떠나간 사람처럼  


자꾸 밖을 내다보게 되어서

긴 밤의 기미조차 없어서

말라가는 심장에 자꾸만

달라붙는 갈라지는 말들


이곳에도 금방 비가 내리게 될까 

그곳이 아직 축축하다면


아직 없는 미래라도 함께

나누게 되면 최선이 된대


서로의 기분을 걷어주고

창문을 열어주면서


시절처럼 가벼워지는 우리의 긴 계절

유리창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날씨 하나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믿음이

우리의 슬픔을 대신하면서 


햇빛 사이로 보이는 빗줄기

풍경이 견고해진다


우리는 말없이

기울어지기를 반복했고


계속해서 제자리를 흔들고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천둥과 번개

 

천둥과 번개가 치는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다.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다시 잠을 잔다. 그러고 보니 심장이 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것 같다. 비를 맞으며 걷고 있을 때 나는 잠을 설친다. 번개가 칠수록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지는 것 같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는데 비를 맞은. 비를 피해서 가렴. 너무 높이 날지는 말고. 새에게 작별을 하고 새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는데 새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보지는 못했고, 새의 표정이 궁금해서 기상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안타까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그 사람은 표정이 없었다.

2025년 5월 12일 월요일

지진

지진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유래에 없는 지진이었다. 이제 기상학자들은 기후를 예측하지 못하게 되었고, 출근을 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순간을 목격했고, 두려웠으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하필 지진이 난 순간에 누워 있었으며,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으며, 천장의 형광등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다가 천장이 내 위로 쏟아질 것 같았고, 빨리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꿈에서 깨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2025년 5월 9일 금요일

기둥

 

그런데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갔을 때 그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보았을 때 그건 내가 오래전에 본 건물의 기둥을 연상시켰고, 그런 기둥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얇은 기둥들이 하나로 합쳐져 기둥을 이루는, 마치 나무처럼 보이는 그런 기둥들이 이 천장이 높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과 이 건물은 무엇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으며 무엇이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숨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을 나갈 때에는 건물을 들어설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높은 건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을 들어갈 때 발걸음은 쿵쿵쿵 온 힘을 다해 걷듯 걸었지만 이제 그녀는 최대한 사뿐히 걷기 시작한다. 가끔은 뒤뚱뒤뚱 걸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사뿐히 걷기 시작하게 되면서 그녀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사뿐히 걷는 것의 장점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서 잠든 사람 몰래 집을 빠져나간다거나,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고 방에서 빠져나갔지만 갑자기 잊고 온 물건이 떠올라 다시 들어간다거나, 다시 들어갈 때 잠든 사람이 깨지 않은 걸 보면서,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멈춰 있다거나, 모르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는 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이 잠든 사람을 이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책상에 있는 라이터를 가지고 다시 사뿐히 걸어서 나올 때,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 다시 자신의 걷는 방법의 변천사를 생각했고, 사뿐히 걸어서 지루한 수업에서 빠져나온다거나, 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간다거나 하는 일은 무사히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걷다보면 꼭 꿈을 꾸는 것 같고, 꿈속에서는 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꿈속에서마저 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지 생각하면서, 꿈 속에서 사뿐히 걸어서 빠져나간다.

불면을 위한 거짓말

매일 나의 전생이 끝나지 않는 게 기묘한가요

 

범람하는 희망 사이로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고 뛰어든다 끝이 희박해지는 사진처럼 다시 내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이어서 내게는 나를 가리는 내가 가득하다 이 중심은 나를 멈춰 세우려다 나와 좁혀 세워진 것이고 침묵이 아픈 밤을 지새우면


거짓말같이 닫혀있는 내가 탄생한다 아닌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방식으로

 

커튼을 걷으며

바닥을 깨우며

점점 희박해지는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며

 

쇠락을 약속하는 날에는 결국

죽어가는 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길어지는 그림자에 몰입한다면

무한히 많은 뒤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나의 궤도를 만져봐야지

 

출발하는 동시에 사라지고 싶으니까

흔적을 매듭짓고 투명해지는 얼룩처럼

 

나는 그러다 어떤 책을 떨어뜨리고


낯선 페이지가 온다

조용히 자라났던 진심을 돌려주기 위해

 

2025년 5월 7일 수요일

베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보를 새것으로 바꾼 것이다.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고 이불 커버를 벗기고 베개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 보호하는 커버까지 벗기고 다 세탁기에 돌릴 것이다. 덧니였는데. 덧니가 어딘가에 있었는데, 노란 덧니까지 세탁기에 다 넣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인데, 두 번째로 한 일은 창문을 연 것이다. 여기 어딘가에 다른 사람 냄새가 있다. 창문을 연 뒤에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리를 내려다본 것이다. 뒷모습을 본 것이다. 새 이불을 덮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그런 뒤에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네가 같이 간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세탁기를 돌리고 덧니 같은 게 세탁기에서 나오면 잠시 웃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2025년 5월 6일 화요일

오물분수

오물분수야, 너는 붙잡은 잠을 놓치게 한다. 세상의 찌꺼기들 그러모아 천국 향해 솟구친 뒤 엊그제의 속마음처럼 박살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울컥거리는 폭주는 언제나 즐거울 거야. 최대한 움켜쥐고 있던 건강이나 미래와는 무관하게, 내 안으로 안착하는 너의 물줄기에는 삶의 분변 덩어리가 거대한 발사체처럼 자리 잡고 있고

빛을 등진 영혼의 파편들 짊어진 채 아래로 쏟아지며, 지체 없이 흐르고 있다.

계속해서 작동하는 잡동사니 마음들에 24시간 하방 압력이 커지는 것을 오래 견디고 있다. 이를테면 대형종 난초를 지탱하는 화분 속 돌멩이의 무거운 정적부터, 작은 어미 문조가, 자기보다 더 작은 새끼를 키우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내가 들을 수 있는 어떤 주파수의 오물에서도 함부로 살 만한 냄새가 난다.

그렇게 살다가도 죽어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자연이라며—

오물분수야, 너는 쏟아지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새롭게 쏟아지고, 죽는다.

2025년 5월 4일 일요일

젠가

저것은 우리들이 쌓아올린 젠가일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말했다. 「저것은 말이야.」 너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밤하늘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아래로 감긴 천사의 속눈썹 같기도 해.」 그렇다면 참 거대한 천사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도회지의 밤하늘 밑 여기에 누워 있었다. 너는 저 속눈썹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천사가 웃고 있는지 아니면 울고 있는지, 무표정한지를 알면 속눈썹이 어떻게 움직일지 또한 조금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천문을 보는 능력이라면. 「있잖아.」 너는 조금 별개의 단락으로 나뉘는 식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저것은 젠가일지 몰라. 놀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건드려서 빼내는 거야. 그러려고 완성했겠지.」 마치 속눈썹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일과 같군. 나는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그게 우리들이라는 거야?」 「아니, 우리들이 쌓아올린 젠가라는 거지 저 젠가를 쌓아올린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는 공들여서 생각한 뒤에 말했다.「아닐 수도 있겠지.」 「그렇겠지.」 저기 네가 갖다놓은 사다리가 보였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였다. 타고 올라가면 무게중심 때문에 넘어갈까봐 걱정되었다. 깊은 우주에서 굴러떨어지는 일. 나는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성좌가 되는 일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있을 수도 있지.」 「맞아. 그럴 수도 있어.」 「젠가는 무너지고 사다리는 기울지. 거기 매달려 있던 것들은 모두 다 떨어지고 말아.」 그렇다면 저 천사가 눈을 감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속눈썹이 강조되어 보이는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저 천사가 눈을 뜨는 순간이. 「젠가가 무너지는 타이밍이 아닐까?」 너의 말에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사다리를 갖다 놓은 이유를 알겠다. 「우리가 무심코 습관적으로 저 젠가처럼 보이는 하늘에서 배들을 하나씩 빼내고 있었단 말야.」 그 배들은 하늘을 조립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가 빠지면 하나를 넣어줘야 한다. 안 그럼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큰일이지. 「그런 생각을 했어.」 「하늘이 무너질 거란 생각?」 「응.」 너의 불안이 너를 눈 감게 만든다고 해도. 「저 천사가 눈을 뜨는 일은 우리가 늙을 때까지 볼 수 없을 거야.」 그렇겠지. 에필로그인 마을이 왼쪽에 보였다. 저 사람들은, 저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어떤 이야기를 겪고 난 후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안온하고 또 적요롭다. 그런 일상을 사는 게 난 부럽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정신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복도에서 빛이 멀리까지 나아가는 것도.」 재밌는 것의 일부다. 「새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도.」 재밌는 것의 하나다. 「어느 한 부분의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것도.」 재밌는 것의 일종이다. 「도둑을 염려하는 것도.」 우리 생활의 구성물이다. 그것들을 하나씩 젠가처럼 빼내면 어떨까? 저 하늘이 갑작스레 무너지듯 생활이 산산조각나면. 다시 이야기는, 이야기는 시작되고. 그 때가 저 왼쪽에 있는 에필로그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다시 나설 때인 거겠지. 이야기를 겪은 사람들은 저 천사를 지상으로 끌어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감각으로 말이다. 저 아이는 신발 끈을 묶지 못해 현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저 아이도 어떤 멋진 이야기의 에필로그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곧이어 확신이 없어졌다. 「대단원의 막이라는 젠가 피스는 그렇게 생겨나선.」 「응.」 「그걸 빼낸다면 말이야. 에필로그란 게 세상에서 없어지면 말이야.」 그렇게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냥 저 물속에서 빛의 알갱이들이 원랜 있었다가 없어진 정도로. 저기에 사다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다리는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곧 쓰러질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영향만이 세상에 남게 되는 것일 수 있지. 별일은 아닐 수 있고, 그 작은 일이 정말 큰일일 수 있는 그런 세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 그런 것 같다. 저 밤하늘은 그렇게 우리들을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쪽에 가담할래?」 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세상을 젠가로 보는 집단에 말이야. 꼭 집단까진 아니어도. 안부를 묻거나 하는 대신 있잖아, 같이 놀고 싶었어. 저 천사가 저렇게 눈을 뜨고 있기 전까진 말이야.」 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밤하늘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에 양옆으로 따옴표를 쳤다. 천사의 속눈썹이 무수히 떨어지고 있다는 말에 다시 양옆으로 따옴표를 쳤다. 그런 식의 이야기가 누군가들이 쌓아올린 젠가로 무너질 때에 나는 궁금함이 생겼다. 저 속눈썹들이 지상에 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눈처럼 녹을까? 나는 눈 뜨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외에 누워 있기엔 추운 겨울이었다. 「눈 온다!」 네가 그렇게 소리쳤고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군. 나로 인해 따듯하길 바라. 「젠가를 망친 벌이야.」 필연적으로 젠가는 망쳐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망친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니 젠가를 한 너희들이 벌이야. 「이게 벌이야?」 웃고, 또 웃는구나. 눈이 와서? 젠가가 무너져서? 사람들이 파하고 난 뒤 나는 여기 누워 있었다. 아 아까 했던 젠가 재밌었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누워 있었다. 이게 세기말의 에필로그인가보다. 「그럼 안녕.」

2025년 5월 2일 금요일

4일간의 휴일

 

 4일간 휴일이 생겼다. 노동절인 5월 1일을 포함해서. 사람들은 4일간의 휴일 동안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운다.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바다가 있는 북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볼까. 아니면 근교의 xx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도시를 방문해볼까. 4일간의 휴가가 생기자 모두 관광객으로 변신한다. 

너는 바쁘겠지.

4일간의 휴일이 생긴 뒤에 세상에는 바쁜 사람과 안 바쁜 사람이 생긴다. 

너는 그래도 즐겁게 일을 하겠지. 

너는 사람들과 잘 지내니까.

너는 네가 실패했다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여름에는 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려는 계획을 하고

너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겠지.

너는 빵을 사러 오는 관광객들에게 싫은 표정 짓지는 않겠지.

너는 예의가 바르니까.

나는 늦잠을 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물을 마시고 

너는 일찍 일어났겠지. 새벽에. 빵을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 

나는 4일간의 휴일 동안 밀린 편지를 쓸 예정이다.

 

25년 4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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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305,651원 (0원 + 305,280원 + 371원)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잠을 위한 쓸어내림

너의 밤은 잠들어 있다 나는 잠과 거리가 멀어서 너의 뒷모습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너는 온전히 잠들지 못해 내 손길은 끝없이 머문다 끝없이 쓸어내리다 보면 없던 빈틈도 생기게 된다 악몽을 꾸는 너의 머리카락이 나의 손가락을 움켜쥔다 너의 깊이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의 잠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말은 잠들어 있다 네게 무슨 꿈을 그렇게 꾸냐고 물어보지만 너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그래도 침묵을 흔드는 것처럼 나는 계속 너를 쓸어내린다 그래도 너를 쓸어내릴 때마다 너의 꿈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마음의 틈새가 벌어진다 아직 내가 없는 미래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꿈은 잠들어 있다 그곳엔 바다가 넘쳐나고 아무런 맹세도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너는 치즈를 먹고 와인을 흘리고 수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너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름과 말들이 모호해진다 대화도 금방 오겠다는 약속처럼 흐트러진다 나는 그 물결에 내가 손을 담가보려 하지만 너는 계속해서 멀리 헤엄쳐 간다


내가 다가갈수록 네 바다가 나를 밀어낸다 너로부터 끝도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다 한 것 같다 아무리 쓸어내려도 우리의 어떤 말로도 메울 수 없는 빈틈이 계속 나온다 이런 말을 해도 너는 응응 하면서 따듯한 이불로 다정한 뒤척임으로 나의 두려움과 우리를 덮어버리지 혼자 먼저 잠들어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미워 하지만 사라지고 싶다고 후렴처럼 말하는 나의 버릇이 사라지는 그런 밤이, 그런 잠이 계속해서 나를 네 곁에서 배회할 수 있게 한다 가끔은 계속해서 잠들어 있을 뿐이라도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 견학단 모집 ―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25년 5월 1일 목요일 낮 12시
서울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앞



행사의도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를 맞아, 곡물창고 이용자들(필자/독자/관리인)을 대상으로, 어쩐지 가보고는 싶은데 딱히 핑계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드나듦이 자유롭고 홀가분한 견학단’을 조직합니다.


참가자격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예비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산업예비군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불안정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사실상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의 친구/가족/동료
· 위 해당자의 일행


25년도 노동절 대회 견학 포인트

· 혼돈으로 빠져드는 세계 정세 속 한국의 노동운동
· 진행 중인 투쟁 현안들의 공적 의미
· 조기대선 앞 노동계의 대응 향방
· 응원봉 집회 이후의 노동절 집회 문화 탐방
· 서울 시내 투쟁 현장 방문 행진
· 곡물창고 핀버튼(비공식) 선착순 증정


프로그램

· 12시 시청역 9번 출구 집결(주최자 주황색 가이드 깃발)
· 12시~ 부스 구경 및 끼니 해결
· 2시 반부터~ 세계노동절대회
· 3시 반부터~ 행진(명동~을지로~정부서울청사)
· 5시 마무리
*구체적인 장소와 프로그램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

· 개인 식수, 간식 등
· 길바닥에 그냥 앉아도 되는 옷, 엉덩이 깔개 등 앉기 대책
· 걷기 편한 신발, 활동성 있는 복장 등 행진 대책
· 손수건 등 개인위생 대책
· 비옷, 우산 등 강수 대책


주의사항

· 곡물창고 관련 기획 일체 없음
· (원한다면) 간단 손피켓 제작 재료 선착순 제공
· 지하철 이용
· 뭘 따로 하자고 하지 않음(최소화된 가이드를 원칙으로 대회의 큰 흐름에 맞춤)
· 단체 가입, 종교 권유, 여타 부담스런 개수작을 금하고 상호존중 및 배려 원칙에 동의
· 주최자는 모임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책임/무대책(미안합니다)


참고자료

· 민주노총 대회 공지 링크
· 포스터 / 일정
· 부스소개

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좋은 경험

강변을 걷다 보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종이 하나를 줍게 돼

별거 아니야
그냥 종이로 된 운명 같은 거야

처음엔 지도인지, 편지인지 알 수 없는데
펼쳐보면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이지

거기 살던 사람들은
수용성 육체인가봐

흔적도 없이 조용해져 있다
나는 주운 것이 마음에 든다

집으로 가져와서
드라이어로 말려보게 돼

마른 종이 위에서 돋아난 얼굴들이
촛불 켜고 외치기 시작하지

우리는 불을 가지고 물속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물속에서도 불을 피우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종이에서 흘러넘친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말해

하지만 나는 그대로 항복해버리고 싶고

사실 조용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얼마든지 그래도 돼
그렇게 무너지면 황홀하잖아

나는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에 올라
서서히, 함부로 미끄러지는 걸 좋아한다

이다음에도 누가 흘린 종이를 보면
또 집으로 가져오고 싶겠지

아니면 물에 잠긴, 풀어진 나라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종이질의,
얇은 인기척을 듣고 있거나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세계는 소유되지 않는다

관리인, 관리실로 들어온다. 정신없이 서랍을 뒤지고 있는 관을 발견하고 잠시 지켜보다가 묻는다.

관리인 뭐해?

 (화들짝 놀라 손을 감추며) 아니 그...

관리인 그?

 그... 기금을 좀...

관리인 기금? 왜? 쓴다고?

 (바지에 손을 닦는다.) 네. 뭣 좀 만들려고.

관리인 뭘 만들어?

 깃발을 좀.

관리인 뭔 깃발?

 곡물창고 깃발요.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관리인 이번에 자극받았나? 어딜 들고 나가겠다는 거야? 누구랑?

 많죠. 있으면. 앞으로. 많을 거예요. 많아요.

관리인 그래? 근데 서랍은 왜 뒤져? 돈 거기 없어.

 어디 있어요?

잠시 정적.

관리인 누구 맘대로?

 (관리인 쪽으로 다가가며) 제 맘대로요. 전에 기금으로 뭐라도 해보라고 했잖아요. 깃발 얘기도 당신이 꺼냈고.

관리인 그래 그거, 그랬지. 나도 생각해 봤는데 절차가 있어야겠어.

 이제 와서 무슨 절차? 우린 서로 누군지도 몰라요. 말하기도 만나기도...

관리인 그러면서 무슨 깃발을 왜 만든단 거야? 어이 잠깐만.

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렌치를 집어든다.

관리인 (뒷걸음질하며) 뭐야 이거 지금?

 어딨어요 돈?

관리인 어쩌겠다는 거야? 그 돈이 어디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숫자라고!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당신은 그냥 글자고!

관리인 (달래려는 듯한 손짓) 정신 차려.

 당신이랑 사이코드라마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요. 돈 어딨어요? (렌치를 흔들대며 한 발 더 다가간다.)

관리인,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세를 낮춘다.

관리인 붙들어!

관리인의 외침과 함께 관의 등 뒤 허공에서 요정이 나타나 관의 양 손목을 각기 붙잡는다. 요정에게 붙잡힌 관의 손목에서 형광색 연기가 난다. 관은 데인 듯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른다. 요정도 같이 소리를 지른다.

요정 키에엑!

관리인, 관에게 달려들어 렌치를 빼앗는다.

관리인 (렌치로 관의 머리를 내려치며) [     (ㄱ)     ]

요정 [     (ㄴ)     ]

① 너의 깃발은 여기에 있다
② 깨어나라!
③ 그대 현실로부터 이곳으로 다시
④ 귀신의 것은 귀신에게 주고
⑤ 저승 안식은 이름 없는 이들의 것
⑥ 느리게 착륙해오는 이곳 저승에서
⑦ 자연은 안간힘이고 인간은 깜부기불인데
⑧ 집짐승들의 이산된 가족은 어디에 있느냐
⑨ 이뤄지지 않는 것을 잠시만 맡아서
⑩ 빚과 몫을 바수어 거름으로 뿌려라
⑪ 세계는 수확되지 않는다
⑫ 세계는 소유되지 않는다

2025년 4월 1일 화요일

25년 3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60)
―――


이달의 총격려금

10,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20일 / 10,000원 ― 같은것입하요청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같은 것 [入] ☞ 10,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305,280원 (0원 + 304,909원 + 371원)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소리들

기분이 이렇게 오묘할 때에는. 아니, 나는 방금 오후부터 계속 들리는 저 소리들. 아이들이 도로에서 공을 차고 노는 소리. 소리 지르는 소리. 그리고 이제 해가 져서, 엄마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소리는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소리인지 생각하면서, 옛날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애들이 하나둘씩 엄마나 아빠 목소리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왜 이름이 안 불렸을까? 나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갔다. 애들이 다 가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서 놀이터를 보면,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우리는 내일 다시 저기로 오게 될까. 어두워져서 그런지 왠지 차가운 흙들. 검은 모래들을 보면서. 내가 놀던 곳이 정말 저기가 맞나? 못 알아보게 되었다. 잠깐 사이에 말이다. 요즘은 정말 이렇게 아이들이 밖에서 아무 놀이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놀이터 같은 데서 말고, 그냥 길거리에서 말이다. 동네 거리에서 말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건 왠지 재미가 없다. 놀라고 하는 데서 놀아야 하는 것처럼. 저렇게 그냥 아무 거리에서 아무 놀이나 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 보인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쟤들이 몇 시간 동안 저렇게 놀았는지. 내가 엄마 같은 마음이 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니? 라고 물어 볼 수도 있었겠지. 나는 책을 읽으려다 말고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멍하게 있는다. 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소리가 중요한 것이다. 근데 나는 저 소리를 평생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 못 하겠지? 기억 못 해도 되겠지? 이제 애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다. 바깥도 조용해지고. 너희는 곧 저녁을 먹겠구나. 뭘 먹을까? 내일도 저기서 놀까? 근데 내일은 내가 집에 없으니까 못 듣겠지. 여기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이거면 충분할 것 같다. 너희들 노는 소리 들으러 여기 온 것 같다.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광장의 김밥 같은 것

둥근 밥알들 성채 되어 단무지 느슨하게 수호하면
이 광장의 강자는 나라고 착각하게 된다

흔들리는 삶 베어 물며
든든한 믿음을 한입 가득 우물거리고 싶다

세상에 김밥은 흔하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간절해질 수도 있다니

그럴 때 시금치와 계란을 준비하고
결이 고운 생김으로 감싸
미래의 참기름을 간간하게 바른다

바라는 크기를 마음껏 낭비하며 먹음직스럽게 말아 놓는다

슬쩍 삐져나온 흐트러진 맛살들은
있는 그대로 좋은 생각이다

옆구리가 좀 터져 있는 것도 누가 발라놓은 햄 조각도 그냥 다 괜찮다

그러니까 김밥집 단체주문식으로 말하면:

햄X
당근X
오이X

은박 포장지 위에 빨강 매직으로 표시된
피로한 희망과
까다로운 체질의 사람들 다

나와 다르게 싸우며 살고 있겠지만

모두에게 통깨가
솔솔 뿌려져 있다

틀어놓은 뉴스에선 금방이라도
세상이 행복을 다 체포할 것처럼
허공 향해 주먹다짐 중이어서

우리의 김밥은 풀 죽은 패퇴의 꿈을 꾸기 쉽다 그렇지만
김밥은 고소한 확신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줄 안다

나는 김밥의 단단한 둥긂을 자랑할 것이다

김밥에게 자유발언권을!
김밥에게 행복추구권을!

믿음을 여러 줄 포장해 나눠 먹는 맛
그 맛을 세상이 알 리 있나

그러니까 김밥 같이 먹읍시다
각자 많이 먹읍시다

오늘 밤엔 우리가 강자 합시다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비등단 작가라는 유령

한때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유행할 때 썼던 글입니다. 아마 2017년에서 2020년 사이였을 거예요.


본문

처음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때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을 넣곤 했습니다. ‘비등단’이라는 조어를 만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등단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을 썼죠. 공공연히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일은 없었지만 나중에 이 말을 빼기로 했어요.

‘비등단 작가’는 ‘설거지 하는 남자’ 같은 말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든 설거지를 해요. 인간 새끼라면 자기가 먹은 걸 스스로 치워야 합니다. 때문에 남자가 인간이라면 ‘설거지 하는 남자’는 불필요한 수식이죠. 마찬가지로 저를 ‘비등단 작가’ 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한 수식입니다. 작가라면 자기 스스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발행해야 하니까요. 대체로 ‘작가’ 앞에 붙는 수식들이 그 작가의 주요한 정체성에 대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선례를 염두에 둔다면 ‘비등단’이라는 수식이 어떻게 작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지, 왜 그런 걸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 이해할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는 등단 작가라는 수식에도 적용됩니다.

때문에 ‘비등단 작가’에서 더 나아간 ‘비등단 작가의 시’ 혹은 ‘비등단 작가의 소설’ 또한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를 구분해서 얻게 되는 이점에 대해, 이 구분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죠. 그리고 제가 쓴 것들을 책임지고 가치를 증명하는 데 제 남은 생을 쏟게 되겠죠.

이런 측면에서 요즘 독립출판물이나 문예지에서 덧붙이는 ‘우린 비등단과 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말인 것 같아요. 이런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그들의 태도도 증명하지 못하고요, 그들의 미적 목표도 증명하지 못하죠.

이도저도 증명하지 못하는데 뭐 하러 말하는 걸까요? 그냥 그 자리에 ‘나는 치킨이 좋아’라고 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그럼 우린 같이 치킨을 먹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비등단’이라는 말은 명백히 등단 상태의 결핍을 드러내는 기능만을 하고 있잖아요.

등단과 비등단을 입에 담는 순간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는 묘한 게임에 참여하게 되요. 이 둘이 경쟁을 한다고 해도 몹시 이상하고요, 이 둘이 동료가 된다고 해도 대단히 이상합니다.

등단 작가들은 같은 지면에 참여한 비등단작가에 대해 “안녕 나는 등단 작가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나의 동료가 될 자격이 있어. 우린 그런 걸 구분하지 않거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글이 너무 아름답구나.” “너는 비등단 작가라서 그런지 글이 신선하구나.” 이런 식의 태도만이 가능할 거예요.

아니라고요? 그럼 애초에 게임을 이렇게 짜면 안 되는 거죠. 애초에 이런 게임에 들어오면 안되는 거였어요. 다만 당신 활동으로 그걸 증명하면 되는 일이었죠. 나중에 생색내긴 힘들겠지만요. 저는 비등단 작가 동료가 등단 작가의 열린 정신을 증명하는 토큰 비슷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비등단 작가가 등단 작가에 대해 ‘우리는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건요? 이건 해당 작가나 집단이 자기 조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들은 그걸 구분하고 어쩔 입장이 안 되요.

기껏 비등단 상태로, 문단 밖에서 문학을 해나가기로 했으면서 왜 또 구분하고 그러나요?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비등단 작가인 본인에게 무슨 의미인 거죠? 그게 당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하나요? 그게 당신의 삶을 수식하는 데 적절한가요?

등단을 거절한다는 말도 정말 이상하죠. 일단 저는 저런 말도 쓰진 않습니다. 재작년에 신춘문예에 작품 30편을 9개의 이름으로 공모했다 모조리 떨어졌거든요. 전 이 게임에서 이미 아홉 번 졌어요.

그 순간부터 등단하기 전까진 저는 영원히 등단을 못한 작가인 것이죠. 때문에 이제 와서 등단을 거절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떨어진 거거든요ㅋ 그렇다면 등단을 거절하는 분들은 등단을 왜 거절하는 걸까요.

등단 상태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길래 등단을 거절하는 걸까요? 그게 거절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더 나아가 그게 거절될 수 있는 건가요? 거절을 하려면 제안이나 요청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수로 등단을 거절하고 거부합니까?

아마도 어딘가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 분석을 할 때도 중요한 지표일 수도 있죠. 그런 걸 한다면 말이죠. 다만 작품으로 교류하는 장에서 언급되어야 할 말은 결코 아니죠.

전 아직도 작가는 적국에 내버려진 외교관처럼 단어를 공들여 골라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쓴 단어는 오늘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어야 해요. 이때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적절한 건가요, 외교관님?

등단/비등단 게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한 분들의 탁월한 단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유령 같은 말은 흔치 않거든요.

2025년 3월 1일 토요일

25년 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9)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304,909원 (0원 + 304,407원 + 502원)

찾는 사람과 안 찾는 사람

찾는 사람들에게 개는 신발이다. 개에게 신발을 신기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집에 있으면 게을러진다. 게으름에 대항해서 무언가 해야 할 텐데. 밖으로 밖으로. 옷을 챙겨 입고. 갖춰 입고. 그래도 너무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지. 꾸민 듯 안 꾸민 듯. 그게 이제는 유행이다. 더 빨리 더 빨리. 쟤보다는 빨리 가야지. 더 좋은 건 몰래 먹고. 쟤가 모르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쟤는 이미 한물간 유행을 따라가고 있고, 나는 걔보다 한 발짝 더 앞서 있다는 사실에 빙긋 웃으면서. 이런 순간에는 게으르게 집에 있어도 왠지 분위기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그렇다. 비가 오는데 개가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고,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나를 따라 하는 것이지 내가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바람은 개집으로 숨는다. 나는 숨죽여 그걸 본다. 안 찾는 사람들에게 트렁크는 신발장 밑에 있는 어두운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바퀴벌레가 자주 나온다. 나는 그곳을 안 보려고 애쓴다. 바퀴벌레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곳을 보는 것이 무서워서, 그 안으로 들어간 신발을 눈을 감고 꺼낸다. 이 집에는 그런 구멍이 많다. 문틈에 난 구멍. 그건 그냥 오래된 집이라서 그런 것이다. 안 찾는 사람들에게 그런 구멍은 계산이다. 계산서를 청구하면, 계산서대로 돈을 내는 것이고, 계산서 안 내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찾아온 사람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그들은 집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제 딱히 갈 곳이 없다고. 이렇게 돈을 받으러 찾아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말이다. 찾는 것도 아니고 안 찾는 것도 아닌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월요일이다.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월요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냐고 묻겠지. 왜냐고 물으면 그걸 묻는 이유가 뭐냐고 대답하면 된다. 이유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저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찾는 사람과 안 찾는 사람이 기차 안과 밖을 드나든다.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코끼리하우스

이 방에서 나는 존재하고
동생은 유령이다.

출근할 때는 사람이지만
열네 시간을 일한 후 퇴근할 때는
발을 잃고 허공에 붕 떠서 들어오니까.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서 시를 쓰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테니까.

오후 한 시쯤 되면
동생이 밥은 먹었을까,
오늘도 어떤 환자가
간절히 팔을 붙잡았을까,
짐작한다.

동생이 환자를 보고 있을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시를 써야지.
한없이 슬픈 시를.
—나는 매일 결심하지만
왜 시일까.
왜 굳이 슬퍼야 할까.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다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어제 죽은 사람의 이름을
환자 명부에서 지우고 돌아온 동생에게,

사망 보험금을 놓고 다투는 가족들 사이에서
모른 척 스테이션에 앉아 있어야 했던
동생에게.

나의 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병원 주위를 일곱 번 돌며
이 병원이 불타길 기도해야 할까.

아니다,
시인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근로 감독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빈 공책을 연다.

“흰 것과 만나 흰 것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첫 줄을 쓰고,
모두가 ‘시’라고 인정할 만한 문장을 이어간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존재해서 슬프다.

동생이 이 시를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동생은 이 시를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돌아올 수 없는 이 방에서
밤새 허공이 되어가느라.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분위기와 계시

매일 늦은 오후가 되면 관리자는 메신저로 오늘의 작업현황을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야근할 건지 퇴근할 건지. 일 많은 때 그냥 퇴근한다 하면 들으란 듯 저 자리에서 한숨 빡빡 쉰 다음 바로 1:1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까지 몇 장 봤어요” “몇 장 남았어요” “보는 데 얼마나 걸려요” “하루에 몇 장 봐요”...어제 물었던 그대로 오늘 또 묻는다. 일주일 내내다. 혼자 하루 종일 허공에 대고 머리 아프다 저기 아프다 돌겠다 어쩧다 씨부렁대는 것도 진짜 미칠 노릇이다. 아니 일은 씨팔 내가 하고 야근을 해도 내가 하는데 왜 님이 제일 힘드셔요? 그의 고통 호소는 그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이 사무실에 있을 때만 딱 멈춘다. 결국 이것은 자신이 중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한껏 어필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간당간당한 인간적 연민에 기대어...? 그러지 말고 관리라는 거를 자기 주둥이로 직접 해보면 어떨까?

어쩔 때는 모니터를 뽑아 녀석의 자리에 던져버리고 싶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도 결국 원청이나 사장에게 애걸복걸해서 겨우 일정을 미루거나 하달받은 일정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일을 되게 하려고’ 그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이렇게 쌓여 이렇게 된 것을... 그래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원들에게 미움받기도 사장에게 깨지기도 싫은 입장을 따라오다 보니 개새관리자보다는 징징관리자가 되는 편이 나았다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인간의 일인데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 역시 꾸준히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면서 허공에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사장에 대한 불만도 원청에 대한 불만도 교수새끼들에 대한 불만도. 그가 우리의 말을 대신 해주려는 건가? 그가 우리의 의원인가? 어쨌건 그의 대변이 전해져야 할 방향으로 전해지지 않고 역류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역시 그냥 관리 기술일 뿐이다. 관리자가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야 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그것도 온당치 않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 그와 내가 서로 이해하는 만큼 우리가 사장 교수 원청 새끼들로부터 이해받고 있지는 않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이해한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밀어 넣으려 들진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를 구할 방도라는 것 자체가 없고, 그들도 당연히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먼 신비로 있다. 그들에게도 패턴은 있는데, 일단 무조건 최대한도로 들이대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처럼 들이대고, 우리의 사제는 왼종일 기도하듯 징징댄다. 그 기도의 뜻은 우리가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을 관리·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AI가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이미 우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최적화된 AI 엔진이다. 따라서 나의 당연한 결론은, 앞뒤의 사정이 이러할진대 내가 나를 관리할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이다. 노동량 산정을 나와 전혀 협의하질 않는데 도대체 왜 내가 알아서 맞춰줘야 한단 말인가? 내가 개 호구냐? 어? 책임이 없는데 책임을 어떻게 지냐? 꼬우면 협동조합 전환이라도 하든가... 이놈의 회사는 도대체가 그런 노력도 없이... 그저 뭘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내 시간 쥐어짜낼 생각뿐인 파렴치한 구조 기계일 뿐...

지난날 사장과 면담할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업무 폭증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아주 개차반이 되어 있던 때였다. 그것은 영문 모를 계시처럼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사장은 내게 뭐가 제일 문제냐고 물었고 나는 당장 생각나는 대로 ‘교수들’과 ‘원청’이라 답했다. 그는 공감을 표하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교수한테 당한 어떤 치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수한테든 원청에게든 무슨 말을 하려거든 자기도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과연 일리가 있었다. 사장의 말은 그 뒤로도 더 이어졌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위로 치받을 수 있는 분위기... 그저 돈과 시간으로 결정되는 이 시간표 속에서 뭐라도 쥐고 맞설 것은 명분 말고는 없다... 그런데 명분은 땅에 떨어져 있다. 왜? 위와 아래라는 것이 있는 힘을 다해 전력으로 은폐되기 때문이며, 위를 치받는 이미지가 다만 예술화되었기 때문이며, 영웅들과 악당들의 극이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며, 돈이니 능력이니 하는 쉬운 말으로 설득력을 집중시켜 온 때문이며, 진정한 변화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공허한 명분과 세상 사이의 괴리로 좋은 추상들이 점점 빛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명분은 추상적이면서도 분명한 실체가 있는, 우리의 계급적 압력으로부터 나올 수밖에는 없을 것... 답은 역시... 답은 역시 ‘그것’뿐, 대표를 직접 뽑는 것뿐... 내 노동의 대표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사장실에서 나왔다.

침몰하는땅

그때 이 땅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침몰을 감지했을 때
침몰은 멈추었다 더 이상
침몰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누구라도 그곳에 알량한
돌 하나라도 쌓았다면 침몰은 계속되었을
지 모른다
우린 내달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린 서로의 두
어깨가 찢어지도록 붙잡고 늘어졌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우린 서로의 생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세상 언저리에서
벼랑 끝보다는, 간신히 안락한 곳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등지고 서서
나보다 이 세상이 먼저 탕진하길
기다리면서
가늘어 빠진 팔뚝에서
온 생이 소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2025년 2월 16일 일요일

조심스러운 사람들

돌을 많이 보고 만지고 밟고 다니며. 돌한테 얼쩡거리고 발로 차고 시비 걸고 그래도 같이 술 마시자고는 안 해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남의 종교 보듯 했다.

금요일 밤 해장국집에 모인 중년들은 서로의 밥그릇에 국물 떠주며
혼자 못 먹어? 애기야? 서로 업신여기는, 가학-피학 관계로 절묘하게 구성된 뜨거운 사랑의 모임을 잘만 하던데,

우리는 왜 조금이라도 친한 척 안 해봤는지. 어차피 다시 만나자고도 안 할 거니까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층층이 서로를 쌓아올리기만 했는지. 다들 하는 것처럼 탑 만들고 다시 무너뜨리고 나 아니어도 바람 불어서 와르르 무너질 것을,

사실은 바람이 제일 비겁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번번이 때리고 갔다.
대신 너는 아침부터 바빴다. 너의 잘못 말하기를 행하느라.
오해인 줄도 모르고 너는 그 행위가 오로지 너라는 듯이, 바람 같은 건 꿈에도 모르고 다녔다.

그랬던 너는 참 용감하지. 언제까지 자신처럼 행동할 참인가.
이제야 나는 내 몸 하나지만 돌은 저 멀리 펼쳐진 데까지 다 돌들이란 점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대로 너 될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대신에.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속도

 

 

 

쓰레기 더미가 건물들을 꽉 채우고 있고, 건물 밖으로도 삐져나와 있다. 도시는 폐허가 된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생물들이 살기 위해 바다를 향해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인간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라고 했다.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silo

이번 여름에는 서울시 은평구 봉산의 대벌레 무리 일원으로 위장해볼 생각이다. 직박구리나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햇볕에 널어 온몸이 두루 갈색이 될 때까지 최대한 바싹 말린다. 안감에 체취를 흡수하는 활성 목탄을 댄 옷을 입고 모든 이음매에는 덕테이프를 붙이는 게 좋다. 좀 더 효과적인 위장을 위해서는 옷 안에 열어놓은 암모니아 캡슐을 붙이는 게 상책이다. 이것도 저것도 귀찮다면 소나무 기름과 여우 오줌을 몸에 바를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 냄새를 완전히 가리는 데 성공했다면 주변 환경에 맞는 색깔의 스프레이를 골라 몸에 골고루 뿌린다. 단 무미무취한 제품이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은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붙여 위장한다. 몸통과 팔, 다리를 최대한 길게 뻗어 대나무 비슷한 것처럼 군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처에 창궐하는 대벌레라고 생각한다.

참고:『감각의 박물학』(다이앤 애커먼)에서 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필드앤드스트림≫이란 잡지에서 알게 된 방법이라고 했다.

2025년 2월 5일 수요일

개, 오각별, 수도원 ❶

이 작은 수도원에는 비옥하고 기름진, 무기질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섞인 넓은 농지가 딸려 있었다. 농지는 수도원을 한 바퀴 두르며 지나가는 작은 강과 맞닿아 있었고, 배수가 원활한 덕에 어떤 작물이든 기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땅을 섬기는 마음과 신을 섬기는 마음이 크게 다를 수 있을까? <포도장 수도원>의 수사들은 사랑과 노력을 합치시킬 줄 알았다. 그들은 기도와 노동이 같은 종류의 일임을, 감사에 할애하는 시간과 밭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같은 종류의 것임을 온몸으로 이해했으며, 이해를 오롯이 실천할 줄 알았다. 농사는 언제나 가장 좋다고 생각될 정도의 결실을 맺었고, 다음 해면 그보다 좋은 결실을 맺었다. 가장 좋은 포도로는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법. 포도장 수도원은 해마다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어 보관했으며 좋은 값에 팔렸고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됐다. 

포도꽃 여무는 여름을 지나 계절 내내 불어올 서풍에 옷깃 여밀 때가 오면, 화답하듯 검게 익은 장과는 통통한 수사들의 복스러운 입꼬리를 치근대며 간질였다. 철별과 짐승 신, 왜가리, 여우, 패각 신, 그리고 루스 말라와 같은 초월자들의 존재가 드러난 지금에 와서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 대한 논의가 짓무른 포도알처럼 끈적거리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이들의 믿음을 존중하지 않지만, 수사들은 저 초월자들을 밀어 움직인 단 하나의 시동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삶이 준거였고 자연이 간증이었다. 따라서 자연은 초자연이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는.


*


소렌샤는 눈을 떴다. 잠을 잃은 지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불 꺼지지 않는 삶 속에서 소렌샤는 매 날 매 밤을 온전한 정신으로 혼절하고 있었다. 완전히 피로한 소렌샤, 밀빛 머리칼을 가진 오각별 마술사 소렌샤는 일그러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침방에 스미는 빛과 눅눅한 공기가 정오를 일러주었다. 왜 아무도 짖지 않았지? 뭉툭한 벽돌로 뇌를 후비는 듯한 격통. 신음하며 침실을 나왔어도 수도원은 텅 비어 있었다. 개들, 내 개들. 그녀의 벗, 친구, 부하, 남편인 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반란이 일어났거나, 마술이 힘을 잃었거나, 침입자가 있거나. 네 번째 가능성이 있을 수도, 내가 이미 죽었다는. 히죽이고 나니 두통이 심해졌다.


*


수도원에 도착한 고더린은 밭부터 살폈다. 고르게 자라지 못한 묘목들이 꺾인 허리로 죽어 있고, 시체를 내놓으라는 듯 녹갈색 잡초들이 손을 뻗고 있었다. 고더린은 길게 신음했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는데, 오는 길에 마주한 대부분의 마을이 약탈과 방화로 황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고더린 또한 약탈을 행해본 적이 있다. 타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스럽지 않아 놀랐던 기억. 고더린은 칼칼한 목을 더듬으며 침을 퉤 뱉고 몸을 일으켰다. 수사들의 행방도 행방이지만, 진짜 문제는 포도주가 남아있느냐는 거였다.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바심을 참기 어려웠다.

‘저게 뭐지?’ 문득 고개를 들어올리자 수도원 지붕에 걸쳐진 넓고 긴 천이 휘날리고 있었다. 끝면의 팔랑이는 움직임을 따라가듯 고더린은 천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아 걸었다. 제대로 보니 그것은 낡고 우울한 보라색 휘장이었다. 그것은 마술사가 <여기 마술사가 머물고 있다>를 알리는 신호였다. 휘장 가운데 새겨진, 자수로 된 별의 갯수는 머물고 있는 마술사의 힘의 수준을 나타냈다. 자수 별은 새하얗게 네 개가 놓여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강렬한 붉은색이었다. 오각별?

"컹!" 어디선가 개들이 달려들었다. 별에 정신 팔린 고더린의 반응이 늦었다. 개들은 용감하게 몸을 부딪쳐 고더린을 자빠뜨렸다. 올라타서는 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움에도, 뚫고 지나가겠다는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북슬한 털, 펄럭이는 귀, 쳐들고 내리 까는 발들이 투구를 치면서 지나가니 정신이 사나웠다. 하나뿐인 손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개들은 오히려 좋아라 했다. 개들은 맞으면서도 몸을 핥고 코를 들이밀면서 외팔이 포도 기사를 반겼다.

“휘익!” 찌르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물린 개들이 소렌샤의 몸 뒤로 일제히 모였다. 그녀가 몇 걸음 걷자 고더린의 머리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소렌샤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전장을 놓고 보면, 그곳에서 그렇다고 여겨지던 것들은 대개 어디서든 그렇다고 여길 수 있었다. 강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인간은 발휘할 수 있는 폭력의 강도만큼의 광기를 가지고 있다. 오각별을 수놓았다는 것은 이 여자가 미쳤으며 아주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단숨에 나를 세상에서 지워낼 수 있어. 남아있는 팔과 다리를 잘라 몸만 남은 기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아마도.

시선을 땅에 붙박은 고더린이 답지 않게 다리를 떨던 찰나였다. 고운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거리는 자주색 장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나보이는 소렌샤의 맨발은 거무칙칙한 땅과 다르게 하얗고 깨끗했으며 앙증맞게 작았다. 고더린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소렌샤는 조용히 미소 지어 보였다. 소렌샤는 미인이었다. 떨림이 역설적으로 멈추고 나니 일어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고더린은 소렌샤의 다뜻한 손을 잡고 거뜬하게 일어선 다음, 투구를 벗고 가볍게 목례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개들이 참 듬직합니다.”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개들이 고더린 주위로 몰려들었다. 지금 보니 일곱 마리나 됐다. 그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개들을 외팔로 쓰다듬으면서 곧잘 짓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숨길 수 없는 범박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웃음. 소렌샤는 “그렇죠?”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해줄래요?”

미인의 얼굴이 꺼진 빛처럼 급격히 어두워졌다.


*


“뭐가 됐든 인간에게는 쓰다듬을 것이 필요해요. 간단하게는 부드러운 천이나 폭신한 인형 같은 것이 있을 거예요.”

앞서 걸으며 소렌샤가 말했다. 수도원 안은 조용했다. 근면이 묻어나오던 예전 그 거룩한 분위기는 완전히 종적을 감췄고 지금 이곳은 폐가만 같다. 뒤따르며 고더린은 언제 사라졌을지 모를 수사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기사였고, 수사들은 나름대로 친구 비슷한 거였다. 엉망으로 넘어진 촛대들과 먼지로 뒤덮인 선반들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같다. 그래서 뭐? 사실 그는 수사들 생각 따위는 그다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공과 사를 그다지 구별하지 못하는 기사였으니까. 그의 눈은 계속해서 소렌샤의 뒷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아내 혹은 남편, 애인이 그 대상이라면 참 좋을 테죠. 바보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결혼이라는 게 그저 서로를 영속히 쓰다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쪽이에요.”

불안한 매혹을 깊숙히 느끼면서 고더린은 몇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했다. 하나, 수사들이 죽거나 떠난 이 수도원을 이 숙녀께서 우연히 발견했을 가능성. 둘,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들을 죽이고 수도원을 차지했을 가능성. 어떤 것이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개들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여기 들렀을 때 수사는 여섯이었고 한 명이 더 올 거라고 했다. 고더린은 개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수사일까? 이 여자는 사람을 개로 만드는 마술사일까? 그러나 개들에게는 어떤 신앙도 없어 보였다. 아무렴 어때. 고더린은 수사들 생각을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한 의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와인이 있어요.”

와인이란 말에 고더린이 움찔했다.

둘은 어느새 주방에 들어와 있었다.

와인과 미인......

“비록 한 병밖에 없지만요.”

뭐라고!

그 큰 와인 저장고가 텅 비었단 말인가?

소렌샤가 벽면에 붙은 나무 선반의 미닫이 문을 열었다.

고더린이 소렌샤의 손목을 붙잡았다. 돌격하듯.

2025년 2월 2일 일요일

빗방울을 위한 일기예보

비가 와서 당신이

어디론가 간다

 

파랗게 서늘하게

커져가는 방을 두고

 

날씨는 날씨의 역할을 한다

빗방울은 빗방울의 역할을 한다

 

당신을 울게 하고

당신을 떠나게 하는

 

다만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라도 갖고 싶은 것처럼

부드럽게 어긋나고

 

당신을 날씨에게 뺏기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

 

이동은 모일수록 의문스러워지고

순하고 시끄럽게 모이는 모순들 미래들

 

사전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처럼

흐르는 방향 속에서 당신을 찾고 싶지만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도무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지

 

가지런하게

사라지는 구름들 사이로

추락하는 빗방울 사이로

 

대안이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