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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2일 목요일

대부호

그 대부호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은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대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의 일로 그는 전 재산의 반을 잃었다. 물론 남은 재산만으로도 그야말로 수많은 돈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대부호는 저택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을 잠시 초청했다. 그리고 카드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고 몇 가지 사항들을 대부호에게 물었다. 카드 점이 시작되고 순서대로 뒤집힌 십자가, 말 탄 왕, 정원에 피어 있는 덤불 장미, 그리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의 카드가 나왔다. 그것들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설명을 시작했다.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하나씩 원래대로 돌리면서 테이블 너머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알아야 할 사실,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그리고 이 카드들이 알려주는 앞으로의 방향 같은 것들로 이 잠시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대방의 제어하에 있는 어떤 분위기의 장악은 심란했던 대부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먼저 대부호는 어젯밤의 그 일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 시점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돌보다가 그 소중한 무언가가 대부호가 원하는 것과는(그리 기대한 것이 없었으나) 이탈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친 것에서 시작되어 대부호가 은연중에 잊어버렸던 희미한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이제 자신의 중요한 감정들 중에 하나를 잊어버린 운명의 현전 아래(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대부호를 서서히 납득시켜 가는 과정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실점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간단히 말해 대부호는 이러한 진행 과정 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잊어버린 과거의 일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므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서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부호는 자신도 잊어버린 과거의 일이 어째서 어젯밤의 일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압도되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대부호는 은쟁반 위에 쌓인 감자튀김을 카드 점을 치는 여인에게 권했다. 짠맛이 나며 고소하기 때문에 먹을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사양했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과는 관련 없지만 대부호가 놓인 현재의 운명 같은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첨언하기 시작했다. 대부호는 그것들을 아주 귀담아들었고, 중간중간 노트에 필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되돌아갔다. 대부호는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그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잠깐의, 그리고 사소한 불행으로 비롯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까지 납득 못할 일은 아니라고. 대부호는 그런 말을 들은 뒤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가슴이 먹먹한 듯 답답하여 뛰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이 돌아가고 난 뒤 대부호는 저택 밖으로 나가 잠시 뛰었다. 대부호의 저택은 어떤 숲 앞에 있었고 그곳은 국립 공원이었다. 대부호는 밤에 그곳을 뛰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운동을 빼놓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불행은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대부호는 그 말이 어쩐지 인쇄기에서 전사되는 어떤 견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이 어떤 식의 읽을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대부호는 의외로 소심한 성격이어서, 만일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을 믿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 것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이미 일어나고 난 뒤였다. 대부호는 남들보다 자신이 더 그 불행을 좀 더 와닿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전 재산의 반이나 잃었지만 거기에서 대부호는 그리 큰 실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사실 몇 번의 고비를 거쳐 지금 같이 돈을 불린 이후로부터 대부호는 실감이랄 것이 약간 마비된 상태였다. 대부호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호는 뛰었다. 어젯밤 일어난 일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그에 대해서 몰입하고 대처하기 위해. 대부호는 숨이 가빠 왔고 대부호는 뛰던 것을 그만두고 잠시 걸었다. 밤이 있었다. 그리고 나무 어둠 속에 가린 새들이 있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대부호는 남의 것이 인용되고 저촉되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부호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대부호는 밤의 이 숲 안에서 어젯밤의 그 일을 잠시 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실수로 자신이 아끼는 찻주전자를 떨어뜨려 깨게 된 일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 일이 최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었다. 대부호는 그 사실에 눈을 감았었다. 대부호는 그 어젯밤의 일이 하나의 재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어떤 불행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호는 그런 불행의 감각에 잠시 몰입해 있었다. 사실 대부호는 좌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쌓아둔 재산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대부호는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후원자들에게서 온 편지가 조금 판에 박혀 있는 것 같았으며 지금 대부호는 그러한 판에 박힘이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용하는 일도 저촉하는 일도 아니었다. 판에 박힘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숲 저편에서 새들은 새들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소리로 울고 있었는데, 대부호는 그런 것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편지. 대부호는 그러한 편지들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2021년 7월 16일 금요일

미셔너리

우리가 그 맨션에 들어갔을 때, 사방은 조용했다. 한 사람이 복도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사람의 얼굴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눈을 보면 조금 부어 있고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나왔던 사람은 말없이 문을 닫고 들어갔다. 우리는 특정한 한 집의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들 중 한 군데는 높이가 있었고 한 군데는 낮아 보였다. 그 사람들은 절대로 서로의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카페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기분 나빠했다. 우리 중의 한 사람이 걷기를 멈추고 이곳에 들어가겠다고 해서 우리 모두는 그 사람을 제지하고 그 사람을 부축해 와서 간신히 현관문 밖으로 옮겼다. 이 맨션은 우리가 연습용으로 미셔너리를 할 때 쓰이는 공간이다. 이곳은 비 오는 날의 빗줄기의 가느다람처럼 특별히 준비를 안 하고 오면 아주 위험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은 방금 한 사람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 사람은 다음 달에 외국으로 미셔너리를 나가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정도로 위험할 정도라면 일정을 다시 고려해봐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 이곳에서 긴급하게 한 사람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으려면 무엇보다 안심을 시켜줘야 했다. 아무리 방 안의 풍경들이 정신없고 심란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들 선교자에게는 우선 마음가짐이 안정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심하려고 하질 않았다. 우리는 급히 흩어져 이곳에 이미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을 찾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안심시켰다. 우리들은 갑작스럽게 사람 수가 많은 일행이 되었고 갑작스럽게 불러낸 데에 사과를 하고 나서야 선배 선교사들은 화난 얼굴을 하고 각자 있던 곳에 되돌아갔다. 우리들도 약간 화가 나 있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데 고작 이곳에서 한 명의 잘못된 경우가 발생하다니. 정신을 차린 그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며 가지고 있던 짐을 풀어 육포를 한 사람씩에게 돌렸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인 사람이 더 이상의 진행은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쌍둥이자리 뒤에 은은히 빛을 내는 물병자리, 그곳을 손으로 짚어 뭔가 점자처럼 튀어나와 있어 요철이 손에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잡힌 오망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손동작은 그야말로 완벽했고 이것으로 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는데 차단기란 ‘그’와 나 사이에도 있고 연단 앞의 사람들에게도 있고 이제 미셔너리를 떠나게 되면 그곳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있고(물론 거기서는 그 자신이 외국인이 되지만) 아무튼 감자에 싹이 나면 잘라내야 하는 것처럼 잘라낼 수도 없고 뭔가 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차단기만이 이미 좀비가 되어 있는 4층의 사람들을 막아줄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침대와 각종 가구들, 그리고 식량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까 위험해진 사람을 우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탐사 계획을 세웠다. 물론 연습만 하는 공간일 뿐이므로 탐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은 계획을 이미 세워 놨었는데 그들 중 벌써 낙오자가 생긴 것은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탐사를 여기서 끝내고 다음 기회를 기약할까, 하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유치한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있는 어떤 포기하기 싫은 심정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 장소에서 그런 말은 아주 위험한 것이었으므로 삼가야 했는데 아마도 그것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어쨌든 간에 모두는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다시 맨션 복도를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3구의 좀비를 만났으며 일본도를 찬 한 사람이 좀비들을 격파했다. 그리고 이 일행은 옥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옥상은 아주 시원했고 여름날이었다. 한 사람이 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된 채로 옥상 의자에 누웠다. 햇빛을 받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옥상에는 무해한 외국인들이 있었고 그들을 벌써 상대하고 있는 선배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 선교사들은 여름날에도 무척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지금 옥상으로 올라온 일행들의 눈에는 그렇게 마음에 들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려서 밤이 되었고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미셔너리 연습용 헬기가 옥상 위로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잠옷을 입고 있었고 옥상 위에 있던 선교사들을 구조해 떠났다.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인사

나는 언니에게 ‘안녕’이라고 말했다. 언니도 ‘안녕’ 답해주었다. 이처럼 모든 인사에는 그 답인사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나는 인사가 궁금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인사가 뭐야?’ ‘사람들이랑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거야. 그런 게 궁금했니? 인사는 반갑거나 친절하거나 격식이 있게 하는 것이 보통이야.’ ‘보통이 뭐야?’ 보통이 뭔지 나는 궁금했다. ‘언제나 그렇게 하는 거. 그게 옛날이든 앞으로가 되었든 사람들이 하는 거. 옛날이나 앞으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거야. 보통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어.’ 난 이상한 게 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상한 게 뭐야?’ ‘평소와 같지 않거나 사람들 중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불러. 물건도 이상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은 이상한 물건이라 불러. 좀 생소한 걸 말하는 거야.’ ‘그러면 언니. 생소한 게 뭐야?’ 생소함이 뭔지 나는 궁금했다. ‘이상한 거랑 비슷할 수도 있는데, 전에 본 적이 없거나 좀 새로운, 낯선 것들을 말해.’ ‘그렇구나, 언니. 대답 많이 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낯선 것이 뭐야?’ ‘이것도 이상한 거나 생소한 거랑 비슷할 수도 있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눈에 익지 않은 걸 말해.’ ‘눈이 뭐야?’ 눈이 뭔지 나는 궁금했다. ‘네 눈썹 밑에 있고 코 위에 있는 거. 이걸로 주위를 볼 수 있어. 그리고 비유적으로는 마음의 창이라고 부르기도 해. 그 안에 있는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가능하지.’ ‘마음이 뭐야?’ 마음이 뭔지 난 궁금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네 가슴 속에 있는 걸 그렇게 불러. 그건 침울해질 수도 있고 벅차오르게 될 수도 있어. 아무튼 자주 바뀌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단다.’ ‘존재가 뭐야?’ 존재가 뭔지 난 궁금했다. ‘이건 조금 어려운(철학적인) 말인데, 사람이나 물건이 어떤 곳에 있는 걸, 그렇게 없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해.’ ‘상태가 뭐야?’ 상태가 뭔지 난 궁금했다. ‘네가 지금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 거. 과거나 앞으로의 일에도 이런 게 있을 수 있어. 정확히는 그때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처해 있는 사정이나 모양 같은 걸 그렇게 불러.’ ‘모양이 뭐야?’ 모양이 뭔지 난 궁금했다. ‘겉보기로 그렇게 보이는 거. 꽃은 어떻게 생겼니?’ ‘예쁘게.’ ‘그럼 그렇게 예쁜 모양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이런 게 있을 수 있어. 아무튼 눈에 보이기로는 그렇게 보이는 거야.’ ‘언니, 그런데 예쁜 게 뭐야?’ 예쁜 게 뭔지 난 궁금했다. ‘보면 기분이 좋은 거? 그런데 이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모른다는 게 뭐야?’ 나는 모른다는 게 뭔지 궁금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다 하게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해. 예를 들면 잔디 밭에 있는 풀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까? 알 수도 있겠지만 모를 수도 있겠지. 나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나는 생각이 뭔지 궁금했다. ‘생각이 뭐야?’ ‘넌 오늘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리고 백과사전을 사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생각은 이렇게 아직 남에게 알리지 않고 속으로만 갖고 있는 마음을 말하는 거야.’ ‘언니 고마워. 나한테 오늘 많이 대답해줘서.’ 나는 언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2021년 7월 6일 화요일

오래된 필통

난 오래된 필통을 갖고 있다. 거의 중학생 때 산 거. 천으로 된 필통은 천이 다 해져 있고 보푸라기들이 솟아 있다. 나는 이 필통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오래된 물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가구 중에서도 앤틱 가구를 좋아한다. 그것들 겉만 오래되고 매끄러운 것처럼 보이고 속은 새것인 경우가 많지만(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사줄 것이다) 나는 별 신경 쓰진 않는다. 왜냐하면 한 5년 내로 가구를 내 돈으로 살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필통에는 컴퓨터용 사인펜 한 개와, 내가 주로 쓰는 샤프 한 개와, 4B 연필 두 개와(나는 곧 이것들을 쓰게 된다) 샤프심 통 한 개가 들어 있다. 그러고 보면 샤프심을 하나 사야 하는데.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샤프도 하나 사고 싶다. 지금 내가 쓰는 샤프는 샤프심을 반 정도만 쓰면 나머지가 부러져서 나오는 것 같다. 심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이 샤프도 꽤 오래된 것이다. 한 3년 썼나? 난 전에 비싼 샤프들에 관심이 있었고 그중에 하날 돈을 모아서 산 적이 있었는데(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반의 누군가가 다가와서 그 샤프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조금 뻘쭘했다. 왜냐하면 비싼 샤프에 관심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나는 내가 가방에서 오래된 필통을 꺼낼 때마다 웃곤 했다. 거기엔 쓸모없는 물건밖에 들어 있지 않다면서. 하지만 1년 전쯤에 나오지 않는 볼펜 같은 건 다 버렸고, 이젠 다 쓸모 있는 물건들뿐이다! 다 실제로 쓰는 것들이다. 컴퓨터용 사인펜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쓸 일이 있었다. 바로 누군가한테 사인 받는 용도로 그것을 난 내밀었다. 얼마 전까지 휴대용 연필깎이를 필통 안에다 보관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흑연 가루들이 새어 나와서 필통 안뿐만 아니라 가방까지 검은 기운으로 잠식한 적이 있었다. 이젠 못 쓰겠어서 그 연필깎이는 버렸다. 그래서 필통 안의 물건들이 아직도 새까만 채이다. 내가 내민 컴퓨터용 사인펜도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나는 두 달 동안 집에서 쉬었다. 그것은 요즘의 일이다. 그동안 난 카페에 자주 갔고 일기를 자주 썼다. 그랬더니 금방 시간이 지나가게 된 것 같다. 이제 난 왕복 세 시간 정도의 거리를 일주일에 두 번씩 통학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별로 익숙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작년부터 학원에 다녔고 그건 지금 생각해 봤을 때 꽤 재밌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험 같았기 때문이다. 다니다 쉬게 된 건 너무 쉬지 않고 계속 다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쉬어서 그런지 이제 그런 압박은 좀 덜해진 것 같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학원에 가게 될 예정인 지금, 그렇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취미(그림 그리기)가 하나 새롭게 또 생긴 기분이다. 이런 나도 나중에 보면 오래된 물건인 것처럼 느껴지겠지. 조만간 나는 샤프와 샤프심, 그리고 마음이 동한다면 필통을 하나 사면 좋겠지.

2021년 7월 1일 목요일

오렌지 피플

나는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전기사는 양복을 입은 중년으로 손목에 ○○○ 시계를 차고 있다. 머리는 한쪽으로 포마드를 발라 넘겼으며 얼굴 외곽이 넓으면서도 날카롭다. 운전기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나도 한쪽으로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넘겼으며,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고 있다. 내 손목에는 운전기사의 것보다 약간 상위 브랜드의 시계가 채워져 있다. 몇 년 전쯤부터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 선수가 경기 때 차고 나온 브랜드이다. 그 선수의 이름은 ○○○이다. 그 선수는 얼굴이 날렵해 보이는 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 선수가 지금 이 승합차의 뒷좌석에 나와 같이 앉아 있다. 그 선수 또한 양복을 입었으며, 우리와는 다른 쪽(왼->오)으로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넘겼다. 그 선수 또한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는데, 나보다 약간, 약간약간 더 상위의 브랜드이다. 나 또한 그 선수처럼 주위 사람들이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한다. 나와 그 선수의 나이는 비슷한 정도이고, 난 자식이 없는 데 반해 그 선수는 자녀를 두고 있다. 다만 이 승합차의 조수석에 탄 어린 소년, 그레이스는 그 선수의 자식은 아니다. 건너서 알게 된 집안의 아들로, 그 선수가 운영하는 테니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다. 조금 놀랍게도 그 소년은 우리 중에서 가장 상위의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완전히 포마드를 발라 올백으로 뒤로 넘겼으며 이 소년 또한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고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조수석의 창문을 열고 바람이 들어오는 그쪽을 보고 있었으므로 이쪽에서는 얼굴이 안 보였다. 그레이스, 네 얼굴을 이 분이 보고 싶으시다고 하는구나. 그러자 그레이스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던 테니스 선수의 쪽을 쳐다보았고, 그 테니스 선수 또한 활짝 웃으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운전석에 탄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보고 있었으며, 내가 보았기로는 찡긋, 하고 잠깐 이쪽으로 눈짓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 그 테니스 선수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레이스라는 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운전기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우리는 전날에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도 술을 마시면서 이야길 했다. 우리는 그레이스를 제외하고는(그레이스는 지나가는 옆 차에게 모욕적인 제스처를 하고 있었다. 그럼 안 되지! 그레이스.) 숙취에 절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러나 우리의 포마드는 반듯했다. 전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먼저 운전기사가 테니스 선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자 테니스 선수가 노래를 불렀다. 선창에 따라 나도 같이 노래를 불렀고 나도 운전기사와 어깨동무를 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지금부터 내게 반말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나에게 모멸감을 느낀 듯했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풀어! 당장 풀란 말이다! 무엇을 풀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옆에서 테니스 선수가 아앙! 하고 큰 소리를 냈다. 분명 나는 그 둘보다는 덜 취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잔에 술을 부었고, (그 전에 내가 빈 잔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따라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걸 다시 입에다 부어 넣고 채웠다. 그랬더니 나도 술에 취하게 된 모양이었고,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상한 건 내가 깨어났을 때 저 소년, 그레이스가 이쪽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집에 가야 하는데, 집에 가야 하는데! 술이 덜 깬 나는 그곳이 테니스 선수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인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 소년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는데 그 소년도 우리 쪽의 사정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집에 가야 하는 소년을 태워다 주기로 했고, 저쪽에 얹힌 짐처럼 놓여 있던 운전기사를 데려와 전날의 일이 기억나냐고 소리쳐 물었다. 그게 내가 처음에 얘기한 ‘운전기사와 했던 얘기’이고, 운전기사는 내 미심쩍은 기색을 느낀 것인지 약간의 긍정도 부정도 내보이지 않는 태연한 얼굴로(이때 운전기사는 자신의 일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술이 깬 상태였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것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것이어서 나는 이번 한 번만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었던 것인지 이젠 두 손으로 옆 차를 향해 모욕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아까 그레이스에게 모욕을 당했던 그 차였다. 젠장, 따라붙은 건가! 다들 젠장이라고 외쳐! “젠장!”(테니스 선수) “젠장!”(운전 기사) “엿이나 먹어라!”(그레이스) 그리고 이제 빨리 달려라! 저 차가 우릴 따라붙지 못하도록. 오, 그레이스! 빌어먹을 자식! 나는 급작스럽게 빨라진 자동차의 속도감을 느끼며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얼굴로 이쪽을 따라붙는 차의 창문에 비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우릴 향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오, 당연한 일이지! 지나가던 옆 차에게 엿을 먹었으니. 그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고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이 무엇이 있나 떠올려 보았다. 침대. 이건 안 되지, 들고 가기 어려우니까. 그러면 시계. 아니 이것도 아니지, 왜냐하면 이건 들고 가기가 너무 쉽잖아? 만일 그들이 자신이 화가 난 것을 위장하고 있는 거라면? 그들은 화가 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척을 하는 거야. 지금 이 차에 따라붙는 것도 단순히 제스처일지도 몰라. 그도 그럴 것이, 젠장! 술이 안 깨서 머리 아프네! 그 순간 옆 좌석에 타고 있던 테니스 선수가 입을 열어 말했다. 모두 들리십니까? 혹시 이런 건 어떨까요? 우리 모두 같이 그레이스를 따라 하는 겁니다. 저 모욕적인 제스처를 10톤으로 만들어버리자는 겁니다. 가상으로 저 차를 때려 부숴버리죠! 하지만 모든 것은 가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서둘러 운전기사를 부축했다. 왜냐하면 그가 나보다 못 걷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테니스 선수의 넓은 품이 세계처럼 나에게 보였고 힘을 잃은 나는 그 품으로 쓰러졌다. 우리는 아직도 술에 잔뜩 취한 채였다.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포도의 사람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떨어진다. 나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저 멀리에 신부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이 가까이 온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한다. 그날 있었던 일들이 어땠으며, 포도를 얼마나 많이 주워 담았는지를. 바구니 안에 든 것은 검은 포도들이다. 그 사람은 양해의 손짓을 하고는 내 바구니에 손을 가져가 몇 개의 포도를 집는다. 그리고 하나씩 입에 털어 넣는다. 입맛에 맞으신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입맛에 맞았노라고,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그것은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져야 할 자질 중에 하나다. 자연의 산물, 특히 나무 위의 생명이 다해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들을 이렇다 할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이는 것. 나는 그 사람에게 항상 하던 말을 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그 성당에는 다음에 가 보고 싶다고. 사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한 성당을 운영하는, 아니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끔 이 포도 농원에 놀러 온다. 아니, 놀러 오는가? 그 사람도 입을 열어 항상 하던 말을 한다. 신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그런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꼭 등 뒤에 날개가 달린 권 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사들의 계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권 천사라는 말은 천사 앞에 권 씨가 성으로 붙어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나는 바구니에 손을 담아 검은 포도들을 한주먹 쥔다. 그리고 그것들을, 헨젤이 그레텔에게 따라올 길을 알려주려 빵 조각들을 일정한 거리로 남긴 것처럼 나도 하나씩 바닥에 떨군다. 그 신부는 이쪽의 손길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헨젤처럼 누군가가 이곳으로 따라올 수 있게, 당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단지 다람쥐나 청설모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그들은 농원의 과실에 해를 주지 않는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이 하나도 없으니만큼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신부도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신부가 입을 열어 말한다. 그런데 신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오늘까지라고. 나는 의아해져서 신부에게 되묻는다. 그럼 나는 오늘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분명 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부가 이어서 말한다. 사실 성당을 이전하게 되었노라고. 그 때문에 국경선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이 찾아올 성당이 없어지게 되는 거라고. 신부의 말은 분명 듣기에 좀 이상했지만 나는 가끔씩 찾아오던 그를 이젠 못 만나게 되는 것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신부에게 오늘은 이 포도 농원의 깊숙한 곳까지 한번 같이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포도 농원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걱정됩니다. 그런가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렇다. 신부가 찾아오는 것이 그 때문이었는가, 나는 그저 이 포도 농원이 좋아서, 아니면 내가 대화 상대로서 적합하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십니까? 나는 물었고 그 신부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웃었다. 나는 그 신부를 농원 입구까지 배웅했다.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사랑의 순간

플란넬 셔츠를 입은 한 아저씨가 걷고 있다. 그의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코에는 코피가 잠시 났던 것인지 왼쪽 콧구멍에 휴지 뭉치를 꽂고 있다. 그는 주택가의 어떤 건물, 2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미술 학원이 있고 1층에는 코인 세탁소에서 세탁을 마친 사람들이 빨랫감을 들고나오는, 그런 광경의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춘다. 여기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확연히 그들이 서로 사귀는 사이란 걸 알 수 있는, 겉으로는 고등학생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잘 보면 고등학생들이란 걸 알 수 있는 이들이 계단에 앉아서 포옹을 하고 있었다. “이런, 서로 사귀는 모양이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저씨의 목소리였지만 그러나 확연히 느껴지는 공기의 진동이 저 멀리까지 닿은 듯, 서로 포옹을 하고 있던 고등학생들 중에서 나이가 좀 더 어려 보이는 한쪽이 포옹을 풀고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와, 나처럼 플란넬 셔츠를 입고 계시는군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나는 시력이 별로 안 좋다) 그 말을 하면서 소매를 주섬주섬 꺼내 들더니 반대쪽 손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그것을 가리킨 것이 남성 쪽이란 건 알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가 입을 열어 말했다. “이런, 자네들 지금 내 가까이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니는가? 공부 대신 그림 그리는 일을 배울 수도 있는 노릇이지. 난 지금 이곳에 다닐까 생각 중이라네. 왜냐하면 아이들을 위한 곳처럼 보이거든.” “하하. 꽤나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시는군요. 그런데 조금 부끄럽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사귀는 사이란 걸 보여드리고 말았군요.” “아니, 그것이 아니라네. 나는 자네들을 멀리서 보고 왠지 나까지 부끄러워져 잠시 말을 걸고 만 것이라네.”(하지만 가장 부끄러웠던 건 그들을 묘사한 내 쪽이었다) “저런. 그런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을 하기가 힘듭니다. 혹시 거리를 좁혀서 얘기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난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 그 말을 끝으로 이마에 땀이 나고 콧구멍에 휴지 뭉치를 넣은 아저씨는 가던 길로 사라졌다. 나는 묘사를 마치고 집에 가서 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있잖아, 언니야. 오늘 묘사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둘이 연애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나왔어. 그리고 그 둘한테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그러더니 거리가 멀지만 그중에 남자인 쪽이 똑같은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있다면서 아저씨에게 화답했어. 그 아저씨는 어쩐지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묘사를 하고 있던 나도 그냥 그 아저씨를 보내주기로 했어. 물론 그때까지 그들과 아저씨의 거리는 절대로 좁혀지지 않았고 말이야.” 언니가 말했다. “그래. 묘사를 하면서 즐거웠니?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를 설정한 이유는 뭐지?” “어쩐지 부끄러웠기 때문이야. 즐겁긴 즐거웠는데... 서로 사귀고 있는 그 둘 사이의 애정은 그 아저씨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처럼 보일지 잘 모르겠었어. 요즘에는 잘 모르겠는 일들의 투성이야. 그래서 내가 묘사를 하려는지도.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네가 좋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2021년 6월 16일 수요일

학원 강사

이 도시는 아름답다. 특히 밤의 전경 같은 것을 보면 그렇다.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는 편인데, 날이 춥거나 덥거나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아니면 피부에 간질거리는 반점이 올라왔다는 등의 이유로 매번 나가기가 싫다. 하지만 막상 운동을 나가면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운동을 시작하기 아주 직전까지 마음이 괴롭다는 것은 내가 남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다. 지금은 도시의 낮이다. 나의 직업은 강사이고, 나는 이곳까지 드리우고 있는 건물의 그늘을 일터 안에서 잠깐 보고 있었다. 계절이 바뀐 것을 느낀다. 마치 누가 놓고 간 과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한 입 집어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람과 나는 친한지 친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친하거나 친하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나는 강사이므로 이런 문득 드는 의문들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내게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것처럼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항상 어떤 종류의 ‘학교’라는 것이 매개로 존재하고 나는 그 매개를 통해서만이 강사가, 아니면 선생님이 된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설명하는 것과, 지금 나처럼 그림을 가르치는 일은 같은 강사의 일이긴 해도 조금쯤은, 아니 꽤나 다르다. 예를 들어 이 도시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전하고 싶을 때도 그러하다. 전자는 ‘이 도시는 아름답습니다.’라고 단순한 예문을 적어줘도 끝나는 일이지만 내 일 같은 경우에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그때에 있는 연관성으로 지금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이, 그런 식으로 말해줘야 한다.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는 딴소리를 잘하는 강사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나는 조금쯤은 바라고 있다. 지금은 운동은 아니고, 산책할 겸 밤에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서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손을 물에 잠그고 흔드는 등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나는 그 아이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양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된다. 그들은 그러면서, 여기까지 비치기로는 어떤 종류의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들과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란다. 내가 늙을 때까지 어떤 종류의 방해도 없이. 그들은 나를 생각하고 있고 나 또한 그들을 생각하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그들이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다면 나는 달리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 나는 달리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며, 물론 그런다고 해서 하나도 거리가 가까워지진 않을 테지만, 그들이 빗길을 걸을 때. 흔들리지 않는 보폭처럼 나는 그들에게 서명을 남긴다. 그 서명은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로 쓰여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내재하는 여러 곳으로 튀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다. 이 도시는 지금 아름답다. 내 가슴속에서 아니면 먼 미래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들이 자라서 다시 오늘처럼 강물에 손을 잠그고 어떠한 생각도 없다면. 나는 그 풍경을 지키고 또한 바란다.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첼로 연주자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서 집이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큰 돌개바람이 다가와 원형의 호선을 그리며 떠올라 먼 곳까지 날아가지 않았을까요. 집이 사라져서 난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사는 가족 또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난 그들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나를 좋아했을까요? 집이 먼 곳까지 날아간 게 사실이라면 그들이 도착한 그곳은 살기 좋은 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는 이러한 사정을 지인인 탐정의 거처에 와서 설명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 탐정은 추리를 하지 않는답니다. 평소에는 안락의자에 누워 있기만 하고요. 가끔은 추리 소설을 양손으로 들고 펼쳐 봅니다. 그 책들을 꽤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건 내 인상입니다. 그는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것참 별로 대수롭지는 않은 일이네, 라고요. 이것이 대수롭지 않다면 어떤 것이 대수로운 일일까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날아간 집을 찾고 싶어? 정확히는 날아갔는지도 어떤지도 잘 모르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왠지 집을 잃은 일이 블랙잭을 하다가 단 몇 개의 숫자 차이로 아깝게 돈을 잃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되었습니다. 물론 날아간 집을 찾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실제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입을 열어 물었습니다. 당분간 여기서 좀 머물면 안 될까? 날아간 내 집에 지갑이 있었거든. 돈이 하나도 없어. 안 돼. 왜.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악기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그것은 육중한 몸체의 첼로였습니다. 내가 연주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악기이기도 하고요. 이것 가지고 돈을 벌면 되겠지.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서? 저쪽 블록의 성당 옆에서 해 봐. 네 실력이면 할 수 있을걸.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나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런데 난 좀 슬퍼. 슬프면 연주를 할 수가 없어. 자꾸 손이 엇나가고, 실수만 하게 되거든. 네가 슬픈 이유는 뭐지? 나는 말했습니다. 집이 사라졌던 일이 슬퍼. 이제 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거든. 그리고 거기 살던 사람들의 얼굴도 이젠 보지 못하게 되었어. 모두가 병이 나서 오랫동안 멀리 떨어진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과 같은 일이지. 그가 말했습니다. 다른 점은 그 돈을 네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겠지. 넌 실력이 있고, 벌 수 있는데 뭔들 못하겠어? 난 말했습니다. 싫어, 취미를 가지게 된다는 일이 싫어! 난 연주만 하고 싶어. 그 일이 뜻하는 건 항상 연주하는 자리에다가 모자를 가져다 놓고, 이국적인 인상을 주면서 때때로 연주를 멈추고 관객들의 호응에 화답하고, 특히 그곳을 거니는 아무 연관도 없는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올 거란 거야. 난 그게 싫구나. 난 연주만 하고 싶거든. 그런데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뭘까? 그가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아름다움. 나는 어쩐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당장 떠나기

나는 자연경관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도심 속에서는 숨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업을 하려고 카페에 갈 때 꼭 식물들을 많이 길러놓고 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왜냐하면 식물 곁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식물들은 관상용이지만 실제로 가까운 자리에 앉으면 나무 냄새, 풀 냄새가 났다. 나는 나무 냄새와 풀 냄새를 좋아했다! 나무 냄새와 풀 냄새는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다르다. 나는 그걸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조상의 묘가 있는 선산의 냄새도 나는 기억한다. 그때 맡았던 냄새는 나무 냄새, 폴 냄새가 아니었다. 바로 산의 냄새였다! 하지만 그 산의 냄새에는 조상의 묘에 절을 하려고 피워 놓은 향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향냄새를 꽤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산 냄새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온갖 풀과 나무들의 냄새에 더해 흙냄새까지 났기 때문이다. 나는 흙냄새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 온 뒤 젖은 땅에서 나는 비 냄새는 꽤 마음에 들어 한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나는 향수 한 병을 산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향수의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아주 인공적인,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내가 향에 대해 잘 묘사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향에 대한 묘사에 자신이 없다). 그 인공적인 향은 어쩐지 깨끗한, 아주 깨끗한 공중화장실 냄새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내 몸에서 공중화장실 냄새가 나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기에 그 향수는 안 쓰고 서랍에 넣어두었다. 인공적인 향기는 도심 속의 매캐하고 답답한 공기를 연상시킨다. 나는 냄새가 사람으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기억을 확 들게 하는 연상의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봄날에 걸으면 거리에서, 특히 나무와 풀들 주변에서 나는 냄새가 의식된다. 왜냐하면 봄은 공기가 바뀌는 계절이어서인 것 같다. 가끔 봄날의 그런 냄새를 맡다 보면 아주 예전의 일이, 특수했던 어떤 기억이 그곳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아주 갑작스러운 일이다. 나는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동네에서 어릴 때 살았고 그래서 무언가가 타는 매캐한 냄새에 익숙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그런 매캐한 냄새를 맡았을 때 그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년 전쯤 평생 걸려본 적 없던 비염이 찾아왔고 그래서 나는 냄새 맡는 기능이 아주 약해졌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시 좀 나아졌다. 이젠 약도 안 먹는다. 그건 꽤 기쁜 일이면서 동시에 병이란 것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병이란 무엇일까? 자연에서 유리된 이 도심 속의 삶이야말로, 드문드문 살아서 땅에 뿌리내린 관상용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생각하건대, 일종의 병이 아닐까? 나는 자연경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에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산에서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러 냄새들의 혼합 속에 흙냄새도 나기 때문이다. 나는 흙냄새가 싫었다. 그러면 꽃향기는 어떠한가? 꽃! 그것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 경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이 꽃에 대한 생각을 하기까지 무의미한 생각의 연쇄를 거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에 내가 언제 한번 걷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런 꽃길이 있었다. 거기는 풀과 나무들과 함께 야생화들이 많이 자리한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철길이 있다. 그 선로를 쭉 따라서 걷다 보면, 주택가가 나오고 그건 꽃길이 끝났다는 뜻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 주택가를 통해 꽃길로 입장할 수 있다. 나는 택시를 부르지는 않고 거기까지 가는 싼값의 교통편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서 그냥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도심 속의 답답한 공기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 같아서 난 생각을 바꾸었다. 당장 가야겠다!

2021년 6월 8일 화요일

비행선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닿고 싶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 간호를 받고 있지만 이 몸은 언젠간 나을 것이고 나는 준비가 마쳐지는 대로 내가 염원하던 곳에 가고 싶다. 거기에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멀리 나왔다는 것에 감회를 느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문은 부유한 편이어서 아버지께서는 내게 관상용으로 허락된 비행선을 준비해 주셨다. 이 몸이 낫기만 하면, 낫기만 하면 나는 하인스를 데리고 비행선에 올라탈 것이다. 그때부터 비행선의 용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뒤바뀌어 순전히 나를 멀리 안전하게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장수풍뎅이처럼 강력한 내구도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비행선에는 값비싼 헬륨을 가득 채워 놓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부탁드렸다. ‘This is hydrogen.’이라는 문구를 적은 스티커를 내부 관제실 문에 붙여달라고. 왜냐하면 수소는 폭발성이 있는 위험한 기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위험성으로 인해 수소 비행선은 사장되었지만 그 특유의 저렴한 기체가 갖고 있는 여러 범위로의 범용성! 어디로든 나다닐 수 있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싣고 다니는 유용함에 대해 난 호감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채워 놓은 것은 helium이니까 이미 안정성은 보장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나를 보좌해줄 이들 중 하나인 하인스는 나보다 더 병약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심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집 안에서 가장 병약한 사람은 나여야 하는데! 물론 나는 실제로 병에 걸린 사람이므로 이 집 안에서 가장 병약한 사람인 것이 맞다. 하지만 하인스의 희고 병약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어찌 나를 간호하는 일을 평상시에 잘 처리하고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다행히도 하인스와 나는 기사 편력 소설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만일 그가 그걸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성질이 괄괄한 노인들처럼 침대에 누워 식사를 가져올 때마다 소리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흰둥이 놈! 어서 썩 식사를 가져다 놓고 자리를 뜨지 못할까!’ 물론 훌륭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실제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맛있는 반찬이 있다고 해서 하인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고, 그것을 명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께서 비용을 부담해준 관상용 비행선 ‘드럭커’에는(나는 이 이름이 장수풍뎅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지었다) 내 모든 지식이 집약된 간결하고 아름다운 설계도가 첨부되어 있다. 물론 실제 설계는 비행선 제조 공장에 맡겼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은 이건 거짓말이고 아직 비행선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내 방 안의 초록색 벽면에 스티커로 붙여져 있다. 사실 내가 걸린 이 병은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책상 위에는 하인스가 채집해 온 장수풍뎅이가 유리 벽에 갇혀 있고 식사를 가져오는 하인스는 나와 그리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비행선은 아직도 공장에서 제조 중이고, 사실 모든 비행선은 이미 퇴역한 지 오래다. 책에서 나는 그걸 읽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닿고 싶은가? 그러려면 이 병이 낫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야 할지도. 왜냐하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천사 하나가 다가와서 내게 말한다. 비행선의 죽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本에 귀속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그럼 분명히 원하는 곳에 닿을 거라고. 물론 나는 나의 죽음을 그렇게 아름답게 말하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천사의 손을 잡고 저 방문을 가리키며 이곳을 나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심 나는 저 천사의 말을 믿고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산업에서 비행선을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럴지도.

2021년 6월 1일 화요일

리틀 라이언

공책에 곰 인형이 그려져 있다. 이 곰 인형의 이름은 리틀 라이언이다. 이 곰 인형은 리틀 프렌즈라는 그룹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실제 곰 인형 대신 곰이 그려져 있는 이 공책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당황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잤기 때문이다! 이 공책 안에 그려져 있는 리틀 라이언도 멀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불면증이 있는 나로서는 혹시나 하고 이 공책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던 것인데 예상보다 깊게 잠들었다. 내일도 품에 안고 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곰 인형과는 달리 곰 인형이 그려져 있는(나는 이 공책을 600원 주고 샀다) 이 공책은 품에 안고 자기 좋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잠결에 내 몸에 눌려 귀퉁이가 접히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공책을 코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코팅해 놓은 책받침처럼. 하지만 코팅은 낱장으로 된 종이로만 할 수 있고... 또 어디서 코팅을 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냥 최대한 조심해서 이것을 품에 안고 자기로 했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서둘러 공책에 접힌 데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접힌 데가 없었다. 다만... 내가 이 공책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킨 모양이다. 책상 위에 휘날려 쓴 글씨가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왜 공책을 품에 넣고 잠드니?’ 언니의 쪽지였다. 언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걸었다. “네가 자는 모습을 봤어.” “으응.”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공책을 품에 안고 자니까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언니, 나 김밥 싸줘.” “김밥?” “으응.” “그런데 왜 공책을 안고 잠들었니?” 나는 오기가 났다. 왜냐하면 먼저 같이 자주지 않은 쪽은 언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딴청을 부리기로 했다.“내가 문구점에서 600원 주고 산 건데.” “응.” “곰 인형이 그려져 있어. 봐봐.” 그리고 난 공책을 내밀었다. “리틀 프렌즈라는 그룹에 속해 있는 곰 인형이야. 이름은 리틀 라이언.” “그렇구나.” 언니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작은 악어가 그려져 있는 노트였다! “얘도 거기에 속해 있대. 읽어줄까?” “으응. 그리고 다음에 잘 때 책 읽어줘.” “관찰이 취미인 콘은 항상 프렌즈를 관찰하며 비밀노트에 무언가를 적습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언니와 나는 한동안 멀뚱하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언니는 얼마 주고 샀어? 그리고 나처럼 잘 때 안고 자?” “난 700원 주고 샀어. 난 여기에 계획이나 그날의 일기 같은 걸 적어. 잘 때 안고 자진 않아.” “그렇구나.” “곰 인형 사줄까?” “아냐, 괜찮아. 그 앤 이름이 뭐랬지?” “콘이래. 리틀 콘. 내가 너랑 요즘에 한동안 같이 자지 않은 것은 네가 그런 방법을 스스로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 그런데 넌 정말로 찾아냈구나. 장하다.” “장해?” “응.” 리틀 라이언은 아직도 멀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작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것은 지평선 위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장난감 태양처럼 빈 캔버스 위를 그림 속의 열기로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흑요석

흑요석은 돌의 일종이다. 다이아몬드보다는 값이 싸고,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보다도 값이 싸다. 지금 내 발밑에 그 흑요석들이 몇 개 놓여있다. 나는 허리를 접어 고개를 아래로 하고 그것들을 집어 든다. 그리고 이리저리 손으로 만져본다. 나는 이 흑요석들을 팔려고 분수대 앞으로 가서 노점을 열었다. “이거 얼만가요?” 노점을 연 지 30분 정도 되었을 무렵 누가 와서 내게 물었다. “3만 원이요.” “너무 비싸네요. 좀 깎아주실 수 없으신가요?” “죄송합니다. 못 깎아드려요.” “네...”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시 뒤돌더니 이리로 와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흑요석이었다! “혹시 이것과 이것, 그러니까 흑요석들끼리 바꾸지 않으실래요?” “네?” 하고 나는 약간 당황스러워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것.” 그 사람은 자기 품 안에 든 흑요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 그 사람은 노점 위에 놓인 내 흑요석을 가리켰다. 기이하게도 그 두 흑요석의 모양과 크기는 거의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흡사했다. “바꾸지 않으시겠냐고요.” 나는 눈동자에 이채를 띠고 답했다. “네, 이것과 이것이라면. 바꿔요. 좋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품에 있던 흑요석 하나를 이쪽으로 건넸다. 나도 내가 가지고 있던 흑요석을 그 사람에게 건넸다. “그런데” 내가 말했다. “왜 품속에 흑요석을 넣고 다니시는가요?” 그 사람이 한쪽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말했다. “이렇게 바꾸면, 그러니까 동일한 것끼리 물물교환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처음에는 돈으로 사려고 했잖아요?” “그렇죠, 뭐.” 나와 그렇게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은 나와 성별이 같았고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였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아까 바꾼 것이 모양과 크기가 흡사해 보였더라도,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그 사람의 말을 끊고 내가 말했다. “네, 더 비쌀 수 있는 법이죠. 아무리 모양과 크기가 흡사해 보였더라도” 내 말을 끊고 그 사람이 말했다. “보는 안목에 자신이 있나 봐요?” 내가 말했다. “아뇨, 자신은 없어요. 전 단지...” 내 말을 끊고 그 사람이 말했다. “그렇군요... 당신은 내 눈을 보고 있었어요. 그건 내가” 그 사람의 말을 끊고 내가 말했다. “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내 말을 끊고 그 사람이 말했다. “세상에나. 그걸 분간할 수 있다고요?” “아뇨.” 내가 이어서 말했다.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바꿔봤어요.” 그 사람은 꾸벅, 내게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흑요석들을 다 팔기까지는 약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렸다. 흑요석들을 사 간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이것으로 반지를 만들겠다는 사람부터 이것을 베개에 넣고 잠들 거라는 사람까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하나같이 웃는 낯으로 흑요석을 팔았다. 그리고 그 도중에 아까 흑요석으로 흑요석을 교환해갔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리고 노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에 그 사람이 내게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저, 이건 아까 까먹고 못 드렸던 말씀인데요. 혹시 저랑 알고 지내지 않으실래요? 그러니까 저, 친구요.”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양말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았다. 뒤집힌 오망성이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둔 존재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부모님은 그런 약속이 나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했지만(그건 부모님의 돈이기에) 나는 TV를 봄으로써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수건을 걸어 둔 선반에 백조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는 기념주화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그것을 집어 들고 당장 문방구로 갔다. 그리고 문방구 문 옆에 있는, 동전을 끼우고 돌려서 뽑기를 할 수 있는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백조 주화를 넣고 돌렸다. 그 기계의 안에서 뭐랄까 금속성의 딸깍거리는 음이 났는데, 나는 그것이 왠지 ‘영차’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계의 밑부분에 반출된 플라스틱 알을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언니 뒤에 서서 만들어지고 있는 떡볶이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이거 맛있겠다.” “응, 그래.” “나 이거 많이 줄 거야?” “응. 많이 줄게.”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알을 먼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의자 위에 앉아 그것을 두 손으로 쥐고 딸깍, 하고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백조 모형이 들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백조 무늬가 양각된 기념주화를 기계에 넣고 돌렸더니 다시 백조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난 문학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건 왠지 문학적인 종류의 사건 같았다. 그래서 난 헤벌레, 하고 웃음을 지었다. “왜 혼자서 웃고 있니?” 언니가 내 방으로 들어와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백조를 쥔 내 손을 황급히 뒤로 숨겼다. “뭘 숨기니?”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 사건을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에게도 말하는 것을 삼갔다. 하지만 난 궁금한 것이 생겨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는 건 무슨 뜻이야?” “그건 네가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거야. 같은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지. 내가 떡볶이를 오늘 만든 건 그 때문일지도 몰라. 그리고 네게 줄 것이 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 방 안에 가서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 “자, 열어보렴.” 그 안에는 양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도 왠지 문학적인 사건처럼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나는 왠지 시무룩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릇에 담긴 떡볶이가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고마워. 떡볶이를 이렇게 많이 줘서. 그리고 양말도 줘서 고마워. 그런데 떡볶이가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거 같이 먹어줄 수 있어?” “그럼.”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포크를 두 개 가져왔다. 그날 밤 나는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어떤 아파트의 주방 같은 곳이었는데, 큰 백조가 주방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안녕, 백조야. 다시 양말을 뒤집어 놓지 않을게.”

관광지

이것은 누군가가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에다가 큰 돌 무리들을 뚫어 놓은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인들,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 한 사람을 붙잡고 영어로 말했다.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뭔가 웃긴 요소가 있었던 듯 그 사람이 잠깐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석굴 앞에 나란히 서서 그 사람이 사진 찍는 것을 기다렸다. 우리는 총 네 명의 일행이었다. 우리는 개연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누구도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다. 우리는 석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우리 중의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공부를 한다더니, 그것은 잘 되었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다한 것 같아.” “그러면 우리들한테 이 석굴에 대해서 알려줄 수도 있겠구나. 이 석굴은 뭐지?” “이것은 일종의 기념비... 누군가가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에다가 만든 거야.” “그렇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큰 불상이 음각으로 거대한 벽에 새겨지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거대한 유리 벽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 유리 벽에 대해 아는 사람?” 한 명이 대답했다. “이 유리 벽은 사진 찍을 때의 플래시, 강렬한 빛이 저 안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리고 섣불리 관광객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만들어 둔 거야.” “그렇구나. 그건 보통 미술관에 있는 유리 벽과 비슷한 것 같아.” 내가 이어서 말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절이 있었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닌, 지하에 있는 절. 절은 보통 지상에 짓지 지하에는 안 짓는 것 같은데 왜 지하에다 지었을까?”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아마도 지상에도 절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것은 지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을 거야.” “너희들은 똑똑한 것 같군.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자. 이 중에서 배가 고픈 사람?” “나요, 나!” 그들은 갑자기 어린애가 된 것처럼 나에게로 엉겨 붙어 왔다. 내 양쪽 팔에 매달리는 그들을 떼어내며 나는 간신히 비빔밥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중에서 키가 170을 넘는 사람이 둘 있었고, 그 이하인 사람이 둘 있었다. 우리는 키 순서대로 일렬로 서서 비빔밥 집에 들어갔다. 비빔밥 집의 현관은 일본의 가정 식당처럼 어떤 것을 수놓은 천을 위로 들고 입장해야 하는 형태였다. “방금 전 수놓은 것이 뭐였죠? 질문해도 대답할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관광지 근처의, 그리고 국내 색을 갖고 있는 음식점이었기에 음식값이 꽤 비쌌다. 음식이 다 나오자 우리는 먹기 전 기도를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어떤 종류의 개연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수거해 둔 휴대폰은 지금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투명 비닐에 담아 둔 세 개의 휴대폰을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나눠줄 때마다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잘 쓰십시오.” “무탈하셨습니까.” 이 인사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휴대폰을 받아들자마자 그들은 침식을 잊고, 그러니까 눈앞의 비빔밥을 먹는 것도 그만두고, 반쯤 모로 누워서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나는 말했다. “이제 저 석굴로 다시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건축

병원을 짓다가 그만두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고려해야 됐을 텐데. 이젠 짓다가 만 건물의 철제 골조가 주위의 주택가 옆에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되었다. 주택가들 사이로 들어가 보면 좁은 골목이 있다. 거기엔 가끔 날벌레들, 눈에 잘 안 보이고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서야 다가왔음을 알 수 있는, 날벌레들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집 옆에 쓰레기들이 나와 있다. 그 쓰레기들은 봉투에 담겨 있으며 그 봉투들 주위로 가끔 새들이 앉아서 쪼기도 한다. 그러면 운이 좋을 때에는 봉투의 약한 부분이 터지고, 음식물이 튀어나온다. 새들은 버려진 음식이더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가? 마치 고양이들처럼. 도시에 사는 고양이들은 무엇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가? 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병원 대신 롤러스케이트장을 짓기로 했다. 롤러스케이트장 주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내 몸의 반만 한 곰 인형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주위에 무엇이 필요한지, 지을지를 고민하지 않고 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한 다음에 그것들이 이미 존재하는 곳에 롤러스케이트장을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만약 그 자리에 건물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것을 허물거나 아니면 리모델링하고. 나는 건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건축업자인 친구를 하나 불러 집으로 초대했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그런데 이게 내가 필요한 일이라고? 이건 그냥... 컴퓨터 게임이잖아.” “나는 그래도 네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게임을 잘 못하거든.” “그래. 먼저 뭘 할 건데?” “롤러스케이트장을 지을 거야. 어디에 지으면 좋을까?” 그 친구는 한참을 마우스로 딸깍거리더니 이곳이 괜찮겠다며 장소를 추천해주었다. “이것은 사실 게임이 아냐.” “뭐?” 그 친구가 물어보았다. “그럼 뭔데?” 나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몰라. 게임일 수도 있겠지.” “그렇군.” 나는 그 친구가 정해준 장소에 마우스를 올리고 철거 버튼을 클릭했다. “이것은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야. 이런 게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약국과 PC방, 그리고 김밥집들이 포함된 한 빌딩의 2층을 모두 철거하고 거기에다가 롤러스케이트장의 건설 버튼을 눌렀다. “이곳에 있는 골목에 가본 적이 있어. 그 골목들을 끝까지 돌고 돌다 보면 가끔은 우연히 어딘가에 도착해. 그곳은 야시장이야. 나는 그 야시장에 몇 번 정도 도착한 적이 있어. 나중에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어떤 골목들을 돌고 돌아야 도착하게 되는지 조금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지.” 그 친구가 말했다. “그곳은 어땠는데?” “들어가 보면 천장이 낮은 집들밖에 없어. 그리고 그중에서도 천장이 더 낮아 보이는 국수집이 하나 있었지. 그곳에 실제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어. 꼭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에 온 것 같았어. 소인들은 실제로는 문구점에서 파는 도시 모형 세트에 알맞은 몸 크기를 지니고 있겠지. 아니면 인형의 집이나. 그런데 내 몸 크기의 절반 정도 되어 보이고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야시장이 더욱.” “소인들의 나라 같았어?” “아니,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내가 실제로 몸을 굽히고 들어갈 수 없어 보였거든. 이 게임은 그걸 아는 사람이 만든 거야.” “뭐라고?” 나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내가 만들다 만 병원의 철제 골조들을 확대하여 바라보았다. 그리고 롤러스케이트장의 바닥 자재로 쓸 건축 자재들을 구입하며 그 도중에 그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모자

나는 무엇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목소리는 작아서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쪽지에 적어서 건네주었다. 그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그런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였다. 그 사람도 장난스럽게 쪽지에 뭘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그 사람 쪽을 쳐다보며 목 인사를 했다. 이러한 제스처는 목소리가 작은 나에게 꽤 어울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모자를 누군가에게 파는 건 어떨까요.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당신이 그 모자의 모델이 되는 거예요. 나는 쪽지에 이렇게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 사람은 잠시 고개를 갸웃, 하더니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왜요?’ 그건 자기의 마음에도 이 모자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같이 내 모자를 사러 나가지 않으실래요? 나는 그 사람에게 쪽지를 적어서 건넸다. 그 사람이 흔쾌히 그러자고 한 후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저 사람처럼 어울리는 모자를 하나 갖고 싶었다. 중절모, 베레모, 차양 모자 등... 나는 여러 종류의 모자들을 떠올렸다. 나는 차양 모자를 하나 골랐다. 그 사람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스였다. 그 사람은 내게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는 둘 다 잘 어울리는 모자를 갖게 된 셈이로군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되물었다. 예? 나는 윌리엄스에게 대답하지 않고 쪽지에 내용을 적어서 건넸다. 같이 공원에 가지 않으실래요? 마침 태양빛이 내려오고 있어요. 모자를 시험하기에 좋겠군요. ‘네? 모자를 시험한다고요?’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이 좀 어색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벤치에 앉았다.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으니 꽤 시원했다. 그가 쓴 것은 베레모였다. 나는 차양 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모자가 마음에 들어. 윌리엄스는 이번에는 내 말을 되묻지 않았다. 그는 간간이 휴대폰을 들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 좀. 업무상으로 일이 있어서. ‘그럼 가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벤치에서 공원 구경을 하거나 쪽지 대화를 했다. 이 사람 앞에서 내 작은 목소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기뻤다. 난 사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단지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잘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작게 내는 것뿐이었다. 언젠가 윌리엄스 같은 이해자를 만나게 될 것 같았고, 지금 이 시간이 즐거웠다. 한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 우리는 헤어졌다.

2021년 4월 8일 목요일

동전 수집

나는 거리를 걷고 있다. 발 딛는 곳마다 버려진 동전들이 있는지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간다. 거리의 주택들이 보인다. 나는 여기서 동전 수집을 하고 있다. 종일 걸어 운 좋으면 7개 정도를 모을 수 있다. 동전 수집 말고도, 길거리나 집들 구경을 한다. 그러면 재미있다. 여기는 쓰레기가 많은 곳이군. 나는 왼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사실, 동전 수집을 하려면 그네가 있는 놀이터나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편이 낫다. 그런데 이 말이 무색하게도, 저 앞에 500원짜리 하나가 눈에 보인다. 버려져 있는 동전. 누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나는 그리로 다가가 그것을 줍는다. 오늘은 오전부터 쭉 걸어다녀서 총 세 개를 주웠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다섯 개 이상을 모은다면 기록 달성이다. 나는 동전을 줍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한 주택에서 인기척이 났다. 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나는 슬금슬금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잠시 그 사람 쪽을 보았다. 그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와 말했다. “혹시 라이터 있습니까?” “네.” 하고 말하며 나는 라이터를 건넸다. “못 보던 학생인데.” “네, 잠시 일이 있어서요.” 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중간에 가만히 있다가 나는 그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섰다. 아까 전과 같이 골목이 있으면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동전을 주우러 다녔다. 500원짜리보다는 100원짜리가 떨어져 있을 때가 많고, 지폐는 거의 떨어져 있지 않다. 나는 잠시 배가 고파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침부터 무얼 먹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이 골목들에서 나가는 경로를 떠올렸다. 이 골목들을 나가야 상가가 보이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이 골목들을 나가서 돈까스 가게에 갔다. 그리고 치즈 돈까스를 하나 주문했다. 아침부터 모았던 세 개의 동전들은 내 주머니에 깊숙이 있는 동전 지갑 안에 넣어두었다. 나는 물건을 살 때나 돈을 쓸 때 내가 모은 동전들을 내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면 너무 빨리 없어지기 때문이다. 동전 지갑도 7천 원짜리였다.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동전들을 다 합한다면 약 2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동전 지갑도 세 개 살 수 있고, 돈까스도 세 번 먹을 수 있고... 역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군. 내가 이런 일을 꽤 오랫동안 한 이유는 거리 구경이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거리 구경을 하면서, 괜히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할 일을 만든 것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나는 아까 담배를 피우던 그 사람을 생각했다. 가끔씩 있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다니면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2021년 4월 1일 목요일

하늘 정원

이 정원은 하늘에 있다. 그래서 하늘 정원이라고 부른다. 이 정원은 높은 곳(약 5천 미터)에 있어서 지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하지 않는다. 이 정원에 상주하며 근무하는 정원사가 둘 있고 정원의 중앙엔 저택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넷 정도이다. 그러나 하늘 정원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저택에 사는 멤버는 자주 바뀐다. 하늘 정원은 가끔씩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약 2400시간마다 한 번씩 내려온다. 인적이 없는 대륙의 사막이나, 우거진 수풀이 없는 밀림, 그리고 모래로 만든 섬의 공터 등에 내려온다. 그때 이 하늘 정원은 내려오면서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하늘 정원이 지상에 내려오면,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이 정원의 중앙에 있는 저택에 들어간다. 그때 멤버들은 몇 개월 동안 먹을 물과 식량을 거대한 미끄러지는 손수레에 싣고 들어간다. 이것은 ‘회’라는 곳에서 준비한 상비 도구이다. ‘회’란 이 하늘 정원의 회를 가리키는데, 공중에서 몇 달간 체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하늘 정원이 왜 공중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왜 정기적으로 지상에 내려오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 정원이 내려올 때마다 흙을 퍼서 성분 조사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회’는 이들을 가로막지 않는다. 하늘 정원의 발단은 지상에 있었던 몇백 제곱미터의 영역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라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나도 이 설에 동의하는 쪽이다. 왜냐하면 하늘 정원에서 근무하는 정원사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느 때와 같이 지상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상의 이 영역이 공중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에서 하던 근무가 공중에서 하는 근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하늘 정원의 신비로운 느낌을 의식해 여러 가지 전설적이고 민담적인 기원론을 들고 오기도 하지만, 진실은 단순한 것 같다. 그게 내가 하늘 정원의 오르고 내림을 여러 해 동안 보면서 한 생각이다. ‘회’의 리더는 처음엔 다른 사람이었다가 이번에는 나로 바뀌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정원사들에게 물어보니, 하늘 정원의 이후로는 봉급이 올라 먹고 살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서, ‘회’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번에 하늘 정원의 인원수를 좀 늘려볼까 생각 중이다.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테고. 그러나 전임자가 인원수를 네 명으로 제한해 놓은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나도 잘 모르는 어떤 이유가.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문학

내면성이란, 어떤 위해나 폭력 혹은 속임수, 혹은 권력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한 개인의 권리와, 그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 제도를 말한다. 외면성이란, 한 개인에 의해 실행되지 않은, 자연물과 재난 같은 성격을 띤다. 결국에, 어떤 사람이 원하는 바나 하는 말을 가감 없이 들을 능력, 그것이 상실된 경우에 내면성의 부재라 말할 수 있고, 혹은 이것에서 어긋나게 되어 타인에게 실수를 저지른다면(이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더라도) 개인 간 관계의 제대로 된 성립이 아니다. 혹여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더라도, 순수하게 면책된다. 이 면책됨의 성질을 의식하여 일부러 외면성의 성격을 띤 행위들을 할 수 있고, 이에는 만약,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가한 경우, 잘못을 저질러 놓고서도 눈감아버리는 일이 정당화되어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실제로 피해자는 남아 있는 것이다.

보다 순수한, 혹은 발전된 내면성에 있어서 그러한 피해자가 남아 있는 일, 혹은 기억하고 있는 일 등은 한 개인의 책임 있는 발화와 행위로서 그곳 근저에 자리 잡아 사회적인 실권을 형성한다. 이 사회적인 실권에 대하여, 어떤 식의 침해 행위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법으로써 보장하고 있는 내면성의 보호 관련으로 인해 이르게 되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귀결이다. 이 사회적인 실권에 <이끌린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계속 거기로 되돌아오게 됨을 의미하며, 살아 있는 개인이 아닌 그의 발화나 행위에 묶여 있는 경우이므로 제대로 된 주체 간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적인 실권을 다루는 한 개인의 책임 있는 행위들, 곧 내면성의 발현은 어떤 식으로든 지탄받을 수 있다. 이것은 꽤나 애매모호한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개인은 거부했을 뿐인데, 그 거부라는 행사가 실로 책임 있는 내면성의 발현이므로 사회적인 실권으로까지 즉시 형성되는 것이다. 갖가지 난립하에 형성되는 이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말과 행위들, 실로 그 수준에 있어 근본적인 격차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말과 행위들의 낙차>들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문학과 다를 게 무엇인가?

다를 게 무엇인가? 문학은 이름 없는 것이다. 반면 이 <말과 행위들의 낙차>들은 그 이면에 있는 것들로서 단지 기능과 효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가? 여기에서 문학이 <말과 행위들의 낙차>가 아니게 되려면 그러한 기능과 효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것을 거부하거나 무화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말과 행위들의 낙차>들은 아니어야 할까? 혹은, 둘 사이의 동일성이 성립하지 않거나, 내면성이 있어야 할까? 이것은 다시금 내면성의 작동 원리와 같은 것으로, 곧 내면성이 있으려면 그것은 내면성으로써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리가 한 개인의 독립적이고 가치 있는 의견을 형성하는 것이다 라고, 자연물과 재난 같은 것들, 에서 동일시되지 않고 있고, 구분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법 조항과 같은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항거 의견이 되기도 하고, 준수하자는 사람들의 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규정하고 설명하며, 묘사해내고 있다는 의견은 일견 타당하다. 결국, 바로 이러한 외부적인 조건에 의하여서 <문학>이라는 이름 없는 것과 <말과 행위들의 낙차>는 구분되고 있는데,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 있어서 그러한 조건과 접촉이 가능하다면 언제 어느 때에라도, <문학>과 <말과 행위들의 낙차>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곧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있음을 뜻하며, 다시금 내면성을 규정하고 있는 총합들과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이것을 <자의성>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자의성>이란, 보장되지 않으나 내면성 및 외면성에 근거하여 판단되지 않고, 사회적인 실권과도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자의성은 단순히 생명이 있는 것만이 아닌, 생명의 위에 있음을 뜻하고, 이는 권력이나 갈등, 충돌 관계가 아닌 휩쓸려 다니지 않는 개인의 가치 있는 기억과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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