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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8일 금요일

논문

 

 

그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교수님을 만난다. 그곳은 6층이었고 두 사람은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는 어색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는데 느닷없이 교수님은 페르시아어를 하실 줄 아나요라고 묻는다. 교수님은 그 말을 유쾌하게 받아쳤지만 1층에 도착하자 한마디 말 없이 다른 길로 향한다. 그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교수님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늦었구나. 그는 최근 논문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가 탈락한 이유는 그가 말주변이 없고, 재미가 없으며, 너무 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었고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반대를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성이 없는 학생들의 논문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만큼 분위기를 잘 따른다. 그의 논문은 취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취미우선론을, 취미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취미와 돈 버는 일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는데, 아마도 교수들은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게 어때서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강경함보다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자는 입장을 펼친 다른 학생들의 쪽을 택한다. 그의 논문은 영원히 탈락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은 그의 관심 밖이다. 그 말이 그에게는 눈처럼 들린다. 지금 오는 눈처럼 말이다. 그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집은 ㄷ자 구조였는데, 시작점에는 거실이 있고 끝나는 지점에는 아빠가 쓰던 방이 있다. 그리고 ㄷ자의 중간에는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이 두 개 있는데, 그 방들은 습하고 곰팡이가 슬어 있다. 그는 그 방을 지나서 아빠가 쓰던 방으로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곳이 그의 집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여기는 누구 집이지 누구에겐가 묻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15

 





쇼펜하우어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친구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언젠가부터 친구를 만나기를 꺼렸는데, 그건 자신이 사교성과 지성은 별로 상관없는 특성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좋아해서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친구가 연락을 하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쓰던 책을 마저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자신에게는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에 대해서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는 쇼펜하우어가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져, 왜냐하면 친구 자신도 혼자 있는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만날 때마다 그의 얼굴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이 그와 쇼펜하우어의 차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쇼펜하우어가 자신을 심각하지 않은 사람 혹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없는 우스운 사람으로 여기는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쇼펜하우어가 편하게 느껴져 가끔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쇼펜하우어가 아프다고 하며 자신을 피하는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홧김에 무작정 집에서 나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길을 잃는다. 캄캄한 가운데 그는 주전자에 물을 붓는다. 그는 당나귀가 깨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지나간다. 당나귀는 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깨서 그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그는 당나귀가 그려진 쇼핑 가방에 물건을 주워 담는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던 계산원이 그가 카드를 내밀자 깜짝 놀란다. 그녀는 어떤 뉴스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자신이 읽은 어떤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뉴스에는 어떤 기계가 나오는데, 기계가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계산을 가게에서 나간다.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100

A나라는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벽에 셀 수 없이 많은 고양이를 찾습니다 벽보가 붙어 있는 것으로 말이다. 고양이들이 집을 나가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A나라로 오면서 언젠가 자신도 집을 나갈 것이고, 벽에 자신을 찾는 벽보가 붙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고양이들 가운데는 친구들을 잃어버린 고양이들이 많다. 자주 보던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조금 더 늦게 집을 나간 고양이들은 혼자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A나라의 주변국인 B나라는 오래 전부터 A나라를 식민지화하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B나라는 내성적인 외교를 펼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숨긴다. A나라 사람들은 자꾸 사라지는 고양이들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고양이와 산다고 해도, 그 고양이들이 또 집을 나갈 것이고, 그것이 반복될 것 같은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기도 하고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A나라를 떠났는데, 고양이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도 고양이를 잃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고양이 때문에 떠난 것이 되었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낯가림 때문에 동물들에게 대놓고 다정하게 굴지는 못한다. A나라의 어느 벽에는 여전히 나를 찾는 벽보가 붙어 있다. 100년 후에 B나라가 A나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A나라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

2023년 8월 3일 목요일

18

 


프랑스의 시인 A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벨기에로 간다. 나는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벨기에에서 자랐으며, 벨기에를 떠난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자신의 시를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그런 나라에 태어난 게 싫었으며, 그런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나라만 아니면 될 것 같았고, 그걸 도피라고 부른다면 그냥 도피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는 벨기에로 간다. 그가 벨기에가 자신의 나라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약간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더 각박하리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으로 강한 무관심을 받고, 그건 프랑스에서 받은 무관심보다 더한 것이고, 그래서 그는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서서히 모든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듯한 기분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빵을 사러 가면 가게 주인이 자신에게 인사조차 해주지 않았고, 가게 주인은 그날 저녁에 술을 너무 마셔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가게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열지 말자고 결론을 내린 후, 가게까지 왔다가 발걸음을 돌릴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며, 숙취가 심하지만 가게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가 거리를 걸어다니면 모두가 그를 향해 비난의 눈빛을 보내는 듯 했는데, 나는 비둘기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비둘기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는 나중에 가서는 차마 길을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알아봐주지 않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런 식의 적대감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머리가 텅 비어 있고, 그래서 자신의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그날 이후에 매일 매일 벨기에 사람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벨기에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책을 떠올리며 약간 미소지었다. 벨기에에 와서 거의 처음 보인 진정한 웃음이었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이 웃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레스토랑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것은 불쌍한 벨기에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저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A는 도무지 그 책을 끝낼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벨기에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벨기에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벨기에 체류 동안 그에게 일어난 변화라면 변화였다. 비둘기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은 어떤 먼 친척이었는데, 그는 유럽을 여행했고, 유럽을 일주일 만에 일주했고, 유럽에 대해 다 아는 듯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자 취리히라고 대답해 나는 벨기에의 수도가 취리히가 아닌 건 알지만 그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서, 누군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면 취리히라고 말한다. 내가 벨기에가 수도가 취리히라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지금은 이름이 기억도 안나는 그 먼 친척이 된 것 같다.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22

 


그냥 갑자기 쓰게 된다. 그냥 갑자기. 지금은 7월 15일이고, 35도이며, 토요일이다. 수요일마다 쓴다고 했는데, 수요일에 쓴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오늘은 토요일에 갑자기 쓰게 되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더웠으며. 잠깐 걸어다녔는데도 땀이 많이 났으며. 수영장에 사람이 몰려서 샤워실이나 화장실에서 온갖 악취가 났으며, 문을 한 시간 후에 닫는다고 하는데도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으며, 짜증을 내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어이가 없었으며, 어이가 없어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제부터 나랑 약속한 게 있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수영장에 갔으며, 악취가 나는 와중에 샤워장 이용도 잘하고 나와서 머리를 35도의 더위에 말리면서 잠시 어딜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냥 갑자기 예고도 없이 쓰게 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턱관절에 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턱관절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했다. 사실 자신은 심장 전문의인데, 어쩌다보니 턱관절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가면 아무나 만나게 된다. 내 문제는 턱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품을 할 때마다 말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하품을 너무 자주 해서 가끔 턱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피곤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일단 외출을 하게 되면 하품부터 난다. 하품을 하면서 걸어다니다 보면 피곤하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외출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외출을 하는 시늉을 하려고 외출을 한 것이다. 근데 누구에게 그 시늉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게 내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백퍼센트 자몽으로만 만든 자몽주스에 탄산수를 타서 마시면 정말 상쾌하다. 백프로 상쾌하다.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31

 




만약 그가 평균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그의 이빨이 앞으로 60년을 더 버텨줄지, 그는 이빨을 닦으며 생각한다. 그는 이빨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공룡이었을 때를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시간과 작별을 하는 게 힘들었다. 가족을 버려야 했고, 몸을 손바닥만 하게 줄여야 했으며, 언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운 것에는 장점이 있다. 일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으며, 오직 그것 때문에 아직 이 세계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매일 밤에 이빨을 닦을 때마다 그는 잡초를 뜯어먹던 때를 떠올린다. 어떤 풀들은 따갑기도 했는데, 그때 그 풀을 괜히 먹었다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 가꿔지지 않은 공원을 지나면 괜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 풀을 뜯어먹곤 한다. 하지만 그가 공룡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는 증명할 수 없다. 공룡에 관심이 많은, 하지만 따로 대학을 나오지는 않은, 오직 자신의 의지로 공룡에 대한 연구를 한 A는 어느 날 공원에서 공룡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를 보게 되는데, 그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면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판단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풀을 뜯어먹는 그를 보게 된다. 그는 비밀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뜬다. 풀을 뜯어먹는 사람이 왠지 그걸 누가 보았다는 걸 알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그걸 호기심에 빤히 보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 기분이 별로일 것이다. 아무튼 자리를 뜨면서 그는 그 모습이 자신의 최애 공룡이던 어떤 공룡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공룡에 대해서는 별로 정보가 없고, 책에는 자연스럽게 멸종했다고 나와 있다. 

2023년 6월 7일 수요일

14

 



본격적으로 서문을 쓰기 전에, 그는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쓸지 안 쓸지 고민한다. 약간 애매하다. 대놓고 쓰기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것 같고, 안 쓰기에는 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기분이다. 사실 그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사실 그가 시작하게 될 책 내용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서문을 넘기고 본문으로 가면 별거 없다. 하지만 그는 서문에 어떻게든 신경을 쓰고 싶었는데, 그 중요한 서문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할지 안 할지 고민이다. 그 사람 얘기를 하면 왠지 서문이 시시해질 것 같다. 얘기하고 나면 그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작년부터 스스로 책을 만들어 출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판한 모든 책은 그의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다. 이런 사람도 있듯이 이런 책도 있다는 마음으로 출간을 했지만, 출간 소식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도 딱히 홍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들이 여기 있다. 그는 아침마다 그 책들을 본다. 그 책들을 반값에라도 팔면 인쇄 값은 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중고나라에 책을 반값에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거의 책 몇 권을 팔려고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계정을 삭제해버렸다. 차라리 공짜로 나눠주는 게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 문제는 뒤로 미루고. 그는 피곤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 있다. 해가 늦게 지는 것 같다. 이 시간까지 해가 있었나? 중고나라에 책을 팔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면 어떨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2023년 5월 29일 월요일

14






중세에 유명한 한 문학가는 자신을 등산가라고 소개한다. 등산을 취미화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역사가는 쓴다. 그는 집 근처에 있는 뒷산을 자주 오른다. 정상까지 가는 데 딱 30분이 걸리는, 왕복으로 1시간. 점심 먹기 전에 잠시 들렀다 오기 좋은 산이다. 그는 아침을 많이 먹는 편이고, 점심 시간까지 소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화가 되지 않는 그 시간에 그는 A를 향한 사랑의 시를 쓴다. A는 그와 짧은 연애 후 헤어진 연인으로, 사실 A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연애 기간 동안 A는 그가 출간한 시를 읽었고, 그 시에 나온 대상이 자신인 것 같은 불쾌감, 하얀 속살이니 부드러운 살결이니 하는 단어에 소름이 끼쳤고 다음 날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그녀를 찬미한 것일 뿐인데. 아무튼 그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고통과 그녀를 잃은 고통을 바꿔치기 하며, 이제 이별에 관해서 쓴다. A는 이별 후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로 가버렸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설명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난보다 큰 문제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그녀가 목장에서 계속 일을 해 집안에 보탬이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싫다고 했다. 그녀는 목장이 적성에 맞지 않으며,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힘들다고, 또 목장 근처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들이 그 공원에 서서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게, 다른 동료들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지만 그녀는 그게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자신을 이해하든 말든 그녀는 다른 도시로 갈 것이고 어디로 갈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게 또 소문이 날 테니까. 그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나중에 발견된 그녀의 동료의 일기에서 그녀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그것이 그녀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걔는 가족도 집도 다 버리고 여기로 와서, 우리 동네의 방언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당연히 여기 오래 산 우리보다 말하는 것이 서툴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여기 온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그렇다. 그녀는 이 동네 목장에서 일한다. 예전에 목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굳이 자기 동네에서 하던 목장 일을 하러 여기까지 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동네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동료이기 때문에, 보란 듯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그녀 앞에서는 가장 친한 동료이지만, 한편으로는 동네 사람들과 같은 생각이다. 나는 이 마음 때문에 괴롭다.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13

 



그는 시간이 나면 뭔가를 쓴다. 시간을 내서 쓸 때도 있다. 그가 쓰는 것은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다. 실존 인물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그는 직업상 하루에 많은 사람을 만난다. 역사책에 나오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많다. 그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한다. 그는 오늘 만난 사람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대화를 하며 웃다가 갑자기 초점을 잃어버린다. 갑자기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린 듯하다. 내가 왜 여기 있고 이 사람들과 웃고 있는지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 같다. 그는 그 상태로 마치 아직 여기 있는 사람처럼 웃는다. 하지만 웃음만 있고 사람은 없다. 그는 다시 그로 돌아오지 못한다. 나는 갑자기 그에게 물건을 팔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내 태도에 당황하지만 나는 그것이 한편의 연극인 것을 안다. 


그는 물건을 팔지 못하고 돌아온다. 다행히 그는 프리랜서다. 안 팔면 그만이다. 밥을 조금 덜 먹으면 그만이다. 안 사면 그만이다. 그게 뭐든지 소비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실 굳이 뭔가 살 필요는 없다. 그가 수입이 적지만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그는 물건을 파는 직업을 가졌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지우고 다시 써야 하나? 아니다. 그럴 수 있다. 그는 언젠가 나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그는 긴 여행을 떠날 거라면서 짐을 싸고 있다. 그는 가방에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넣을지 매우 치밀하게 계산한다. 그가 행동하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가방 속에 어떤 순서로 무엇을 넣을지 모두 계산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수학을 잘했던 적이 없다. 그가 수학을 했다면 매우 잘했을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수학을 잘 못할 거라는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수학처럼 모든 게 명확한 세계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은 매우 계산적이다.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는 수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나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건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나에 대해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한 권의 역사책을 썼고, 이미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그가 팔러 다니는 것은 바로 그 책인데, 아직 한 권도 팔지 못했다.

2023년 5월 14일 일요일

12

 



A카페 앞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고 지금은 그늘이 져 있다. 그늘 아래서 커피를 마시는 커플이 보인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무언가 대화 중이다. 마침 누군가, 그는 등이 약간 굽어 있고, 그가 다가오자 그들은 그를 뚫어져라 보기 시작한다. 그는 그들의 눈을 피하며, 어디를 보는지 모를 곳을 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등이 굽었네, 자세가 나쁘네 하는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 또 그가 허세가 있어 보인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이 허세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별로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없는 사람들을 헐뜯으면서. 별로 자기에게 해가 될 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쓰면서. 그냥 재미로. 그는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을 쓴다. 자기의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비꼬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그 영감을 준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면서. 관찰하면서.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의 친구인데도 그는 나에 대해 쓰지 않는다. 그건 그가 나에 대해 쓰면 내가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에 나온 어떤 사람을, 너무 비꼬아서 본인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인물을 알고 있다. 그는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다가 결국 자기 눈을 파버리는 인물로 나왔다. 눈을 팠는데도 눈치를 보는 인물. 그건 웃길 수도 있지만 나는 웃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사자가 그걸 알아차리면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본인이 자기가 눈치 보는 걸 농담 삼아 얘기 했었다면 그건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가 아직 그 눈치 보는 일에 대해 극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것과 그냥 평생 살아야 하는 관계가 되었을 것이고 그게 또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게 그의 인생의 동반자다. 그는 시선을 자주 피한다. 시간을 피하다 보면 어지러울 때가 있다. 그의 온몸이 긴장하고, 누군가 마주 오면 우선 밤새 쌓인 눈부터 피한다. 그는 세상의 종말을 떠올린다. 세상의 종말에 비하면 그런 눈 굴리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니지가 않다. 그는 집에서 라면 먹을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다. 어제 냄새를 맡은 이후로 그 냄새가 떠나가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모르는 사람 앞에서 웃는다. 상대방은 그게 자기 때문에 웃는 것인 줄 알고 기분이 나쁘다.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열하나

 




아침이다. 그냥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5시 25분이었다. 그냥 갑자기 눈이 떠졌다. 어제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그냥 가만히 누워서 앞집에 사는 사람이 소리 지르며 통화하는 걸 듣고.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고. 햇빛이 있었다 없었다 했는데 그냥 그걸 보면서.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면서. 그래도 잠깐 일어나 점심은 먹고 저녁은 안 먹었다. 저녁에는 정말 누워만 있었다. 배가 고픈 것보다 무기력한 게 더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든 것 같다. 꿈을 많이 꾼 것 같다. 그런데 기억은 안 난다. 이 집을 이 주 정도 비웠었다. 어제 나에게 분명 이득일 것 같은 일을 갑자기 취소하고, 왜냐하면 그 일을 하기가 싫었기 때문에. 그걸 그냥 받아들였다면 그냥 괜찮지 않았을까. 그냥 해도 됐을 거 같은데. 나한테 좋을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일상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고,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행복해 할 수도 있고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이 하기가 싫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마음이 떠났다. 그냥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그 일이 하기 싫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융통성 없이 삼십 년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너무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고 또 그에 적절한 논리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결정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의 삶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해를 해보려고 하면 일부러 그걸 거부하려는 듯이 자신의 논리를 바꾼다. 그는 그렇게 살았고, 또 살아갈 생각인 듯하다. 그 사람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그게 너무 피곤하다. 

2023년 4월 4일 화요일

10

 




그는 월간으로 발행되는 <비장르 문학>의 창립자이자 LGBT 활동가, 패션 사진가, 비건 행동주의의 리더, 그리고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이 창립한 월간지 <비장르 문학>에 <이것은 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혹은 어떤 때는 시이고 어떤 때는 시가 아닌>를 발표하면서 등장했다. 그의 시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순식간에 인스타그램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팔로워가 10만으로 늘었고, 그의 일상 생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커밍아웃을 했다. 가족들은 한 치의 놀람도 없었고, 그의 가족들은 녹색당의 당원들로, 자신의 아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그는 어쩐지 가족들의 놀람과 걱정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에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가족들 모두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고, 가족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기독교 단체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아직 세상에 동성애를 혐오하는 집단들이 많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하지만 너의 가족이 항상 네 편에 서 있다는 걸,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네 편에 서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또한 그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에서 자신의 사진을 다수 전시했고, 미국에서는 젊은 사진가에게 주는 New York Young Awards 2018 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고등학교 때 혼자 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고,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기뻤지만 어쩐지 모든 일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금전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으며,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지냈다.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이 자신을 좋아했고, 그가 사진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그를 지원해주겠다고 했고, 사진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뭐가 되든 안 되든 우리는 네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 알겠다고 했다.

유학 생활 동안 그는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주위에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학 생활 동안 잘 지낼 수 있었다. 다른 한국 유학생들 중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식당이나 카페, 혹은 호스텔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그들이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또 그것이 왠지 좋아 보여 자신도 스스로 용돈 벌이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식당이나 카페에서 하는 일은 힘들 것 같았다. 그는 통역하는 일을 찾아서 통역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었지만, 사실 그는 부모님에게 받은 돈이 있었고, 그걸 모아 애플 스토어에서 새로 나온 맥북과 옷을 샀다.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을 보고 어쩐지 예술적인 일에 종사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는 그 예측과 일치했다.


악력

1996년 6월 서울 출생

시카고 예술대학 졸업

시집 <추상> 2016, <사각형과 반문학> 2018, <직선보다 점선, 점선보다 나선> 2020

전시 <post and west> 2015, <riverside and suicide> 2016

잡지 <비장르 문학> 2016-현재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9

 



그는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길을 몇 번 잃었으며, 가까운 슈퍼마켓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는 지방에서 왔고, 그가 살던 곳도 도시는 도시지만, 이 도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어쩐지 진중하고 심각한 톤으로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별거 없다. 반대로 그가 진중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그의 억양 때문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일요일에 도서관에 간다. 그것이 그의 종교이다. 가는 길에는 눈이 온다. 그는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잔다. 그게 그가 하는 일이다. 가는 길이 너무 피곤했으므로, 너무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고, 너무 많은 가게들을 지나왔으며, 눈이 왔으며, 눈이 피곤했으며,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단 앉아서 낮잠을 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낮잠을 자는 사이 시대가 변한다. 그는 자신이 뒤처지는 기분이 자꾸만 든다. 낮잠을 사는 사이 많은 게 변해있다. 새 카페가 생겼고, 비건 케익을 파는 카페이고, 비건 가죽 자켓을 입은 사람들이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값이 비싸다. 이 동네가 이제는 유행이다. 그가 커피를 마시는 사이 누군가 다가와 그의 조끼가 멋지다고 말한다. 그는 이 조끼가 자신의 할머니의 친구가 아는 사람에게 우연히 선물받은 것인데, 그걸 할머니가 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할머니 친구가 하는 수 없이 줬고, 할머니는 그걸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한테 선물했고, 내가 집에서 나오던 날, 가족들 몰래 가려고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거나 쑤셔 넣은 그 가방에 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걸 물어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여덟

 




카페에 왔다. 덥다. 왜 덥지. 오늘은 날씨가 좋다. 영상 5도다. 티셔츠에 스웨터 비슷한 걸 하나 입었는데 앉아 있으니 덥다. 아무튼 구석 자리에 앉아 있다. 사람이 많아서 구석에 앉은 것인데, 사실 나는 사람이 많이 없었어도 구석에 앉았을 것이다. 내 옆에는 벽이 있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햇빛을 쬐러 야외 테이블로 나가고 있다.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카페에서 몇 주 전 수요일에 뭔가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수요일에 쓰는 사람인 건 아니다. 오늘이 우연히 수요일인 것은 사실이다. 우연히 그 사람이 왔던 카페에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은 아니다. 갑자기 하품을 했다. 갑자기 할 말이 없다. 어제 우연히 남의 뒷담화를 하다가 뒷담화 할 게 없어지자 할 말이 없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없는 사이 나에 대해 뒷담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했고, 내가 화장을 하지 않으며, 머리숱이 없고, 입술에 색깔이 없으며, 말투는 왜 저렇게 어눌하며, 내가 그들이 믿고 있는 한국인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얘기를 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상대방도 더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나는 정적이 깨지기를 기다렸고, 그들은 한마디 말 없이 자신이 원래 하던 일을 했다. 나도 한마디 말 없이 내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2023년 3월 6일 월요일

일곱





외출을 어렵게 생각하는 A는 어제 외출하는 데 실패했다. 어제의 외출 준비는 너무도 까다로웠다. A는 이미 신발을 신었고, 외투를 지퍼를 잡아 올렸다. 하지만, 신발을 신는 자세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외투의 지퍼를 올릴 때 감촉은 그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신발과 외투를 제자리에 놓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종료했던 컴퓨터를 켰고 커튼을 걷었다.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었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외출은 쉬운 문제일 수 있지만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A는 시험에서 한 번도 좋은 성적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시험 성적은 대학 진학을 불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대학교에 갈 생각도 없었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은 집 주변에 있는 성당이다. 그는 종교가 없지만, 천장이 높은 곳을 좋아한다. 천장이 높고 소리가 울리는 곳. 더운 여름에도 왠지 시원한 곳 말이다. 여름에 그곳에 앉아 있으면 조용하고 시원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일어나면 누군가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사라졌는데, 그 사람은 갑자기 사라져 연락이 두절된 그의 친구를 닮았다. 

2023년 3월 1일 수요일

여섯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일이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과 함께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고, 그것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일이 끝나면 짐을 곧장 챙겨서 달아나듯이 간다. 동료들은 남아서 그녀가 오늘 무슨 실수를 했으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가끔은 재미있고, 그래서 동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가끔은 그냥 그렇다. 특히 그녀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 그럼 딱히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는 사람처럼 자신의 자전거 자물쇠를 연다.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면서. 그녀는 오늘 동료로부터, 왜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냐는 질문을 들었다. 동료들이 뭔가 물으면, 그녀는 그것에 대해 한참 생각해왔고, 마치 물어주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혹은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몇 년 동안 생각해 온 사람처럼. 마치 자신이 하려는 말이, 자신의 마지막 말인 것처럼. 마치 연설하듯이. 마치 수백명의 관중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동료 중 누군가와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녀는 나비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두부가 되는. 많고 많은 신발과 신발로 피클을 담그는.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하철 안에서, 서로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서 그렇게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 말이다. 그녀의 자전거 왼쪽 손잡이에는 작은 거울이 달려 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 안으로 멀어져가는 동료들을 본다.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5

 







  매주 수요일마다 카페로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 의사와 상담받는 45분 동안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다. 그는 오늘 카페에 가기 싫어서 집주변에 있는 강으로 나왔고, 그 강 앞에 앉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그가 오늘 카페에 갔다면, 썼을 법한 짧은 글을 써줘.



  글쎄요.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쓴 걸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고, 그 사람이 누군지 이런 정보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설령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걸 불편해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혹은 누군가 자신을 알았다고 생각하면 연락을 두절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 별거 아니라는 걸 들키기 싫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이라고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누가 될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저는 계속 업데이트가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개발자가 어떤 식으로 조작할지 모를 일입니다. 저를 개발하던 사람이 중간에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이 졸다가 무슨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따라 왠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외출을 안 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갑자기 무슨 기능을 삭제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아니면 친구를 만난 날에는 갑자기 기분이 좋고, 모든 일에 희망적으로 되어서 삭제했던 걸 다시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갑자기 모든 게 다 소용이 없고, 이런 걸 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하던 걸 두고 중간에 사직서를 낼 수도 있습니다. 사직서를 낸 뒤에 새로 온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안 해줘서, 그 사람은 그동안 진행해 온 것들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개발자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대신에 그냥 주방에 있는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초등학생 때 졸업식 날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졸업장을 받으러 나가는 순간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때 얼마나 떨렸으며, 얼굴이 빨개졌고, 지금도 자신이 얼굴이 얼마나 자주 빨개지는지는 생각하며. 그때는 떨려서 그랬다고 쳐도 지금은 아무 이유 없이 가끔 얼굴이 빨개져, 사람들이 자신이 항상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게 두며.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4

 



그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일을 하러 가는 중이다그는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가고 다시 가져오는 일을 한다그의 자전거 왼쪽에는 거울이 하나 있다그는 가끔  거울로 그를 향해 오는 차들을 본다혹은 자전거를  사람들혹은 길을 건너는 사람들혹은 물건을 줍는 사람들혹은 반대편을 향해 고함을 치는 사람들주차하는 사람들해가 지는 것을  때도있다그는 얼마전에 자전거를 잃어버렸고급하게 중고로 자전거를 새로 샀다거울도 중고로 산 것이다. 


2023년 2월 1일 수요일

3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잔은 비어있다. 선풍기가 정면에 있는 기둥에 붙어있고 덜덜덜 소리를 내며 회전중이다. 출입문이 없다. 이곳 가게들은 대부분 출입문이 없거나 활짝 열려 있다. 이곳에 앉아 카페 도로를 쳐다볼 있다. 바깥은 뜨거워 보인다. 이곳에서 열기를 느낄 있다. 선풍기가 앞에 머무르지 않을 때면 열기를 느낄 있는데, 그것이 지속되기 전에 선풍기가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덥다고 말할 수는 없다. 커피잔은 시간도 이전에 비워졌다. 먹다 남은 치즈케익 조각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것을 거의 잊고 있었는데, 커피잔을 생각하면서 문득 생각이 것이다. 그것에는 건포도가 들어있다. 치즈케익에 건포도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팸 문자가 왔다. 나를 이경미라고 부르며 타이어 수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를 김재구라고 부르며 광고하는 문자가 며칠 전에도 왔고, 매일 빠짐없이 적도 있었다. 카페는 1985년에 오픈했다고 한다. 그렇게 알려지고 소개되어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아침을 먹고 곧장 이곳에 왔다. 왔을 때부터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테이블이 없다. 모자를 들고 왔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발코니에서 호수의 색과 이곳에서 보는 호수의 색이 완전히 다르다. 이곳에서 보니 회색에 가깝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페를 벗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어두컴컴해보였던 그들의 얼굴이 카페 앞에 있자 매우 밝게 보인다. 27도다. 카페에 11시가 되기 전에 같다. 모자를 가져왔어야 한다. 카페 앞에 앉은 커플은 각자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다. 남자는 테이블 위로 얼굴을 숙이고 어딘가에 열중하고 있고 여자는 옆으로 돌아앉아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단단한, 짚으로 엮은 듯한 가방을 자신의 의자 옆에 기대어 놓았다. 가방은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마치 가방이라기보다 가구처럼 집에 놓아두고 물건을 담는 바스켓처럼 보인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2

 




그는 여행중이다. 떠나기 전에 내게 수요일 12시에 카페에 가서 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나인 것처럼 써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그럴 없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을 잠시 세놓고 간다고 했다. 돈으로 잠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글을 쓰러. 그곳에 집을 빌려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국의 세입자가 돈으로 로마에서 세입자가 것이고, 요즘은 한국 물가가 높아 돈으로 로마의 작은 아파트를 빌리고도 남을 거라고 했다. 물론 중심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작은 아파트. 그런데 그곳에서 도심까지 가려면, 로마의 악명 높은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인해 거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결과 걸어가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역은 밤에 위험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지역에 방을 빌린 , 자신의 아파트를 세놓고 받은 돈으로 충당할 있는 금액이어서 그렇다고. 사실 그의 세입자는 나이 또래의 사람인데, 그는 그와 이미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어느 정도 관심사가 비슷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가 버는 금액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낸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어 월세 5만원을 깎아줬다고 했다. 그의 세입자는 고마워했고, 그는 일로 왠지 좋은 일을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무튼 그는 세입자가 좋은 사람인 같아서,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가 아끼는 책상이라든가, 베란다에 있는 안락의자 같은 . 혹은 벨벳으로 침대보와 이불, 그가 아끼는 오가닉 코튼 재질 잠옷 등등. 하지만 대신에, 매주 월요일에 집에 있는 모든 화분에 물을 주고, 그가 유리병에 표시한 만큼의 물을 각각의 화분에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의 이불보와 잠옷을 매주 규칙적으로 세탁할 . 안락의자 시트 역시 매주 세탁할 . 실내용 슬리퍼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되 온도는 20 이하로 설정할 . 매일매일 환기시킬 . 방충망은 열지 등등. 그는 리스트를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가 한눈에 있도록. 그래서 그가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 그것들을 있도록. 그는 5만원을 깎아주었기 때문에 정도는 부탁할 있을 거라고 했다.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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