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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 수요일

리비아 콜로라도

다른 뜻 없이 그냥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두 이름을 붙인 것뿐이야. 왜 맴도는지도 몰라.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콜로라도는 북아메리카 미국의 주(州)다.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해 뭐라뭐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 사전을, 인터넷을 뒤져서. 리비아는... 콜로라도는... 카다피는... 덴버는... 만약 내가 어떤 복수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늘어놓는 말들은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야. 맹세한 복수를 이루려면 때가 되기 전까지 뜻을 감춰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지만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나의 복수심은 드러나고 말아. 전혀 무관한 것만 같은 정보들로부터, 나의 복수심과 연결된 뭔가가 반드시 하나쯤은 나와. 그것은 내가 복수심으로 지나치게 불타기 때문이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복수심이란 언제나, 합심된 세계가 내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나 콜로라도보다도 엉뚱한, 아주 딴소리를 해도, 그것은 이 세계의 것이고, 내 복수심은, 어디서든 갑자기, 하나의 문장으로, 단어로, 튀어나오게, 또는 피어오르게 되어있어. 자세할수록,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멀어질수록, 복수와도 같은 무늬가, 패턴이 발견돼. 그렇다면 그건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복수심을 드러내려는 이야기인 거지. 이 돌기들과 냄새들은 나를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어. 이 놀이는 나의 복수심을 건넌방으로 데려가. 나 대신 울면서 말야. 그렇게 맹세했건만... 그렇게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닦으면서. 복수심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이끌려 간다. 왜 네가 우는 거야? 왜 울어? 누가 누굴 위로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모습. 만약 내가 정말로 쓸 사명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니까 사명들을 비석에 적어서 그냥 세워놓으려는 게 아니라면, ‘리비아 콜로라도’ 같은 식이라도 뭐가 어떻겠어?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반지하출판사

대학촌을 가로지르며 월세 기준선이 되는 왕복 4차선 도로, 그 저편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자리한 건물의 반지하 원룸이었다. 같은 층에는 여섯 호실이 있었는데, 두어 곳에는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아니면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또는 교환학생들이 지내는 듯했다. 마주친 적은 없고 말소리를 들어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 국제 이웃들. 나와 선배의 방은 여섯 중 모서리로, 운이 좋아 창문이 두 개였다. 한 창문은 담벼락에 면해있었고 다른 창문은 주인집 텃밭으로 뚫려있었다. 주인은 꼭대기 층에 살았다. 텃밭에 가끔 거름을 뿌렸다.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그 냄새가 맡기에 좋았다. 텃밭의 커다란 호박들 기억이 난다. 원룸 건물에 드나들려면 그 텃밭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야 했다. 우리는 거기서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당시엔 ‘안개가 끼기는 해도 공기가 맑아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졸업한 뒤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온 나라에서 열심히 미세먼지를 측정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공기 질이 아주 최악으로 나쁜 고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처의 무슨 항구... 근처의 무슨 화력발전소... 근처의 무슨 산맥...

선배와 그곳에서 6개월을 살고, 해도 바뀌어 때는 늦봄이었다. 선배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술을 마신다는 것 같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올 거였다. 아니면 안 들어온다고 했다. 비는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반만 열었다. 나는 선배의 고물 컴퓨터로 흘러간 옛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빗소리가 점점 세졌다. 번개 천둥도 쳤다. 긴 술자리에 할 말도 전부 떨어질 때면 우리는 이 고장의 저수지나 원룸촌, 기숙사 배경의 괴담들을 주워섬기곤 했다. 근처 저수지들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버려지는지에 대해, 자취방에서 꾼 이런저런 악몽들과 다양한 가위눌림에 대해. 선배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채 밭길을 지나다가 누가 어깨를 건드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란 얘기를 했었다. 그게 언젠데요? 2시인지 3시인지, 날짜를 묻자 선배는 시간을 답했다. 그 두 신지 세 신지에 귀신들이 가장 활발하다니까, 웬만하면 너도 그 시간엔 돌아다니지 마라, 그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계를 봤는데 마침 2시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 정면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담이었고 왼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밭이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왼쪽 창밖이었다. 남자였고, 아마도 청년 같았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텃밭쯤? 또는 텃밭 들어서는 길? 갑자기 놀랐거나 고통을 겪었거나 힘을 들이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떤 심리적인 괴로움을 강하게 실은 외마디 고함이었다. 으아악! 잠시 뒤 번개, 이어서 천둥이 꽝.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비도 이렇게 오는데, 궁상맞게 왜 거기서 소릴 질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번개 맞은 거 아냐? 아니지, 번개는 나중에 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게임을 하다가, 언젠가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였는지 얼른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전에 듣긴 들었다. 그때는 선배랑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이 그렇게 누가 소리 지르는 걸 선배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기억이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선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말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웃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근데 이 소리 전에도 듣지 않았어요?’ 그 기억이 났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이 일이 기억이 났다. 장마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그 기억이 났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 책을 만들려는 것일까.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輕惡黨

최근 읽은 기사 하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기사가 전하는 사건은 이렇다. 시인 C씨는 모 카페에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카페노동자 A씨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었다. 다음 날 다시 카페를 찾은 C씨는 A씨에게 시를 써주겠다며 사랑이 어쩌고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몇 장의 원고지를 건넸다. A씨는 ‘C씨가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C씨는 경범죄로 즉결심판을 받아 벌금을 물었다. C씨는 다음 날 또 카페를 찾아 어제 마신 커피를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환불을 받았고, ‘이제 나가달라’는 요구에 ‘왜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주차관리노동자 B씨가 C씨에게 ‘소화전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했으니 빼달라’고 요구하자 의자를 집어던질 듯이 위협하고 책을 던지며 폭행...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이것은 자칭 시인이 노동자에게 불쾌하고도 고루한 방식으로 추파를 던지다 단호히 거절당한 뒤 모욕감을 못 이기고 추태 난동을 부린... 내 입장(?)에서는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눈길이 특히 끌린 부분은 ‘경범죄로 즉결심판을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모든 것이 잘못된 듯한 이 촌극 가운데서 그 일만은 어쩐지 너무나, 너무나 옳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뜻일까? 구체적으로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뭐가 어떻게 옳아졌다는 것일까?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시·문학·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경범죄 즉결심판을 받는 것이 예술의 비밀스런 임무와 관련 있음이 뜻하지 않게 드러난 것일까? C씨의 시작(詩作)-퍼포먼스가 아이러니한 성취를 이뤄버린 것일까? ‘輕惡黨(경악당)’ 출판사의 문제의식이 이로부터 출발한다. 추파는 예술의 왜곡인가? 예술은 왜곡된 추파인가? 왜곡은 왜곡의 왜곡인가? 아무렴요... [왜곡]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재밌다?

가장 눈길이 끌린 부분이 ‘경범죄 즉결심판’이었으므로, 먼저 현행 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거나 삭제되었거나 이관된 종류의 경범죄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 나라에서 법 제정 이후의 모든 경범죄 유형을 살펴본 것인데, 꽤 긴 목록이었음에도 슬프게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슬픔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기로 하고, 읽으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이렇게 쓰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중에서 (해본 일을 제외하고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물길의 흐름 방해... 미신요법... 동물 등에 의한 행패... 두 번째 생각은, 이것은 이미 국가·자본·세계가 공식/비공식적으로,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최대한의 규모로 행하고 있는 일들의 목록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쓰레기 등 투기... 거짓 광고... 자릿세 징수... 관명사칭... 너희는 다 관명사칭이야 개새끼들아... 세 번째 생각은 이게 어느 정도는 집회 시위 등에 대한 즉결심판을 염두에 둔 목록 같다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종의 데모 가이드처럼도 읽혔다. 빈집 등에의 침입... 타인의 가축 기계 등의 무단 조작... 의식방해, 인근소란... 그래서 경악당은 어떤 출판사인가? 비밀스런 임무들: 경범죄인 동시에 즉결심판일 것, 추파가 아니라 조직될 것, 그리고 거절할 것... 이제 나가달라고 요구할 것... 끌려 나갈 것...

  • (빈집 등에의 침입) 다른 사람이 살지 아니하고 관리하지 아니하는 집 또는 그 울타리·건조물(建造物)·배·자동차 안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 (흉기의 은닉휴대)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
  • (폭행 등 예비) 다른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끼칠 것을 공모(共謀)하여 예비행위를 한 사람이 있는 경우 그 공모를 한 사람
  • (시체 현장변경 등) 사산아(死産兒)를 감추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변사체 또는 사산아가 있는 현장을 바꾸어 놓은 사람
  • (도움이 필요한 사람 등의 신고불이행)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 어린이, 장애인, 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사산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이를 관계 공무원에게 지체 없이 신고하지 아니한 사람
  • (관명사칭 등) 국내외의 공직(公職), 계급, 훈장, 학위 또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명칭이나 칭호 등을 거짓으로 꾸며 대거나 자격이 없으면서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제복, 훈장, 기장 또는 기념장(記念章), 그 밖의 표장(標章)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사람
  • (물품강매·호객행위) 요청하지 아니한 물품을 억지로 사라고 한 사람, 요청하지 아니한 일을 해주거나 재주 등을 부리고 그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영업을 목적으로 떠들썩하게 손님을 부른 사람
  • (광고물 무단부착 등)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집이나 그 밖의 인공구조물과 자동차 등에 함부로 광고물 등을 붙이거나 내걸거나 끼우거나 글씨 또는 그림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간판, 그 밖의 표시물 또는 인공구조물을 함부로 옮기거나 더럽히거나 훼손한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광고물 등을 함부로 뿌린 사람
  • (마시는 물 사용방해) 사람이 마시는 물을 더럽히거나 사용하는 것을 방해한 사람
  • (쓰레기 등 투기) 담배꽁초, 껌, 휴지, 쓰레기, 죽은 짐승, 그 밖의 더러운 물건이나 못쓰게 된 물건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린 사람
  • (노상방뇨 등) 길, 공원, 그 밖에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또는 그렇게 하도록 시키거나 개 등 짐승을 끌고 와서 대변을 보게 하고 이를 치우지 아니한 사람
  • (의식방해) 공공기관이나 그 밖의 단체 또는 개인이 하는 행사나 의식을 못된 장난 등으로 방해하거나 행사나 의식을 하는 자 또는 그 밖에 관계 있는 사람이 말려도 듣지 아니하고 행사나 의식을 방해할 우려가 뚜렷한 물건을 가지고 행사장 등에 들어간 사람
  • (단체가입 강요) 싫다고 하는데도 되풀이하여 단체 가입을 억지로 강요한 사람
  • (자연훼손) 공원·명승지·유원지나 그 밖의 녹지구역 등에서 풀·꽃·나무·돌 등을 함부로 꺾거나 캔 사람 또는 바위·나무 등에 글씨를 새기거나 하여 자연을 훼손한 사람
  • (타인의 가축·기계 등 무단조작)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소나 말, 그 밖의 짐승 또는 매어 놓은 배·뗏목 등을 함부로 풀어 놓거나 자동차 등의 기계를 조작한 사람
  • (물길의 흐름 방해) 개천·도랑이나 그 밖의 물길의 흐름에 방해될 행위를 한 사람
  • (구걸행위 등)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
  • (불안감 조성)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주위에 모여들거나 뒤따르거나 몹시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고 불쾌하게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거나 다니는 도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文身)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
  • (음주소란 등) 공회당·극장·음식점 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 또는 여러 사람이 타는 기차·자동차·배 등에서 몹시 거친 말이나 행동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하거나 술에 취하여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정한 사람
  • (인근소란 등) 악기·라디오·텔레비전·전축·종·확성기·전동기(電動機)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
  • (위험한 불씨 사용)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건조물, 수풀, 그 밖에 불붙기 쉬운 물건 가까이에서 불을 피우거나 휘발유 또는 그 밖에 불이 옮아붙기 쉬운 물건 가까이에서 불씨를 사용한 사람
  • (물건 던지기 등 위험행위) 다른 사람의 신체나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물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곳에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붓거나 또는 쏜 사람
  • (인공구조물 등의 관리소홀) 무너지거나 넘어지거나 떨어질 우려가 있는 인공구조물이나 그 밖의 물건에 대하여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고칠 것을 요구받고도 필요한 조치를 게을리하여 여러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우려가 있게 한 사람
  • (위험한 동물의 관리 소홀) 사람이나 가축에 해를 끼치는 버릇이 있는 개나 그 밖의 동물을 함부로 풀어놓거나 제대로 살피지 아니하여 나다니게 한 사람
  • (동물 등에 의한 행패 등) 소나 말을 놀라게 하여 달아나게 하거나 개나 그 밖의 동물을 시켜 사람이나 가축에게 달려들게 한 사람
  • (무단소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켜 놓은 등불이나 다른 사람 또는 단체가 표시를 하기 위하여 켜 놓은 등불을 함부로 끈 사람
  • (공중통로 안전관리소홀)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서 위험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으면서도 등불을 켜 놓지 아니하거나 그 밖의 예방조치를 게을리한 사람
  • (공무원 원조불응) 눈·비·바람·해일·지진 등으로 인한 재해, 화재·교통사고·범죄, 그 밖의 급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에 현장에 있으면서도 정당한 이유 없이 관계 공무원 또는 이를 돕는 사람의 현장출입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공무원이 도움을 요청하여도 도움을 주지 아니한 사람
  • (거짓 인적사항 사용)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록기준지, 주소, 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대고 배나 비행기를 타거나 인적사항을 물을 권한이 있는 공무원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묻는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자기의 것으로 거짓으로 꾸며댄 사람
  • (미신요법) 근거 없이 신기하고 용한 약방문인 것처럼 내세우거나 그 밖의 미신적인 방법으로 병을 진찰·치료·예방한다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한 사람
  • (야간통행제한 위반) 전시·사변·천재지변, 그 밖에 사회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을 경우에 경찰청장이나 해양경찰청장이 정하는 야간통행제한을 위반한 사람
  • (과다노출)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 (지문채취 불응) 범죄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의 신원을 지문조사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어 경찰공무원이나 검사가 지문을 채취하려고 할 때에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한 사람
  • (자릿세 징수 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쓸 수 있도록 개방된 시설 또는 장소에서 좌석이나 주차할 자리를 잡아 주기로 하거나 잡아주면서, 돈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돈을 받으려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
  • (행렬방해) 공공장소에서 승차·승선, 입장·매표 등을 위한 행렬에 끼어들거나 떠밀거나 하여 그 행렬의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
  • (무단 출입)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시설 또는 장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 (총포 등 조작장난)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총포, 화약류, 그 밖에 폭발의 우려가 있는 물건을 다루거나 이를 가지고 장난한 사람
  • (무임승차 및 무전취식) 영업용 차 또는 배 등을 타거나 다른 사람이 파는 음식을 먹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제 값을 치르지 아니한 사람
  • (장난전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화·문자메시지·편지·전자우편·전자문서 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괴롭힌 사람
  •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 (출판물의 부당게재 등)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사업이나 사사로운 일에 관하여 신문, 잡지, 그 밖의 출판물에 어떤 사항을 싣거나 싣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고 돈이나 물건을 받은 사람
  • (거짓 광고) 여러 사람에게 물품을 팔거나 나누어 주거나 일을 해주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만한 사실을 들어 광고한 사람
  • (업무방해) 못된 장난 등으로 다른 사람, 단체 또는 공무수행 중인 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
  • (암표매매)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
  • (관공서에서의 주취소란)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
  • (거짓신고) 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한 사람
  • (떠돌이) 일할 능력은 있으나 다른 생계의 길도 없으면서 취업할 의사가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아니한 사람
  • (덮개 없는 음식물 판매) 껍질을 벗기거나 익히거나 씻거나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덮개로 덮지 아니하고 가게 밖이나 한데에 내놓거나 돌아다니며 판 사람
  • (유언비어 날조유포) 국가나 사회의 안녕질서를 해치거나 사회를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퍼뜨린 사람
  • (장발 및 저속의상)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긴머리를 함으로써 좋은 풍속을 해친 남자 또는 점잖지 못한 옷차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님으로서 좋은 풍속을 해친 사람
  • (굴뚝 등 관리 소홀)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고칠 것을 문서로 요구받고도 사람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굴뚝·물받이·하수도·냉난방장치·환풍장치등을 고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사람
  • (전당품장부 허위기재) 물건을 전당잡히는 데 있어서 영업자의 장부에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직업 등을 거짓으로 알려 써넣게 한 사람
  • (비밀춤 교습 및 장소 제공) 공연하지 아니한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춤을 가르치거나 그 장소를 사용하도록 한 사람
  • (뱀 등의 동물을 진열하는 행위)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뱀이나 끔찍한 벌레 등을 팔거나 또는 팔기 위하여 늘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
  • (정신병자 감호 소홀) 위험한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정신병자를 돌볼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집 밖이나 감호시설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한 사람
  • (금연장소에서의 흡연)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표시된 곳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

2022년 9월 29일 목요일

공짜책

댓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겠다는 것은 미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세상에 걸맞은 미친 책이, 미친 원고가 필요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글, 붙은 듯이 뇌리에 남는 글, 그날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글, 그런 글을 찾다 보니 결론은 댓글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댓글들보다 추하고 흉하고 무섭고 로맨틱한 글을 읽어보질 못했다. 댓글은 저 고딕문학의 정통한 후예, 최첨단 후예다.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자 그대로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때마다 반드시’라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그 어떤 위대한 작가라도 한 번은 실패한다고 하지 않나? 댓글은 그 어떤 대문호도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미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손으로 완성해낸... 아니, 완성은 못한, 끝없이 쓰이고 있는 불멸의 명작, 끝없이 쓰이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단점도 없는, 그래서 끝이 나기만 한다면 성경에 비견할 만한 원고다. 왜 아닐까! 이 ‘공짜책’ 출판사를 만든 계기가 된,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댓글 하나가 있다.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내용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책값은 너무 비싸다, 정부가 이익집단들에 휘둘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정책을 자꾸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이 정권 우민화 기조의 일환이다,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맞서야 한다... 난 이 댓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맞선다니 어떻게, 누구에 맞선다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 맨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에 죽자 사자 매달려있는 쓰레기 같은 원고들만 들여다보던 중 마주친 그 댓글에서 느낀 청량감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과감함, 그 호쾌함! 이런 글을 두고 일필휘지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리 공짜책 출판사의 정신이었다. 우리 출판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우리의 정신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맞서야만 한다! 우리의 첫 번째 책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감동시킨 댓글들을 800매 정도 모은 것이었는데, 500부를 찍어 90부 정도 힘겹게 공짜로 배부하다가 깨달았다. 우리의 책은 굳이 종이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두 번째로는 좀 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서 모은 댓글들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배부했는데, 도합 20종을 내고 총합 9회 정도 다운로드된 시점에 또한 깨달았다. 우리의 책이 굳이 다른 책들과 함께 취급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세 번째 책은 웹페이지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접속하여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네 번째 책은 일종의 게시판에 게시물 형태로 만들어 9000개까지, 그다음엔 원글과 댓글을 함께 올려보고, 그 다음엔... 우리가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은 굳이 우리가 책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댓글은 쓰일 것이고 그것이 계속 책으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이제 마지막으로 만들고 있는 책은 ‘댓글을 책으로 만드는 백만 가지 방법’이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2022년 9월 6일 화요일

관둠

출판사 ‘관둠’은 출판사를 관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출판사를 관둔 그 수많은, 수많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과의 외주협력으로 출판사 관둠은 오늘도 돌아간다. 출판사 관둠의 외주 팀장님은 외주 디자이너님에게 오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때려치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외주 팀장님은 잠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영 이상한 일이다. 물을 마시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외주 디자이너님은 절대 먼저 연락해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연락하기 싫다. 외주 디자이너님한테 연락하라고 외주 편집자님한테 말해뒀는데 했을까? 모르겠다. 안 했을 것 같다. 외주 편집자님은 외주 교정자님 좀 구해달라고 성화다. 외주 번역자님 건은 어떻게 됐지? 외주 저자님도 아직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기 싫다. 이걸 왜 내가 하는 거야? 외주 연락자님을 구할까? 어제는 이 출판사 오너가 도대체 누구인가 찾아봤다. 도대체 어디가 ‘안쪽’이지? 외주 본부장님... 외주 이사님... 외주 부사장님과 사장님... 외주 대표님... 외주 팀장님은 안쪽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분명히... 이건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꿈이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못난 녀석이 있다면 주먹으로 코를 내려쳐줄 것이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곤한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다.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 잘 말려서 눌러놓은 것 같은 얼굴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책들이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생각은 외주 팀장님을 자주 사로잡는다. 우리가 만든 책들, 그것만은 현실이다. 그렇지? 그럴까? 그런데 책들은 어디에 있지? 외주 팀장님은 모른다. 아니, 알 것 같다. 외주 인쇄소님... 외주 사무실님... 외주 창고님... 외주 서점님... 외주 팀장님은 이제 출판사 관둠의 마지막 조각이 외주 독자님들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외주 팀장님이 인정했으니 다 잘 될 것이다. 관과 둠... 관과 둠...

2022년 8월 10일 수요일

ㅅㅈㅁㄹ

어쩌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사장님 모르게? ‘ㅅㅈㅁㄹ’ 출판사는 출판사 첫출발의 실마리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면 어떨까?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어버린다는 거다. 권한상 접근할 수 있는 회사의 모든 것을 이용하면서. 왜 그래야 하지?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만약 출판사에 다녀봤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업무 시간에 몰래 만들었다는 뜻인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자기가 등록한 출판사의 책을? 그런 것도 아닌 것도 있다. 그건 아주 초창기의, 혼자서 시작했을 때의 방식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만드는 책이 있긴 있다. 지금은, 자세히 밝힐 순 없고, ‘그보다 더한’ 방식이 많다. 기절초풍할... 사장님이 알면 나(우리)의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그 사장님이 한 명의 사장님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말이 되건 안 되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되는 일이다. 그 일은 가능하다. 어처구니없이 가능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우리도 믿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경이롭다. 사장님(들)께는 애석한 일이다.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순 없나? 다시 말하지만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몰래 하는 거니까. 혹시 범죄 아닌가? (거의) 범죄가 맞는다. ㅅㅈㅁㄹ 출판사는 악법도 법이라는 데 동의하고, 범죄는 죄라는 데 동의하고 인간도 간이고 사람도 람이고... 그런 냉소적인 말도 쓰여있다. ㅅㅈㅁㄹ 출판사의 QnA에 쓰여있다는 말이다. 출판사를 소개하는 웹 페이지와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QnA 외엔, ㅅㅈㅁㄹ 출판사의 존재를 입증할 다른 아무것도 없다. 무슨 책이 나왔는지 그것도 비밀이다. 몰래 만들었기 때문에. 이래서는 사장님 몰래인지 독자들 몰래인지 알 게 뭔가? QnA에 따르면, ㅅㅈㅁㄹ 출판사의 책 중 제법 팔린/읽힌 것도 있다고 한다. 8쇄를 찍었다고? 거짓말... 그 정도 되는 대로 거짓말은 나도 할 수 있다! 힌트만이라도 좀 달라는 질문에 ‘몰래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하면서 달아놓은 답을 읽어보자.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실험적인 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시 원고를 하나 얻었죠. 그 원고 그대로, 우리 ‘요원’이 만들고 있는 책에서 순서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찾아내 굵기를 아주 조금씩 몰래 키워놓은 겁니다. 미리 인지하고 보면 보이지만 아니면 모를 정도로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글자들이 순서대로 나오는 책을 찾는 부분이 참 쉽지 않았죠. 그렇게 시인 약력이랑 판권까지 만들었는데... 정말 공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실험적인 케이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쨌든 아무도는 아니죠! 저자와 편집 요원과 디자이너 요원이 확실히 읽었습니다. 표지 그대로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책도 읽은 거고요. 못해도 백 명은 될 겁니다. 만들어지고서 서너 번의 읽힘이 있을까 말까 한 책들, 저자 자신도 안 읽어볼 죽은 버러지 같은 책들이 많아요. 다 추억입니다. 이 답변을 읽고 나는 ㅅㅈㅁㄹ 출판사의 모욕적인 답변 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싶어졌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이미 항의는 많았다. 하지만 항의가 아니라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사장님들이 언제까지 이 출판사의 존재를 모를 거라 생각하나요? 모르다뇨, 사장님들을 전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알다마다요. 애초에 이 페이지도 그분들께 알려주려고 만든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몌구에서

별것도 아닌데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너는 지금. 이거를 딱 들고 착착착 넘겨보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거를 골라. 입에 감기는 거를. 입에 들어오고 눈에 감기는 거. 고르고서 거기다 출판사! 하고 붙여, 아니면 북스니 프레스니 뭐니 하여튼 붙인 다음에 뜻은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면 돼. 뜻이 뭐 대순가? 갖다 붙이면 붙으니까 뜻이지, 뜻! 뜻! 이거 봐, 소리가 꼭 붙는 소리 같잖어. 뜻! 뜻! 그럼 되는 거지. 그런가? 근데 붙는 소리보다는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같지 않아? 너는 지금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된다는 듯 이걸 한번 보라며 품에서 꺼내 손바닥에 쳐대고 있는 것은 단어카드집이다. ‘뜻!’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챠륵챠륵 경쾌한 소리가 나고 있다. 자기가 일하면서 마주친, ‘끌리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단어집이라는 거였다. 단어집은 고리로 꿸 수 있게 구석에 구멍을 뚫은 31장의 민짜 카드로 이루어져 있고, 카드마다 위쪽에는 번호가, 그 아래에는 적게 둘에서 많게 여섯까지의 단어가 적혀있다. 뜻은 없고 단어들만, 덩그러니 가지런하다. 찬찬히 넘겨보니 앞쪽에선 ‘두발짐승’이나 ‘목각음’처럼 좀 묘한 정도, 아니면 ‘신서의 비밀’처럼 뭔가의 제목 같은 느낌이지만, 뒤로 갈수록 뭐라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왔다. 20번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일일이 묻기에도 많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이런 단어들을 봐둔 것인지, 왜 이것들을 이렇게 정성껏 모았는지 궁금해졌다.

23번 카드의 다섯 번째 단어에 눈이 꽂힌다. 몌구... 소매 몌(袂)에 입 구(口)로, 옷소매에서 손이 나올 수 있게 뚫려 있는 부분, 소맷부리를 말한다. 이거야? 이거 골랐어? 이걸로 가. 쓸데없이 한자어니까 기왕이면 뒤에 뭘 좀 붙여. 에서? 몌구에서? MGES야? 그래 그걸로 해. 뭔들 어떻겠어. 이제 뜻은 만들어. 왜 소맷부리야? 너는 보통 속옷만 입고 읽는다고? 뭔 소리야? 이렇게 해. 옷과 책은 어쩌면 비슷한 것이다. 꺼내서 붙드는 때가 있고, 그때가 아니면 보관된다. 이걸 첫 문장으로 해. 그다음엔 이거야. 그러나 옷과 책은 다른 것인데, 사용되는 시간 동안 옷은 가리고 책은 드러낸다. 그래서 책이면 뭐야, 딱 붙들고 슬슬 넘기면서 읽어야지, 소맷부리면 뭐야, 팔을 꿰고 손이 쑥 나와야지 입은 거지, 이거야. 손 없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그럼 그 없는 손이 중요한 거겠네. 맞아. 여기 책은 입지 않은 옷이야. 손이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이 없는 거야. 이런 건 어때? 옷은 어지간하면 두 번은 입는다, 책은 두 번 읽힌다면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 가려주는 책이고, 두고두고 읽힐 책이다, 몌구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손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읽힐 필요도 없다, 이걸로 해. 됐지? 간단하지?

2022년 7월 5일 화요일

작가훈련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바꿔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선 사람이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뭘 짜냈건 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냈다고 한다면 또한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려는 사람들의 뒤를 좇아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말세에 도달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말세의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법 하나를 꼽자면 말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쥐어짜내는 것이겠다. 그리고 말세의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 역시...

우리 ‘작가훈련소’는 이러한 말세적 상황을 모른 척하거나 피하거나 그런 게 없는 듯이 굴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매 순간이 말세였다. 그것은 끝나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핵심은 뭔가를 여럿으로부터 짜낸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만약 그 무엇으로부터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조차 많은 것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인데... 있는 것들 중 여럿의 합력으로부터 짜내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이든 여럿 중의 하나로 있지 않을 도리란 없다. 만약 여럿을 발아래 둔 듯이 굴거나 그렇게 굴진 않지만 실제로는 발아래 두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발아래 놓여 짜내여질 따름인 이들, 또는 여럿으로부터 아주 내쳐짐으로써 있기의 곤란을 겪는 이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여럿이라면 바로 그것이 불길한 징조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를, 말세적 상황이란 짜내기의 횟수, 위치, 유량, 도관 배치 등의 불균등과 관련 있는 것이며, 어딘가로 들어간 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터지는 수밖에는 없다. 작가란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건, 뭘 짜낸다거나 안 짜낸다거나 주거나 말거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뭉쳐진 덩어리와도 같다. 우리가 작가들을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들겨버릴 것이다. 두들겨서 고르게 펴버릴 것이다. 아주 얇게, 금박처럼 얇고 넓게, 원래 그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도록...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훈련을 ‘받을’ 것이다. 작가훈련소의 책에는 작가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읽힐 권리 외에는 작가의 그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게 뭔가? 이것이 정신의 개조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가적 인식과 작가적 목표와 작가적 방법이 이와 같다.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슈레더

우리 출판사는 당신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쓰레기 같은 원고를요. 어떤 분들은 이걸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가끔 ‘평범한 원고’ 같은 것을, 극히 드물지만, 심지어 출간을 고려해볼 만한 ‘괜찮은 원고’를 보내오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쓰레기 같은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쓰레기 같아서는 어렵고 최고의 쓰레기여야 합니다. 우리는 몇 단계의 긴 회의를 거쳐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엄선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요소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누구의 이익에도, 우리 자신의 이익까지도 포함하여,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찾아낸다고 하는 사명에 대해 순수하고 엄중합니다. 진지하고요.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원고를 비할 바 없는 쓰레기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려낼 수 있습니다. 다 늘어놓고 보면 자연히 보입니다. 진정한 최고의 쓰레기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지는 지독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별자리처럼 스스로 빛을 발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쓰레기들을 늘어놓은 다음 그중에서 최고의 쓰레기를 뽑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의 원고, 그 쓰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해 메일함을 열어보며 기대합니다. 과연 최고의 쓰레기가 도착했을까? 도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당연히 종이책으로 말입니다. 당신의 원고가 우리를 통과해 책으로 변하는 겁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쓰레기가 나왔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 쓰레기를 서점들로 보낼 것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 책은 명실상부한 쓰레깁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주목과 물의를 일으킬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외면을 받을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최고의 쓰레기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따로 있습니다. 그 성취란 뭘까요? 바로 그 성취의 탐색―오직 그 일이 우리의, 우리 ‘슈레더’ 출판사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두 개의 원통형 절삭날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이미 넉넉히 이루어진 세상에서 깨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출판사의 소개 전부입니다.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먼지로

지랄하는 저자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슬리퍼를 칙칙 끌고 다니는 팀장이, 그 모든 것들, 오직 나를 좆되게 하려는, 책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일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 당연히 나까지도, 혐오스럽다. 미안하다. 그러나 싫다. 그리고 다음의 모든 것들, 통화와 문자, 메일... 그래, 전기! 전기와 나무! 롤러! 높은 천장 빠레트 마신 커피들 처먹은 밥들 화장실 사무실 화물차 속의 어둠... 어둠이 무슨 잘못이겠니? 그러나 그것들과, 만지는 손끝과 읽는 눈알도, 색깔과 낱장, 계단, 상자, 그런 것들 다 싫다. 계산서의 숫자들... 복잡한 얘기... 난 복잡한 얘기는 싫다. 단순한 것도 싫다. 말과 글자들 주소들 그것들의 있음과 없음 모두 싫다. 그리고 드디어 앞뒤 표지와 책등도 싫고, 열두 개의 모서리가 싫다. 펼쳐진다는 것도 덮인다는 것도 그렇다. 싫다. 겪은 적 없는 기억, 들은 적 없어도 아는 목소리 다 싫다. 이제껏 나온 책들이 많다. 많다 하고 말기엔 너무나 많고, 그 책들은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읽히지 않는 채 꽂혀 있거나 쌓여 있다. 그것들이 버섯 또는 곰팡이처럼 뿜어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먼지들, 혐오스럽지 않은 것이라면 오직 그 먼지들뿐이다. 그것은 책이 이제 부서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신을 들이마시게 하려고 책 스스로 부서진다? 그건 복수다. 아니면 손짓이다. 드디어, 그들이 인체를 펼치고 넘기려는 것이다. 우리를 읽으려는 것이다. 우리 속으로 들어가서. 책의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내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냄새, 쌓인 책의 좋은 냄새, 나를 읽으려는, 먼지로... 먼지로! 바로 그 책이 ‘먼지로’ 출판사가 만들려는 책이다.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돈버는방법

‘내 꿈은 돈벌이’라는 이야기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아, 핵전쟁을 겪은 듯 아주 쓴 입맛으로 잠들었던 간밤. 꿈에 다리 많은 벌레가 나왔는데 우리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움직임이나 기색이나, 벌레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느낌이란 게 있었다. 우리는 서로 피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잘 지냈다. 벌레도 내 표정을 읽진 못했겠지만, 느꼈을까? 회사에 나와서 앉은 지금 벌레의 다리들보다 많은 돈 얘기를 읽고 들으며 내 꿈은 핵전쟁이 되어 가고 있다. 줄지은 벌레들이 눈알 위로 지나가고 있다, 귓속으로 입속으로 드나들고 있다. 나는 이제 꿈속의 벌레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돈 버는 방법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겠다며 쏟아져나오는 저 수많은 쓰레기 책들과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지 모르고, 나를 어떻게 갈아버릴까 호시탐탐인 사장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빨간 교정 표시들이 뽈뽈대며 모였다 흩어진다, 사장실로부터 찍찍대는 소리 층층 겹겹... 이거다! 도저히 벌레가 되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면, 그러니까 저자가 벌레 같은 저자여서는 안 되고, 물론 벌레 같은 책이어서도 안 되고,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다면, 서로 느껴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그 짐을 출판사가 짊어지는 수밖엔 없는 것이다. 무거운 그 짐... 그야말로 오물 더미 같은 그 짐! 우리의 사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책등에, 표지에, 아니면 어디에라도, ‘돈버는방법’이라고 쓰여있으면 한 번은, 그래도 한 번은 펼쳐보지 않겠나? 우리의 희생을 통해 있어도 될 만한 책을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될는지 모른다. 돈 버는 방법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 일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책, 그놈의 돈 버는 방법과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책을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임금에 드디어 만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나의 임금에 만족한다는 것이, 더 이상 어떤 종류의 도피를, 내가 원했던 적 없는 종류의 도피를, 뜻하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2022년 5월 16일 월요일

일망타진

한 번의 그물질로 싸그리 잡는다, 투망일까? ‘일망타진’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출판사 이름을 일망타진으로 하자는 데에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 외 아무 뜻이 없다. 하지만 출판사 이름이 일망타진이라면 그건 무슨 뜻일까? 일망은 뭘 뜻하는 거고, 싸그리 무엇을 잡는다는 뜻일까? 씨줄과 날줄은 무엇이며 그물코는 무엇일까? 그물이 책이라면... 낱장이 씨줄이고... 출판이 그물이라면... 고기는 우리다... 그물이 독자라면... 날줄은 국어... 고기가 책이라면... 그물은 노동이다. 고기가 책이라면... 고기가 책인 편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씨줄은 독자의 노동이고 날줄은 나의 노동이다. 잡는다는 건 뭘까? 읽는다는 걸까? 산다는 걸까? 잡지 못한다는 건 뭘까? 너의 노동과 나의 노동 끝에도 책을 잡지 못한다는 건? 타이밍이 문제였을까? 그물코가 너무 컸나? 책이 너무 작았나? 잡았다가 놓아줄 수도 있을까? 고기는 잡았더라도 놓아줘야만 하는 것이라 치자.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투망은 이상하다. 족대면 모를까. 일망타진이면 놓아줄 수 없다. 뭘 잡고 놓는 것은 수량과 관련된 문제일까? 하나를 잡으면 놓아줄 수 있지만 너무 여럿을, 모조리 잡으면 못 놓는다? 한 권을 읽었다면 놓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권을 읽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일망타진 출판사의 방향성과 썩 맞진 않는다.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바닷가로 소풍을 갔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풀어놓고 한 시간쯤 놀게 했고, 그사이 우리는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줍고 잡았다. 나는 플라스틱 생수통에다 소라게를 몇 마리 넣었다. 시간이 잘 갔다. 다시 버스에 모인 우리는 각자 잡은 것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많이 잡은 편도 적게 잡은 편도 아니었다. 한 친구가 내게, 소라게들을 놓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째서? 나는 소라게들을 위해 특별히 입구가 넓은 통을 주웠다. 모래와 자갈도 좀 넣어주었다. 그때 그 친구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뭐라 열띠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설득당했고, 나처럼 설득당한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한테 가서 이것들을, 불쌍한 소라게 따위를 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이미 늦었다.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2022년 5월 3일 화요일

금치산미디어

나는 멍하니 누워 있다. 왜 내가 나의 재산을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거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지 않던가? 도대체 어떻게, 나의 재산에 대한 나 자신의 엉망진창 재산 관리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 걸까? 재산이란 게 정말 중요한 거라면, 거기 어떤 의미가 있다면 말이다. 재산이란 것에 물론 의미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재산 생각들을 한다. 왜 아니겠나? 다시 말해, 무의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내 재산이란 것을 내가 멋대로 해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 그럼 멋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어쨌든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계 있는 사람인데 나의 재산 다루기에 한계가 없다면 이상하다. 한계가 있어야 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 내가 아닌 것, 나 이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냥 형식적인 몇 가지 제한이 아니라, 내가 아닌 뭔가가 나의 재산에 전격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세계가 가능하지 않으리란 말이다. 왜 가능하지 않냐면, 이미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절대로 결단코 금지될 수 없는 듯이, 내가 내 재산의 가능적 무제한성에 딸려붙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재차 왜냐하면, 나의 재산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생각에 쥐꼬리만큼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이에게, ‘금치산미디어’는 활짝 열려 있다.

경제의 자유? 무슨 그런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별 씨 개 같은 소리들... 이런 건 어떨까?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멋대로 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엉뚱한 데에 써버리도록 그냥 두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저 녀석에겐 그럴 만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저 녀석의 탓이 아니다,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이든 저 녀석의 한계를 넘어서고 마는 그토록 거대한 권한이, 저 녀석에게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나? 만약 저 녀석의 초과된 권한을 부드럽게 덜어주기 위해 정당한 책임 나누기의 일환으로 내 재산의 처분과 관리 역시 나로부터 어느 정도 금지되어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 글쎄 그래도 된다지 않아! 이미 그렇다니까! 바꿔 말해 이럴 수도 있다. 정말이지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재산 처분과 관리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재산의 처분과 관리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다, 참을 수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 ‘사람 취급’이라는 이 패습, 재산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형태가(‘자유’가) 결정되고 사람으로 감각되는 이 세계에서, 한편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처분하고 관리할 재산 자체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며 무슨 뜻일까? 이 생각은 사람 아닌 것들에 대한 생각과 그것들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것처럼이 아니라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그 방식에 대한 생각, 금치산미디어는 바로 그 금지된 생각들과 함께 간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어떻게 금지한다는 걸까? 개가 자신의 녹색 인형을 물고 온다.

2022년 4월 19일 화요일

장마서림

생각이 장마철의 숲속에 있다. 서가가 숲이라면 빗물은 눈길이다. 빛은 손이고 그늘은 생각이다. 중력이 밤 같다. 이런 따위 비유들. 장마는 안다. 숲은 뭔가? 숲은 쓰레기다. 장마는 냄새다. 나는 장마철의 숲속에서 자신과 숲 밖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가라! 여기에서 나가라! 질식 직전의 내가 지렁이처럼 내밀어지고 있다. 별처럼 쏟아진다. 바늘에 꿰인다. 한 가지도 없다. 뭔가를 읽어서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뭔가를 써서는 막을 수 있을까? 있다면, 읽거나 쓰는 일이 막는 일과 어떻게 관계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없을까? 숲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듯이, 읽거나 쓰는 일도 막을 수 없다면, 숲이 없어지는 것도 막을 수 없을까? 막는다는 것도 생긴다는 것과 같이, 생각만으로는 없어서, 그것은 물러설수록 오가는 것이고 다가갈수록 오가는 것인가? 오가지 않으면 없다는 뜻인가? 숲을 위해 장마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장마를 위해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여기서 서로를 위하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래서 서로를 위한다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결코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장마도 여름도 없는 곳에선? 때에선? 마른 발이 장화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바닥이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챔피언출판사

오늘 사원에서 과장으로 진급했다. 3계단 특진이지만 3계단 임금 상승은 없었다. 그보단 이제부터 업무 평가를 해서 임금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이 무슨... 그게 그렇게 됐다고, 비몽사몽 커피를 타다가 정수기에 붙은 A4 공지에서 읽었다. 그렇게 나는 이전까지의 두 대리님, 두 주임님, 다른 한 사원님과 함께 과장님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지난 6년간 차장은 나를 ○○ 씨라고 불렀는데, 오늘부터는 소름이 끼치는 ○과장님이다. 같은 성씨인 다른 두 명의 ○과장님이 동시에 돌아본다. 그들이 불릴 때 나도 돌아본다. 총원 11의 이 사무실에 이제 8명의 과장님이 앉아있다.

이곳은 이른바 편집 대행사다. 주로 전공서적의 디자인, 조판, 교정을 대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은 무슨 해외 미디어? 그룹?의 한국? 지부? 출판사?로부터 넘겨받고, 저자 또는 역자들은 모두 어딘가의 교수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교정공이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앉아 하염없이 교정만 본다.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통화할 일도 없으며, 동료들과 이야기할 일조차 거의 없다. 명함도 직함도 당연히 없었고, 필요도 없다. 나의 일이 변할 일도 없다. 업무 평가? 대체 무슨 놈의... 그런데도 이렇게 얼렁뚱땅 팔과장 중 최약체...가 된 것은 사장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 명씩 면담을 진행한 결과다. 들은바 거기서 저자들이나 원청에 ‘무시’당하지 않게 직급이라도 높여달라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소규모·하청 업체에서 갑을관계 때문에 겪는 고충을 두고 사원들의 직급을 뻥튀기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일단 역겹고 환멸이 나는 일이다. 처음 다녔던 곳도 이런 식이었다. 거기선 6개월 만에 대리 명함을 줬다. 그때도 명함 따윈 하등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사장, 그러니까 나의 1대 사장은 때에 따라 세 가지 직함으로 불러야 했다. 실장님 대표님 사장님... 2대 때는 어땠느냐면... 아니다. 이게 다 무슨 지랄인가? 책 한 권을 두고 도대체 몇 명이 각자의 책임을 서로의 직함을 향해 썩은 것 다루듯 떠넘기고 있는지, 한번 세어본 적이 있다. 막무가내 일정이 나오면 프리랜서들을 구하기도 하고, 자기가 맡은 부분을 누군가들에게 찢어서 맡겨버리는 교수들도 있기 때문에, 최대로 싸그리 모으면 제법 규모 있는 토너먼트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토너먼트 생각이 났는지.

가끔 하는 생각. 그럴 수만 있다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서, 차가운 주차장에 대가리 박게 하고 앉았다일어나 시키고, 찢어진 우산을 쥐여쥐면서 폭우 쏟아지는 한강변을 타이어 끌며 달리게 만들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직급을 높인다’고 하는 방향은 맞는데, 단지 충분히 높지 않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충분히’ 높인다면? 일테면, 나를 대표로 진급시킨다면? 그게 답이라면? 찢어진 우산 들고 어쩌고 하는 일을 지금처럼 내가 하든가 아니면 남이 하든가 꼭 그래야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대표라면? 내가 대표가 된다면? 만약 열여섯 명의 대표들이 이 책을 만든다면? 대표 대 대표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대표보다 높을 순 없나? 어차피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챔피언 같은 걸로 부르면 안 되나? 챔피언 대 챔피언으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 같은 원고를 들여다보며 챔피언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2022년 3월 17일 목요일

전쟁하는 꿈

전쟁하는 꿈을 꾸다가 깼다. 이불 속으로 수류탄을 넣어주길래 그 손을 붙들었다. 언제는 비둘기들을 쏴 죽였던 적도 있다. 창문이 다 깨지고... 꿈에서 비둘기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사명을 ‘전쟁하는 꿈’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꿈’과 ‘전쟁하는’ 사이를 붙일까? 띄울까? ‘전쟁꿈’ 세 글자로 맞추는 건 어떨까?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가 들어간 출판사가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몇 군데 있었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살인하는 꿈’ 같은 사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쟁이 있는 한 그 이름도 어려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마스크 위의 잔병 같은 눈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비둘기들은 바닥에 있고 공중에 있다.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돼지와 개

돼지와 개가 서로 앞다리를 맞대고 뒷다리로 일어선 실루엣이 출판사 ‘돼지와 개’의 로고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다음엔 한 마리의 개라고 생각해보라. 돼지와 개 출판사는 오로지 그 생각을 향해 돌진한다. 그 외 다른 특별함은 없다. 이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라. 그다음 한 마리의 개라고.

어디서 일하십니까?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어디서 나온 책입니까?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것이다. 안녕하세요? 돼지와 개 출판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습니다. 책을 왜... 출판사에서는 온갖 메일을 다 받는다. 언젠가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하나도 재미없어요, 재밌나요? 돼지와 개? 우리 출판사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재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다음 한 마리의 개라고...

돼지들에 대해 개들에 대해,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는 요즘 생각해보고 있다. 여러 생각의 돌진 끝에 한 마리라는 제한 속에서는 그들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은 것이다. 당신이 이제 돼지를 대표한다고, 그다음엔 개를 대표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또는 어떤 돼지와 개가 당신을 대표한다고, 당신을 대표하여 어딘가로 나아간다고. 당신이 대표되기 위해 돼지들과 개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 속에 돼지들이 있다고, 그다음엔 개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돼지들의 머리 머리 위에 임한다고, 그다음엔 개들의 머리 위에, 둥글고 뜨거운 머리들 위에, 안에, 아래에, 앞에, 뒤에.

당신이 뭔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런데 당신이 돼지들이라고 생각해보라. 그 다음엔 개들이라고. 돼지와 개 출판사의 생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감정은 슬픔이다. 따라서 돼지와 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로부터는(책이 나올 수 있다면) 그 내용이 어떻건 ‘문학적’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만약 슬픔보다 다른 뭔가가 앞선다면 그것은 돼지와 개 출판사의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결론이건 항복이건 그렇다. 서로 앞다리를 맞대고 뒷다리로 일어선... 돼지와 개 출판사는 결론도 내지 않고 항복도 하지 않는다. 고뇌의 행진을 끝없게, 그리고 슬픔을 맨 앞에 세우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돼지와 개 출판사다. 미래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과거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입에 물려는 것은 우리의 과거에 대하여 유일하게 수긍할 만한 대항이다. 순간적인 망각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이런 식으로 재미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죽었다. 그다음에 목숨을 건졌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냄새를 맡고 있다. 먹을 것이나 쌀 곳을, 아니면 다른 뭔가의 냄새를. 돼지와 개 출판사는 웅덩이에서 구른다. 물었다가 놓는다. 삼키거나 받는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쫓아간다. 돼지와 개 출판사는 앉는다. 눕는다.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경쟁사

뭐였더라? 어제 퇴근길에 분명 이거다 싶은 이름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나의 마음은 요즘 한스럽다. 모두가 서로를 욕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두를 욕하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욕하고 있다. 모두를 욕하는 모두를 욕하고 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만드는 조건들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보아도 모두 그렇지는 않다. 한편엔 울고 있는 사람들, 울고 있진 않더라도, 우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이 있다. 아니... 아니다. 울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화가 나 있다, 화를 참고 있다. 엉뚱한 화를 내고 있다. 아닌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상태는 좋지 않다. 또는, 좋지 않은 상태가 우리에게 더 넓게 더 깊이 도달하고 있다. 한마디는 무슨 한마디? 하여튼 큰일이 났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거의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피곤한 상태다. 하는 것도 없이? 하는 것도 없이. 당연히 없진 않은데, 없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이, 더 넓게 더 깊이.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잡은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집단 자살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자연사더라도 자살이다, 자살이더라도 살인이다. 이거더라도 저거고...

떠올랐던 것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다가, 어떤가? 이 상황을, 서로가, 추상적인 모두라는 것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경쟁을 멈추자는 말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힘을 잃는 말과 추상적인 말은 서로를 북돋는 경향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실현해낼 수 있다. 갑자기 이러한 원칙을 하나 세워본다. 경쟁 → 코미디 목적이 아니면 하지 말 것. 바꿔 말해, 피할 수 없는 경쟁적 상황 일반을 우리는 코미디의 일종으로 바꿔버릴 필요가 있다. 경쟁이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코미디여야만 한다. 경쟁이 코미디화될 수 없다면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주눅 든 사람은 자신의 경쟁심을 코미디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모욕받고... 울거나... 모욕을 시작한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서, 특히 삶에 대해서. 이러한 원환에 전과 다른 힘을 가하는 구체적인 책이 그래서 무엇일지를, ‘경쟁사’는 사운을 걸고 고민하는 출판사다.

‘경쟁사’가 추구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끊는 책이다. 우리는 오직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정확히 끊어내기 위해 경쟁한다. 그것은 끊어진 것들의 총력전이고 전면전이다. 우리는 제거되어도 그 책은 웃는다. 둘째, 다소 뻔뻔스럽게도, 그것은 경쟁상황을 협동상황으로 재인지하고 재인지시키는 책이다. 우리는 위험한 곳이야말로 역전의 계기가 고이는 곳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는 첩보전이고 유격전이다. 그 책은 패배해도 우리는 웃는다. 셋째, 이런 종류의 이야기엔 항상 셋째가 있어야 하므로, 셋째로 그것은, ‘코미디가-아닌-진정한-완전-경쟁’의 영역을 어딘가에 만들려는 책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건 코미디일 뿐인. 그것은 죽음에 대한 훈련, 빈 객석이다. 그 책도 우리도 절대 웃지 않는다, 죽어도 웃지 않는다. 이기기 전까진.

2021년 12월 9일 목요일

꽈배기책방

처음엔 그냥 평범한 출판사였다. 출판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그럼 서점도 같이 하면 괜찮지 않겠느냐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출판사는 몇 %인데 서점은 몇 %를 떼 가고 어쩌고... 그릇된 해결 방안에 알맞게 상황은 두 배로 안 좋아졌다. 그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동료 한 명이 알바 경험을 살려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반응이 왔다. 그런데 기왕 시작한 거 커피만 팔기는 아쉽지 않냐, 그러면 뭐가 좋냐, 꽈배기 어떠냐, 그러다 된 것이 ‘꽈배기책방’이다. 원래 출판사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걸로 운이 트였는지 그 동네 흐름이 그랬는지 나름 지역 15대 이색 명물 축에 끼게 되었다. 이걸 읽고 행여나 커피나 꽈배기를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여기엔 다 쓸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결정적으로는 건물이 대표 거였다. 개새끼... 여하간 그때까지 우린 여전히 책을 만들었고, 그걸 매대에 놓기도 했고, 커피와 꽈배기를 함께 팔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싶겠지만 세상엔 그런 일도 있다(마법 같은 문장). 손님들이 꽈배기 먹던 손으로 들춰 본 책들은 당연히 팔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어떤가? 어쨌건 들춰는 봤다는 게 기적이었다. 우리는 즐겁게, 책을 찢어 꽈배기 봉투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꽈배기 판 돈으로 책 만드는’ 구조가 겨우 정착됐는데, 몇 달 전부터 대표 녀석이 이제 출판은 접겠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 없지. 우리는 집에서 가까워 좋은 이곳에, 최소한 지금 월급 그대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붙어 있고자, 대표에게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계간으로 꽈배기 전문지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부터 해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제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는 항상 그랬듯 『계간 꽈배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계간 꽈배기라는 백지 위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신이 나서 마구 펼쳐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대표가 즈란꽈배기를 팔자고 했을 땐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가 이 다음 위기도 헤쳐낼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지금도 꿈같고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맞는가? 아니면 꼬여버린 시간선 속에서 과거나 미래의 일을 당겨 겪는 건가?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두족류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농담이 있다.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듯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고, 하나는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건? 역시 두 가지 뜻으로, 하나는 용서할 아무런 도리가 없다는 뜻이고, 하나는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이 있다는 건 어떨까? 용서할 권한이 오직 내 안에 있고 나에게만 미친다는 뜻이면서, 용서할 만한 일을 절대 당하지 않는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용서를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우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에 있다는 말과 한 사람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말 사이에 아주 대단한 차이가 없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안다.

출판사 ‘두족류’의 로고는 휘리릭 펼쳐지는 중인 책을 책머리 방향에서 본 모양이다. 그것은 매달린 책처럼도 보이고, 책배부터 떨어지는 중인 책처럼도 보이고, 거꾸로 놓인 부채처럼도 보인다. 책등에서부터 방사형으로 뻗쳐 나오는 낱장들의 선은 출판사 두족류 구성원들의... 뭔가를 자극한다. 출판사 두족류에 다닌 지가 벌써 얼마인가?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이 로고를 들여다본다. 옆자리의 동료도 그런다는 걸 알고 있다. 굳이 서브컬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두족류의 여러 신비한 특징에 대해서는 오늘날 제법 알려져 있다. 출판사 두족류에서 나오는 책의 특징이라면, 책등과 표지의 위아래가 서로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게 사고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두족류의 책을 서가에 꽂을 때 책등을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 책을 뽑았을 때 표지가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출판사 두족류의 저자 섭외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저자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저자 후보에게 처음으로 연락하며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그러면 저자들은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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